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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적으로는 중립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주가에 호재
지난 8일 이건희 회장은 김순택 삼성 미래전략실장을 통해 "삼성의 자랑이던 깨끗한 조직문화가 훼손됐다.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최근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계열사인 테크윈의 경영진단(감사)을 실시한 결과에 대한 질타의 발언인 것으로 해석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감사 결과를 보고 받은 이 회장이 "각 계열사에 대한 감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냐, 대책도 미흡하다. 해외에서 잘 나가던 회사도 조직의 나태와 부정으로 주저앉은 사례가 적지 않다. 삼성도 예외가 아니다. 감사를 아무리 잘해도 제대로 처벌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문한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이에 따라 오창석 삼성테크윈 사장은 감사결과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계열사 사장들은 물론이고 직원들도 눈치보기에 급급한 상황에서 회장님의 쓴 소리는 이어졌다. 9일 이 회장은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으로 출근하기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삼성그룹 전체에 부정부패가 퍼져있다"고 일갈했다. "삼성테크윈에서 우연히 나와서 그렇지 그룹 전체에 부정부패가 퍼져 있는 것 같다. 과거 10년간 한국이 조금 잘 되고 안심이 되니깐 이런 현상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정부패를 말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이 회장은 "부정부패엔 향응도 있고 뇌물도 있지만 제일 나쁜 건 부하직원을 닦달해서 부정을 시키는 것이다. 자기 혼자 하는 건 몰라도 부하에게 부정을 시키면 그 부하는 나중에 저절로 부정에 입학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이 회장의 '부정부패 척결' 화두의 속내는 과연 무엇일까. 최근 부산저축은행 사태로 촉발된 금융업계의 연이은 비리와 부정이 한국 금융계를 뒤흔들고 있는 상황이다. 저축은행 사태와 관련된 부정부패 고리는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켜 은진수 감사원 감사위원의 '물방울 다이아몬드' 수뢰 의혹을 대표적인 예로 그 종착점을 모른 채 달려가고 있다.
재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오리온그룹과 CJ그룹, 한화그룹, 대우조선해양, 금호석유화학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비자금과 횡령 등의 사건이 마치 일상적인 경제순환과정의 일부분으로 여겨질 정도로 만연해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일부 기업의 경우 회사자금을 횡령해 자녀 통학용 고급 외제차를 구입하는 등 개인용도로 쓴 혐의를 받거나 개인 직위의 연임을 위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받는 등 과거와 달리 부정부패가 개인의 영달(榮達)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달라진 양상이다.
이처럼 줄 이은 경제 비리 사건 등의 영향과 더불어, 자생적으로도 자라날 가능성이 있다고 이 회장이 우려하던 중에 삼성테크윈 부정사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셈이다. 이러한 사회분위기 탓에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윤리의식이 강하던 삼성 임직원들 사이에서도 부정부패 내성 분위기가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을 우려하여 초강경 대책을 마련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처럼 이 회장이 조직 내부 부패 문제를 강하게 제기함에 따라 감사 기능이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이 회장은 당장 "감사 책임자의 직급을 높이고 인력도 늘리고 자질도 향상시켜야 하며, 감사조직은 회사 내부에서 완전히 별도의 조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구체적인 방향까지 제시했다. 부패는 기업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그룹 차원에서 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을 중심으로 감사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관계자는 "계열사 경영진단팀을 사장 직속으로 배치하고 책임자의 직급도 상향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1987년 취임 후부터 "부정은 암이고 암이 있으면 회사는 반드시 망한다'라는 언급을 수시로 할 정도로 윤리경영 및 투명경영에 힘써 왔으며, 지난 1996년 그룹 차원의 '삼성 윤리 강령'을 제정한 데 이어 2001년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계열사별로 윤리강령과 행동지침을 제정해 운영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삼성에서는 '부정=퇴사'라는 공식이 정착돼 있다고 자부했지만 삼성테크윈 사태에서 미세하게 벌어진 금을 보고 강력한 대처를 지시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내부 혁신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또 하나의 시각은 대외적인 관점에서 이 회장이 '비리에 대한 경계감'을 경제와 사회계 전반에 던져주려는 '화두'로 삼았을 것이라는 재계의 분석이다. 이번 삼성테크윈 부정사건이 사회적 통념 수준에서 그렇게 크지 않은 것이라고 확인하면서도 '부정부패' 엄단과 조직재편까지 지시한 것을 두고 재계에서는 이 회장의 강력한 '비리 전염 예방책'이 다른 기업들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 조직문화를 봤을 때 삼성테크윈의 부정 빈도나 규모가 컸을 것으로 판단되지 않지만 이 회장이 격노하며 강력한 대책 지시를 내린 것은 '보이지 않는 손'만으로는 비리공화국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재계 전반에 분발을 촉구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삼성에서는 이 회장의 '부정부패' 관련 발언을 경제계 전체에 던지는 화두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 내부의 문제를 가지고 다른 기업에 적용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회장님의 진노를 주식시장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감사대상이 됐던 삼성테크윈은 전날 5.28% 오른데 이어 9일 오후 2시 현재 1.71% 가량 상승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회사가 앞으로 투명해 질 것이란 기대감이 일부 작용했을 것이라 진단했다. 그룹 총수가 눈여겨보게 된 회사이니만큼 뭔가 달라지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실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삼성그룹 주들의 방향성은 일정하지 않다. 하루가 지난 뒤 증시에 상장된 26개(우선주 포함)삼성그룹 계열사 종목 가운데 오르는 종목은 15개, 내리는 종목은 11개다. 오르는 종목이 좀 더 많긴 하지만 압도적인 수준은 아니다. 시총 상위주 중에선 삼성생명과 삼성중공업은 각각 1.2%와 0.6%씩 오르고 있는 반면 대장주 삼성전자는 1% 가까이 내리고 있다. 삼성전기가 4% 넘게 오르고 있고 제일모직도 3%대의 상승률을 기록 중이고 코스닥 종목인 에이스디지텍과 크레듀도 오른 반면, 삼성카드는 3%대가 하락했고 호텔신라와 제일기획 등도 조금씩 밀리고 있다.
이를 놓고 증시 전문가들은 이번 이건희 회장의 발언과 주가는 크게 상관성이 없다고 분석한다. 이 회장의 발언으로 당장 각 계열사들의 실적이 달라진다거나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익재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전일 이 회장의 발언은 어디까지나 기업 내부적인 문제였을 뿐"이라며 "주가는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최근 증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요인이 미국의 경기둔화나 유럽의 재정위기와 같은 대외적인 재료였다는 점에서 볼 때 더욱 그렇다. 이에 전날 삼성테크윈의 큰 폭 반등도 그동안 많이 빠진 데 따른 반발 심리였을 것이란 진단도 나온다. 이 회장의 발언이 지극히 원론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도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란 진단에 힘을 보탠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도움이 되면 됐지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룹 회장이 부정부패 척결의 확고한 의지를 내비쳐 기업 회계의 투명성 제고에도 도움을 줬을 것이란 해석이 바탕이 됐다. 그 동안 그룹이 나태하다 싶을 때마다 한 마디씩 던져, 조직을 다잡았던 이 회장의 스타일로 볼 때 정체된 분위기를 전환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아질 것이다 라는 점이 없어 단기적으로 볼 때 별다른 영향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장기적으로 봤을 땐 직원들에게 위기의식을 심어줘 체질적인 측면에서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러한 이 회장의 돌출에 가까운 행보가 사내용이든 재계와 경제계에 대한 화두로 제기된 것이든 곱지 않은 시각이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본인 스스로가 비자금 사건으로 형 집행을 받고 최근 사면된 전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제일 나쁜 건 부하직원을 닦달해서 부정을 시키는 것'이라는 경고나 '부패=퇴출'이라는 삼성식의 강력한 대응방식이 최고 책임자인 자신을 제외한 것이라는 비아냥을 벗어나기 힘들 것 같다. 삼성그룹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미래전략실의 감사 기능 확대는 계열사의 독립경영체제 약화와 '친정체제 강화'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는데, 이는 대선 비자금 사건 등을 겪으면서 그룹 조직을 축소해온 것과는 다른 흐름이기 때문에 또 다른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첫댓글 좋은 방향으로 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재벌이 투명하고 정치와 분리된다? 건국이래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숙제 같기는 합니다. 저는 사실 기대보단 의심이 앞섭니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후리기 정치세력과 결탁하기....참! 회장님도 윤리적이시고 부정부패를 안하셨는지 한번 먼저 여쭤보고 싶네요
바로 그 점이 문제입니다. 삼성의 깨끗한 조직 문화가 훼손됐다고 하는데 비자금 문제나 정경유착 등에서 가장 자유롭지 않은 기업이 삼성 아닌가요?
저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이회장님은 청렴결백하실지....궁금하네요....털어서 먼지안나는 기업은 단 한곳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 큰 기업이 오늘날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건 100% 투명경영과 윤리경영으로 일구어낸것일까요???
'정략적 진노'를 통해 구조조정의 칼날을 들이대고, 그룹을 재장악했으며, 다른 대기업들과 정치권, 여론 등을 흔들어 놓았으니 소기의 목적 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