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단번(單番)에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으므로 앞으로도 항구적(恒久的)으로 안전(安全)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기의 이름에 대한 지식이 조명(照明)된 자들을
이끌어 들이셔서
자기 교회의 품에 안기게 하시고
자기의 돌봄과 후견 아래에 있게 하신다.
그들을 후견하여 영생에 이르도록 하는 일이
아버지에 의해서 아들에게 부여되고 맡겨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스도는 큰소리로
아버지가 구원하고자 원하시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에게로 옮겨져
자기의 보호(保護) 아래에 있게 된다고 외치신다(참조 요 6:37 39; 17:6, 12),
종국적으로
우리는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견인(堅忍)이 없다면
부르심과 믿음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견인(堅忍)이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로 인한 염려(念慮)에서
우리를 자유(自由)롭게 하셨다.
우리에게는 다음 약속들이
미래를 향하여 분명히 적용되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 6:39).
또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7-29).
나아가 주님은 "심은 것마다・・・・・・
내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마 15:13)라고 선포하시면서
하나님 안에 뿌리를 내린 자들은
결코 구원에서 뽑힘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역으로 암시하신다.
"그들이 ・・・・・… 만약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요일 2:19)라는
요한의 말씀도 이에 부합한다.
바울이
생명이나 사망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넉넉히 이긴다고 자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롬 8:38).
견인(堅忍)의 선물(膳物)에 기초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자랑이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입장은 의심할 나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바울이 다른 곳에서 전하는 다음 말씀도
동일한 뜻을 담고 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다윗 역시 자기의 믿음이 약해질 때
다음의 말씀에 의해 지탱되었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시 138:8).
그리스도는 택함 받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실 때
이전에 베드로에게 하셨던 것처럼
그들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간구하신다(눅 22:32).
여기에는 어떤 의심의 여지도 없다.
하나님의 아들은
자기 제자들의 경건이 계속해서 유지되기를
간청하셨으며
그 기도는 거부당하지 않았다.
이에 비추어
우리는 택함 받은 자들이
믿음을 떠나 배역(背逆)하는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스도는
여기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우기를 원하셨는가?
그것은
우리가 단번(單番)에 그의 것이 되었으므로
앞으로도 항구적(恒久的)으로 안전(安全)할 것이라는 사실을
신뢰(信賴)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칼빈의 예정론(존 칼빈, 기독교강요(3권 24장 6)-라틴어 최종판 직역, 생명의 말씀사, 문병호 옮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