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클로디온 - 예술사진
클로디온시대의 사진은 초상이나 예술사진 이외에도 범죄, 인류학, 병원등 수많은 사진의 발달이 시작 되었다. 이 장에서는 예술사진에 대해 서술해 본다.
사진은 예솔인가? 지금부터 150년전 1850년 - 60년 사진은 예술로 취급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사진은 인간이 개입 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다게르타입은 너무 선명하기 때문에 (실제와 너무 흡사 하다는 이유) 에 예술로 취급 받기 어려 웠다. 1855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사진은 in industry, not in art part 였다. 4년 후인 1984년 살롱의 art 부분에 참여하게 된다. Art는 Grand Art와 Art로 나뉘어 지는데 Art는 일종의 Technique로 분류 되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1985년 쿠르베, 마네와 같은 화가는 살롱전에 출품을 거부 당하였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에 대한 고려가 없이 너무 그림을 사실적으로 그린 까닭이다. 일종의 다게르타입과 너무 닮았다는 이유다. 당시에 Gand Art가 되려면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고, 그 상상력을 작가의 고유한 스타일로 표현한 것 이어야 했다. 1859년 보들레느는 사진은 과학과 예술의 하녀 (Document,/자료) 라고, 그것도 인쇄술과 속기술처럼 아주 비천한 하녀라고 혹평 하였다.
역사적으로 사진과 예술의 첫 만남은 칼로타입의 등장 부터다. 칼로타입은 입자가 크고, 흐려, 예술작품에 근접하여 종종 그림의 밑그림으로 사용 되었다. 사진이 예술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진의 예술제도 즉 사진박물관, 사진비평가, 등 사진에 대한 제도가 완비 되어야 예술로 인정을 받는 것인데, 역사적으로 대학에 사진학과가 처음 개설 된 것은 한참 후인 1974년 파리의 솔본느대학 에서다.
클로디온시대에 사진은 회화를 모방하였다. 다케르타입의 선명함과 디테일을 버리고, 회화의 형식을 빌려 순차적 재현과 사진의 흐림을 적용시켜 나갔다. 즉 고전회화의 주제인 정신적 신비적 주제를 표현하려고 하였다.
이당시 영국의 예술사진작가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조합인화 (Combination Print)를 대표하는 레일렌더, 로빈슨. 둘째, 흐린이미지의 예술언어를 구사한 카메론. 셋째, 정신적 신비적 주제를 다룬 루이스 캐롤. 이런 순서로 알아 보고자 한다.
1) 오스카 구스타프 레일렌더 / 스웨덴 / 1813 - 1875
이사람이 처음으로 예술사진을 시도 하였다. 1957년 비엔날레 출품작을 구상하면서 그는 현인이 두 젊은이에게 인생의 양면을 소개하는 사진을 만든다. ( The two way df life. 1857. 80 * 40 cm ) 레일렌더는 지지판에 은입자를 바르고(믿그림), 야외에서 촬영항 30장의 사진을 6주간에 걸쳐 사진 한장씩 원판유리판에 옮기고 이것을 프린팅 하였다. 이것을 본 빅토리아 여왕은 이것은 유례가 없는 최초의 사진이며 찬란한 그림이라고 칭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평가들은 조합인화는 너무 이기적이라며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챨스 다윈은 "Expention of the Man and Animal" 에서 여러 동물과 인간의 얼굴 표정을 등장 시키는데 여기에 레일렌더의 작풍이 많이 인용 된다. 레일렌더는 필름2장을 겹쳐 동시에 프린팅하는 최초의 이중노출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그러나 레일렌더는 조합인화가 연출과 분장을 통해 비현실적이고 인위적이며 거짓을 표현하고 있다는 비평에 시달려 1859년 조합인화를 포기하게 된다.
2) 헨리 피치 로빈슨
로빈슨은 1858년 사진 5장을 합성한 죽어가는 소녀를 표현한 Fading Away(임종)를 발표 했는데 비평가들은 이런 고통스러운 장면을 표현하는 것은 너무 고약한 취미라고 비평한다. 진짜 예술작품에는 이런 정도의 그림이 수두룩 한데도 말이다. 로빈슨은 "Pictorical effect df photography" 라는 예술사진저서를 남기고, 여기서 그는 사진에서도 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사진의 Automatism을 거부 하였다. 사진의 예술화에 크게 기여 하였고, 자연주의 회화주의에 많은 영향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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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
3) 줄리아 마가렛 카메론 / 영국
카메론은 귀족의 딸로서 고위관료의 부인으로서 찰스 다윈과 같은 유명인사 대부분과 친구였다. 그녀는 49세 생일에 콜로디온 카메라와 열가지 화학약품을 생일선물로 받고 사진을 시작하였는데 단숨에 최고의 사진작가 반열에 오르며 흐릿하기로 유명한 유명인사의 초상사진을 즐겨 찍어 초상사진의 대가가 된다. 그녀는 드러낸 모습 뿐만 아니라 내면에 들어있는 위대한 어떤 것을 기록해야 하는 즉 기도해야하는 마음의 표현에 가까운 무엇을 사진에 담는 것이 사진작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상상력과 감수성 으로 종교적 정신적인 사진을 추구하는 Grand Art 를 추구한 것이다. 카메론은 조리개를 열고 클로즈업하여 일부러 초점을 정확히 맞추지 않고 노출시간을 오래둠으로서 피사체가 흔들리도록 유도했으며 유리네가트브와 프린트 사이에 반투명유리를 넣어 흐릿한 사진을 만들었다. 그럼으로서 시적이고 상징적 암시적인 효과를 구했으며 사물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고 사물이 품어내는 묘한 것을 부각 시키기 위해 노력 하였다.
1864년 12월 31일 빗나간 초점에 대한 비평에 이렇게 반박하였다. "초점이면 그냥 초점이지, 무슨 합당하게 정해진 초점이라도 있다고 말 할 수 있나요? "
"사진에 오로지 고상함을 부여하고, 고급예술의 속성을 사진에서 건져내고 싶다"
4) 루이스 캐롤 / 영국
19세기의 사진중에 이사람 사진 만큼 독특하고 엑사이트한 사진은 없다. 그는 말더듬이고 귀도 잘 안들렸으며, 다리도 절어 사교적이지 못했고 내면으로 향했다. 그는 옥스포드를 나왔고, 수학, 철학, 논리학을 가르치는 옥스포드 대학의 교수면서 소설가이기도해 우리가 아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사람이다. 삼촌이 선물한 카메라로 사진에 매료되어 28세에 (1855) 칼로타입을 배우고, 30세에 칼로타입 사진을 배운다. 그는 여자아이에 대해 모든 그의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고 연출하여 사진을 찍었다. 1858년 친구의 딸인 앨리스를 촬영한 "Photo of Alice Liddel"을 제작 하였다. 그는 자신의 사진을 남에게 보여주기 보다는 혼자 보기위해 만들었다. 10살을 전후한 여자아이, 그것도 예쁘고, 귀족이나 학자, 예술가의 딸들을 모델로 삼아 자신이 집에 차려놓은 스튜디오에서 수많은 악세사리를 동원하여 연출하여 사진을 찍는데 그당시 관념으로 볼때 가히 선정적인 포즈를 아이들에게 요구 하여 찍은 사진 들이 많다. 이를 두고 외설이냐 아니냐 논란이 많았다. 나중에 발견 되긴 하였으나 그의 사진중에 어린이누드사진, 키스사진 등이 발견 됨으로서 이런 논란이 더욱 부채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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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그당시 사진가들이 사진을 예술로 끌어 올리려고 노력 하였으나 19세기에는 예술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첫댓글 그림파일 하나가 안보여요
임종이라는 사진인데
내블로그 복사했는데 다시 해봐도 안되네. 아래 사진은 되고.
어떤 때는 복사로도 옮겨지기도 하지만 안될 때는 일단 사진을 컴퓨터에 다운받았다가 다시 사진 올리기를 하면확실하게 보여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