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와 2008 금융위기로 인한 통화팽창으로 인해 자산가격이 폭등하였습니다. 특히 집값이 가파르게 상승했습니다.
2030은 아무 연줄없이 순전히 노동소득만으로는 주택마련이 힘들게 되었습니다. 즉 이생집망입니다.
그래서 2030을 지대세대 (rent generation)라고 합니다.
2030은 이제 자신의 주거공간 확보를 위해서는 저축등 개인의 힘 뿐아니라 rent strike(임대료 봉기)등 사회적 연대가 필수적입니다. 즉 지대세대는 커먼즈(commons)를 통해 자신의 개별이익을 실현해야하는 공유세대 ,커먼즈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30은 1인당 최소 주거공간, 계약기간 없는 중대형 공공임대,소득기준 임대료, 반값아파트,토지의 공공화를 위해 일어서야 합니다.
독일 베를린 시민투표,미국 보스턴 시장선거에서
토지의 공공화를 위한 결집된 행동이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추미애 장관의 지대개혁, 이 재명 경기지사의 기본주택 등의 활동이 있습니다.
2030은 자신의 사회적 요구관철을 위해 특정지역이나 정파에 얽매이는 정파세력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당파입니다.
2030이 자신의 사회적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우선 노동청년 전태일 사상으로 뭉쳐야 합니다. 전태일 열사는 22살에 하루 16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항의해 분신한 노동청년입니다.
그는 오늘의 2030처럼 주거의 수난을 겪었습니다.
“28일까지 방을 비우라니 정말 바람앞에 등불같은 운명이다.
이제 겨우 정신을 좀 차리려고 하니까 또 고난이 온다.
오늘도 예나 다름없이 이불속은 차갑구나(1967.2.27. 전태일 일기)
이러한 상황에서 전태일 열사는 건물주의 꿈이나 로망을 갖지않았습니다.
전태일 열사는 덩어리가 있어 부스러기가 있다. 나는 이 덩어리에 뭉치지않고 이 덩어리를 해체하겠다고 했습니다. 덩어리를 해체하기 위해 그는 바보회를 조직해 실천에 나섰고 상대를 경쟁상대가 아니라 나의 또 다른 나로 파악했습니다.
대전환시대,커먼즈 시대 상대는 경쟁상대가 아니라 나의 또다른 나입니다.
기성세대의 공정과 경쟁은 저열한 시기와 질투를 은폐하고 가진자가 자신의 기득권을 방어하기 위한 사상입니다.
2030 커먼즈세대는 공정과 경쟁을 폐기하고 공감과 연대의 기치를 높이 들어야 합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공정과 경쟁을 버리고 공감과 연대를 위한 운동이 있었습니다. 바로 수능시험날 청소년들이 모여 대학입시 폐지 집회를 열었습니다.
청소년인권행동은 선언을 통해 대학입시 폐지, 고교 대학 평준화, 등록금 무상화, 학력 학벌 폐지를 선언하였습니다.
공정과 경쟁대신 평등과 연대를 주장했습니다.
공정한 스펙과 공정한 입시가 아니라 모든 스펙과 입시를 폐지하는 것이 정의입니다.
우리 사회는 시험이라는 잣대가 공정의 척도라는 기만에 빠져있습니다.
배우고 때로 익히는 학이시습은 공자가 말한대로 삶의 열낙이지 경쟁의 무기가 아닙니다. 자신이 생산한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는 위키피디아. 리눅스,오픈 소스.오픈 하드웨어가 2030 커먼즈 세대의 갈 길입니다.
대학입시 폐지는 커먼즈로 가는 첫걸음입니다.
2030세대는 또한 낡아빠진 가부장적 부르주아적 가족관계를 폐지해야 합니다.
자산가격폭등과 대기업 정규직 취업이 힘든 2030 세대는 부르주아 결혼을 포기하고 남녀간의 새로운 결합을 이미 창출했습니다.
그것은 부르주아 결혼대신 친구로서 같이사는 사친관계입니다.
조선일보 방씨네가 부르주아 결혼을 대표하는 것인데 도덕,천륜,인정은 없고 낳아준 어미마저 폭력으로 쫓아내 죽음에 이르게하는 무정한 현금과 이해타산만 남아있는 가족입니다.
사친관계는 자본과 권력 ,신분과 학벌을 벗어나서
남녀간에 서로 독립된 인격관계로 결합한 가장 자연적 인간적 필연적 관계입니다. 사랑이 단지 사랑에 의해서만 교환되는 가장 문명화된 관계입니다. 이 사친관계를 기반으로 부모의 공동 관심과 케어속에서 아동의 양육과 교육을 사회가 책임지는 새로운 가족형태가 창출될 것입니다.
가부장적 결혼제도가(결혼 그 자체가 아니라) 사라지면 이혼제도도 소멸되고 가부장적 부르주아적 케케묵은 가치관념에서 조동연씨를 비난하는 행태도 소멸될 것입니다.
2030은 미래를 자신의 손에 움켜쥔 세대인데
디지털 전환, 재생에너지 전환, 경쟁과 공정에서 연대와 공감으로 전환등 커먼즈로 대전환시대을 열어갈 주체입니다.
대전환을 주장하는 사람이 공정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안맞는 것이고
아직 대전환을 깊이 인식하지 못한 것입니다.
특히 검란이라는 본질을 공정의 옷으로 은폐하고, 조사도 없는 불공정기소,
인격유린에 해당되는 3대에 걸친 불공정 수사와 불공정 압수수색등을 간과하고 특별한 죄도 없는 조국장관을 불공정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검란에 투항하는 것일 뿐입니다.조국장관이 특별한 구체적 죄가 없기에 적폐들은 공정이라는 추상적 기준으로 매도하는 것입니다.
2030이여 조국의 강이 아니라 공정의 강을 건넙시다.
남의 아픔과 고통에 깊이 공감하고 함께 연대하는 것 이것이 대전환시대 정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