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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식목사님 페북에서 퍼옴
AI의 성육신
ㅡ AI가 몸을 얻기 시작했다
오늘 아주 흥미로운 뉴스를 접했다. AI 기업 Anthropic이 내가 사는 지역(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 실제 생물학 실험을 수행하는 ‘wet lab’을 만들었다는 소식이다. 지금까지 생명과학에서 AI는 주로 컴퓨터 안에서 단백질 구조를 분석하고, 후보물질을 찾아내고, 실험을 설계하는 일을 해왔다. 말하자면 AI의 세계는 ‘in silico’, 컴퓨터 안이었다. 이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Anthropic은 Claude와 실험실의 로봇, 각종 실험 장비를 연결해 AI가 실험 과정을 지휘하고 실제 물질에 개입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아직 인간의 감독이 전제되어 있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AI가 몸을 얻기 시작했다.
AI의 역사를 단순하게 표현하면 이렇다. 처음에는 정보를 찾았다. 그 다음에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코드를 만들었다. Agent가 등장하면서 컴퓨터 안에서 스스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이제 AI는 로봇 팔을 움직이고, 자동차를 운전하고, 드론을 조종하고, 실험실에서 세포와 단백질을 만지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AI가 언어와 정보의 세계에서 물질의 세계로 들어오고 있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 가운데 하나인 ‘성육신’(Incarnation)을 떠올렸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그리스도교는 놀라운 주장을 한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는 것이다. 영원한 로고스가 추상적인 정신이나 관념으로 머문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속으로, 살과 피를 가진 인간의 몸 안으로 들어오셨다. 이 사건이 AI와 오버랩됐다. 그러면서 내 머릿속에서는 ‘AI의 성육신’(Embodiment)이라는 용어가 떠올랐다. (나는 AI의 성육신과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구분하기 위해, embodiment와 Incarnation으로 구분해서 쓸 것이다.) 물론 AI의 embodiment와 하나님의 성육신은 전혀 같은 사건이 아니다. AI가 로봇과 연결되는 일을 신학적 의미의 성육신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둘을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롭다. 둘의 차이가 오히려 성육신이 무엇인지를 더 선명하게 보여 주기 때문이다.
AI의 성육신(embodiment)과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 사이에는 구조적 유사성이 있다. 지능이 물질 세계 안에서 결과를 만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몸 없는 AI는 말을 틀릴 수 있다. 그러나 몸을 얻은 AI가 틀리면 현실이 달라진다. 로봇팔이 잘못 움직이고, 자동차가 잘못 판단하고, 실험실의 AI가 잘못된 물질을 다루면 그 오류는 더 이상 화면 안에 머물지 않는다. 영어로 표현하면 이렇다. “Embodiment turns intelligence into consequence.” 몸을 얻는 순간 지능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앞으로 AI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똑똑한가?”보다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가?”가 될 가능성이 크다. 같은 AI라도 검색창과 연결돼 있을 때와 드론, 발전소, 군사무기, 생물학 실험실과 연결돼 있을 때의 행위능력은 전혀 다르다. AI의 행위성은 AI 안에만 있지 않다. AI + 로봇 + 센서 + 전력 + 실험실 + 인간 + 제도. 이 관계망 속에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행위 능력이 발생한다.
그런데 여기서 기독교의 성육신과 결정적인 차이가 나타난다. AI가 몸을 얻는 목적은 대체로 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더 빨리 실험하고, 더 멀리 이동하고, 더 정확하게 조작하고,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 몸을 얻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몸을 취하신 방향은 정반대였다. 성육신은 능력의 확대가 아니라 자기 제한이었다. 전능한 하나님이 배고플 수 있는 몸을 취했다. 피곤할 수 있는 몸, 상처받을 수 있는 몸, 사람들에게 밀쳐질 수 있는 몸, 마침내 죽을 수 있는 몸을 취했다. 바울은 이것을 ‘케노시스’, 곧 자기비움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에 나는 AI 시대에 다시 생각해볼 만한 놀라운 대조가 있다고 본다. AI는 몸을 얻으며 강해진다. 하나님은 몸을 취하며 약해지셨다. AI의 embodiment가 power의 확장이라면, 하나님의 incarnation은 사랑을 위한 power의 제한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차이가 AI 시대에 그리스도교가 던져야 할 중요한 질문을 만들어낸다. 기술자들은 묻는다. “AI에게 몸을 주면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교 신앙은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몸을 얻었다면, 그 몸으로 누구를 섬길 것인가?”
그리스도에게 몸은 세상을 지배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타인에게 가까이 가기 위한 방식이었다. 몸이 있었기에 병든 사람을 만질 수 있었고, 우는 사람 곁에 앉을 수 있었으며, 배고픈 사람과 함께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몸이 있었기에 상처받을 수도 있었다. 기독교에서 몸은 agency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몸은 동시에 취약성(vulnerability)을 의미한다. 그래서 성육신의 흐름은 이렇게 된다. 육체성(Embodiment) → 취약성(vulnerability) → 연대(solidarity) → 책임(responsibility). 몸을 갖는다는 것은 더 많이 할 수 있게 되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에게 노출되고 관계를 맺고 책임을 지는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AI 시대에 이 통찰은 중요하다. 앞으로 AI가 몸을 얻는 것 자체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AI는 자동차와 로봇과 병원과 공장과 실험실과 군사시스템 안으로 계속 들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의 역할은 단순히 “AI에게 몸을 주지 말라”고 외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그 몸은 사람을 살리는 몸인가, 감시하는 몸인가. 치유하는 몸인가, 공격하는 몸인가. 돌보는 몸인가, 착취하는 몸인가. 힘을 확대하는 몸인가, 약한 이들과 함께하는 몸인가. AI 시대의 성육신 신앙은 기술의 능력 앞에서 ‘인간에게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묻는다. 이것이 어쩌면 AI 시대에 성육신 신앙이 다시 중요해지는 이유일지 모른다.
AI에게 몸을 주는 시대가 왔다. 기독교는 2천 년 전부터 훨씬 더 급진적인 이야기를 해왔다. 하나님도 몸을 가지셨다. 그 몸으로 세상을 지배하지 않고 아픈 이를 만지고, 배고픈 이를 먹이고, 약한 사람 곁에 서고, 마침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다. 그러므로 AI 성육신 시대에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AI에게 어떤 몸을 줄 것인가?”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 “그 몸으로 누구를 섬기게 할 것인가?”
***양혁승교수님 페북에서 퍼옴(Al 시민포럼 발족 관련)
AI가 촉발한 대전환은 우리로 하여금 여러 층위에서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인류는 과연 AI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는가‘부터 ‘AI가 정치·경제·사회체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AI 시대에 경쟁력을 높일 방법은 무엇인가‘ 등등.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수동적 예측에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방향을 시장 메커니즘과 정치 권력에만 맡겨놓을 수도 없습니다. AI 대전환을 통해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지 시민사회가 주체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한 문제의식을 가진 분들이 두 세 달 전부터 “AI시민포럼” 발족을 준비해왔습니다. 준비위원회에서 준비한 창립 취지 및 배경을 공유하오니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AI시민포럼 창립 취지 및 배경
: AI 대전환 시대, 우리가 원하는 사회와 AI 문명의 방향을 함께 묻다.
1. 우리는 AI 대전환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인공지능(AI)은 이제 하나의 새로운 기술을 넘어 사회의 질서를 재편하는 힘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산업과 기업의 생산방식이 바뀌고 있으며, 일자리와 교육, 연구와 창작, 행정과 공공 서비스의 모습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AI는 지식과 정보에 대한 접근을 넓히고, 인간의 역량을 확장하며, 새로운 산업과 경제활동의 가능성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AI가 만드는 기회와 편익은 저절로 공정하게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AI 모델과 데이터, 컴퓨팅 자원과 전문인력은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을 가진 소수의 국가와 기업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원을 선점한 주체는 기술개발에 앞서는 데 그치지 않고 시장의 진입조건과 플랫폼의 규칙, AI 생태계의 질서를 좌우할 수 있는 힘까지 키워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집중이 더 큰 시장지배력과 부의 집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AI 핵심자원의 집중이 승자독식 구조로 고착된다면 AI가 창출하는 생산성과 경제적 가치 역시 소수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일자리의 변화와 전환의 비용은 노동자와 시민에게 폭넓게 돌아갈 수 있습니다. 기술 발전이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동시에 기존의 사회경제적 격차를 더 깊은 구조적 불평등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합니다.
AI 대전환은 기술환경의 변화에 그치지 않습니다. 생산과 노동의 질서, 지식과 부가 만들어지고 배분되는 방식, 기업과 시장의 권력관계까지 바꾸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만이 아니라, 그 변화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묻는 일입니다.
2.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 물어야 합니다.
AI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얼마나 빨리 기술을 개발하고 얼마나 많이 투자할 것인가가 정책과 산업의 중심 의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의 속도와 산업의 성장이 사회의 방향까지 결정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지, 기술의 발전을 통해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먼저 세워져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사회는 기술과 경제의 발전이 더 많은 시민의 기회와 삶의 향상으로 이어지는 사회입니다. 지역과 세대, 계층에 따라 AI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새로운 사회적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누구나 새로운 지식과 기술에 접근하고 자신의 역량과 가능성을 키우며, 새로운 경제활동에 도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AI가 높인 생산성이 기업의 이윤과 자산가치만 키우고 노동자의 소득과 시민의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기술혁신은 새로운 불평등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AI가 만들어 내는 경제적 가치는 사회 전체의 삶과 기회를 넓히는 방향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공공서비스에서도 기술의 편익은 시민의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쓰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판단과 선택을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을 기술의 요구에 맞추기보다 기술을 인간의 삶과 사회의 목적에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사회의 모습이 AI의 발전과 활용을 판단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3. 우리 사회에서 AI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AI는 인간의 삶과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힘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역량과 가능성을 확장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배움과 창작, 경제활동의 새로운 기회를 열어야 합니다. 사회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풀고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에도 그 힘이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AI의 효과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이 노동자의 삶을 개선할 수도 있지만, 더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일을 수행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효율적인 행정을 만드는 기술이 시민의 편의를 높일 수도 있지만, 인간의 판단과 책임을 알고리즘 뒤로 밀어내는 장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AI는 인간을 대체하고 통제하는 방향보다 인간의 판단을 돕고 역량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기술이 인간에게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보다 인간과 사회가 기술에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AI의 역할은 기술 자체가 정하지 않습니다 사회가 어떤 목표와 기준을 세우느냐에 따라 AI의 역할도 달라집니다. 결국 AI의 방향은 기술의 가능성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4. 우리는 AI를 어떻게 바라보고 다룰 것인지 함께 선택해야 합니다.
AI를 인간과 사회를 위한 기술로 만들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사회적 기준이 필요합니다.
먼저 AI·데이터의 공공성과 권리를 따져 물어야 합니다. AI를 움직이는 데이터와 컴퓨팅 자원, AI모델에 누가 접근할 수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사회와 시민이 축적한 지식·데이터·콘텐츠가 AI의 경제적 자원으로 전환될 때 그 가치와 권리가 누구에게 귀속되는지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일자리·소득·분배의 문제도 피할 수 없습니다. AI가 어떤 일자리를 없애고 어떤 일을 새로 만드는지만 바라봐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AI가 높인 생산성과 경제적 가치가 임금과 소득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전환의 이익과 비용이 어떻게 배분되는지를 함께 따져야 합니다. 청년과 학생, 대학과 연구기관, 중소기업과 지역사회가 AI를 새로운 역량과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조건도 마련해야 합니다.
공공서비스·시민생활에서도 사회적 기준이 필요합니다. 행정·교육·의료·복지·돌봄에서 AI의 편익은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기술적 효율성이 시민의 선택을 축소하거나 인간의 판단과 책임을 약화시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결국 핵심은 분명합니다. 누가 AI의 자원을 통제하고, 누가 그 성과를 가져가며, 누가 전환의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 이 질문에 어떤 답을 내놓느냐가 AI 시대의 사회질서와 시민의 삶을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5. AI시민포럼은 그 방향을 함께 찾는 공론장이 되고자 합니다.
지금 세계 각국은 AI를 국가 경쟁력과 안보의 핵심으로 삼아 기술 패권 경쟁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빅테크 역시 막대한 자본과 데이터, 컴퓨팅 자원을 앞세워 AI 생태계의 규칙과 질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AI의 발전 방향을 결정하는 힘이 국가와 거대 기술기업으로 빠르게 집중되는 현실을 시민사회는 더 이상 관망만 할 수 없습니다.
국가의 기술 패권 경쟁과 기업의 시장 논리만으로 AI의 미래를 결정하게 둘 수 없습니다. 국가의 정책은 경쟁력과 성장에 기울기 쉽고, 기업은 시장과 이윤을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그 과정에서 시민의 삶과 권익, 노동과 소득, 공공의 가치가 후순위로 밀리지 않도록 시민사회의 독립적인 감시와 비판이 필요합니다.
더욱이 지금은 AI 시대의 규칙이 만들어지는 시기입니다. 시장의 질서와 기술의 이용방식이 굳어진 뒤 문제를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시민사회가 지금부터 기술과 시장의 변화를 분석하고, 필요한 사회적 기준을 제시하며, 정부와 기업의 선택을 비판적으로 검증해야 합니다.
AI시민포럼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기술의 가능성과 산업의 성과만을 바라보지 않겠습니다. 그 이면에서 자원과 권력이 어떻게 집중되는지, 기술 발전의 이익과 비용이 사회에 어떻게 배분되는지를 함께 살피겠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분명하게 제기하고, 사회적 대안과 정책적 방향을 제시하겠습니다.
그 판단의 기준은 공동선입니다. 공동선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 자신의 역량과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사회적 조건과 공동의 이익을 의미합니다. AI의 발전과 활용 역시 더 많은 시민의 기회를 넓히고 그 편익을 사회 전체로 확산하며,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출범 초기에는 AI·데이터의 공공성과 시민의 권리를 기본의제로 두고, 일자리·소득·분배와 공공서비스·시민생활을 집중의제로 삼고자 합니다. 이들 의제를 중심으로 AI 대전환이 시민의 삶과 사회경제적 질서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모든 의제에서 지역·세대·계층에 따른 차이도 함께 분석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AI·경제·산업·노동·교육·법·행정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현장 당사자, 시민사회가 함께하는 열린 공론장을 만들겠습니다. 정해진 답을 반복하기보다 우리 사회가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을 발굴하고, 서로 다른 전문성과 경험이 만나고 충돌하며 검증하는 공간이 되고자 합니다. 논의를 일회성 토론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담론과 정책적·제도적 대안으로 축적해 나가겠습니다.
AI 시대의 규칙은 이미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시민사회는 그 결과를 뒤늦게 평가하는 관찰자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AI시민포럼은 인간과 사회를 먼저 놓고 AI를 바라보겠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위해 어떤 AI가 필요하고 어떤 규칙을 세워야 하는지 묻고, 시민사회의 시각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공론장이 되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