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1시간을 우리가 30년만에 찾은 거예요”
114 번호안내원 경견완증후군 산재 인정 투쟁의 기록(2)
희정 기사입력 2022/01/04 [20:55]
<일다>기사원문
https://www.ildaro.com/9240
“이름도 희소해서 경견완장애 일명 VDT 증후군인데 이 자리에 계신 분이 오늘 분명히 이 VDT 증후군이 산재 대상 질병이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는 기회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 컴퓨터 등을 사용하는 은행 같은 금융기관에서 나타나는 VDT 증후군이 10% 수준인데 한국통신만 평균적으로 32%를 넘고 개인의 자각증상이 거의 50%에 육박하는 지경인데도, 이것은 엄청난 비율인 것이지요. 외형적으로 질병의 환부를 볼 수 없다고 해서 방치된 상태에서…” -1995년 9월 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질의 내용 중.
1995년 구로의원을 찾은 한국통신 114 노동자들은 자신의 질병의 이름을 찾았다. 그해 구로의원와 한국통신 노동조합은 자체적으로, 34개 전화국에서 전화교환 및 안내 업무를 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 3,300여 명을 대상으로 검진을 했다.
검진자 중 목, 허리, 손목 등에 한 달 이상 통증을 호소한 사람이 1,037명(32%). 경견완 증후군이라 판단되는 이들은 498명(13%)으로, 이 중 3분의 1은 고위험군에 속해 산재요양급여 신청 과정에 들어갔다.
하지만 산재 요양을 하고 온 질환자들을 기다리는 것은 똑같은 일터였다. 오히려 병가를 쓴 직원들에게 출근을 압박하거나 산재를 신청한 이들을 승진 불이익을 주는 등 사측은 못마땅함을 드러냈다.
국정감사에 경견완 증후군 직업병 문제가 오르고서야, 한국통신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집단검진(1995년 12월)과 일터 환경개선을 약속한다. 1995년과 1996년에 거쳐 한국통신 직원 265명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를 인정받았다.
중요한 건 책상이 아니라, 인력 충원과 휴게시간
이들이 산재 요양을 마치고 일터로 돌아왔을 때, 달라진 것은 책상이었다.
“옛날에는 컴퓨터도 그냥 쳐다보면 됐지 뭘, 이랬잖아. 그런데 컴퓨터도 눈높이라는 게 있고. 책상도 의자도 다 (인체에 맞는 것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가서 보니까 예쁘게만 해놓은 거야. 곡선으로. 물결 모양으로. 또 그거 가지고 엄청 싸웠어요. 이것도 걸고 싸웠지. 휴게시간.” (이재숙 씨, 당시 한국통신 노조 여성국장)
책상이 넓어지고 의자가 교체된다.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근골격계 문제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시설만 바꾼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오래 일해 생긴 병이니 충분한 휴식과 적절한 업무량이 우선이었다. 인력 충원이 필요했다.
하지만 인력 충원과 휴게시간에 있어 회사 답변은 미적지근했다. 그 시기 한국통신은 대대적으로 희망퇴직을 준비 중이었다. 1990년대 통신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등장하자, 한국통신은 민영화를 향한 열망으로 들끓었다. ‘돈’을 움직이는 자유로운 기업이 되려면,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게 몸집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연차 높은 직원들과 적자사업이 군살 취급을 받았다.
당장 이윤을 낼 순 없어 민간기업은 회피하는, 그러나 사회적으로 필요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공공기업체(공기업)의 설립 목적은 잊혔다. 정년퇴직은 더는 명예로운 일이 아니었다. 구조조정과 인력감축이 ‘경쟁력 강화’의 다른 이름이 된 한국통신의 ‘체질 개선’ 움직임은 1995년에는 대규모 희망퇴직 신청으로 드러났다.
당시 3천 명이 넘는 직원들이 ‘스스로’ 회사를 떠났다. 그중 천여 명이 114 여성 직원이었다.
감축 1순위, 여성
“감축 1순위는 꼭 여자들이에요.”
지사별로 할당량이 내려온다고 했다. 퇴직자 수는 지사의 성과가 됐다. 누군가의 실직이 점수가 되어버리자,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지사 관리자들은 여성들부터 찾기 시작했다.
114 직원을 비롯해 여성 노동자들의 개별 면담이 끈질기게 이어졌다. 퇴직금에 몇 푼 더 얹으며, 다음 사람들은 나갈 때 이 돈도 못 받을 거라고 말했다. 이번에 퇴사 안 하면 지사 변경이 있을 거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한국통신은 전국에 지사를 두고 있었다.
“여자들에게 제일 무서운 게, 직장 먼 데 보내버리겠다는 거잖아요. 그렇게 달달 볶으면 사람이 나가는 거예요.”(송윤숙 씨, 당시 한국통신 노조 복지부장)
돌봄과 가사 노동의 책임을 거의 홀로 지는 여성들이다. 이들에게 또 다른 노동의 공간인 ‘집’이 일터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큰 부담이다. 면담 후엔 꼭 퇴사자가 생겼다. 공식적인 해고도 필요 없는 일이었다
1995년은 경견완 증후군 문제를 앞세워 노조가 인력 충원을 요구하던 바로 그해였다. ‘산재 요양’ 중인 노동자는 해고할 수 없다는 산재법도, 정식 해고가 아닌 ‘퇴사 종용’ 앞에서는 유명무실했다. ‘오래 많이’ 일해서 아픈 골병이었다. 하지만 회사 논리는 오히려 ‘이래서 나이 든 사람 쓰면 안 된다’로 이어졌다. 아프니 이참에 나가라 했다.
출처: “점심시간 1시간을 우리가 30년만에 찾은 거예요” - 일다 - https://www.ildaro.com/9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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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기사원문
https://www.ildaro.com/9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