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한국 사회의 지배구조 변화
1. 80년대 한국 사회는 급격한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맞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87년 6월 항쟁을 통해 헌법을 개정하고 형식적이나마 민주주의 회복했다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군부 세력이 여전히 집권하였다는 점에서 사회의 근본적 성격은 바뀌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집권의 전략과 전술적 변화가 동반되었을 뿐이다. 한 사회의 근본적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배구조를 파악해야 한다. 지배구조는 정치지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정치지형이란 “한 사회의 본질적 모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지배·피지배 계급 간의 세력대립이 정치적으로 구조화된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다.
2. 80년 광주항쟁을 폭력으로 진압하고 권력을 획득한 5공 정권은 국가의 독점적 지배가 강화되었다. 이 시대의 지배구조의 내용을 보면 “미국을 비롯한 세계자본주의 체제와의 정치·경제적 결합력의 강화, 분단구조의 온존과 반공이데올로기의 심화, 국내 독점자본의 정치력 강화, 군부를 전면에 내세운 폭력적 통치의 강화”라고 정리할 수 있다. 80년대 초반 어려웠던 경제적 상황은 80년대 중반 3저 호황을 비롯한 요인을 통하여 급격하게 성장하게 된다. 80년대의 경제적 특징을 보면 ‘물가안정을 위한 안정기조의 정책, 중화학 공업에 대한 투자조정으로 대표되는 경제구조의 개혁, 민간경제로의 이전, 개방경제체제의 달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외형적 특징은 생산의 국제화를 통해서 국제 분업체제를 재편하려는 초국적 독점자본의 의도와 국내 독점자본의 축적강화의 논리라는 잠재된 힘이 결합되어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3. 폭압적인 군부정권의 통치를 변화시킨 것은 민중운동의 지속적인 저항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군부독재 세력의 장기집권을 위한 전략적 변화와 ‘자유화’를 내세운 미국의 신식민지 지배전략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결국 6.29 선언을 계기로 여야 정치세력은 ‘직선제 개헌’을 핵심으로 하는 헌법 개정을 공동으로 작업했고 87년 대통령 직선제를 통한 정치지형의 변화를 합의했다. 하지만 헌법 개정이 “헌법의 본질과 기능을 외면한 채 집권의 편의만을 위한 당리, 당략적 차원의 합의”라는 혹평처럼 본질적이고 광범위한 민주적 개혁에는 부족한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여야 합의로 이루어진 정치적 타협은 대한민국의 정치적 지형을 새롭게 변화시켰다. 87대선과 88총선 결과 군부출신 대통령과 여소야대의 국회로 정립된 권력구도는 일종의 보수연합적 성격을 띠게 되었고 여야 협조를 통한 민중운동의 배제로 표출되었다.
4. 이른바 국가권력의 주도로 이루어진 보수연합은 초보적인 시민 권리를 복원하고 최소한의 정치공간을 제공하는 ‘제한적 민주화’와 부문별 경제 집단에 대해 차별적인 회유와 탄압을 통해 분열을 이끌어내는 ‘의사 개량화’ 정책을 통해 민중운동 세력을 억제하는 데 협력한 것이다. 87년 6월 항쟁 이전까지 비롯 제한된 방식이지만 민중운동의 협력 세력이었던 야당정치 세력이 실질적으로 민중운동의 대립축으로 지배구조가 변한 것이다.
5. 이런 지배구조의 변화에 대해 진보진영에서는 민중운동의 독자적 정치세력이라는 기본과제를 전면적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점을 내세우기 시작하였다. 독자적인 정치 세력화를 위해서는 노선의 합일, 기층 대중조직의 확대강화, 통일전선의 온전한 구축과 강화가 필수적이며 무엇보다도 정치적 대중조직의 건설과 강화가 긴급히 요구된다고 진단하였다. 하지만 ‘독자적인 민중정당 및 운동후보’라는 목표는 민중운동권의 전체적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고 상대적으로 소수였던 PD계열 운동권의 목표에 지나지 않았다. 민중정당의 창당은 정치적 패배 이후 늦게서야 90년대 민주노동당 결성으로 현실화 된다. 운동의 주류였던 NL계열은 ‘비판적 지지’라는 이름으로 야권의 정치세력과 연대하려는 움직임을 한동안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6. 한국사회의 지배구조는 80년대 중반까지 국가독점세력과 반독점세력과의 이분적인 대립구조였으나 87대선 이후 국가독점세력, 야당세력, 민중세력 이라는 3개의 축으로 분할되었고 국가와 야당 정치세력은 ‘보수연합’의 방식으로 영향력을 확대하였고 제한적 민주화와 의사 개량화 정책을 통해 민중운동의 동력을 약화시켰던 것이다. 경제적인 호황과 국제적인 정세 또한 공격적이고 전면적인 변혁 운동에 대한 지지를 약화시켰으며 민중운동은 점점 고립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첫댓글 - 세상의 변화는 정치가 앞장서서 이끌기도 하고, 경제적 흐름의 소용돌이에서 갑자기 나타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