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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4일. 견진교리. 면목동성당> ==========
1회 : 견진성사란 무엇인가?
1. 여러분은 오늘 이 자리에 견진성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모이셨습니다. 오늘이 첫 째 시간이고, 처음 계획에는 오늘을 포함하여 8번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했으면서도,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또 무엇을 강조하고 싶어서, 이렇게도 바쁜 세상에서 말을 많이 하려고 할까 하고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2. 저도 여러분의 처지처럼, 말을 들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같거나 비슷한 생각을 할 것입니다. 올바른 비유는 아닐 수도 있지만, 화장실에 갈 때의 마음과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른 것과 비교할 수도 있습니다.
3. 사람은 배워야 산다고 말합니다. 제가 처음으로 한 선언이 아니니까, 이 내용에 관한 해석은 어떤 것이 나올지 모른다고 해야 정상일 것입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자기가 주장하고 싶은 내용에 따라 표현과 얘기의 순서가 달라진다고 할 것인데, 하물며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듣는 소리는 당연히 내가 기대하는 내용과는 다를 것입니다. 이런 소리를 하면, 무엇을 배워야 한다는 소리일까요? 이 바쁜 세상에서 우리가 배운다면서, 손해라고 여기지 않는다면 어떤 내용을 들어야 조금이라도 만족한다고 말하겠습니까?
4. 말을 시작하면 첫째로 하는 질문이 있을 것입니다. 견진성사란 무엇인가? 무엇을 견진성사라고 우리는 말할 것이며, 그 성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배워야 하고, 그것을 왜 배워야 할 것이며, 배우는 사람으로서 어떤 다짐을 해야 할 것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5. 올바른 표현이라면, 질문하는 일로 끝나지 않고 대답해야 합니다. 그 대답은 이 시간을 진행하겠다는 사제인 제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내용을 참조하여 여러분 각자가 실천할 내용을 말로 표현하고 삶에서 그 내용을 받아들이며 적절한 기회가 되었을 때 그 내용을 실제로 여러분의 몸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 일이 필요한 것이 견진성사에 관한 올바른 대답의 준비가 될 것입니다.
6. 구체적으로 여러분이 응답할 정답을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그것은 견진성사의 준비를 위한 시간을 끝낼 때가 되면, 모든 사람이 똑같은 표현으로 대답하지는 않더라도 여러분이 대답할 내용이거나 그 내용의 준비를 위해서 우리는 힘을 쓸 것이기에, 어렵지 않게 준비될 내용이기도 합니다.
7. 나름대로 준비는 하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여기에 서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내용은 같거나 비슷한 표현이 여러 차례 반복될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그 내용이 중요하다고 해서 반복하는 것이겠지만, 듣는 여러분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 내용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일입니다. 신앙에서 말하거나 강조하는 내용이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똑같은 중요성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여러 가지의 모양으로 살면서 하는 일이 다양한 것과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일을 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똑같은 일을 잘하지 않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8.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은 '사람'이라는 표현으로 쓰지만, 사람마다 준비한 바에 따라서 그가 ‘잘하는 일’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견진성사는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을 받는 성사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말하고 나에게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마치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듯이 챙기는 것은 아니지만, 내게 필요한 것을 아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선물이 담긴 보따리를 열어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을 우리가 받는 성사입니다.
9. 견진성사(堅振聖事)라고 표현하는 한자는 굳을 ‘견’, 굳을 ‘진’을 씁니다. 굳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려면, 굳게 하려는 것의 이전에 다른 것이 먼저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때 말하는 앞선 내용은, 세례성사를 통해서 우리가 받아들인 신앙에 관한 내용입니다. 물론 세례를 받았다고 모든 사람이 단단하게 할 믿음의 바탕을 튼튼하게 할 준비를 한 사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견진성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모습으로 사는 것도 아닙니다.
10. 견진성사라고 번역한, 라틴말은 ‘사크라멘툼 곤피르마씨오룸’입니다. 사크라멘툼은 성사라고 번역하는 용어이고, 콘피르마씨오룸은 ‘단단하게 하다’는 의미를 갖는 낱말입니다.
11. 우리는 신약성경의 사도행전2장에서 성령의 강림/하늘에서 내려왔을 때 상황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개인으로 준비하신 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성경의 내용을 읽으면 이러합니다.
1 오순절이 되었을 때 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2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집을 가득 채웠다. 3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4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5 그때 예루살렘에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온 독실한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6 그 말소리가 나자 무리를 지어 몰려왔다. 그리고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지방 말로 듣고 어리둥절해하였다. 7 그들은 놀라워하고 신기하게 여기며 말하였다. “지금 말하고 있는 저들은 모두 갈릴래아 사람들이 아닌가? 8 그런데 우리가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의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 9 파르티아 사람, 메디아 사람, 엘람 사람, 또 메소포타미아와 유다와 카파도키아와 폰토스와 아시아 주민, 10 프리기아와 팜필리아와 이집트 주민, 키레네 부근 리비아의 여러 지방 주민, 여기에 머무르는 로마인, 11 유대인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들, 그리고 크레타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인 우리가 저들이 하느님의 위업을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언어로 듣고 있지 않는가?” 12 그들은 모두 놀라워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13 그러나 더러는 “새 포도주에 취했군.” 하며 비웃었다. |
12. 사람은 자기가 체험하였거나, 아는 일에 관하여 잘 이해한다거나 다른 사람에게 그 사정을 설명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모른다고 하거나 잘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이게 잘못이 아니라, 사람이 이러한 경우를 신앙의 일에 드러낸다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말해야 하겠습니까? 모르는 일을 아는 척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적어도 지금 당장 모른다고 하는 일이라면 다른 사람을 바른길로 이끌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니, 현실은 부족한 상태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13. 내가 처한 현실이 특별한 목적을 갖고 움직이는 일에 부족한 상황이라면, 다른 사람을 바른길로 이끌지 못한다는 것이니, 그래도 괜찮은 일일까요? 사람이 말은 다양하게 할 수 있어도 스스로가 부족한 상태라고 여긴다면 그의 삶을 어떻게 드러내겠습니까?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성령강림으로 하느님의 성령을 만났던 사람들이 변화되거나 바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어떻게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반드시 바뀐 나의 좋은 모습이나, 내가 바라는 모습을 보이려는 남에게 보이려는 의도가 아니라고 해도, 사람이 일정한 체계에 따라서 드러내야 할 내용을 제대로 구별하는 일은 필요합니다.
14.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느님의 선물인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과연 세상에서 어떤 일을 잘했기에 하느님의 선물을 받은 사람이 되었다고 하겠습니까? 사실 여부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하느님의 선물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오순절이라는 특정한 날에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한 일이란,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는 사실 뿐입니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모인 일도 하느님의 선물인 성령을 받기 위한 특별한 의도가 담긴 행동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 일에서 우리가 사람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아듣지 못한다면 나머지는 사람들의 노력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라고 해석해야 하는 일입니다.
15.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하늘에서 놀라운 소리가 들렸고, 불꽃-모양의 혀가 나타나 각 사람의 위에 내려앉았다고 했으니, 이 일은 사람들이 원하는 모양대로 이루어진 일은 아니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혀는 사람의 안에서 나오는 소리가 말이 되게 하는데 필요한 조건이고, 기관입니다. 혀가 없으면, 그저 소리는 소리로 끝나는 법입니다. 그런데 그 소리가 말이 되는 일은 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고, 그 혀의 작용을 하느님의 힘이 한다는 것이니, 사람의 삶에 놀라운 일은 하느님의 힘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16. 유대인이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이 기록하는 내용을 보면 세계의 여러 곳, 다양한 장소에서 살던 유대인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도 있고 각각의 지방을 얘기하면서 자기들의 귀에 들려오는 소리가 자기들이 태어난 지방의 말이었다는 것은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되지 않는 일이었다고 할 것입니다.
17. 여러 지방에서 모여 온 많은 유대인에게 세상의 표현으로 ‘제대로 배운 일이 없던 사도들’이 한 이야기가 ‘하느님의 위업을 각각의 언어로 전달하는 얘기였다’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겠습니까? 하느님의 일은 사람이 이해하는 차원을 넘는 때가 있습니다. 사람의 능력을 낮추는 보고 싶어 하는 표현인 듯하여 아쉬울 수도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세상에서 똑똑한 사람으로 산다면서도, 여러 가지 일들의 앞뒤 상황을 동시에 꿰지 못한다면, 우리를 통해서 하느님의 업적이 드러나는 일을 방해하는 일이 될 수도 있고 협조할 수도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18.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은 어떤 의도로 오셨을까요? 교육이라는 시간을 마련하고, 참여할 것을 종용했으니, 순수한 마음으로 오신 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그렇게 우리가 참여한 자세가 하느님의 선물이 우리에게 적용되고 실현될 기회가 되는 일이었다고 한다면, 다시 말해서 조건을 채우는 일이 되었다고 한다면 분명히 우리에게는 좋은 일이 생기는 시작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드러내거나 참여한 일이 잘못된 자세이거나 부족한 모습이었다고 그 평가를 낮추어 보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나의 삶에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생각한다면, 분명히 우리가 준비하는 자세가 좋은 일의 시작이 된다는 것입니다.
19. 하느님의 힘이신 성령이 우리의 삶에 이루려는 일을 우리는 한꺼번에 이해하기가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이 준비한 삶의 자세와 태도가 하느님의 뜻에 얼마나 일치하는지는 다른 사람이 알 수 있는 범위를 넘을 것이기에 우리가 함부로 말할 내용도 아닐 것입니다.
20. 저도 사제로 살면서 ‘성령의 힘이 내게 작용했구나’ 하는 일은 몇 가지의 체험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신앙공동체의 기도와 도움으로 자랐으니 분명히 축복을 입은 것은 분명하지만, 사제서품을 받는 때, 바닥에 엎드려서 기도하고, 올바르게 준비하려고 한 일이 결실이 생기고 특별한 체험이 있었기에, 제게 시작된 하느님의 은총이 모양을 이루었을 거라는 소리를 말한 체험이 있습니다.
21. 지금부터 벌써 20년이 더 지난 일이지만, 사제생활을 10년을 넘기면서 맞았던 안식년 시간에 저는 배낭을 하나를 지고 미국여행을 하겠다도 한 달 동안 다닌 적이 있습니다. 미국이라는 곳에 도착해서 1주일을 지낸 다음, 밤에 그랜드 케니언으로 가는 기차에 탔는데, 다음날 아침 일찍 시간에 확인했을 때, 어떤 미국인 병사가 제 배낭을 들고서 튄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지난 일이니 이렇게 마음이 편하게 말하지만, 그때는 황당했습니다. 우여곡절은 생략하고, 잃어버린 배낭에 들어있던 미사도구로 저는 주일미사만이라도 하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는데, 가방을 잃어버린 월요일밤부터 토요일 오전 시간에는 --기차로 7시간 거리--를 되돌아가서 가방을 찾았고, 독일에서 군인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하사관에게 짧은 영어로 고해성사를 해주었고, 다시 그 군인의 힘으로 가방을 찾은 뒤, LA로 돌아와서 20일이 넘는 나머지 여행을 마친 일이 있습니다.
22. 제가 어떤 삶을 살았다고 해서 놀라운 일이 제게 일어났겠습니까? 사람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계획하든지 실패하려고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성공하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성공과 실패는 내가 세운 계획대로 되는 일이 아니기에, 사람의 힘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분명히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서 베푸신 자비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23.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놀라운 일은 하느님의 힘일 때가 많습니다. 제가 사제라서 그런 특별히 경험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갖는 기본적인 생각이 하느님의 뜻을 내가 실천하려는 것이라면 하느님께서 일이 나에게 유리하도록 도우신다고 우리가 생각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24. 하느님의 성령이 나에게 오시고, 내가 그 성령의 뜻을 실천하면서 살겠다는 사람이라면, 놀라운 일을 하실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25. 오늘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말한 내용은 아니었습니다만, 사도행전2장의 뒷부분에는 성령의 선물을 받은 공동체의 사람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그 모습이 나오는 내용이 있습니다. 하느님이 힘이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을 말로 증언한 사도들은 정한 때가 되면 기도하던 시간을 마련했고, 실천했으며, 자기들의 공동체가 하느님의 성령을 체험하면서 놀라운 일을 맞이한 가운데에 섰던 체험을 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진 재화와 재산을 내어놓고 나누어 쓰고 함께 썼다는 표현을 들으면서, 현실의 우리는 그 놀라운 체험을 잃어버린 사람들로 살고 있지만, 우리의 공동체가 하느님의 은총을 힘입어서 그런 체험이 가능한 곳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합니다.
26. 여러분은 삶을 통해서 하느님의 은총을 어떻게 체험하고 누리기를 바라십니까? 그 내용이 지금 내가 바라는 대로 된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불편한 마음을 지니고 하느님의 뜻이 내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삶의 결과를 만들 것입니다.
27. 성령의 힘은 나에게 어떻게 오겠습니까? 성령의 힘은 나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작용하겠습니까? 우리가 세상의 일에 충실하겠다는 자세도 중요한 것이겠지만, 내 삶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될 수 있다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28. 나는 성령을 받을 사람, 성령은 받은 사람으로서 내 삶으로 세상에 어떤 일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하느님께 어떤 도움을 청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