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산 반곡지(경산 남산면)1
2011년 문화관광부선정 사진찍기좋은 녹색명소로 못둑에 들어선 100년이상의
왕버들과 4월초부터 피기시작하는 복사꽃 주변야산 등이 저수지에
비춰 연출하는 반영과 일교차가 심한 봄.가을 물안개가 필 때 일출이 장관이다.

사진찍기 좋은 녹색명소 경산 반곡지(사인보드)2

경산 반곡지(사계)3

경산 반곡지4

경산 반곡지5

경산 반곡지6
경산 반곡지(동영상)7

경산 반곡지8

경산 盤龍寺 일주문(경산 용성 용전리)9
구룡산 반룡사는 신라 무열왕7년(661년) 이지역출신인 성사 원효에 의해 창건된 절로
창건당시는 호국도량으로 우리나라 3대 반룡사 중 영남의 고찰로 알려지고 있다.옛 이
곳은 압독국(경산)으로 이쪽 고개를 왕재라고 불렀다.고려시대 허물어진 것을 원응
국사(1051년-1144년)가 운문사를 중창한 후 이곳도 다시세워 신흥사로 불렀다.당대의 석
학인 이인로(1152년-1220년)가 山居라는 시를 애절하게 표현해 알렸다. 그후 초대현감
임선백(1637년-1641년)이 일으키고 또한 인조14년(1641년) 계운.명언으로 하여금 선당
을 세우고 다시 27대 현감에 이르도록 5개의 암자와 26동의 대가람을 완성하니 이에 반룡
이 승천한 격이라 이름하여 반룡사라고 하였다.현사찰은 1997년 이후 계속 복원을 거듭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효성사.설총선생.요석궁주가 머물다가 간 도량10

반룡사 대웅전과 5층석탑11
반룡사는 신흥사에서 다시 반룡사로 개칭하게 되었으며 이곳은 동해의 낙산사.남해의 보리암
서해의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4대 관음도량으로 구룡산 낙조의 운해는 천불관음의 자비의
미소만큼 아름답다.

반룡사 대웅전12
제10회 반룡사 원효.설총.요석궁주 육법공양 다례제행사 사인보드가 걸려있는 대웅전과 앞의 석등이다.
신라 왕실의 기원사찰로 국가의 동량인 설총선생이 유년을 원효성사와의 깊은 인연 때문에 여기에서
보냈으며 태종무열왕 내외가 딸인 요석공주와 설총을 만나기 위하여 자주넘어왔다고 하여 지금도 왕재
(王峴)라고 부르고 있다.왕재를 오르는 길은 3시간 남짓 걸리는 등산길이다.이곳은 1960년까지
대천장과 자인장을 다니던 봇짐장수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던 곳이기도 하다.
元曉(617년-686년)
속성은 薛.아명은 誓幢 법호는 和諍.법명은 스스로 원효라고 칭했다.이는 불교를 새로 빛나게 한다는
뜻으로 새벽(始旦)이란 뜻의 우리말로 불렀다고 한다.617년(진평왕39년)압량군 불지촌 율곡에서 태어나
15세때 재산을 희사하고 출사했다.자신의 집을 절로 바꾸어 초개사로 불렀다.자신이 태어난 사라수곁에
사라사(현재 재석사)를 세웠다.661년(문무왕1년)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으나 가는길에 해골물
을 마신후 이 세상의 온갖 현상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나며 모든 법은 오직 인식일 뿐이다.마음밖에 법이
없는데 어찌 따로 구할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깨달음을 얻고 유학길을 되돌아 왔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그뒤 분황사에 머물며 불경연구와 화엄경소 등의 저술에 힘썼다.瑤石공주와의 사이에 薛聰을 낳고 파계
한 뒤에 스스로 소성거사라고 하며 민중속으로 들어가서 포교에 임을썼다.그는 본래의 마음을 깨달으면
정토를 이룰 수 있으며 입으로 부처의 이름을 외우고 귀로 부처의 가르침을 들으면 성불할 수 있다고 가
르쳤다.그후로 신라의 백성들은 부처의 이름을 알고 나무아미타불의 염불을 외우게 되었다고 한다.
말년에 왕궁에서 金剛三昧經을 강의하고 十門和諍論을 찬술하였으며 686년(신문왕6년)혈사에서 70세
의 나이에 입적했다.그가 죽은뒤 아들 설총이 소상을 만들어 분황사에 봉안하였다.원효는 통불교(원효
종.해동종)을 제창하여 한국불교에서 가장 위대한 고승가운데 한 사람으로 추앙을 받고있다.
설총(654년-?)
원효의 아들로 자는 총지.호는 빙월당.시호는 홍유후로 신라 십현의 한사람으로 주로 왕의 자문역을
맡아보았으며 이두를 집대성 하였다.

반룡사 山靈閣13

반룡사 千佛殿과 山靈閣14

반룡사 관음보살입상15

종무소 동국여지승람(이인로의 반룡사시 山居)16
춘거화유재(春去化猶在)봄은 가도 꽃은 아름답게 피어있고
천청곡자음(天晴谷自陰)맑은 하늘 깊은골에 그늘은 절로지네
두견제백주(頭鵑啼白晝)두견새 맑은소리 한낮에 울어 예니
시각복거심(始覺卜居深)깊은 골에 간직한 마음을 비로소 느끼게 하네

반룡사지 석조유물17

반룡사 요사채18
(2017.11.03)
첫댓글 '반룡사'라고 하니 고령에 있는 절인줄 만 알고 있었는데 용성면 쪽에도 반룡사가 있었음을 처음 알았네. 녹음이 우거진 걸 보니 여름철에 언제 들렸던 모양네. 딸 요석공주를 보기 위해 무열왕이 넘나들었던 왕재란 지명도 생겼구나. 자넨 골골마다 안 가본 곳이 없구만..
盤龍寺는 알고보니 정말 유서가 깊은 절임을 알았다네...요석공주와 원효성사 사이에 태어난 설총이 어린시절 이곳에서 잠시 머물렀으며, 또한 이인로의 시 山居에서 이절의 고즈넉한 면모를 시로 잘 표현했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