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소화(難消化) 식품을 아십니까’. 일반인에게는 생소하지만 요즘 관련 업계엔 새로운 화두를 던진 식품이다. 난소화란 말 그대로 소화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금까진 소화가 되지 않으면 나쁜 성분으로 분류됐던 것이 사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귀하신 몸’이 됐다. 최근 개발된 난소화성 성분들은 위와 소장에서 소화·흡수되지 않는다. 몸에 열량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배가 부르니 다이어트에 그만이다. 건강을 증진시키는 여러 작용도 한다. 고려대 식품공학과 임승택 교수는 “비만 인구가 늘어나면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난소화성 성분”이라고 말했다.
가열하면 파괴되는 성분 … 단맛 특징
하루 생 고구마 반쪽, 생 밤 두 개 등을 꾸준히 섭취하면 혈당과 중성지방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들 식품에는 난소화성 성분이 많이 들어있다. [중앙포토]
난소화성 성분은 생고구마·생감자·생밤·녹색바나나(덜 익은 바나나)·생쌀 등 익히지 않은 식물성 식품에 많다. 조리를 하면 파괴돼 날것일 때 성분이 듬뿍 들어 있다. 식이섬유의 장점은 모두 갖추면서 건강증진 효과는 더 크다. 전주대 한식조리학과 신정규 교수는 “이제까지 채소·과일·곡류에서 단맛을 내지 않는 성분을 식이섬유라 불렀다. 하지만 고구마나 감자·밤·쌀 등에 든 ‘전분’의 난소화성 성분이 이런 채소와 과일에 든 식이섬유보다 건강증진 효과가 더 큰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단맛을 내며, 기존 식이섬유처럼 식품에 첨가됐을 때 본래의 맛이나 질감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새롭게 발견된 난소화성 성분은 난소화성 전분(입자가 큼)과 난소화성 말토텍스트린(입자가 작음)이 대표적이다.
난소화 식품은 비만·고지혈증·당뇨병 환자에게 특히 유용하다. 음식물의 부피를 늘려 포만감을 주면서 지질이나 일반 탄수화물이 갖는 열량은 거의 없다.
또 중성지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임승택 교수는 “난소화성 성분은 장내에서 중성지방이 혈액으로 흡수되는 것을 막아준다”고 말했다. 한 연구팀은 건강한 성인 남녀를 17명씩 세 그룹으로 나눠 첫째 그룹은 햄버거와 튀긴 감자 중간 사이즈, 그리고 탄산음료 350g을 먹게 했다. 두 번째 그룹은 똑같은 음식을 먹게 한 뒤 탄산음료에 난소화성 말토텍스트린 0.1g을 첨가했다. 세 번째 그룹도 같은 조건에서 난소화성 말토텍스트린 1.0g을 추가했다. 4시간이 지난 뒤 중성지방 수치를 조사했더니 첫째 그룹은 혈액 내 중성지방이 400㎎/dL, 두 번째 그룹은 250, 세 번째 그룹은 160으로 나타났다(2007년 유럽 식품영양학회지).
혈당 저하 효과도 있다. 2008년 일본 식품영양학회지에 실린 논문을 보자. 연구팀은 40명의 건강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한 뒤 한 그룹은 일반 우동과 흰 쌀밥을, 한 그룹은 같은 식단에 5g의 난소화성 말토텍스트린을 첨가한 물을 제공했다. 식후 30분이 지나 실험군의 혈당을 재어보니 식사만 한 그룹은 혈당이 180㎎/dL이었지만 난소화성 말토텍스트린을 첨가한 그룹은 150에 그쳤다. 또 1시간이 지난 뒤 첫 번째 그룹은 150, 두 번째 그룹은 130이었고, 두 시간 뒤엔 첫 번째 그룹은 130, 두 번째 그룹은 110까지 떨어졌다.
빵·과자에 첨가, 건강식으로 활용 가능
난소화성 성분은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연세대 식품영양학과 최혜정 교수는 “우리나라는 이제 난소화성 성분을 활용하기 시작했지만 미국이나 유럽·일본에서는 이미 다양한 형태로 제품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난소화성 성분을 가장 많이 쓰는 제품은 과자·빵·스파게티·음료·각종 소스류다. 최 교수는 “난소화성 성분은 기존의 식이섬유와 달리 밀가루나 음료 등 본래 식품 재료의 질감이나 맛을 변화시키지 않기 때문에 어느 식품에나 첨가하기 좋다”고 말했다.
식품공업협회 한국식품연구소 강경원 실장은 “2년 전 난소화성 말토텍스트린을 혈당 조절에 도움이 되는 건강기능식품 원료로 인증해 여러 제품이 나오고 있다”며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들어온 수입품도 상당수 있다”고 말했다.
대상중앙연구소 전분당연구실 김태용 팀장은 “현재는 각종 다이어트 바, 다이어트 음료에 많이 활용된다”며 “난소화성 성분이 들어있는지 확인하려면 포장에서 난소화성 말토텍스트린이나 난소화성 전분을 표기란에서 확인하면 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품종개량한 난소화성 쌀도 개발됐다.
난소화성 성분은 생고구마·생밤, 익지 않은 녹색 바나나, 생콩, 특수개량한 고아밀로스 옥수수, 특수개량한 고아미(품종개량 쌀) 등에 많이 들어 있다. 가열되면 난소화성 성분이 변화해 소화되기 쉬운 형태로 바뀌므로 건강증진 효과가 떨어진다. 최 교수는 “혈당과 중성지방이 높다면 하루 생밤 2개, 생 고구마 반쪽을 꾸준히 섭취하거나 건강기능식품으로 나온 난소화성 말토텍스트린 제제를 섭취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