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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일 (2017. 02. 15. 수) 평화기념 공원 → 오키나와 월드→ 차탄→ 류쿠무라→ 잔파곶→ 비오스의 언덕→ 리조트 클럽 코요 숙박.
아침은 한국에서 가지고 간 컵라면과 도시락 2개를 구입해 먹었다. 일본은 도시락 문화가 발달해 편의점마다 도시락 코너가 따로 있었고 숙소에는 공용 전자레인지와 뜨거운 물이 마련되어 있었다. 대개 우리 돈 4,000원 정도면 꽤 괜찮은 도시락을 살 수 있어 이날 아침은 928엔으로 한 끼를 해결했다. 다만 과일과 채소가 없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가지고 간 김과 볶음고추장으로 이리저리 먹을 만한 식사를 마련했다.
오늘은 중부 쪽으로 숙소를 정했기에 호텔은 체크아웃하고 첫 번째 장소인 평화기념 공원으로 갔다. 역시 운전에 익숙지 않아 좌회전 후 깜빡하고 한국식 운전으로 돌아와 역주행을 하다가 지나가던 택시가 경적을 울려 깜짝 놀라 우리 차선으로 오기도 했다. 네비는 방향 전환 전 700m에서 알려주고 다시 300m에서 알려 주는데 반응속도가 느려 좌우회전 해야 하는 지점보다 30m 정도 차이가 있어 지나치기 일쑤였다. 그래서 전환지점 100m 전방부터 서행하는 것이 요령이고 지나치고 나면 이 네비년이 성질이 고약해 아주 좁고 이상한 길로 안내를 하니 주의를 해야 한다. 지나치면 당황하지 말고 그대로 다른 차의 흐름에 맞추어 가다가 도로변에 조금 여유를 둔 곳에 차를 세운 후 다시 맵코드를 넣는 것이 좋다. 우리 네비처럼 커브길에 조심하라는 등의 자세한 안내도 하지 않았다.
속도 제한은 40~50㎞ 도로가 대부분이고 간혹 30㎞로 속도 제한을 둔 곳도 있었다. 고속도로는 80㎞인데 좌측 차선이 주행선이고 우측 차선이 추월선이다. 우회전이든 좌회전이든 붉은 신호에서는 갈 수 없다. 좌회전도 직진 신호를 받은 후 가면 되니 그리 어렵지 않으나 우회전은 일단 원을 크게 그리며 들어가야 한다. 직진 신호에 맞은 편 차가 없으면 우회전을 할 수 있어 직진신호가 들어오면 도로 중간쯤에 있는 표시까지 가서 직진 차가 지나가길 기다리면 된다. 우리가 보면 도로 복판에 이상하게 차가 대가리를 내고 있는 듯 보이나 그렇게 하는 것이 우회전 들어가기에 편하다. 간혹 우회전 차선과 우회전 신호를 따로 준 곳도 있는데 이 경우는 그대로 따르면 된다.
일본의 경우 50㎞ 도로를 50㎞로 달릴 경우 추월하는 차는 거의 없었다. 이번 여행 중 맞은 편 차선으로 추월해 들어오는 차를 딱 한번 본 적이 있다. 아마 그 차는 다른 나라 사람이 렌트한 차일 확률이 높다. 그리고 경적을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 차가 우리 왼쪽에서 들어오려고 기다리는 차에 제 풀에 놀라서 한번 사용하고 역주행하는 우릴 위해 일본 택시가 경적을 한번 울렸을 뿐 클랙슨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작년에 스리랑카에서 도로에 있는 차라는 차는 전부 클랙슨을 쳐대는 것을 경험한 나로서는 반드시 본받아야 할 문화라고 느꼈다.
오키나와도 길가에 무단 주차는 없다. 짧은 정차는 허용이 되지만 우리처럼 4차선 도로 중 양방향 2차선을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나라는 아마 어디도 없을 것이다. 건물 내 주차장 경고판에 무단 주차 시 벌금으로 1만 엔을 받겠다고 적어두었고, 렌터카 영업소에서도 공터에 차를 무단으로 세워 두었다가 주민과 법적 다툼으로 엄청난 벌금을 문 일이 있으니 주의하라고 하는 것을 보면 주차문제는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점이라 본다.
< 오키나와 남부, 패전한 일본군들이 집단으로 자살한 마부미 언덕에 조성된 평화기념 공원. 태평양은 오늘도 무심히 해변을 파도로 달랠 뿐 >
오키나와가 점령되면 다음은 일본 본토라는 생각에서 빼앗기지 않으려고 치열하게 공방전을 벌인 오키나와 전투. 당시 주민과 군인을 합해 오십만여 명이 이 섬에 있었는데 절반 가까운 이십사만 천여 명이 희생됐다. 우리의 강토를 식민지로 만든 원수의 일본이 벌인 침략전쟁에 우리의 죄 없는 겨레가 1만여 명이나 징용이나 징병 혹은, 군대위안부로 강제로 끌려와 이곳에서 개죽음을 당했으니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이란 말인가. 그러면서도 일본은 마치 자신들이 원폭에 희생된 피해자라는 어처구니없는 개지랄을 떨고 있으니 일본에 닥친 지진과 해일이 단순한 사고이며 천재지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키나와 사람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지키려던 일본, 그러나 본토에서는 옥쇄(玉碎)니 뭐니 헛소리만 하다가 미군과 육상전 한번 벌이지도 않고 폭탄 두 발로 바로 항복하고 말았으니 그때부터 주민의 반 이상을 잃어버린 오키나와 사람들은 바로 항복해버린 일본 본토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평화의 공원에 일본의 각 현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희생된 군인들의 위령제를 지낼 제단을 따로 마련해 두고 있었고 또 이 전투에서 죽은 모든 이들의 이름을 나라별로 직사각형의 큰 화강암에 파서 기념하고 있다. 수없이 널어선 일본인들의 이름들이 마치 미군이 많은 일본인을 죽인 듯한 착각을 일으키도록 조성해 두었다. 이 평화의 공원은 자신들이 저지른 전쟁을 반성하고 다시는 그러한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의지에서 조성한 것인지, 우리가 이만큼이나 많은 희생을 치른 피해자임을 알아달라는 홍보용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얍삽한 새끼들.
일본은 아직도 우리를 비롯한 주변국가에 자기들이 저지른 만행을 반성하지 않고 있으니 2차 대전을 일으키고 그 전쟁에서 유럽의 여러 민족에게 행한 자신들의 비인간적 만행을 지금도 끊임없이 반성하고 희생자를 찾아 사과하는 독일의 모습과 대조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독일은 약해서 머리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사과할 만큼 충분히 강하기 때문이다. 2차 대전의 결과 동서로 찢어지고 경제적으로 황폐해진 독일이 어느덧 유럽공동체를 이끄는 맹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과연 독일이 일본처럼 옹졸한 태도를 지녔다면 그것이 가능했겠는가를 생각할 때 일본은 여전히 작은 섬에 갇혀 사는 작은 나라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낀다.
< 희생자 위령비에는 447명(남한 365명, 북한 82명)의 이름만이 올라가 있다. 시신 발굴이 다 안 됐기 때문이다. 발굴되면 다시 추가 각명을 하고 있다. >
다음으로 간 곳은 바로 인접한 오키나와 월드이다. 여기는 볼거리가 네 가지인데 옥천동(종유석 동굴)과 왕국촌(민속촌), 그리고 열대식물 전시관과 뱀 박물관(하브 쇼)이다. 입장권도 A, B, C로 나누어져 A는 620엔으로 왕국촌(민속촌)과 열대식물 전시관만 볼 수 있고, B는 1,240엔으로 옥천동(종유석 동굴)과 왕국촌(민속촌), 그리고 열대식물 전시관까지 볼 수 있다. C는 1,650엔으로 뱀 박물관(하브 쇼)까지 모두 볼 수 있는데 우린 OTS 영업소에서 할인표를 사다가 보니 그냥 중간인 B를 사는 것이 적당할 것 같아 샀는데 그게 어떤 의미인지도 사실 몰랐다. 그런데 다행히 모두 뱀을 좋아하지 않아 돈을 아끼는 결과를 가져 왔고 열대식물 전시관은 있는지도 몰랐고 그래서 자연스레 가지도 않았다. 열대식물 전시관도 겨울이라 별로 볼거리가 없다니 이것도 신체 에너지 절약 측면에서 잘된 일이다.
이곳은 옥천동(玉泉洞, 교쿠센도)이라는 약 30만 년 전에 산호초로 이루어진 종유동굴로 유명한 곳이다. 오키나와는 화산의 폭발과 함께 바다가 융기되어 섬이 되었기 때문에 바다 밑에 있던 산호초 군락이 육지 위로 치솟은 후 서서히 빗물에 녹으면서 굳어져 종유동굴을 형성하게 되었다. 교쿠센도 동굴은 신생대 제3기 말에서 제4기에 생성된 산호초 석회암으로부터 종유석이 생겨난 동굴로 2차 생성물의 성장속도가 매우 빠른 것이 특징이라 한다. 옥천동에는 암굴왕, 은주(銀柱), 대불어전(大仏御殿), 초연광장(初恋広場), 용신의 연못(龍神の池), 푸른 샘(青の泉) 등등의 이름이 붙은 종유석이 많았는데 그 중 특히 동굴 스파이크가 인상적이었다. 동굴 스파이크란 종유석이 적당한 크기로 총총히 천정에 매달려 있는 상태를 말하는데 축구화 바닥에 총총히 박힌 못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규모가 큰 동굴스파이크로 옥천동 동굴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길이 1m이내의 종유석이 2만여 개나 달려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어서 이 옥천동의 종유석을 창천본(槍千本, 야리센본)이라고 한다.
< 암굴왕이라는 이름의 종유석 >
< 마치 수많은 창들을 매달아 놓은 듯하여 창천본(槍千本) 혹은, 동굴 스파이크라고 한다. >
다음으로 왕국촌의 큰북춤(大鼓舞, 에이사)공연이 있는 곳으로 갔는데 가는 곳을 꼬불꼬불하게 만들어 곳곳에 상점을 들리도록 만들어 두어 이곳이 왕국촌인지 기념품 가게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상업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곧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갔는데 얼마나 꼬불꼬불하게 모든 상점을 지나치도록 해 두었는지 걸음이 느린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공연이 거의 반 정도 지나서였다. 공연을 먼저 보여주고 난 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상품구경을 하게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되었다. 가기 바쁜데 물건이 눈에 들어오느냐 말이다.
에이사 공연은 청도 온누리 국악예술단의 북춤을 자주 접한 나로서는 그리 큰 감흥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북을 고정한 상태에서 두드리는데 여기서는 북을 마치 우리가 장구를 다루듯 몸에 걸고 춤추듯 치는 것이 돋보였다. 국제거리에서 본 오키나와의 전통악기인 산싱(三線)이란 악기도 눈에 띄었다. 이는 이름 그대로 세 줄로 된 현악기로 몸통은 뱀가죽으로 만들었는데 요즘은 뱀 무늬의 인조가죽을 사용한다고 한다. 일본 본도는 사미센(三味線)이란 개나 고양이가죽으로 만든 악기가 있는데 모두 중국의 삼현이란 악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 이 사람은 얼굴이나 몸의 형태로 볼 때 미군과 일본인 혼혈인 듯 했다 >
오키나와 월드를 나온 우리는 이제 차탄(北谷)의 아메리칸 빌리지를 향해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차라리 일반도로와 달리 별 어려움 없이 270엔의 통행료를 지불하고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고속도로 발권기에 겁이 나서 차를 바짝 붙이지 못해 통행증을 뽑는데 팔이 닿지 않아 결국 안전벨트를 풀고 차문을 열고 나가 통행증을 뽑았으니 우리 뒤로 늘어선 차들이 좀 웃었을 듯하다. 이런 일은 통행권을 뽑을 때마다 계속되었다. 물론 우리는 하루 서너 번씩 깜박이 대신 와이퍼를 작동시키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문제없이 차를 붙이고 자연스레 깜빡이를 넣었는데 좌우가 바뀌니 그게 잘 안 되는 것이다. 습관은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일반도로도 그렇고 고속도로도 우리보다 도로 폭이 좁았다. 특히 일반도로는 좌측에 진입하려는 차가 있으면 혹, 부딪칠까 걱정될 정도 좁았다. 황선생은 마주 오는 차에, 나는 내 좌측의 전신주에 부딪칠까 늘 긴장해야했다. 그러나 실제로 부딪치는 일은 없었지만 여행 사흘째 헤도곶으로 가던 도중 승용차가 길가의 야자를 박아 야자나무를 반 쯤 부러뜨린 교통사고를 목격했는데 그 단단한 야자나무가 꺾어진 걸 보면 사람도 많이 다쳤을 듯했다. 아마 렌터카 운전자가 자기도 모르게 핸들을 급히 조작해 일어난 사고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되었다.
< 차탄 아메리카 빌리지를 들어가서 바로 좌측에 구루메 회전스시 시장. 시장은 아니고 그냥 식당이다. 위쪽 간판에 ‘味自滿’이란 맛에는 자신이 있다는 뜻이고 ‘美兵店’은 아메리카 빌리지 분점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
아메리카 빌리지는 1981년에 반환받은 미군 비행장의 부지를 공원과 레스토랑, 쇼핑 시설 등으로 꾸민 문화 공간으로 미국 샌디에이고의 시포트 빌리지를 모델로 하였다. 선셋 비치, 아라하 비치 등 아름다운 해변과 인접하여 있으며 해변 공원에는 아름다운 카페, 레스토랑들이 늘어서 있다. 이온몰이라는 우리식 홈플러스나 이마트 같은 대형 마켓이 있어 돈까스, 소고기계란 덥밥, 스테이크 덥밥을 파는 식당과 블루실이라는 아이스크림 파는 집 등이 입점해 있다. 여러 가지 과일과 채소나 집에 가져갈 선물을 살 수 있는 기회였지만 스시집을 보는 순간 모두 잊어버렸다.
아침을 도시락으로 먹었기에 아메리칸 빌리지에서는 좀 푸짐하게 먹기로 했다. 스테이크나 스시 중 하나를 먹는 것이 좋을 듯 했는데 마침 며칠 전 둘째 딸이 오키나와 여행을 와서 이 집이 맛도 있고 가격도 괜찮다며 적극 추천하기에 구루메 회전스시 시장에 가 스시를 실컷 먹기로 했다. 누님은 회가 입에 맞지 않아 200엔짜리 우동 한 그릇과 튀김이나 김밥 종류를 골라 먹고 우리는 연어와 돔 등을 먹었고 운전을 하지 않는 나는 500엔짜리 맥주 한 병도 마셨다. 270엔짜리 5개, 210엔짜리 6개, 180엔, 140엔, 110엔짜리 각 1개 총 14접시를 먹고 계산하니 세금까지 4,030엔이다. 세 명이 실컷 먹었는데 우리 돈으로 사만 원 정도이니 과연 싸다고 하겠다.
< 스시에 이런 깃발을 꼽은 것은 오늘의 추천 스시라는 뜻이다. 접시 색깔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초록색은 270엔짜리일 듯하다. >
< 17일 점심도 이 스시집에 들러 해결했다. 이날은 점심값이 2,898엔밖에 나오지 않았다. 15일보다 거의 1,000엔 정도 덜 먹었다. 위쪽 스시는 간장을 바른 후 불로 위쪽만 살짝 익힌 것인데 별미라 할만 했다. 와사비를 즐기는 나는 쇼가(초생강)과 락교(초양파)도 즐기는데 15일은 락교를 공짜로 잔득 주더니 17일은 없다고 한다. 스시 집에 초양파가 없다는 소린 처음 듣는다. Dog seat, 개좌석. >
점심 후 한 바퀴 둘러보았으나 따로 쇼핑센터에 갈 것도 아니고 해서 다음 행선지인 류큐무라(琉球村)를 향했다. 우리 여행 경로는 철저히 경제논리에 따라 어제 렌터카 영업소에서 산 관광지 할인권 4장을 위주로 하고 거리를 감안해 움직이기에 강박감도 없고 시간도 넉넉해 입장료를 지불한 류큐무라가 자연스레 다음 행선지가 되었다.
< 지붕에 우리의 어처구니처럼, 이런 ‘시사’라는 동물 형상을 올려 두었다>
< 집집마다 ‘시사’의 모양이 조금 다르다. 그래서 볼만도 하다 >
< 이것은 일본 오키나와 슈리성(修理城)의 시사이다. 나름 궁궐을 지키는 시사이기에 일반 여염집 시사보다는 형식적으로는 가장 완벽할 듯하다. 그리고 두 마리 모두 공을 굴리고 있음과 연좌(蓮座)에 앉아 있음을 유의하시라 >
‘시사’는 전설상의 짐승으로 일반적 해석이 사자(獅子)의 오키나와식(式) 방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제주도 집 앞의 있는 둥근 탑 모양의 방사탑(防邪塔)이나 궁궐의 지붕에 액을 쫓는 어처구니와 비슷한 용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지붕이나 문 앞, 기둥에 배치하는데 왼쪽에 입을 다문 것이 암컷이고, 오른쪽에 입을 헤벌린 것이 수컷이라 한다. 물론 중국의 정원이나 큰 건물의 대문에 있던 암수 사자의 모습을 내가 연상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상해의 예원(豫園)이 이러한 모습의 전형이라 하겠다. 특히나 앞발에 공을 가지고 놀고 있음은 이 시사가 중국의 모방임을 거의 증명하는 것이라 본다. 다만 중국의 경우 암사자는 자식을 어르고 있는데 여긴 암수가 다 공을 가지고 노는 것이 차이라 하겠다.
이 외도 액막이로 사용되는 것이 곳곳에 있는 ‘석감당’(石敢當)이란 돌 비석이다. 하긴 주민의 반 이상이 전쟁으로 죽었으니 그 땅이 정상적인 땅이라 하긴 힘들겠다. 피에 젖은 땅, 원혼들이 주민들의 반 이상이나 되어 저승에 못간 혼령이 밤이면 자신의 죽음터를 떠도는 흉터. 그곳에서 살기 위해선 얼마나 큰 액막이가 필요할 것이냐? 그것도 죽은 이들이 장가도 못간 젊은이들, 고향에서 끌려온 젊은이들, 감언이설에 속아 끌려온 처녀들인 바에야 얼마나 처절한 절규가 밤마다 이곳저곳에서 사무칠지 정말 모골이 송연할 따름이다. 그러다가 석감당이란 액막이를 만나면 반가울밖에.
<일반적으로 교차로에 이런 돌을 세운다. 귀신은 좌우회전을 못해 이 돌에 부딪히고 나서 다시 돌아갔다가 돌아와 이 돌에 부딪히면 귀신이 깨어진다고 한다. 귀신은 일단 깜빡이 넣는 것부터 배워야겠다. >
중국의 경우 ’태산석감당‘(泰山石敢當)이란 풍속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석감당‘(石敢當) 역시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는 그만큼 류큐 문화가 중국 문화에 영향을 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실제 지금 류큐가 일본에 소속된 것은 문화와 관련 없는 무력에 의한 병합이라는 것을 말한다. 토속적인 것과 구비적인 것은 문화적 근원이 어디인가를 드러내는 분명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 그 외에도 ‘우타키’라는 신성한 장소가 있다. 보다시피 거의 기어들어 가야할 정도로 문이 나지막하다. 이유를 아래 설명에서 찾아보자 >
< ‘후루’라고 하는 오키나와식 돼지우리 >
‘후루’는 중국 남부에서 전해졌다고 하는데 정면의 넓은 구덩이야 돼지의 거처이겠으나 나의 눈을 끄는 것은 앞에 화장실 발판처럼 된 것이다. 자연스레 제주도 똥돼지 우리가 떠올랐고 1816년 후루가 비위생적이란 이유로 새 후루 짓기는 금지되고 기존의 것은 먹이 주던 구멍을 막게 했다는 설명이 여기서도 사람의 인분이 돼지사료로 사용되었음을 말한다고 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비위생적이라 말할 것도 특히나, 앞의 먹이 구멍을 막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우측 사진을 자세히 보면 구멍이 있고 그 앞이 얕게 파여 있다. 이는 소변이 자연스레 흘러가도록 한 장치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정면을 보아야 하는데 아마 앞에 가림 시설이 있었을 것 같다.
똥이 활용 가능한 훌륭한 자원에서 혐오스런 단순 폐기물로 변한 데는 서구문명의 영향이 크다고 하겠다. 과거에는 사람의 똥이 돼지에게는 먹이가 되고 돼지의 똥은 다시 거름이 되어 식물의 성장을 촉진해 다시 인간의 먹이가 되니 똥이 버려지지 않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촌충이나 회충 등의 기생충 감염을 이야기하나 눈 사이가 좁아 사물을 좁게 멀리 볼 수 있게 생긴 서민 교수라는 분의 말은 그렇지 않다. 기생충을 박멸했기에 아토피 같은 면역체계의 이상이 온 것이라는 것이다. 즉 기생충을 이기기 위해 우리 몸은 세대를 두고 진화했는데 기생충이 사라지니 우리 몸을 기생충 대신 스스로를 공격하게 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무균돼지에게 촌충을 배양해 우리 몸에 이식하면 아토피가 사라진다나? 게다가 요즘 수세식 변기 사용이야말로 수자원 파괴와 오염의 주범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 누군가가 장독대에 이런 여유를 부렸다 >
< 이런 걸 찾아내는 높은 안목의 소유자는 흔치 않다. ㅋㅋㅋㅋ >
< 입구에 분장을 하고 산싱(三線)을 연주하는 사람을 뒤로 하고 우린 류큐무라를 떠났다 >
류큐무라를 나온 우리는 다시 북쪽에 위치한 가까운 잔파(殘波)곶을 향했다. 잔파곶은 입장료도 없고 주차장도 무료이므로 류큐무라를 들렸다면 이곳도 방문해 보는 것이 좋다. 류큐 시절 중국과 정식 무역을 이끌어 낸 ‘다이키’의 동상도 있고 하얀 등대도 있고 아이스크림 차도 있어 어슬렁거리기 좋다.
< 바위가 화산암이라 매우 날카로워 여기까지 올라오곤 포기했다 오른쪽 바위의 혹 같은 부분을 주목하자 >
< 그러나 한국인 아가씨는 저리 짧은 치마를 입고 오른쪽 바위의 혹을 향해 용감하게 가고 있다. 거기까지 가야 절경이 펼쳐짐을 뒤에서야 알았다 >
바람 부는 잔파곶을 뒤로하고 할인권을 산 ‘비오스의 언덕’을 향해 출발했는데 이번 여행에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네비년도 똑바로 하지 않는 터에 도로변의 관광지 안내판까지 너무 부족했다. 그래서 다시 엉뚱한 화원 같은 곳에 들어가 빙빙 돌다가 미국 같았으면 사유지 무단침범으로 총 맞을 뻔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많은지 엄청 못 생긴 젊은 아낙 한 명이 나오더니 바로 아주 익숙하고 친절하게 나가는 길을 안내해 주었다. 겨우 다시 제 길로 들어섰지만 오키나와 관광을 담당하는 관리가 이는 반드시 개선해야할 사항이라 본다.
‘비오스’는 그리스 말로 ‘생명’을 뜻하는 말이다. 전체가 약 2㎞의 자연 산책로를 가진 아열대 숲 이른바 이시키와 고원이라 불리는 높은 지대에 형성되어 있는 곳으로 주차는 무료이다. 화원 입구에서 육교를 건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바로 여러 종류의 양란(洋蘭)이 잘 가꾸어져 있어 볼거리가 되었다. 물소 똥 냄새가 진동하는 물소 마차와 미니열차로 공원을 돌거나 호수 관람선을 타고 약 1㎞의 호숫길을 관람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지만 우린 그런 것에 흥미를 느낄 나이가 아닌 지라 산책로 근처의 꽃과 나무를 보고 이제 너무 많이 해 지겨워진 산책을 또 시작했다. 수요일인지라 사람도 그리 없고 여학생 몇이 자기들끼리 놀고 있었는데 남학생이 없는 이유를 그들의 얼굴이 말해주고 있었다.
< 양란들이라 꽃들이 엄청 크고 색채는 화려하여 눈을 확 끌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란 시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는 시구와는 정반대로 ‘보자마자 예쁘다. 금방 봐도 사랑스럽다.’ 만약 마음에 둔 여인에게 프로포즈랍시고 ‘풀꽃’이란 시를 보낸 이가 있다면 이는 그녀의 외모를 엄청 모욕하는 것이 되는 셈인데 요즘 애들이 그걸 생각이나 할지. 무식은 비이성적(非理性的) 용기다. 쯧쯧.>
계절이 겨울인지라 곤충은 없고 우리 소나무보다 침엽이 가는 류큐소나무가 눈에 띄었다. 아마 5월경 방문하면 대단히 좋은 꽃구경을 할 수 있으리라. 화염지(花染池 - 꽃을 비추는 연못)와 천염지(天染池)라는 이름이 다소 과장된 연못을 보고 사어정(思御庭)이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포장된 빈 공간을 보다가 전내(殿內)라는 이름의 촌락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왔다. 벤자민 나무의 줄기를 인위적으로 붙여 엮은 집 모양의 정원이 기괴하다. “이렇게 만들고 나니 보기 좋냐?”라고 하는 듯, 인간에 의해 샴쌍둥이 형상이 되어 버린 기형의 나무를 보고 그 노고를 칭찬해야할지, 인간의 무자비한 욕심을 비웃어야할지 할 말을 잃는다.
< 대문과 담장을 지나면 본채가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
< 본채에 해당되는 구조물을 이렇게 만들어 두었다. >
< 위에서 내려다본 양치류 식물, 고사리 같은데 크기가 4m 가까이 큰 나무라서 고사리는 풀이라고만 생각하던 나에게 신기한 경험이었다. >
오늘의 관광 일정은 끝이 난지라 예약해둔 ‘리조트클럽 코요’에 들러 체크인 후 주변 사정을 보아 저녁식사를 하는 것이 남았다. 네비년이 가리키는 대로 계속 가니 ‘희망의 언덕’이라는 산길로 우회전을 지시하고, 꼬불거리는 산길에서 드디어 이 년이 우회전을 지시해 우리를 막다른 절망의 길로 안내한다. 아무리 보아도 리조트 클럽은 보이지 않고 전화를 해야 하나 하다가 일단 차를 다시 도로로 뺀 후 나의 감대로 조금 더 직진해 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리조트클럽 코요’라는 작은 간판이 보였다. 말이 간판이지 문패처럼 붙여 놓아 집 앞에 다 와서야 확인이 가능할 정도였다. 우리 같으면 중간 중간 “리조트클럽 코요 몇 m”라고 적고 화살표라도 해 둘 텐데 일본인이 친절하기는 개뿔.
프론트에서 주인 부부는 우릴 기다리고 있은 듯 방 열쇠를 주고 자기들은 내일 아침에 오니까 필요하면 전화를 하라고 번호를 준다. 오늘 우리밖에 손님이 없으니 편히 사용하라고 하면서 주변에는 식당이 없고 희망의 언덕을 내려가 우회전해서 가면 바로 로우손(LAWSON)이란 편의점과 식당 몇 개가 있다고 가르쳐 준다. 이틀간의 방값으로 44,160엔의 거금을 지불하고 방에 들어오니 어제의 방과는 규모가 다르다.
< 좌측 검은 2단 냉장고. 그 위에 전자렌지, 그리고 4명이 넉넉히 앉아 식사할 탁자. 커튼의 바깥은 아래 사진을 보시오 >
< 베란다를 통해 풀장이 펼쳐져 있다. 아! 여름이었다면 얼마나 요긴한 시설인가! >
더 늦기 전에 내려가 ‘로우손’에 들러 주변 식당을 보았더니 돼지고기 굽는 식당과 일반 술집이 있는데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도시락 2개과 맥주 10캔, 안주와 빵 등 내일 아침 식사까지 4,041엔에 다 샀다. 바로 돌아와 씻으려고 화장실에 들어가니 화장실의 크기는 어제 묵었던 나하의 콘티넨탈 호텔과 같이 좁아 터졌다. 왜 이들은 좁은 화장실에 집착할까? 샤워실과 세면대와 화장실의 세 가지 용도의 공간을 불편을 감수하며 겨우 사용하도록 만드는 이유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사용할 터가 없거나 노는 땅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TV에서는 북한 김정남의 피습 암살 소식이 계속 속보로 보도되고 있다. 그리고 그 여자에 대한 탄핵소식도 진행 상황을 알 만큼 보도되고 있다. 그걸 바라보니 남한과 북한 모두가 독재자의 아들과 딸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상태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는지 바로 드러나는 것을 같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도 공산주의 국가라 그렇다고 하더라도 남한이 북한의 독재 세습을 비판하면서 스스로는 독재자의 딸을 선택한 것은 무슨 지랄이란 말인가? 이게 더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자유의지로 독재자의 딸을 선택하다니! 정말 혼(魂)이 비정상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개성공단 협력업체 사장이 오리구이집 주방 보조로 겨우 연명하고 있다는 얼마 전의 뉴스를 박근혜가 보았다면 그녀는 그게 자기 때문이라는 걸 생각이나 할까? 고국을 떠나왔건만 여전히 고국을 부끄러워 해야 하는 슬픈 윤동주의 모습이 한 잔의 술잔 위에 길게 드리워져 술잔의 바닥으로, 더 밑바닥으로 침잠(沈潛)하고 있다.
같이 간 누님이 박근혜의 탄핵됨을 슬퍼하고, 형도 죽이고 고모부도 죽인 김정은이 빨리 죽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고 정치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회의(懷疑)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만천하에 드러난 박근혜의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무지와 나태와 오만과 탐욕과 허위 – 한 인간이 이렇게 나쁜 성정을 고루 갖추기도 힘든 일인데 -에서 온 악행을 두둔하고자 하는 저 마음 자체가 또 다른 악을 덮거나 부를 것이 분명할 것인데 그럼 수녀 생활을 오래하고 나름의 금욕과 절제와 봉사의 삶을 살아 온 누님을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김정은이 빨리 죽어야 한다는 누님의 말씀은 잘못된 것이다. 비록 원수일망정 빨리 죽으라는 저주는 옳지도 않거니와 이성적, 현실적으로도 그가 지금 죽으면 우리나라와 국민은 안 그래도 사드니 트럼프니 해서 경제에 치이고, 탄핵이니 개헌이니 해서 정치에 처박혀 죽을 지경인데 엄청나게 큰 우환덩어리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이니 더 힘든 지경이 될 것이다.
게다가 TV에서는 삼성그룹의 부회장인 이재용의 구속심사 소식이 뒤를 잇는다. 다른 이는 평생 한두 개로 살아가는데 9,999개를 가진 놈이 다시 권력에 빌붙어 그 남은 하나를 마저 채우려고 하다가 대아(大我)를 희생해 소아(小我)를 얻는, 박근혜식 창조경제에 휘말려 이제 지금까지의 불법과 탈법과 편법으로 점철된 그의 민낯을 드러내게 되었으니 수갑을 수건으로 가리고 서 있는 코트 입은 키 큰 남자의 어깨가 처음보다 많이 처진 듯 느껴지는 것은 나 혼자의 생각인가?
이 글을 쓰는 2월 말일, TV에서 삼성합병으로 이재용이 얻은 이익은 8,000억에 이르고 국민연금에 끼친 손해는 최소 1,400억 원 정도라고 특검에서 발표하고 있다. 각종의 기부형식으로 이재용이 박근혜 측에 바친 돈은 줄 잡아 계산해 봐야 500억도 되지 않으니 투자원금에 대해 16배라는 기하학적인 이익을 거둔 것이다. 박근혜의 권력에 빌붙어 적은 돈을 바치고 많은 이익을 거두는 방법을 연구하는 곳이 삼성미래전략연구소인 듯하다. 결국은 부당한 방법으로 박근혜와 이재용이 국민의 돈을 나눠 먹기 한 것이다. 그럼 손해를 본 것은 누구냐 하면 바로 당신들,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국민'이란 이름의 당신이다. 2014년 400만이 국민연금을 타고 있다는데 2016년은 500만이 연금대상자라 추정하고 삼성합병으로 손해 본 1,400억을 나누면 일인당 28,000원씩 이재용에게 삥 뜯긴 것이다. 그런데도 박근혜가 억울하게 탄핵이 되었고, 이게 모두 고영태라는 호빠 출신의 젊은 아이의 계략에 엮인 것이라는 주장하는 얼토당토 않는 무리들과 그러한 주장에 또 빌붙어 자신의 개인적 영달이나 정치적 입지를 노리는 더러운 인간들이 거짓 애국심으로 태극기를 흔들고 있으니 안중근이, 류관순이 피눈물을 흘릴, 통탄할 일이다.
오늘은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해 남부 지방부터 중부 지방 경계의 만좌모(万座毛)를 제외한 거의 모든 코스를 다 돌았다. 상당히 피곤했지만 일단 황선생이 정상으로 돌아 왔고 운전도 어느 정도 손에 익은 것이 다행이었다. 내일은 일단 짐은 숙소에 그대로 두고 아침 8시 반 경에 출발해 58번 국도를 타고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는 최북단의 헤도곶까지 간 다음,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중부지방의 관광지를 두루 섭렵할 생각이다. 마지막 할인표인 츄라우미 수족관을 필수코스로 하고 나머지는 그때그때 생각해보고 다니기로 했다. 근처의 명소로 나와 있는 것을 조사해 보니 코우리 오션타워, 네오파크 오키나와라는 곳과 그리고 파인애플 파크 정도였다. 제법 술을 마시고 11시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 2/15일 경비 지출 >
1. 아침 식비 928엔
2. 평화공원 일주 차비 300엔
3. 오키나와 월드 입장료 및 사진 1,100엔
4. 물 3병 330엔
5. 고속도로 통행료 270엔
6. 점심 식대(회전 스시) 4,030엔
7. 저녁 식대 및 주대 4,041엔
8. 리조트클럽 코요 숙박비(2일) 44,160엔
계 55,159엔
총 수입 155,000엔 중 105,839엔 지출, 49,161엔 잔액.
♠제 3 일 (2017. 02. 16. 목) 헤도곶 → 코우리 대교 → 츄라우미 수족관 → 비세마을 후쿠기 가로수길 → 리조트 클럽 코요 숙박.
일찍 일어나 도시락과 컵라면으로 요기를 하고 바로 출발해서 58번 국도를 타고 계속 북쪽을 향해 달렸다. 날씨는 쾌청하여 춥지도 덥지도 않을 정도라 긴 남방에 얇은 조끼를 걸쳤다. 가는 길의 왼쪽으로는 계속 해변이고 가끔씩 터널이 있었는데 헤드라이트를 켜도 어두운 편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터널의 조명을 어둡게 해두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곧 알게 되었는데 내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무료 주차장에 주차 후 한 바퀴 둘러보니 여기가 최북단이라 여러 기념비나 조형물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러한 조형물보다 나는 그 조형물 받침대의 돌이 더 흥미로웠다.
< 2001년 2월에 무슨 섬과 국두촌(國頭村) -이 서로 우호하자고 세운 탑. 국토의 끝부분을 국두라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헤도곶이 북쪽 국토의 끝이니, 헤도곶이 속한 마을이 국두촌이 되겠다. >
< ‘우호’라고 해서 비둘기 형상이라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몸통과 꼬리는 물고기 형상이었다. 그러나 둘이 우호를 기념하는 것보다 동판 주변에 박힌 돌이 더 흥미로웠다 >
< 갯지렁이가 뒤엉킨 듯한 돌이 있는가 하면 산호인지 말미잘인지 모를 생물체가 그대로 굳어진 돌도 있는데 몇 군데의 돌이 빠져있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가 빼간 듯하다. 설마 한국 사람의 소행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범인의 국적은? 혹시 흘러 있으면 주워 가려고 아래를 찾아보았지만 그런 행운이 있을 리 없다. >
< 북쪽의 끝이라 그런지 얕은 남쪽 바다의 맑고 풀빛 띤 푸른색보다 물색이 깊고 물 흐름도 유장한 느낌을 준다. 북쪽이라 함은 일본 방향이란 뜻이고 평화기념 공원의 언덕 아랫방향은 대만 쪽이다. >
< 큰 탑이 세워져 있어 가보니 ‘조국복귀투쟁비(祖國復歸鬪爭碑)’라 새겨져 있고. 그 아래는 다음 사진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실소를 금치 못하게 했다. >
< 일본어를 모르는 나는 한자 위주로 해석해보니 전국과 전 세계의 벗들에게 바치는 글이란 제목으로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귀에 들리고 권력에 저항해 복귀의 뜻을 이룬 대중의 건배소리 어쩌구저쩌구’. 글자는 멋있게 잘 적었다만 내용은 dog seat(개좌석)다. >
나는 처음 멀리서 이 비(碑)를 읽고 이 비가 1879년 일본에 나라를 잃어버린 류큐국 사람들이 류큐국을 회복하기 위해 투쟁한 것을 기념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가서 본즉, 이 비는 2차 대전 직후 오키나와를 미국의 군사기지로 내어준 후 1972년 미국이 일본에 반환한 것을 일본식으로 미화해 표현한 것이었다.
일본이 오키나와를 복속시키고도 지속적으로 차별을 하던 차에 1945년 미군에게 밀려 오키나와 철수가 눈앞으로 다가오자 일본군은 미군에 협력할까 두려워 유언비어를 퍼뜨려 주민 자살을 유도했고 자살하지 않은 주민은 일본군이 철수 전에 학살했다고 한다. 이 문제의 반향이 커서 전후 미군은 여러 이유로 오키나와를 일본에 반환하지 않다가 1970년대에 주민 투표를 하게 되자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 독립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엄청난 공작을 펼쳤고, 결국 오키나와는 일본으로 반환되었다. 그런데, 이번 역사왜곡 교과서에 일본인들은 "일본군이 주민을 모아다 학살했다는 말 대신 미군이 오키나와에 쳐들어오니까 오키나와 주민이 자살했다" 이렇게 적었다고 한다. 물론 이는 역사적 지식이 얕은 내가 이리저리 이삭 줍듯 주운 지식이니 오류가 있을 수 있겠지만 ‘투쟁’이란 말은 스스로 낯 뜨거운 단어가 아닐까?
< 코우리 대교. 바닷물이 연푸른색이 도는 것은 산호가 부서져 모래가 되었기 때문이다 >
부끄러운 자화자찬의 투쟁비를 뒤로 하고 츄라우미(美ら海)수족관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코우리 오션타워로 가기로 했다. 코우리 대교는 야가지 섬과 코우리 섬을 잇는 약 2㎞의 오키나와 최장의 다리로 복판 부분이 불룩하게 설계가 되어 다리 끝이 하늘로 향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일단 무료 주차장이 있어 주차 후 다리가 보이는 해변으로 갔더니 부서진 산호가 많았다. 그래서 인지 초록빛이 도는 바다색이 참 아름답다. 전망대는 1인당 800엔이라서 패스하고 섬 일주에 나섰는데 코우리 섬은 둘레가 약 8㎞의 작은 섬으로 일주하는데 10분 정도 소요되었지만 왜 일주했는지 모를 만큼 볼 것이 없었다.
시간도 어느 듯 점심시간이 되어가기에 오늘의 메인 코스인 츄라우미 수족관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또 네비년이 심통을 부려 우리를 이상한 길로 인도하기 시작해 드디어는 차가 딱 한 대밖에 못 다니는 밭길로 몰아넣었다. 차바퀴가 옆으로 빠질 정도로 좁은 길 위에서 문득 긴급출동이 될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때는 당황하지 말고 다시 입력을 하는 것 외 다른 수가 없다. 겨우 큰길로 빠져나와 좌회전하니 수족관이 보인다. 밖에서 점심을 먹자는 황선생에게 안에 식당이 있다고 했더니 없을 거란다. 무조건 있다고 했더니 입구에서 주차 안내하는 사람에게 물어 본다. 당연히 있지. 세계 두 번째 넓다는 이런 어마어마한 위락시설에 식당이 없다면 위락시설을 지은 놈이 바보니까 들어갈 필요도 없는 것이다.
1인당 입장료가 1,850엔이니까 우리가 다니는 곳의 입장료 중 가장 비싼 곳이다. 주차장을 빠져나와 좌측 안내소에 들러 우리말로 된 관광 안내서를 받고 식당 위치를 물으니 주 건물 4층이란다. 주 건물이라 보이는 곳으로 갔더니 바로 식당이다. 4층이 아닌데라고 생각했는데 그 아래 3층을 깔고 있어 실제로는 4층 건물이었다. 즉 우리는 4층에 해당하는 언덕 윗부분으로 진입했고 수족관 건물은 언덕 아래로 층별로 이어지면서 내려가다가 나중에는 1층에서 3층까지가 통으로 된 대형 수족관과 마주치게 설계해 두어 정말 자연을 적절히 이용한 설계란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그 식당이 상당히 비싼 뷔페라는 것이다. 나는 뷔페도 좋고 간이식당도 좋고 다 좋은데 황선생이 뷔페에 좋지 않은 감정이 있는 듯해서 다시 원래 안내소 옆 패스트푸드점으로 갔다.
< 오른쪽 건물 방향으로 들어오면 1층 같은데 실제는 4층이다. 4층이 식당이고 3층부터 수족관이 시작된다. 경사진 면을 따라 각종의 수족관 고기들을 따라 걷다보면 건물 안에서 자신도 모르게 좌측 건물 쪽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 츄라우미 수족관에서 바라본 이에지마(伊江島). 화산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처럼 보인다. 해변 가까이는 해안선을 따라 얕은 리프(Reef – 산호초, 암초)가 펼쳐지고 산호초 군락이 형성되어 있다. 비행기에서 내려 보았을 때 나는 그 둥근 모양 때문에 가두리 양식장인 줄 알았다. >
이 산호초가 점차 융기하여 석회암이 되면서 섬은 점차 커지게 되는 것이다. 비록 지진이나 쓰나미의 공포가 있지만 화산활동으로 섬이 생기고 그 섬이 산호의 영향으로 점차 커지는 것은 과학적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우리나라도 제주도 아래 형체를 드러내지 않는 이어도가 아열대 기후로 바닷물이 따뜻해져 산호초 군락이 발달해 커지다가 화산이 하나 터져 사진의 이에지마처럼 온전한 섬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 산호가 자라고 있는 바다 속과 죽어 석회암의 바위가 된 모양. 그리고 이 바위가 부서져 모래가 된 해안. >
< 이것이 이름만 유명한 오키나와 소바. 면의 색깔을 자세히 보길. >
점심은 마침 오키나와의 명물이라는 오키나와 소바가 있기에 이를 3그릇 주문했다. 처음에 나는 손님이 많아서 익지 않은 면을 준 것일까 하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의 면 상태도 꼭 같았기에 결국 오키나와 소바의 면은 원래 그렇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즉, 면이 살아 있어 젓가락으로 집으니 푸르르하며 꿈틀거린다. 씹으니 똑똑 끊어지며 별 찰기가 없어 면 자체는 우리 입맛에는 영 아니다. 차라리 청도 재래시장 안 대곡식당의 4,000원짜리 우동이 훨씬 낫다. 육수는 그래도 마실 수 있을 정도이다. 점심을 호화롭게 먹는 것이 꿈처럼 사라졌다. 하는 수 없이 커피와 빵을 더 시켜 먹었다. 점심식대는 모두 3,611엔으로 먹은 것에 비해 엄청 비싼 편이었다.
< 3층 수족관은 바다의 바닥의 생물도 옮겨 두었다. >
<2층과 3층의 대표적인 대물 고기. 닷돔처럼 생겼는데 길이가 2m 정도 >
< 1층부터 3층까지에 관통한 대 수족관. 고래상어와 가오리 종류. 여러 종의 상어와 이름 모르는 물고기들이 유영하고 있었다. >
야외에도 바다 거북관이나 매너티관, 돌고래 라군, 오키짱 극장과 해양문화관, 향토마을, 열대드림센터 등의 시설이 있으나 우리는 바다 거북이와 매너티 돌고래를 본 후, 이정표에 오키나와 향토마을 370m라 적혀 있어 가보기로 했다. 사실 류큐무라를 본 이후라 별 의미가 없는 결정이었다. 한 200m 쯤 걸었는데 이정표를 보니 40m가 늘어나 410m 남았다고 적혀 있다. 바로 포기를 하고 바닷가를 끼고 난 산책로를 걸어 돌아가기로 했다. 날씨는 참 좋았다. 흔히 말하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얕게 펼쳐져 있었고 아열대의 식물들이 겨울임에도 무성하여 공기는 쾌적하였다.
황선생이 오늘 TV에서 오키나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다. 안 그래도 “피녀(彼女), 악(惡)”이라는 자막을 본 나도 궁금하던 차였다. 사건인즉, 미군 흑인 한명이 일본 여대생을 납치 강간하려다가 너무 힘껏 때려 그만 죽여 버린 사건이었는데, 그 흑형이 하는 변호의 말이 “나는 어려서부터 여자를 납치해 강간해 보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데 마침 내가 꿈을 이루려는 곳에 그녀(彼女)가 있었기에 그녀의 잘못(惡)이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감정을 받느니 어쩌니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비슷한 차원의 말을 하는 박근혜도 탄핵이 결정되면 정신감정과 약물 검사부터 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이번에도 일본인들은 또 화장실에서 나를 놀라게 한다. 일본의 화장실에는 얼마나 많은 비밀이 숨어져 있는 것일까? 북해도 민숙집에서도 화장실을 보고 놀란 기억이 난다. (Daum, 꽃중년 여행 카페, 북해도 여행 – 1편 참고)
< 남자 화장실 대변 칸 문에 이런 그림이 붙어 있다. 여기서 한자(漢字)는 자(子)와 개실(個室)뿐이다. ‘아들’과 ‘개인방’이라고? 무슨 그림일까? 아이의 개인용 용변실이 따로 있다는 말인가? 자식과 나란히 앉아 화장실을 개인용 방처럼 사용하라는 말인지 그림과 한자로는 명확한 이해가 안 되었다. >
< 화장실 안은 다음과 같은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왼쪽처럼 된 상태에서 아이를 앉히고 오른쪽 상태처럼 하고서 용변을 보라는 배려로 끝나면 복판의 둥근 버튼을 누르면 풀리는 장치였다. 남자가 아이와 둘이서 놀러와 용변을 보는 경우를 설정한 배려였다. 일 년에 열 번 사용될지 모르겠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시설이라 생각되었다. >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