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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의 ‘산소길’이 소개되자마자 걷는 사람들의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처음에 산소길이 나왔을 때 ‘산소길이라니, 무슨 산소(묘지) 옆에 길을 만들었다는 말인가’부터 시작해 ‘길에 산소(O2)를 뿌려놓았나’까지 반응이 다양했다. 화천의 산소길은 어떤 길이고,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배경이 먼저 궁금했다.
강원도는 산지가 전체 면적의 81%를 차지한다. 남한 전체는 64% 정도 된다. 강원도가 비율적으로 5분의 1가량 더 많다. 산이 많고, 산림이 우거졌다는 얘기는 자연 산소발생량이 많다는 사실과 연결된다. 강원도의 산소발생량은 전국의 21% 정도 된다고 한다. 남한 전체 산소발생량의 5분의 1 이상을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한마디로 ‘산소가 충만한 천혜의 보고’이다. 강원도는 여기에 착안했다. 타시도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발생하는 산소를 관광자원으로 내놓은 것이다.
- ▲ 화천을 관통하는 북한강 상류 위로 폰툰다리를 놓아 화천 산소길을 만들었다. 화천 산소길은 강 위를 걷는 이색체험을 할 수 있으며, 곧바로 숲속길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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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화천은 남한의 북한강 최상류지역으로 평화의 댐이 있고, 빽빽한 산림으로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호랑이가 출몰했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원시 자연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관광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북한강 최상류의 맑은 물과 우거진 나무들이 내뿜는 무한한 산소를, 길을 걸으며 느껴보라고 만든 것이 바로 화천 산소길이다.
화천 산소길은 50여 년간 보존돼 온 원시림의 숲속 산소길 1㎞, 물 위의 폰툰을 이용해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수상폰툰길 1.5㎞, 물안개와 저녁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수변산소길 2㎞, 나룻배체험길 0.3㎞ 등 총 4.8㎞로 구성돼 있다.
화천은 서울과 비슷한 구조로 도시 중앙으로 북한강이 흐른다. 시내서 강을 바라보는 운치도 만만찮다. 화천시내에서 승용차로 10분 이내 거리에 산소길 출발지인 미륵바위에 도달할 수 있다. 시간만 있다면 걸어서 갈 수 있다. 원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양심자전거’를 시내 곳곳에 비치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둘씩 없어져 지금은 시내에는 자전거가 없다.
산소길 출발지인 미륵바위는 북한강과 같이 나란히 서있는 461번 도로 바로 옆에 있다. 특이한 바위여서 눈에도 잘 띈다. 특이한 바위인 만큼 그에 얽힌 전설도 반드시 뒤따른다.
- ▲ 화천 산소길인 폰툰다리 위로 아침시간에도 여러 명의 방문객들이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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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출신의 한 선비가 미륵바위 초립동의 도움을 받아 과거에 급제해, 양구현감을 지내면서 미륵바위를 더욱 치성으로 모셨다는 전설과 소금배를 운행하던 선주들이 안전한 귀향과 함께 장사가 잘 되기를 바라며 제사를 올렸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미륵바위가 산소길 출발지
원래는 바위가 많았지만 여기저기서 가져가 지금 몇 개밖에 남지 않았다. 화천군에서 바위를 군청 앞에 옮겨 세웠더니 화천군수가 운명을 달리하고, 그 이후로도 관계한 사람들이 시름시름 앓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렸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산제가 끝나면 미륵바위로 와서 다시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어느 정도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영험한 바위 같아 보인다.
유려히 흐르는 강변으로 내려갔다. 강폭이 서울의 한강폭만 했다. 콘크리트 교량이 아니라 부교(浮橋)로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일명 폰툰다리(Pontoon Bridge)라 했다. 폰툰은 건축용어로 철 또는 목재의 상자형 배를 말한다. 빈 플라스틱 박스로 전체를 엮고 그 밑에 큰 박스를 놓아 이중으로 안전장치를 마련해 다리를 만들었다. 약간 울렁거렸지만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화천 산소길의 폰툰다리는 북한강 상류에 ‘떠있는 다리’다. 떠있는 다리 중간에서 흐르는 북한강의 산소를 느끼기 위해 크게 숨을 들이켰다. 공기의 감촉은 서울에서 느끼던 것과 확실히 달랐고 맛도 훨씬 부드러운 듯했다. 혹시 ‘공기가 맛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가졌다.
100m 남짓 되는 북한강을 가로지르는 폰툰다리를 건너자마자 북한강변 위를 걷는 수상폰툰다리로 바로 연결된다. 한쪽은 산이고, 다른 한쪽은 강인 수상폰툰다리였다. 이젠 제대로 산소를 느낄 만했다. 신선한 공기맛도 나기 시작했다. 강가 근처 강물 속을 들여다보니 수많은 고기들이 노니는 모습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피래미서부터 팔뚝만 한 고기까지 유유히 헤엄쳤다. 꺽지, 누치, 붕어 등이 수두룩하다고 동행한 김순동 화천 문화관광해설사가 설명했다.
떠있는 다리 중간쯤 긴 호스 끝에서 물이 샘솟듯 나왔다. “걷는 사람들이 화천 산소길에 와서 산소물맛을 보고 가라고 산에서 약수를 직접 호스로 연결해 이용하도록 했다”고 김 해설사가 안내했다. 강가의 폰툰다리는 햇빛에 무방비였지만 때로는 산기슭의 큰나무들이 가지를 늘어뜨려 그늘을 드리우기도 했다.
- ▲ 김 해설사가 산소길 옆에 자라고 있는 나무잎 향기를 맡으며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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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남짓까지 떠 있는 다리는 계속됐다. 끝나는 지점은 바로 산길로 접어든다. 산길은 완전 숲으로 덮여 있다. 들어서자마자 산소 냄새가 확 나는 원시 숲속 같다. 오미자나무와 숫다래가 소군락을 이루고 있다. 숲해설사를 겸한 김순동씨는 “다래나무는 습한 곳에서 잘 자라며, 이곳은 바로 강 옆이어서 다래나무가 군락을 이루기 딱 좋은 기후나 토양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숲에는 각양각색의 초목, 관목, 교목 등이 자라고 있어, 방문객들의 눈을 바쁘게 했다. 호기심어린 눈으로 나무들을 살피고 있을 때 김 해설사가 물었다.
“장희빈이 무엇을 먹고 죽은 줄 아세요.”
“사약 먹고 죽었죠.”
“그 사약이 무슨 재료로 만든 줄 모르시죠. 바로 이 천남성의 뿌리에서 나오는 독으로 만든 사약입니다. 첫남성이 아니고 천남성입니다. 발음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천남성의 뿌리는 독성이 매우 강해 예로부터 사약을 만드는 데 많이 활용했어요.”
숲속·강변은 ‘산소 충만한 천혜의 보고’
- ▲ 폰툰다리 중간 지점에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호스로 연결해 걷는 사람들이 마실 수 있도록 했다. 여름에도 시원한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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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남성뿐만 아니라 개나물, 신선초, 애기똥풀, 두릅, 머루, 다래 등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여기저기 자라고 있고, 그들 나무 사이로 넝쿨이 이리저리 얽어매고 있다. 나무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가을엔 길을 걷다가 머루나 다래를 따먹는다고도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오디가 길에 떨어져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오디로 길이 붉게 물들어 있을 정도였다.
이젠 드디어 공기맛이 서서히 나기 시작했다. 우거진 숲에서 내뿜는 냄새와 강물이 분해돼서 수소는 날아가고 산소만 남은 듯, 산소가 피부에 와닿는 감촉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맛있는 공기맛이다.
길 중간중간 안내판에는 ‘위험, 머리 조심’이란 푯말이 몇 개 보인다. 그 중 하나는 ‘이 숲속은 원시림 상태 그대로 조성해 나무에 머리가 부딪칠 우려가 있으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