[공리주의]나 의무론적 윤리관 모두 철학의 분과 중 윤리학에서 등장하는 논의들이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그의 저서 "실천이성비판"에서 결과보다 동기를 중시하고, 외부 요인보다 스스로의 이성의 법칙을 중시하는 "의무론적 윤리관"을 제시하고 있다.
그가 남긴 말 "너의 의지의 준칙인 동시에 일반적인 법칙에 타당하게 행동하라."는 유명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보편타당한 윤리적 기준을 마련할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의 이성 법칙이 그 근거가 된다고 한다.
이런 칸트의 의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사상이 제레미 [벤담](Bentham, Jeremy , 1748.2.15~1832.6.6),
존 스튜어트 [밀](Mill, John Stuart , 1806.5.20~1873.5.7) 등으로 대표되는 공리주의적 윤리관이다.
밀은 "공리성 혹은 최대행복의 원리는 어떤 행위가 행복을 증가시키는 경향에 비례하여 옳은 것, 감소시키는 경향에 비례하여 나쁜 것으로 보는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런 의견을 <규칙공리주의>라고 부른다.
반면 벤담은 <행위공리주의>라는 것을 내세웠다. 그는 매 행위의 쾌락, 고통 증가율을 측정해서 윤리적 평가를 내릴 것을 주장한다.
이 계산을 위해 그는 쾌락의 가치, 고통의 가치를 계량, 수치화하고 평균을 내서 합산한 뒤, 이해관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행복의 지수와 더해서 전체적인 <행복도를 측정>하기 위한 길고 복잡한 식까지 제시했다고 전해진다.
공리주의자들은 사회 정의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입장을 따르자면 소수의 희생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해야 하는데, 이것은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정의감에는 잘 맞지 않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칸트가 말한 "보편타당한 행위 규범"을 공리주의자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예컨대, 사람들이 보통 "살인을 하지 말라"고 말하는 이유는 칸트에 의하면 인간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보편 타당한 윤리의식 때문인데, 공리주의적 입장으로 보자면, 사회 안에서 일반적으로 살인을 금하는 이유는 살인으로 인해서 우리의 행복이 침해받기 때문이고, 만약에 하나의 살인이 아주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면 서슴지 말고 살인하는 것이 맞는 것이 된다는 주장이다.
바꿔 말하면, 공리주의가 말하는 <정의>는 그 근원이 개개인의 "정의감"에 있지 않고, 사회 유지의 필요에 의해 나타난 발명품이라는 것이다.
이런 공리주의에는 몇 가지 해결되지 않는 모순들이 있는데,
①"사회의 기본적인 룰(약속 지키기, 살인 안 하기 등 상식적인 것들)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 최대 행복-공리-을 추구하자"는 규칙공리주의적인 입장에서, 공리주의적인 관점을 철저히 따르자면, 사회적인 룰이라는 것도 언제든지 공리성에 의해 뒤집힐 수 있는데, 언제 뒤집혀야 하고, 언제 지켜져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런 판단을 누가 할 수 있을지도 물론 알 수 없다.
②'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잘 정의된(well-defined) 단어가 아니다. 이 말이 뜻하는 바가 명확치 않다. 일반적인 '최대선(행복의 총량)'과 '최대다수의 최대선(수혜자의 수를 고려한 총합)' 중 어느 것을 따르라는 말인지, 애매하다. "한 나라 안에 단 한 사람의 조만장자와 4천만명의 거지가 있어도 GNP만 증가하면 좋아졌다고 봐야 하는가.이것이 우리의 보편적 정서 안에서 정의로 통용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려주지 못한다.
공리주의는 기본적으로 분배적 정의의 이상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분배가 잘 이뤄지는 거지나라의 평균적인 사람보다 돈을 많이 버는 나라의 거지의 생활수준이 높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서는 각자 생각하고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공리주의는 [흄]의 회의주의, [자연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