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강화 3길 : 운양나룻길 (운양역 4번 출구 – 통진 성당 입구 버스 정류장)
김포 지역은 한강 하류지역으로 수로 교통의 요충지가 되어 많은 나루가 있었다. 대명나루, 운양나루, 감암나루, 섶골나루...등, 운양나루는 김포 운양동 일원에 있는 나루로 서울 마포나루와 고양시 법곶리 이산포를 왕래하던 나룻터로 소규모 어선의 기지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사라진 옛 자취가 되었고 운양동, 운양전철역, 운양지하차도 등 그 지명에서 매우 번창하였던 당시를 짐작하게 한다. 그래서 강화 3길을 운양 나룻길로 명명힌 것일까 ?.
운양은 운양포(雲陽浦)가 있어 운양리로 불러왔다는 이야기가 있고 또 다른 설화로는 운양산 일대에 쌓여있는 마을이라 하여 운양리라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운양이란 말은 마을이 생기전에 이미 있었던 아주 오랜 된 지명인 것이다. 운양이란 의미를 새겨볼 때 일행들이 도착하였다.
운양 4거리에서 하성 방향의 횡단보도를 건너니 운양역 1번 출구이다. 1번 출구를 좌측에 두고 직진방향으로 진행하며 도시를 감상한다. 한때는 도시의 보도블럭을 따라 걸어가는 것은 자연의 길이 아니라고 강한 거부감이 있었는데 도심을 걷는 것이 사람이 살고 있는 길을 깨닫고 흥겹게 걸어가게 되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 김포 사업소에 이르어 우측으로 진행한다. 청명한 날씨에 걸어가기에 적당한 날씨이다. 흥이 일기 시작할 때 김포 한강 생태 조류 공원에 이른다. 조망마루에 올라 공원을 내려다 본다.
광활한 대지위에 동, 식물들이 마당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 흥에 겨운 어깨 춤이 그치지 않는 것일까 ? 봉성산과 심학산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그리워 하며 통일의 전진 기지 일산 신도시가 강건너 솟아있고 북한산의 장쾌하게 뻗어간 산줄기는 보면 볼수록 새로운 힘이 솟는다.
인공호수나 하천을 설치하지 않고 한강 하류변에 위치한 점을 살려 기존의 습지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조성된 생태 공원에는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오고간다. 젊은 남녀. 중년 부부들은 서로가 손을 잡고 다정히 걸어가고 지팡이를 짚고 공원을 걸어가는 사람 등이 한데 어우러진 시민의 휴식 공간이었다. .
하루를 보내도 시간이 부족할 것같은 드넓은 생태 공원에서 경기 둘레길과 강화길은 서로 가는 길이 다르다. 경기 둘레길은 인공이 가미된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고 강화길은 자연 친화적인 황토길, 흙길을 걸어간다.
경기 둘레길과 강화길이 대칭을 이루면서 생태 공원을 벗어나 강변을 따라 걸어간다. 드넓은 한강은 고요한 정적에 쌓여 있는데 강변에는 철망 울타리가 쳐있있고 초소가 있고 경비병이 지키고 있다. 누가 고요한 평화를 깨트리고 긴장을 유도하는가 ?
그래서 이 길을 평화를 되찾으리는 뜻에서 평화 누리길이라고 이름하였지만 철망을 볼 때 마다 울분과 원망에 가슴을 치지 않을 수없으니 평화의 길로 정착되어 하루빨리 철망이 제거되기를 염원할 뿐이다.
초등학교시절 배웠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걸어간다. 처음 봤을 때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던 봉성산과 심학산이 한강을 사이에 두고 견우, 직녀처럼 마주보며 그리워하고 있다. 작은 동산들 그러나 사람의 가슴을 흔든다.
“아담한 능선을 가진 봉성산의 옛 이름은 ”전류산“, 또는 ”진류산“이라 했고 봉성산 중턱쯤에 오르면 사거리에 그 흔적만 남아있다. 옛 사람들은 이곳 사거리에서 가리밋 고개와 봉성고개를 지나 읍내를 오갔다.
이들의 하루의 피로는 지금 배수펌프장 자리에 있던 봉성리 주막에서 거나하게 들이키는 막걸리 한사발로 달랬을 것이고 고려말 대제학을 지낸 閔愉란 관리가 공민왕의 총애를 받던 중 신돈의 난을 피하여 한강이 굽어 보이는 아름다운 기슭에 은거하며 전류정이란 정자를 짓고 벗과 시와 술을 즐기며 살았는데 고려 수도인 개성이 그리워 봉성산 위에 올라 개성을 바라보며 왕을 그리워 하여서 봉성산을 國思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고 동행한 조용원 회장님께서 명쾌하게 정리하여 주셨다.
대명 축산 식품에 이르러 봉성산을 눈잎에 두고 하동천 생태 탐방로에 진입하였다. 경기 둘레길을 걸으면서 이곳에 이르렀을 때 탁한물이 흐르고 있어 하천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고 비난을 하며 지나쳤던 곳이었는데 천의 둑길을 걸어가니 잘 다듬고 가꾼 생태하천이었다.
하동천은 1970년대 이전에는 한강이었던 곳이다 본래 봉성산을 돌아서 내려가는 한강이 여려 갈래로 흘렀는데 1970년대 초반 농경지 확대를 위한 간척사업을 시작하면서 이곳이 농지로 변하였다. 한강의 새끼강인 하동천은 메우지 않고 2011년 생태공원으로 조성하였으며 현재는 농수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생태 탐방로 쉼터에 앉아 김총무가 따라 주는 커피를 마시는데 비행기 나는 소리에 놀랐던지 기러기 떼들이 대열을 지으며 날아가는 모습이 참으로 장관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찰나의 순간에 만난 철새들의 나는 모습에 내마음도 둥실둥실 날아간다.
시간이 나면 다시 와 보고 싶다. 그때에는 오늘은 볼 수없었으나 참으로 아름다움을 선사해줄 연꽃이 만발한 풍광을 볼 수 있는 시기를 맞춰와서 천변의 데크길을 따라 한바퀴를 돌아 보며 오늘의 아쉬움을 달랠 것이다.
하천의 길이 다하고 농로에 진입하여 수참천을 만났다. 이곳에서 통진 성당까지는 5.8km이다. 11시 방향에는 문수산이 솟아 있고 15시 방향에는 봉성산이 뻗어있다. 가까운 곳에서 바라보니 봉성산의 힘찬 기운을 흡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는 길은 일자로 뻗어간 직선의 길이 되고 좌, 우는 김포평야가 펼쳐 있다. 논에는 볏집단을 사정없이 잡아갈 사자인 볏집단 둥근롤이 곳곳에 배치하여 긴장감을 주고 있지만 철새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낱알을 열심히 찾고 있다.
추수가 끝난 논의 주인은 철새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선조들이 까치밥을 남겨 놓았듯이 탈곡을 하고 난 뒤의 낱알은 철따라 이곳저곳을 찾아가는 철새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길을 걸으면서 산을 마주칠때마다 가슴이 출렁이며 내 마음을 흔드는 것은 산의 힘찬 기운에 매료되었다고 할 수있지만,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광장을 바라보며 가슴이 설레이며 한없이 걷고 싶은 충동이 솟구치는 것은 무엇때문일가?
끝자락이 어딘지 모르고 걸어왔던 았던 드넓은 들판인 김포 평야도 한걸음이 쌓여 형체만 보이던 아파트 단지에 이르렀다. 마송 LH 5단지 아파트였다. 이곳에서 점심을 하고 인도를 따라 통진 성당에 이르렀다. 이제 강화길 3길이 끝나고 1구간 만이 남았다.
● 일 시 : 2022년11월17일 목요일 맑음
● 동 행 : 조용원 회장님. 김헌영 총무님
● 동 선
- 09시40분 : 운양 전철역 2번 출구
- 10시02분 ; 김포 한강 생태 조류 공원
- 11시46분 : 하동천 생태 탐방로 입구
- 12시30분 : 수참천
- 13시40분 : 마송 LH 5단지. 점심
- 14시50분 : 통진 성당 입구
● 총거리 및 소요시간
◆ 총거리 : 15.0km
◆ 소요시간 : 5시간10분
첫댓글 우리의 소중한 국토를 걸으며 지역의 유래와 옛 선인의 이야기 등 새로운 정보와 풍성한 내용에 찬사를 보냅니다. 아름다운 우리 길을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