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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와 주꾸미는 사촌쯤 된다. 문어와 함께 다리가 여덟 개 달린 두족류 연체동물이지만 최고로 치는 계절은 정반대다. 주꾸미는 봄, 낙지는 가을이 맛있다. 봄이 되어 서해안의 수온이 오르기 시작하면 새우가 번식을 하는데 알을 밸 때가 된 주꾸미들이 몰려와 새우를 잡아먹고 살이 오른다. 게다가 알까지 배니 살도 부드럽고 알도 꽉 차서 맛있다. 쌀알처럼 생긴 주꾸미 알은 씹으면 오돌도돌한 것이 마치 덜 익은 쌀알을 씹는 것 같은 특별한 맛이 있다. 그래서 18세기의 《난호어목지》에서는 초봄에 잡히는 주꾸미는 머리에 하얀 쌀알이 있는데 삶으면 마치 밥을 해놓은 것 같다고 해서 밥을 머금은 문어라는 뜻으로 반초(飯稍)라고 불렀다.
제철 음식은 모두 보양식이라고 하는데, 주꾸미도 예외는 아니다. 주꾸미는 피로 회복에 좋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려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는 타우린의 함량이 높다. 국립수산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타우린 함량이 평균 1597밀리그램으로 낙지(854mg)의 거의 두 배, 문어(435mg)의 세 배를 넘고 오징어(327mg)의 다섯 배에 육박한다.
지금은 주꾸미가 귀하신 몸 대접을 받지만 예전에는 천덕꾸러기였다.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주꾸미는 별로 알아주지 않았는데 아마 생김새가 볼품없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낙지와 주꾸미는 보통 다리의 모양새로 구분하는데 낙지는 다리가 가늘고 길며, 주꾸미는 다리가 굻고 짧으니 롱다리와 숏다리의 차이다. 크기도 작고 볼품도 없으니 시장성이 그만큼 떨어졌을 것이다.
반면 낙지는 사람들의 인식부터가 그럴듯하다. 해삼을 바다의 인삼이라고 하지만 낙지는 뻘 속의 산삼이라고 한다. 낙지가 해삼보다 위 급인 것이다. 가을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보통 전어와 새우를 꼽지만 낙지도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여러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았는데 특히 다산 정약용이 낙지를 좋아했다.
정약용은 〈탐진어가〉라는 시에서 “어촌에서는 모두가 낙지로 국을 끓여 먹을 뿐, 붉은 새우와 맛조개는 맛있다고 여기지도 않는다”고 읊었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실학자 형제인 정약전과 정약용은 일찌감치 남도에서 귀양을 살아서 그런지 낙지 사랑이 대단했다. 형인 정약전도 《자산어보》에서 낙지는 사람의 원기를 돋운다며 낙지 예찬론을 펼쳤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옛날부터 낙지를 좋아한 것 같다. 《홍길동전》의 저자로 광해군 때 사람인 허균은 팔도 음식을 평가한 《도문대작》에서 낙지는 서해안에서 잡히는데 맛 좋은 것이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자세히 적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두말하면 잔소리라는 이야기다.
먼 옛날부터 낙지는 한반도 특산품으로 이름을 떨친 모양이다. 발해와 당나라 사이의 교역 품목에 낙지도 포함되어 있었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옛날부터 산낙지를 즐겨 먹었을 뿐 아니라 낙지숙회, 낙지연포탕 등 다양한 낙지 요리가 발달했다.
특히 요즘에는 매콤한 낙지볶음이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데 널리 알려진 낙지볶음 요리로는 ‘조방낙지’가 있다. 낙지 앞에 수식어로 쓰이는 조방은 엉뚱하게도 낙지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조선방직의 줄임말이다.
일제강점기 부산시 동구 범일동 부근 자유시장 자리에 조선방직이라는 회사가 있었는데 이 공장 옆에 있는 좁은 길이 낙지볶음 골목으로 유명했다. 조선방직은 1917년 일본인이 세운 회사로 가혹한 노동조건과 노동 탄압으로 조선인 노동자를 수탈한 것으로 악명을 떨친 회사다.
조방낙지는 조선방직에서 근무하던 조선인 노동자들이 힘든 노동을 끝내고 퇴근하면서 술 한잔 걸치며 끼니를 때우던 노동자들의 애환이 담긴 음식이었다. 처음에는 공장 옆 골목의 낙지볶음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자유시장이 들어서면서 외지 상인들이 몰려왔고 바쁜 상인들이 이곳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했다. 이후 각자의 생활 터전으로 돌아간 이들의 입소문을 타고 조방낙지가 부산을 벗어나 서울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맛있게만 먹는 낙지볶음 하나에도 따지고 보면 사람들의 애환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 심보가 참 이상하다. 낙지와 관련된 속담으로 “개 꼬락서니 미워서 낙지를 산다”는 말이 있다. 보통 고기를 사면 남은 뼈는 개에게 주게 마련인데 개가 얼마나 얄미운지 뼈다귀마저도 주기 싫어 뼈 없는 낙지를 산다는 뜻이다. 심보도 고약하지만 맛있는 낙지를 엉뚱한 화풀이에 끌어다 쓰고 있는 게 재미있다.
쭈꾸미 볶음
#음식#역사일반
#음식으로읽는한국생활사
글 윤덕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