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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가지 황제의 식사 만한전석(滿漢全席)을 맛보다
베이징 메이웨이전 레스토랑의 황가 만한전석 상차림
베이징 메이웨이전 레스토랑의 황가 만한전석 상차림
전세계가 중국 경제에 주목하고 중국의 미래에 대해 한마디씩 하는 상황이지만 중국의 이미지는 아직 싸구려 수준에 머물러 있다.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는 바로 뭔가 부족하다, 뭔가 위험하다, 뭔가 싸다라는 의미로 통한다. 모두가 인정하겠지만 한국에서 말하는 외국산 농산물이란 사실상 한국산을 중국산과 구별하기 위해 만든 방편이다. 중국인 우주선이 달나라까지 가고, 무인 비행기를 만든다고 해도 ‘메이드 인 차이나’에 대한 불신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메이드 인 차이나’는 신발, 장난감, 전자제품만이 아니라 음식도 마찬가지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에서의 기준이기도 하지만 ‘메이드 인 차이나’의 음식은 아직 수준 미달이다. 아무리 맛있다 하더라도 화학조미료를 주로 하고 서비스, 장식, 청결도 같은 부분에서 엉망이기 때문이다.
아마 중국을 제외한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레스토랑은 중화요리점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미슐랭 가이드북에 올라선 레스토랑 가운데 별을 갖고 있는 중화요리점은 전세계에서 한 군데도 없다. 태국·인도 음식에서도 미슐랭의 별을 찾을 수 있지만 중국 음식은 기껏해야 싸고 많이 먹을 수 있는 범주 속에서나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메이드 인 차이나’ 음식에서도 예외는 있다. 그 어떤 나라도 넘볼 수 없는 최상의 영역을 구축해 눈길을 끄는 음식, 바로 만한전석(滿漢全席)이다. 중국말로 ‘만한췐시’인 만한전석은 간단히 말해 역대 청나라 황제들이 즐겨 먹던 대형 이벤트성 음식이다. 필자는 최근 베이징에 들어가기 전 두 가지 점을 염두에 뒀다. 소문으로만 듣던 만한전석의 정체가 과연 어떤 것인지, 과연 만한전석이 ‘메이드 인 차이나’를 둘러싼 부정적 편견을 깰 수 있을지 의문을 해소해 보고자 했다.
청나라 건륭제 때 시작된 궁중요리
낙타고기 요리
먼저 만한전석 음식을 얘기하기 전에 만한전석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자. 만한전석은 1735년 등극한 청나라 6대 황제인 건륭제(乾隆帝) 때부터 시작된 궁중요리다. 쉽게 말해 황제만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음식이다. 중국 역사상 건륭제는 그 어떤 문학가보다도 시를 많이 쓴 풍류객으로 알려져 있다. 음식에 관한 시도 다량으로 남긴, 미식가이기도 한 인물이다.
만한전석의 출발점은 건륭제가 현재의 장쑤성(江蘇省) 양저우(揚州)를 방문하면서 시작됐다. 신라 대학자 최치원이 머물렀던 양저우는 원래부터 국제무역항이자 소금산업으로 부를 축적한 곳이다. 장사꾼들의 대분분이 한족인 것은 물론이다. 양저우 방문에 앞서 현지의 한족 상인들은 황제를 위한 특별 음식을 준비한다. 주된 음식을 청의 지배민족인 만주족 음식으로 하면서 한족의 음식인 산해진미(山海珍味)를 추가하는 형태였다. 만한전석이라는 이름은 건륭제의 식사 타이틀이 만한전석이라고 적힌 데 따른 것이다.
당시 기록을 보면 식사는 전부 이틀간 5회에 걸쳐 이뤄진다. 1회부터 3회까지는 각각 10종류의 음식과 수프류가 제공된다. 산·바다·육지에서 나오는 동물류가 중심이다. 만주족은 채식이나 생선요리를 멀리하고 육식을 즐긴다. 4회째는 한족이 즐기는 만두탕 종류의 음식 20개가 등장한다. 주체는 만(滿)이고 한(漢)은 부속품이다. 만한전석(滿漢全席)이지, 한만전석(漢滿全席)이 아닌 것이다.
이후 5회 마지막에는 술이 20종류, 작은 접시의 음식이 20종류, 디저트로 과일과 씨앗이 각각 10종류씩 나온 것으로 기록돼 있다. 물론 식사 도중 시와 노래, 경극도 함께 즐긴다. 만주족 건륭제가 깊은 감동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이후 베이징으로 돌아간 건륭제는 스스로 만한전석의 후원자이자 열렬한 팬이 된다.
만주의 육류와 한족의 해산물 한자리에
불도장
건륭제 이후 만한전석은 황제의 권위와 힘을 상징하는 음식으로 정착한다.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제사·외교 예법이 배어 있는 ‘정치’로서의 기능을 하게 된다. 만한전석은 이름에서 보듯 원래 만주족과 한족 간의 통합을 위해 만들어졌다. 청의 중기로 들어서면서 민족을 넘어서 대민(對民) 정치의 일환으로도 활용된다. 주기적으로 100세 장수자 100명을 황실로 불러들여 3일간 100종류 이상의 음식을 밤낮으로 먹으면서 장수만세 이벤트를 되풀이하기도 했다. 이후 만한전석은 사연·존연·연연·위연이라는 네 개의 의식을 통해 궁중예법으로도 발달된다. 사연(祀宴)이란 청의 조상에 대한 기도의식, 존연(尊宴)이란 초대객들에 대한 존경과 인사, 연연(燕宴)이란 서로간의 우정을 확인하는 의식, 위연(圍宴)이란 서로가 술을 나누거나 음식을 나누면서 즐기는 의식을 말한다.
만한전석을 얘기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인물은 청 말기 황제를 뛰어넘는 권력을 50년이나 휘두른 서태후(西太后)다. 두 명의 황제를 마치 종 부리듯 하면서 중국 근대화를 막은 악녀로 소문난 인물이지만 음식에 관한한 그 어떤 권력자도 넘볼 수 없는 미식가가 바로 서태후였다.
만한전석은 서태후의 파워를 보여주는 황실 브랜드기도 하다. 원래 황제를 위한 음식이지만 서태후는 만한전석을 황제가 아닌 자신의 전용 이벤트로 만들었다. 오직 서태후만이 만한전석를 먹을 수 있었다. 식사 도중 황제와 황후는 옆에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서태후가 만주족의 성지쯤에 해당하는 봉천(지금의 선양)에 갈 때의 에피소드로 당시 만한전석을 위해 준비된 물품들을 살펴보자. ‘항상 사용할 수 있는 화로 50개를 실은 4개의 특별마차, 100여명의 요리사, 지금 당장 먹을 수 있는 100종류의 정식식사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재료, 디저트와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100종류의 음식을 위한 재료’.
이번에 필자가 만한전석을 직접 느끼기 위해 찾아간 곳은 현재 최고가의 만한전석을 준비한다는 베이징 건국문에 있는 국제무역센터(國貿) 내 메이웨이전(美味珍) 레스토랑이다. 전국에 4개의 체인점을 가진 메이웨이전은 원자바오 중국 총리를 비롯해 일본 총리들도 찾는 고급 레스토랑이다. 원래 서방의 최고급 레스토랑은 와인가격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면 잘 알 수 있지만 중국의 경우는 마오타이주다. 메이웨이전의 메뉴 속에서 가장 비싼 마오타이주는 50년산으로 가격은 약 450만원 정도 한다.
요즘 ‘만한전석’은 미니버전
만한전석을 주문하려고 하자 급에 따라 다섯 종류의 다른 메뉴가 등장했다. 최하 50만원에서부터 최고 100만원 정도로 나눠져 있었다. 세금을 포함할 경우 가격이 15% 늘어난다. 보통 2~3인분으로 만들어진 만한전석은 청의 황제가 먹던 음식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간단히 말해 원래의 만한전석을 압축해서 만든 미니버전이다. 2~3일 동안 100종류 이상의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특별주문을 필요로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함께 식사를 즐길 사람들을 수십 명 초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서태후는 혼자 즐겼다고 하지만 원래 만한전석은 수십, 수백 명이 함께 조금씩 오랫동안 즐기는 요리다. 메이웨이전은 황제의 품위를 느낄 수 있는 만한전석의 정수를 크게 13개 종류로 마련해 놓고 있다. 황가정급메이웨이전(皇家頂級美味珍)으로 명명된 만한전석의 최고급 코스의 구체적인 메뉴는 다음과 같다.
식사 순서
1. 차
2. 4개 접시의 찬 채소류
3. 접시에 담긴 4개의 따뜻한 딤섬류
4. 4개의 접시에 담긴 견과류
5. 황제가 먹는 불도장(佛跳墻)
6. 4개의 다른 종류의 왕새우
7. 어린 새끼돼지 고기
8. 낙타 등(허리) 부분 고기
9. 은행과 닭을 조린 요리
10. XO 소스를 섞은 조개
11. 해산물(Sea Food) 모음
12. 하와이 땅콩과 케일 모음
13. 요구르트와 과일
만한전석은 원래 양저우의 한족이 만주족인 건륭제를 초대하면서 시작됐지만 청의 황실에 들어가서부터는 만주족이 한족을 대접하는 식으로 활용된다. 따라서 보통 만한전석를 시작할 때 초대손님인 한족의 음식을 먼저 제공한다. 야채류와 해산물은 한족의 음식이다. 이에 반해 육식동물은 만주족의 음식이다. 원래 만한전석은 만주족이 좋아하는 기린·낙타·호랑이·사슴·양·공작·학 같은 것을 메인으로 삼는다고 한다. 진짜 만한전석를 즐기려면 특별한 준비와 거금이 필요한 음식들이지만 한족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는 메뉴이다. 현재 베이징 내 대부분의 만한전석은 한족 중심 메뉴로 만들어져 있다.
만한전석에서 가장 핵심은 바로 불도장에 있다. 메뉴판에는 중간에 있어 이상했지만 예상했던 대로 요리 마지막 부분인 과일 디저트가 나오기 전에 등장했다. 최소한 수주일, 한 달 이상 불에 달이는 탕요리인 불도장은 최근 김정일의 중국 방문 때도 특별히 제공된 음식이다. 당시 산삼과 송로버섯이 들어가 있어 화제가 됐지만 원래 청의 황제들이 즐긴 불도장에는 특별한 재료가 몇 개 더 들어간다. 백두산의 산삼과 더불어 호랑이와 낙타의 성기, 학의 목, 기린의 성대 등이 이 탕 속에 재료로 들어간다.
메이웨이전의 불도장에서는 산삼이나 호랑이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지만, 깊은 한약재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은행 맛과 함께 정성과 시간이 들어간 깊은 맛이다. 천연 조미료 맛과는 거리가 먼 원래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 탕이다.
강한 향료에 고기맛 구분 힘들어
전체적으로 만한전석의 맛은 메인의 육식을 중심으로 할 때 각종 향료로 뒤덮인 강한 음식이란 느낌이 들었다. 특히 낙타 요리의 경우, 육질이 순하고 맛은 있지만 진짜 낙타의 맛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웠다. 호랑이 고기를 먹어봤다는 한 중국인은 호랑이·낙타·곰고기 맛은 육질의 차이만 있을 뿐 전부 비슷하다고 알려줬다. 향료와 조미료 맛인 것이다. 만주족에는 익숙한 맛이지만 한족이나 한국인처럼 농경민족에는 익숙하지 않는 맛이 야생동물 고기이다. 부분적으로 한족의 음식인 만두, 해산물 수프가 나오기는 하지만 한국인 입장에서는 채소를 더 그리워하게 만드는 요리가 바로 만한전석이다.
메이웨이전에서의 만한전석에서는 만주족 특유의 의상을 입은 종업원들의 서비스를 만날 수 있다. 황제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다른 중국 레스토랑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정교한 서비스이다. 청의 만주족은 한족과 달리 술이 강하다. 황제 같은 기분으로, 50년산 마오타이주를 시키고 싶었지만, 함께 간 중국인이 웃으면서 한마디 조언을 던졌다. “그것이 진짜라고 믿습니까? 싼 게 오히려 진짜라고 보면 됩니다.” 100만원이 넘는 만한전석을 즐기면서 시킨 술은 2만원짜리 백주였다. 황제에게는 안 맞지만, 가장 싸고 빨리 취할 수 있는 술이다.
만한전석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은 ‘메이드 인 차이나’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싸구려 음식이 아니라 품위와 하모니를 느낄 수 있는 고급 요리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중국인은 먹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다. 중국인에게 음식은 바로 종교와도 같다. 중화사상에 젖은 중국인이 ‘중국이야말로 전세계의 중심’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만한전석를 내세운다면 필자는 100% 찬성할 수밖에 없다.
만한전석과 중국사
중국 경제 성장과 함께 100년 만에 베이징서 화려한 부활
만한전석이 과거의 명성을 회복한 것은 1980년대부터다. 무대는 홍콩, 시식가는 일본인이었다. 1980년대 홍콩의 레스토랑은 전세계 경제를 압도하던 일본 비즈니스맨들을 끌어들이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금으로 된 스시와, 만주 관동군이 즐기던 나체여성 스시, 즉 뇨타이모리(女盛り) 스시가 홍콩 레스토랑에 등장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만한전석의 경우 당시 1인당 1000달러를 넘어서는 코스도 곳곳에서 생겨났다.
만한전석은 이후 1990년대 일본 경제의 하락과 함께 잠시 주춤하다가 21세기 들어 화려하게 부활한다. 장소는 베이징, 시식가는 신 중국인이다. 홍콩의 부가 중국으로 넘어오고 전세계 경제가 중국으로 집중하면서 돈 많은 중국인들이 황제의 음식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청 황조 몰락과 함께 사라진 만한전석이 원산지인 베이징에 다시 나타나기까지 100여년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베이징에서 선을 보인 만한전석은 이후 상하이, 광둥 지방 등으로 확산된다.
현재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 전체의 만한전석은 나름대로의 요리법에 의해 만들어질 뿐, 청 황제에게 바쳤던 정통 만한전석을 재현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고 보면 된다. 나름대로 정통성을 주장하지만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럴 듯한 ‘중국식 뻥’ 정도로 받아들이면 된다.
정통 만한전석의 비법이 사라진 이유는 청 황조 몰락과 함께 황제를 보좌하던 요리사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에서 보듯 부르봉 왕조의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사라지면서 왕가를 지탱하던 요리사, 재단사, 장식가들은 거리로 내던져진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등장하면서 이들은 곧바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을 궁핍에서 해방시켜준 주인공의 정체이다. 이들을 거리로 내쫓았던 혁명주도세력 중에서 부자로 변신한 사람들, 즉 부르주아지들이 구세주였다. 세금을 착취하던 왕을 처형했던 부르주아지들은 밤이 되면 자신이 죽인 왕을 흉내내기에 정신이 없었다. 맛있는 요리, 왕의 품위를 재현하는 옷과 가방, 왕비가 사랑하던 시계와 목걸이….
그러나 청의 경우 프랑스와 다르다. 청 황조가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로 옮겨가고 이후 다시 중국에 넘어가면서 설 땅을 완전히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청의 황제를 지탱하던 사람들은 ‘민족을 배신하고 공산당에 반대하는 반동분자’로 낙인 찍힌 뒤 역사의 현장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거리로 나선 이들을 먹여살릴 신흥부자들도 없었고 공산주의 교육을 받은 자신의 자식들로부터도 멸시를 받아야만 했다.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이나 청의 황가(皇家)과 연이 있던 사람들도 10여년간 계속된 문화대혁명을 통해 완전히 말살됐다. 중국을 제외한 전세계 어떤 군주들도 경험한 적 없는 음식의 대향연 만한전석도 역사 속에 사라지게 된다. 세우기는 어렵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소문으로만 듣던 만한전석이 홍콩에서 올라와 베이징의 고급 레스토랑에 등장했다는 것은 중국이 잃어버린 근현대사를 다시 찾아내 똑바로 세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만한전석과 皇格
‘황제의 음식’ 먹으려면 이 정도 格은 지켜야…
베이징 메이웨이전 레스토랑에 있는 청나라 황제의 옥좌와 의복
황제로서의 기분을 내는 것은 좋지만, 만한전석을 즐길 만한 황격을 어느 정도 갖추는 것이, 만한전석을 생활화한 역대 중국 황제들과 좋은 음식을 만들어낸 백성에 대한 예의다. 만한전석에 대한 황격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음식이 오면 한 젓가락 정도 접시에 덜어서 조금씩 먹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조금씩 먹는 이유는 앞으로 닥칠 요리가 100가지를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맛이 있더라도 뒤에 올 ‘더 맛있는 요리’를 생각해서 한 젓가락씩 먹는 것이 현명하다. 만한전석의 마지막 코스인 3~4종류의 황제 디저트를 눈앞에 두고도 먹지 못하는, 비계획적인 황격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황격의 둘째 조건은 천천히 먹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음 요리가 나오는 시간을 황제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좋다. 식당 종업원이 빨리 갖고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청의 황제들이 최소한 3일간에 걸쳐 만한전석을 즐긴 이유는 바로 ‘위(胃)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다. 위가 적당히 비어 있고, 튼튼해야 많은 음식을 즐길 수 있다.
황격의 셋째 조건은 동물애호가가 될 필요가 없다는 점에 있다. 곰, 공작, 낙타, 기린, 학 심지어 호랑이까지 등장하는 메뉴 속의 동물 리스트에 무신경해야만 한다. 황격은 공작다리 고기를 먹으면서 공작의 깃털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맛있다, 맛없다의 기준으로 공작다리를 먹을 뿐이다. 동물을 사랑하기에 동물을 먹을 뿐이다, 라는 것이 바로 황심(皇心)이다. 사랑하지 않는 동물은 입에도 대지 않는다는 것이 황격의 철칙이다. 날개 달린 것으로 비행기, 네 발 달린 것으로 책상을 제외한, 다리 달린 모든 것을 먹는 것이 중국인이다. 15년 전 중국 청두(成都)의 판다보호공원에 갔을 때 확인한 것이지만, 1960년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 남부에서는 판다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만한전석은 중국인의 요리인 동시에 황제가 즐긴 음식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참고 사항 하나. 만한전석 예의에 맞는 황격을 120% 발휘했다고 하더라도, 최종 단계에서 만한전석과 무관한 백성의 본성이 드러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만 한다. “아까 먹다가 남은 만한전석 요리를 전부 싸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