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 오면서 맺은 소중한 인연: 왕립 큐우식물원과 세계자연보전연맹
김 용 식 명예교수(생명응용과학대학 조경학과)
이 세상에는 몇 사람이 모여 하는 계 모임이나 동창회, 향우회 또는 전문적인 학술단체 등 여러 규모의 수많은 단체가 활동한다. 필자는 본질적으로 꼭 벽을 쌓는 것 같아 그러한 모임에 꽤 소극적이었으나, 세계자연보전연맹 종보전위원회(IUCN SSC: Species Survival Commission of the World Conservation Union: http://www.iucn.org)와 세계식물원연합(BGCI:Botanic Gardens Conservation International:http://www.bgci.org)은 지난 30여년간 꾸준히 활동해온 생물다양성 보전기관이다. 이 기관은 아주 우연히(?) 인연을 맺었다. 박사학위 과정을 마치고 박사후 과정으로 필자는 하바드대학의 아놀드수목원(Arnold Arboretum: http://www.arboretum.harvard.edu)에서 하고 싶었다. 당시에 꽤 좋은 funding source는 플브라이트재단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서울사무실은 종로구 현대 사옥 길 건너편에 있었다. 필자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희귀식물의 보전을 주제로 proposal을 제출하였는데 선발되지 못하였다.
이제 작고를 하셨지만, 학부생 때에 천리포수목원에서 인턴 중 수목원에 자주 오셨고 항상 친절하게 말 상대를 해 주셔서 꽤 친하게 지내던 서울 LATT의 Gertrude K Ferrar 원장이란 분이 계셨다. LATT는 지금은 그러한 제도가 없어졌지만, 당시 공무원이 해외에 가기 전 영어 능력을 검정하던 기관이었다.
이분은 당시 40대 중반으로 LATT의 업무와 함께 한국은행에서 영어문서를 체크하던 분으로, 수목원에 혼자 오시면 저녁 식사에 꼭 소주를 드셨다. 필자는 당시 술은 거의 마시지 않았던 터라 매번 서너 시간씩 대작(?)해야 하니 대화는 좋았지만, 항상 술이 곤혹이었다. 술을 마시면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이 세상은 어디나 공짜는 없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분에게 왜 선발되지 못했는지를 물었더니 며칠 후에 아놀드수목원은 사립기관이기 때문에 안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같은 해에 필자는 그 proposal을 영국의 왕립 큐우식물원(RBG Kew: Royal Botanic Gardens Kew: http://www.kew.org)에 내기로 하고 수정 없이 서울 정동의 British Council에 제출하여 선발되었다. 당시에 대부분 지원자를 영문학, 기계공학 또는 예술 분야에서 선정했는데, 식물 분야로는 필자가 처음이었다. 필자에게 선발 통지를 하면서 당시 영국문화원의 Patrick Hart 원장은 문화원의 지원 액수로는 런던의 비싼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한국과학재단에 지원하면 좋겠다”라는 조언을 듣고 한국과학재단에 제출하여 결과적으로 두 군데의 경비지원을 받았다.
1992년 2월부터 1년간 왕립 큐우식물원의 LCD(Living Collections Department)에서 박사후과정 연수를 시작하였다. 1759년에 설립하여 약 1,100여명의 직원이 일하는 왕립 큐우식물원은 2003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세계적인 식물원이다. 필자는 박사후과정 중 여름에 시간을 내어 한달 동안 유럽 각지의 식물원과 수목원을 돌아본 적이 있다. 필자를 소개하면서 왕립 큐우식물원에서 왔다고 하면 모두 부러워하는 눈치여서 당시 왕립 큐우식물원의 위상을 생각하며 내심 자부심을 크게 느꼈다.
필자는 왕립 큐우식물원 내에서 가장 직원이 많고 핵심 부서인 LCD(Living Collection Department)에 자리 잡았다. LCD는 150년 역사의 왕립 큐우식물원이 전 세계에서 수집한 방대한 식물종을 관리하는 약 250여명 규모의 큰 조직이다. 이 세상의 수많은 식물원과 식물원 중에서 가장 우수한 도서관과 식물표본실 및 식물연구소를 지닌 왕립 큐우식물원에서 박사후과정을 연수하면서 주로 한 일은 문헌탐색을 기초로 식물보전의 지식을 넓히기 위하여 영국자연사박물관, 케임브릿지의 World Conservation Monitoring Centre이나 IUCN의 Red List Unit 또는 각지에서 수시로 열리는 식물보전 심포지움이나 워크숍 등에 참여하여 위협식물 보전의 지식을 넓히는 일이었다.
주로 관계한 기관은 런던의 Natural Science Museum이나 이름뿐인 우리나라의 생태공원과 달리 런던의 모든 생태공원을 학술적으로 관리하는 London Ecology Unit, 케임브리지의 케임브리지대학식물원과 World Conservation Monitoring Centre, 에딘버러의 왕립에딘버러식물원 내에 있는 IUCN SSC Conifer Specialist Group 및 피터보러에 있으며 현재는 Natural England로 이름을 바꾼 English Nature 등이었다.
관련 기관의 방문이나 학자의 면담도 많았지만, 도서관의 이용도 상당 부분을 차지하였다. 요사이에는 대부분 문헌을 on line으로 열람하지만, 당시만 해도 도서관의 이용이 매우 중요하였다. 왕립큐우식물원의 도서관은 내가 원하는 거의 모든 문헌을 구할 수 있었다. 만일 도서관에 없는 자료는 사서가 영국 내는 물론이고 해외의 도서관에서 체크하여 필자가 찾고자 하는 문헌을 반드시 찾아서 구내 우편으로 내 책상 앞에 배달하였다. 이러한 시스템은 이 세상이 아무리 on line 화 되었더라도 영남대학교의 도서관도 참고할 만한 점이다. 왜냐하면 원하는 자료가 모두 on line 화 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논문 시작에 문헌탐색이 가장 중요하듯 식물보전의 연구도 가장 먼저 관련 문헌의 탐색부터 시작하였다. 우리 대학에도 여러 내용과 규모의 전문도서관이 있고 온라인화되어 있어 대부분 문헌은 앉은 자리에서 모두 탐색할 수 있다. 하지만 한계도 있어서 전문잡지 외의 자료는 크게 한정적이다.
당시 주로 읽은 전문잡지는 Endangeres Species UPDATE나 북한의 자연보존 등 모두 33종이었다. 당시 왕립 큐우식물원은 필자에게 문헌 복사와 내가 만나고 싶어하는 관련 학자와의 면담이나 회의 참석을 거의 무제한(?)으로 도움을 주었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곳은 저작권 보호가 철저하여 불법 복사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도서관장에게 필자의 사정을 말하였다. 만일 귀국하면 여기서 읽은 문헌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 분야를 연구하는 동료들과 문헌을 공유할 터이니 복사를 허가해 주도록 요청하였다.
다행히도 도서관장은 원하는 문헌은 논문이든 보고서든 또는 책자든 마음대로 그것도 무료로 복사하도록 허용하였다, 1년간의 체재 중에 읽은 문헌은 거의 모조리 복사하여 귀국하면서 모두 가져왔다. 자연보존을 포함한 몇 가지 북한의 복사자료는 지참이 꺼림칙하여 런던의 한국대사관에 문의하였더니 “학술 목적은 문제없다”라는 답을 들어 귀국하면서 모두 가져왔다. 이들 문헌은 귀국 후에 여러 후학이 아주 요긴하게 이용하였다. 이러한 경험은 천리포수목원에 재직 시에 국내의 식물학 관련 대학 도서관에 비하여 꽤 괜찮은 민병갈식물도서관(Carl Ferris Miller Botanical Library)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왕립 큐우식물원은 세계적인 기관인 만큼, 필자의 사무실에서 하는 일이나 찾아오는 사람들이 모두 세계적이었다. 특히 식물보전을 위하여 정책의 입안이나 국제적으로 업무를 추진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협력하고 일하는지를 배운 것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영국에서 귀국 후 영국문화원은 필자의 연수활동을 매우 우수한 사례로 평가하였다. 특히 영국문화원은 박사후과정을 마친 필자에게 5년간 왕립큐우식물원과 레딩대학에서 위협식물의 연구와 영국에서 필자가 원하는 과학자를 매년 3명까지 초청할 수 있도록 경비지원을 하였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부처의 우리나라 방문 시에는 하이야트호텔에서 엘리자베스 여왕과 에딘버러 공을 접견하였고, 방한기념으로 한국식물전문가그룹에 환경기금을 기부받은 영광을 안았다. 이제는 영국의 국왕이지만 챨스 왕자도 쉐필드식물원에서 만났으며, 정동의 영국대사관저에서는 앤드류 왕자를 만났으니, 이는 필자의 큰 영광으로 여긴다.
세계적으로 동식물의 보전을 염두에 둔 조직이 꽤 많은데, 그중에서 세계자연보전연맹 (IUCN: International Union of Conservation of Nature and Natural Resources: http://www.iucn.org)이 으뜸이다. IUCN은 160여개국의 회원국과 75년 역사를 지닌 생물다양성 보전단체이다. IUCN은 크게 교육·소통위원회(CEC: Commission on Education and Communication), 생태계관리위원회 (CEC:Commission on Ecosystem Management), 환경 경제 및 사회정책위원회(CEESP: Commission on Environmental, Economic and Social Policy), 환경법위원회 (WCEL: World Commission on Environmental Law), 보호지역위원회 (WCPA; World Commission on Protected Areas), 기후위기위원회 (CCC: Climate Crisis Commission) 및 필자가 주로 관여한 종보전위원회 (SSC:Species Survival Commission) 등 7개의 위원회 조직으로, 이 중에서 SSC가 가장 규모가 크고 영향력이 막강하다.
이 세상의 일이란 자신의 굳건한 의지로 이루는 일도 많겠으나, 반대로 아주 우연한 기회로 일어나는 일도 많을 것이다. IUCN SSC가 바로 그 경우이다. IUCN SSC는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서 온 수천 명의 자원봉사 전문가로 구성된 학술 기반 네트워크로, 모두 "지구 생명의 다양성의 상실과 회복을 모두 막는 긍정적인 행동을 통하여 자연을 가치 있게 여기고 보전하는 정의로운 세상"이라는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
현재 9,500명 이상의 자원봉사 전문가로 구성된 IUCN SSC는 독립적으로 IUCN 내 각 부서와 협력하여 생물종의 상태와 위협과 관련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구축과 함께 조언을 제공하고, 정책과 지침을 개발하며 보전계획을 쉽게 하도록 노력한다. 이러한 활동으로 IUCN SSC는 보전활동을 촉진하고 IUCN이 생물 다양성 보전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를 위하여 현재 186개국 180개 전문가그룹(SG: Specialist Group)은 Red List Authority, Task Force, Action Partnerships, Conservation Committee 및 Specialist Group을 망라한 SSC의 핵심적인 네트워크이다.
필자는 박사후과정을 연수하면서 첫 여름에 스위스의 조그만 시골 마을인 글롱에 자리 잡은 IUCN 본부를 방문하였다. 본부에 도착하여 생물종 담당 총 책임자이자 후에 SSC의 위원장으로 일한 Simon Stuart 박사를 만나 IUCN 내 여러 부서를 다니며 설명과 함께 여러 직원을 소개받았다. 기관 내 순방을 마치고 다과와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담소 중에 그가 Dot printer로 인쇄한 결과물을 가져와 도움을 청하였다.
지금 기억으로 몇 가지 일 중 하나는 남북한 식물 관계자의 주소를 체크하는 일이었다. 주소록을 보면서 우리는 그들과의 소통이 그리 원활하지 못하다고 느꼈다. 학부 때부터 우리나라의 자연보존협회에서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자연보존”이라는 잡지를 매우 흥미 있게 읽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참가자가 IUCN을 포함하여 해외에서 자연보전 관련 회의에 참석한 후기를 그 잡지에 주기적으로 투고하는 분의 주소조차도 오류가 있었다. 바로 그 작업이 나와 IUCN, 특히 IUCN SSC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시작이었다.
2000년 여름에 요르단의 암만에서 열린 세계자연보전총회(WCC: World Conservation Congress)에 참석하기 위하여 우리나라에서 나를 포함하여 세 사람이 김포를 출발하여 방콕 경유 암만으로 갔다. 방콕공항에서 암만행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정장 차림이지만 꽤 남루해 보이는 두 남자가 우리 일행의 눈에 띄었다. 특히 그 두 사람은 약 1m 길이의 두루마리를 끈에 맨 것을 휴대하여 더욱 관심을 끌었다. 그 두 사람은 암만까지 같이 갔으나, 도착까지 대화는 하지 않았다. WCC 중에 그 일행을 만나 자연스럽게 소개하였다. 그들은 정보원 역할의 수행원 1명과 함께 평양에서 온 조선자연보호연맹 회장이었다. 나는 틈이 날 때마다 그 두 사람에게 세계 각국의 식물보전 관련 친구를 소개해 주었고 앞으로 교류를 활발히 하기를 기대하였다. 총회 기간 중 함께 하는 동안 하루는 자신들의 숙소로 나를 초대하였다. 당시 참가경비를 일본에서 지원받아서 그런지 숙소가 내가 머무는 곳보다 훨씬 넓고 호화스러웠다. 나에게 개성 은단을 선물하면서 이제는 연작 피해로 개성 인삼을 거의 재배하지 못한다는 것과 더욱 궁금했던 황해도 장수산에 미선나무의 자생 여부의 확인이었는데, 북한에는 없다는 말을 들었다. 따라서 미선나무는 서울 북한산 이남에만 분포한다.
한가지 가슴 아팠던 것은, 당시 일본 측에서 충분한 경비지원을 하였는데, 위에서 내려보내면서 조금씩 착복하다 보니 정작 본인들의 경비가 부족하여 북경공항에서부터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번은 행사 중에 암만 주재 한국대사를 만나면서 대사관 관저로 우리 일행을 저녁식사에 초대한다기에 북한에서 두 사람이 참석했는데 같이 초청하고 싶다 했더니 즉석에서 OK였다. 곧바로 두 사람을 만나 한국대사가 여차저차 하여 저녁 식사에 함께 초대하였으니 같이 가자고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들의 묘한 얼굴표정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상대편 입장에서 지금 생각해 보면 매우 무모(?)한 초대였다. 나중에 그들의 말을 맞추어 보면 거짖으로 다 탄로 나지만, 자신들은 평양에서 잘살고 있음을 강조하는 점만 제외하면 꽤 순수하고 좋은 사람들로 기억한다. 2007년 4월에 중국의 우한식물원에서 있는 세계식물원총회에 참석한 당시 평양식물원 원장이 요르단 암만의 만남을 알고 있다기에 꽤 기분이 좋았다.
암만총회가 열리기 4년 전에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자연보전 총회 시 승인받아 필자가 초대 위원장을 맡은 한국식물전문가그룹(KPSG: IUCN SSC Korean Plant Specialist Group) 내에 RLA(Red List Authority)를 두기로 결정하였다. RLA는 대내외적으로 우리나라의 위협식물 평가를 대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식물다양성이 풍부하나 위협식물의 평가가 잘 이루어지지 않은 나라를 대상으로 지정한다. 당시 아시아지역에는 우리나라, 중국, 일본을 다 포함하였으나, 현재는 우리나라와 일본만 활동한다.
필자는 IUCN SSC 내 약용식물전문가그룹(Medicinal Plant Specialist Group), 침엽수전문가그룹(Conifer Specialist Group), 이입전문가그룹(Translocation Specialist Group) 또는 처음부터 설립회원으로 참여한 생물종모니터링전문가그룹(Species Monitoring Specialist Group) 등을 주축으로 여러 활동을 해왔다. 특히 우리나라의 식물종을 대상으로 국제적인 보전평가 기준에 따라 본격적으로 식물종을 평가하기 이전에 광릉, 북경, 바르셀로나, 아부다비, 하와이 또는 더블린 등 국내외에서 여러 차례 보전평가 워크숍이나 관련 회의에 우리나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교육과 훈련을 받도록 하였다.
우리나라의 식물종을 평가하는데 비록 기간이 오래 소요되었으나, 국내의 식물종을 평가하여 IUCN SSC에 등재한 일은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올 가을에는 Botanical Gardens and their role in plant conservation 제 2권에 국립수목원의 영남대학교 동문인 신현탁 박사와 손성원 박사 등 셋이서 우리나라 식물원과 수목원에서의 식물보전 경험을 소개하였다.
식물보전, 더 나아가서 생물다양성 보전은 사실은 그 역사가 깊다. 그러나 식물원과 수목원의 예로 본다면 실제로는 1980년대부터 관심을 가져 1992년 생물다양성협약(CBD: Convention on Biodiversity)이 발효된 이후 이제는 식물원과 수목원의 본업(?)이 되었다. 나아가서 알게 모르게 일반인도 생물다양성 보전과 함께하는 일상생활이 되었다.
필자는 2017년 2월에 영남대학교 퇴임과 함께 KPSG 위원장직을 마쳤다. 지난 7월에는 IUCN SSC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Focal Person으로 지명하여 4년간 봉사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