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徐福公園 入口1

徐福公園 入口2

서복 전시관3
서귀포에 전해오는 서불(徐市.徐福)에 대한 전설은 정방폭포 암벽에 徐市過之라는 마애명으로부터 비롯된다.
이것은 진시황의 사자인 서불이 시황제의 불로장생을 위하여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동남동녀 오백명(혹은 3천
명)과 함께 대선단을 이끌고 불로초가 있다는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산(한라산)을 찾아 항해를 하였다.
영주산의 제일경인 정방폭포 해안에 닻을 내린 서불은 영주산에 올라 불로초를 구한 후 서쪽으로 돌아갔다.
서불이 돌아가면서 정방폭포 암벽에 徐市過之 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는데, 서귀포라는 지명도 여기에서 유래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서복전시관은 이러한 자료를 수집하여 전시한 곳이다. 김석이 지은 파한록(상)에는
서귀포 해안절벽에 진나라 방사인 서불의 글자흔적이 있는데, 제주목사 백락연(1877-1881)이 이러한 말을 듣고
폭포 절벽에 긴 밧줄을 내려 글자를 그려오게 하였다. 글자를 살펴보니 전부 12자였는데, 과두문자여서
해독할 수가 없었다 는 기록이 있다. 서복10경(1경 서불과지. 2경서귀기원. 3경 동남동녀. 4경 장군수복
5경 승진대로. 6경 용왕해송. 7경 해파낙청. 8경 일등천경. 9경 황근만화.10경 장자족구 등이다.

서복 전시관(사인보드)4

정방폭포 주변(사인보드)5

서복 공원6

서복 공원(부조)7

서복 공원(부조)8

서복 공원(부조)9

서복 불로초 공원10

서복 불로초 공원(서복에 대한 전설)11
2200년전 진시황의 사자인 서복이 시황제의 불로장생을 위한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동남동녀
500명(혹은 3000명)과 함께 대선단을 이끌고 불로초가 있다는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산(한라산)
을 찾아 정방폭포 해안에 닻을 내리고 영주산에 올라 불로초를 구한 후 돌아가면서 정방폭포
암벽에 서불과지라는 마애명을 새겨 놓았는데, 서귀포라는 지명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정방 폭포(동영상)12
정방 폭포(동영상)13

서귀포 정방 폭포(正房瀑布)(명승43호)(서귀포시 칠십리로)14
수직절벽에서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정방폭포는 우리나라는 물론 동양권에 단하나뿐인 절경으로
높이가 23m, 너비가 10m이다. 예로부터 여름철 바다에서 배를타고 폭포를 보면 아름답다고 해서
정방하폭으로 불리며 영주10경에 속한다. 폭포의 수원은 정모시(正毛淵)이라 부르며 폭포의 못에서
북장구를 두드리면 거북이들이 수면위로 올라와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고 한다. 서불이 불로
장생을 구하러 왔다가 이곳을 지나면서 서불과지 라고 새겨놓고 서쪽으로 떠났다는 서불의 전설
로도 유명하다.

정방 폭포15

정방 폭포16

정방 폭포로 내려오는 데크 길17
소정방 폭포(동영상)18
소정방 폭포(동영상)19

소정방 폭포 내려오는 데크 길과 바다20

소정방 폭포21

작가의 산책 길(사인보드)22

동문사거리 근처 서귀포 매일 올레시장23
(2016.06.16)
첫댓글 김종태 16.07.23. 09:27 불로초를 구할 수 없었던 서복은 일본으로 일본에 정착하여 살았다는 구전이 있더구만
여행매니아 16.07.26. 10:02 서복의 전설은 어디까지나 전설이 아닐까~84년에 가보고 이번이 처음
이라서 너무 많이 변한 것 같았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