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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이 활짝 핀 화창한 봄날입니다.
그리고 봄바람도 살랑살랑 부는 좋은 날씨입니다.
그런데 그 바람 속에는 방사능 물질이 포함되어 있을 것 같네요.
문제는 현재의 정부가 그 방사능 물질 농도 등에 대해
진실을 국민들에게 말하는 정부인지?
많은 국민들이 미덥지 않은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는 점이
참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쨋든, 일반 국민들로서는 매국노 정권이 들어서 보았자
하등 도움 될 것이 없고, 자칫하면 파리 목숨 취급당하여
개죽음을 당하는 수도 있지요.
그래서도 권력은 반드시 진정한 양심세력이 장악하도록
일반 국민들이 두눈 똑바로 뜨고 투표들을 제대로 잘해야만 하겠습니다.
제주 4.3 항쟁....
역사학도가 아닌 나로서는 솔직히 그 사건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그 사건에 대해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알고자 관련 서적을 읽거나
정보수집을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일반 국민들 중에 하나인 나로서는 그저
그 사건에 대해 전체적인 개략만 알고 있어도
되지 않을까요?
내가 막연히 알고 있는 제주 4.3항쟁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는 일제가 패망하면서 미군이 남한을 점령하여 식민통치를
하던 시절인데.... 제주경찰서에서 3.1행사 도중 일부 시민들이 시위를 하자
그것을 폭동으로 오해하여 발포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건이 커졌는데
당시 남한내 공산당 계열인 남로당이 그에 가담하여 본격적인 무장투쟁을
시작한 모양입니다. 말하자면, 5.18 광주민주화 운동 비슷한 사건이
당시에 이미 발생했었던 것이지요.
당시 남한을 점령한 미군은 남한 단독으로 정부를 세우고자 시도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당시 북한과 남한의 상당수 국민들은 남한만의 단독정부는 남북한의 영구분할이
될 가능성이 크므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단정)에 반대하고, 남북통일정부를 세우자는
주장을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미국이야 당시 소련과 밀약으로 남한만 지네들 식민지로 먹기로 했으니
남한만 꼭두각시 정권을 어서 빨리 세우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했겠지요.
그런데 그것을 눈치챈 민중들이 당시에 있었던 모양인데....
그래서 그에 강력하게 저항하자...문제가 발생된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당시 친일매국노들이 장악한 남한 정권과 미군은
그들은 모두 빨갱이들이니 처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거기에 북한에 살다가 도망쳐나온 기독교 계열 사람들인 서북청년단이 가세하여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제주도민들을 빨갱이로 몰아 마구 죽였던 모양입니다.
예컨데, 서북청년단원이 어느 마을의 18세 처녀에게 자기와 같이 자자한 것을
거절하자 빨갱이로 몰아 홀랑 옷을 벗겨 운동장을 돌게 한 다음
무참히 죽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를 살아남은 제주도민들이 말하기를
당시는 사람 목숨이 그야말로 파리 목숨이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현재 남한의 정치세력들의 제주4.3항쟁을 보는 시각이
서로 사뭇 다른 점이 매우 눈에 띕니다.
민주당, 민노당은 제주4.3항쟁을 크게 기리고 역사적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에.....한나라당은 그 사건에 대해 매우 무관심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김대중 정권이 집권하자 비로소 제주4.3항쟁 사건의 진실규명위원회가
만들어졌으며, 노무현 시절 들어와 그 진실규명 작업이 대충 마무리 되어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도민들에게 공권력의 악행에 대해 공식 사과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현재 한나라당 정권이 들어서서는 대통령이 아예 4.3항쟁의 희생자 위령제에
참가하지도 않음은 물론이고 시신발굴작업 예산 편성도 중단되어 버린 모양입니다.
말하자면.....
민주당, 민노당은 제주4.3항쟁의 진실을 자꾸 까발리자는 쪽이고
한나라당 세력은 그 사건의 진실을 자꾸 덮자는 쪽인가 봅니다.
도대체 왜 그런데요?
암튼, 1박2일 이라는 티브이 프로그램 출연진들이
검은 양복을 입고 제주를 방문해서 시청자들이
그 문제로 왁자지껄한 모양입니다.
물론, 나로서는 딴따라 연예인들이 집단으로 나와
농담따먹기나 하며 시간 죽이는 그런 프로를 일체 시청하지 않아서
그 프로에 대해 잘 모르지만....암튼, 그런 일이 있었나 봅니다.
방송을 본 네티즌은 트위터 및 시청자 게시판 등에 "제주 4.3항쟁을 기리는 '1박2일' 검은 양복 콘셉트는 정말 멋지다. 예능에 저런 철학과 역사인식이 녹아있다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fortuneu),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까지. '1박2일' 멤버들 복장보고 예능과 어울리지 않게 문상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제주 4.3항쟁일. 제주의 아픔도 함께 생각하는 시간이 되길"(kwonws), "'1박2일', 연예인답게 정장을 입으란 주문이었지만 하나같이 검은 넥타이인걸 봐서는 추모의 의도라고 볼 수 있겠다. 조금이라도 제주도민에게 위로가되길"(whitesh06), "4월3일은 위령제가 열리는 날이니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의 의미가 있는 차림이었다. 제작진 감동"(freudeleid)이라며 의미를 뒀다.
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10404050004326&RIGHT_COMM=R10
그런데......내가 제주4.3항쟁에 대한 위와 같은 지식과 정보를 얻은 것은
모두 네티즌들의 기사댓글들을 보고서였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도 관련 기사와 네티즌들의 기사댓글들 약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63주년 4.3사건 희생자 위령제가 3일 제주시 봉개동 4.3 평화공원에서 열렸지만 올해도 대통령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추도사에서 "4.3의 진실을 밝히고
원혼들의 억울한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그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는 일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4.3 해결을 위한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지원방안은 없었다.
김 총리는 제주도민과 유족들이 꾸준히 요구해온 4.3 추념일 지정과 희생자 추가 유해발굴 등의 언급은 없이 그저 추상적인 말로 추도사를 이어갔다.
김 총리는 "지난 1월 제주 4.3위원회를 열어 희생자 결정과 평화공원 3단계 추진 계획안을 의결했다"며 4.3 홀대론을 의식한 발언도 했지만 결국 4년차에 접어든 이명박 정부에서 4.3위원회가 단 한차례만 열렸음을 고백한 셈이 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4년동안 4.3사건 희생자 위령제에 한번도 참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유족들의 불만은 컸다.
유족으로 참여한 한 할머니는 "대통령은 왜 올해도 오지 않았느냐"며 큰 소리로 항의해 행사장이 술렁이기도 했다.
이를 반영하듯 홍성수 4.3 유족회장도 위령제 인사말에서 "이 대통령이 참석하지 못한 것에 대해 유족일동은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해로 63주년이 된 제주 4.3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를 기점으로 해 경찰과 서청(=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항쟁세력)와 토벌대(=정부세력)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지난 2000년 김대중 정부때 '제주 4ㆍ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진상조사보고서 작성과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사과로 이어지며 14,032명이 4.3 희생자로 결정됐고, 396구의 유해가 발굴됐다.
http://media.daum.net/society/cluster_list.html?newsid=
20110403172311072&clusterid=315065&clusternewsid=20110403154826344&p=nocut
관련기사 하나를 더 소개합니다.
남동생(당시 20살)은 군경의 마을소개작전으로 집에 불이 붙자 산으로 피신했다가 잡혀 제주비행장에서 죽었고, 여동생(당시 18살)은 그 오빠에게 양말을 짜줬다는 이유로 경찰에 잡혀갔다가 갖은 고문 끝에 희생됐다. 강씨는 "지금도 그때 당했던 일들이 꿈에 나타난다"며 "62년 만에 남동생의 유해가 확인되니 정말 꿈인가 생시인가 해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11살 때 4·3을 겪은 양상준(73·제주시 노형동)씨는 둘째형 내외와 조카딸, 작은형, 큰아버지, 사촌형 등 6명을 잃었다. 그는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만큼도 여기지 않았던 시절"이라며 삭이지 못한 분노를 드러냈다.
둘째형과 작은형은 산으로 피신을 갔다가 "귀순하면 살려준다"는 말을 듣고 내려왔지만, 둘째형은 제주비행장 수용소로, 작은형은 어리다는 이유로 인천형무소로 이송돼 그곳에서 죽었다.
그러나 올해는 정부가 예산을 반영하지 않아 유해발굴 작업이 중단됐다.
http://media.daum.net/society/view.html?cateid=1001&newsid=20110403222011836&p=hani
기타 참고자료로 서프 글을 퍼옵니다.
한일합방 전에 미국의 국무장관 테프트와 일본의 가쓰라 외부성 장관이 비밀리에 가쓰라-테프트 밀약을 맺었다.
필리핀은 미국이 지배하고 한국은 일본이 지배하기로 미국과 일본 간에 있었던 밀약의 결과 일본이 한국을 36년간 지배한 한일합방의 역사를 가져왔다.
일제가 망하고 물러간 약 65년 전 미군이 남한에 진주하여 점령하자 우리의 민족주의 애국단체들과 애국시민들도 이에 못지 않은 투쟁에 나섰었다.
2차 대전의 전후 처리를 위해서 미국과 소련의 정상이 모스크바에서 회담을 한후 한반도를 북위 38도 선의 북쪽은 소련이 남쪽은 미국이 관할하기로 한 것이 한반도 분단의 역사의 시작이다. 그래서 한반도 분단에는 미국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미국과 소련이 각각 신탁통치(=식민통치)를 하려다가 남한 사람들의 반대가 극심하자 신탁통치 대신에 남한에는 미국의 앞잡이 이승만을 내세워 단독정부를 세우고 북한에는 소련이 김일성을 내세워 단독정부를 세운것이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한민족이 약 65년 동안 최후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게된
비극의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것이다.
그때 백범 김구 선생이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며 한반도에 하나의 통일정부를 세우자고 남북을 오고 가다가 미국앞잡이 이승만의 특무대장 김창용이 새로 창설된 군대의 안두희 소위를 시켜서 시해해 버린것은 이제 삼척동자 다 아는 사실이 되었다.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의 고백
http://cafe.daum.net/koheritage/4YbD/69?docid=
1Dv0S|4YbD|69|20100626182149&q=%C0%CC%BD
%C2%B8%B8%C6%AF%B9%AB%B4%EB%C0%E5%
B1%E8%C3%A2%BF%EB&srchid=CCB1Dv0S|4YbD|69|20100626182149
이렇게 미국이 이라크에서 민족진영의 애국자들을 테러,암살하여 제거하고
미국앞잡이들로 대통령을 비롯한 국회의원, 군부, 경찰 등 정치, 재계, 사회 문화분야의 주요 요직을 채우고 장악하여 미국의 꼭두각시 정권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런 방식의 미국앞잡이 정권을 세우려는 미국의 전략은 65년 전에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그대로 원용되었다. 이승만을 미국의 앞잡이로 세워 놓고 그 이하 정치권과 군부, 경찰의 요직을 미국의 앞잡이들로 채워 놓고 꼭두각시 정권으로 만든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치권, 재계, 언론, 교육(미국 유학파 교수),사회, 문화 등등의
대한민국의 시스템을 미국의 앞잡이 하수인들로 채워 놓고 미국의 의도대로 운영해 온것이다 그 세월이 지금까지 65년이 되었다.
미국이 이렇게 자기들의 꼭두각시로 대한민국의 군부, 경찰 등 사회 각계 각층의 요직을 미국앞잡이로 채운 다음에 일어난 사건이 남북 민족상잔의 전쟁이다.
이렇게 미국의 꼭두각시로 채용된 이승만 대통령은 중요한 국가대사를 결정할 때는 미국의 수뇌부와 수시로 전화를 하고 의사를 타진하고 결정하는 민족반역질을 서슴치 않았던 것이다.( 지금도 수시로 행님 나라에 전화하는 누구와 너무 똑같다)
이승만이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고 하나..........
이는 이승만이 개인적으로 정치적인 욕심이 있어 활동한 것이라는 단적인 증거가 있다.
독립운동가가 일제의 망나니를 살해 했다는 죄명으로 미국에서 재판을 받게 되자 변호사였던 이승만에게 변호를 부탁했으나 살인자를 변호 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이런 자가 진정으로 이 민족을 위한 독립운동을 했다고 할 수 있는가?
정치권에는 미국앞잡이 이승만이 미국의 도움으로 대통령이 되었고,미국의 의도대로 세워진 이승만은 일제에 협력하여 권력을 누리고 친일의 댓가로,부정부패로 엄청난 축재를 한 친일파들을 미국의 앞잡이로 주요 요직에 채용하였던 것이다.
지금 매국노 이명박이 미국의 의도대로 대통령으로 만들어져 대한민국을 장악하고 부정부패와 비리로 축재한 친미,숭미,사대파들을 국정의 주요 요직에 채용한 현재 상황과 너무나도 똑같다.
미국은 친일파들이 친일의 댓가로 축재한 막대한 부를 환수하고 단죄하는 처벌 대신에 부와 권력을 그대로 유지시켜 주면서 그들의 충성을 받아낸 것이다.
미국은 그들의 친일행각과 부정축재의 약점을 쥐고 협박하면서 미국을 위해 충성하는 매국노로 만들어 이용한 것이다.
친일파들이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거나, 반대하면 가차 없이 친일파 혹은 빨갱이로 몰아 국민 여론으로 사회에서 매장하거나, 제거하면서 미국을 위한 충성을 강요한 것이다.
미국앞잡이로 대통령에 세워진 이승만은 미국의 의도대로 일본 헌병대 소좌로 해방을 맞은 정일권을 초대 육군참모 총장으로 임명하였고 일본군 간도특설대 출신의 백선엽을 역시 육군참모 총장에 임명하였으며 만주군(=일본군) 군의관이었던 원용덕은 초대 헌병사령관에 임명하고 일제시대에 관동군 헌병으로 항일 독립군 사냥에 나섰던 악명 높은 친일파 김창용은 육군 특무대장에 임명한다.
미국이 이들 친일파들을 등용하여 쓴 이유는 무엇보다도 미국앞잡이 이승만을 보필해서 미국을 위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 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승만이 임명한 특무대장 김창용은 철저히 미국을 위해 충성한다
미국의 신탁통치와 미국의 꼭두각시 정권을 거부하며 남북한 통일정부, 단일정부를 주장했던 민족주의자 김구 선생을 저격한 것도 이승만이 임명한 특무대장 김창용이었다.
국가기록원은 2007년 김구 살해사건의 배후 조종 인물로 알려진 김창용 전 특무대장을 저격한 사건 관련 기록물을 최초로 공개했다.
김창용은 미국을 위해 김구 선생을 저격하는 배후 지시자로 사냥이 끝난 후에 사냥개를 제거해야만 했던 미국에 의해 저격 당했던 것이다. 김구 선생 저격사건의 증인을 철저히 제거해야 했던 미국이 제거해야만 했던 인물이다.
미국유대정권이 케네디를 암살한 오스왈드를 다른 저격수를 고용해서 살해해야만 했던 것처럼 김창용은 제거된 것이다.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_2&uid=29902
아래 사진은 아프간을 식민지로 만들어 점령한 미군에 의해
재미로 살해된 아프간 민간인의 목을 들고 태연히 웃으며 찍은 사진이다.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백성들의 신세란.....그야말로 언제나 파리 목숨에 다름 아니다.
일제시대에도 그랬고.....미제 식민지 시절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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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추어진것이 삐져 나올때는 그것을 사실로 보고 거의 맞다고 생각하면 된다.
지천명님..!
안녕하세요.
쪽지 보냈습니다...감사 합니다.
인간이 어디까지 사악 해질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줍니다. 하느님은 어디서 고스돕 치고있는지...
저는 신이란 것이 존재하나 싶습니다.
하느님을 제일 열심히 믿는 국민들 중에 하나가 <방글라데시인>입니다.(여기에 하느님이 아니고 알라를 믿는다고
토를 달지 마시길..). 제가 직접 가 봤습니다만, 사람들이 대체로 순박합니다. 그런데 어느해에 대홍수로
30 만명인가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하느님이 시험에 들게 하시어... 괜히 열 받습니다.
4.3 그 당시에 많은 젊은이들이 산으로(오름지대) 도망갔다가 나중에 자수하거나 체포되었는데 일부는 인천형무소로 일부는 대전형무소로 보내졌다고 합니다. 6.25가 발발하자 인천형무소는 해방을 맞았지만 인민군이 서울에서 3일을 대기하는 사이에 대전형무소에서는 무차별 살육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분의 오빠 두분중에 큰오빠는 북한으로 가셨고 작은 오빠는 유골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통일이 되면 남한 권력에 의한 민간인 살육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밝혀지겠지요.
안봐도 알것같습니다.
서프에도 제주 4.3 사건에 대한 야그들이 많더군요..
생각 할수록 혈압만 오릅니다..
이 쥐종자 개버러지 같은 놈들을 어찌 해야 핡꼬.
제 아내도 출연 연예인들이 '왜 넥타이까지 검은색으로 맞췄는 지 이상했다'고 하더라구요.
실제로 4.3 사건에 대한 추모의도가 있었다면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