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함 침몰 전날 진해 앞 바다에서 여수에서 부산으로 가는 한일호가 아 함과 충돌로 침몰하여
시체 인양 작업을 하고 있든 대한민국의 유일한 구축함 DD91함은 아침에 긴급출동 명령을 받고
동해로 출동 했습니다. 부산 쯤갔을데 함장의 아나운싱이 나왔습니다.
56함이 적의 육상포에 침몰되고 있다는 내용이엿지요.
동해에 도착하니 이미 상황은 끝이나고 인양한 전우들의 시체만 인수하여 후갑판에의 차디찬
철판 바닦에 누위게 하고는 촛불대신 전구로 불을 밝여 주었든 옛 생각이 납니다.
일단 아래 내용은 연재한다고 해서 퍼왔습니다. 계속되는 데로 올리겟습니다
통한의 1967년 1월19일 56함 피격 침몰 아 수원단, 아 당포함-1
<뉴스앤뉴스에서 펌>
홍대일 당시 56함 신임장교 (현재 아키필 회장)
무심한 후배 해군들 '왜적 물리치전 배던가요'
[편집자주: 10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겠다는 연기가 솔솔 피어오르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친북좌파정권 10년에 우리의 안보태세는 많이 허물어졌다. 휴전선을 지키는 병사들조차 우리 主敵은 미국이라고 하는 판이다. 연평해전의 승리를 쉬쉬하고 서해교전 희생자를 내팽개치는 정권은 6.25가 통일전쟁이라고 정당성을 부여한다. 친북분자들이 맥아더를 저주하면서 동상을 끌어내리려 해도 정부가 방관하니 해병전우회가 나서서 지켜야 한다. 분노한 老兵들이 어쩌다 시청광장이나 서울역 앞에 모이지만 지나가는 젊은이들은 소 초상집에 온 말처럼 무감각하다.
지금 50대 중반 이상은 40년 전 동해상에서 어선들의 납북을 저지하기 위해 경비중이던 PCEC-56 당포함에 북한 인민군 지상 포대가 122mm포를 집중 포격, 교전이 벌어졌고 끝내 56함이 침몰됐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구경이 적은 3인치(76mm)포와 40mm, 20mm 기관포로만 무장한 당포함은 화력의 열세로 격침되고 말았다. 북한군은 영화 나바론의 요새 같은 水源端 동굴진지에서 250발을 쏘아댔다.
당포함은 승무원 39명이 전사하고 40명이 생환했다. 당시 신임 소위로 부직사관이던 홍대일 (주) 아키필 회장이 귀중한 체험기를 보내왔기에 12회에 나누어 내보낸다. 홍 회장은 61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군사관학교에 진학, 66년 소위로 임관됐으며 82년 해군 중령으로 예편했다. 군 생활 중 71년 서울공대 토목학과를 졸업한 홍 회장은 82년부터 98년 상무이사를 끝으로 퇴직할 때까지 대우건설에 재직했다.]
56함(당포함)의 마지막 전투를 기록한 흔적은 이 세상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가 동해상에서 사망한지도 벌써 40년이 훌쩍 지났지만 어떤 모습으로 사라졌는지 입을 다물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말 좀 해 주세요, 우리가 어떻게 싸우다 죽었는지를...” 젊디젊은 청년들이 조국을 위해 싸우다가 그렇게 목숨을 바쳤건만 40년 동안 어느 누구도 침묵만 지키고 있습니다.
이제 후배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당포함이 무엇하다 침몰했습니까?” “왜적을 물리친 배였던가요?”
생존한 승조원들은 이제 모두 60대 중반을 다 지났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떠나면 당포함 전투 이야기는 영원히 사라지고 맙니다. 그래서 여기에 솜씨 없는 글을 적습니다. 그때 가장 젊었던 신임 소위가 겪었던, 극히 제한된 시각에서나마 한줄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은 심정에서, 역사의 기록이 되었으면 하고, 짧게 사실만을 기록했습니다.
Station Bill에 따라 각자가 맡은 분야에서 전투를 했기 때문에 겪었던 내용이 모두 다를 수 있습니다. 이제 다 쓰고 나니까 저의 마음이 한결 후련 해집니다. 이렇게나마 남길 수 있어 다행입니다. 아마 이것이 저의 사명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967년 1월 19일 정오 서둘러 점심식사를 마치고 함교로 올라가서 당직교대를 끝낸 새까만 신임장교 부직사관 홍대일 쏘위는 사기가 충천해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갑판위로 넘쳐 올라온 바닷물이 꽁꽁 얼어붙는 매섭게 추운 날씨였지만 이날따라 날씨가 몹시도 맑고 포근해서 마치 잔잔한 봄 날씨를 연상케 한다.
그래서인지 명태 잡이 어선들도 명태 떼를 따라 한사코 어로저지선을 넘어 북상하는 모험을 감행하고 있다. 조금만 더 북쪽으로 올라가서 낚시를 내리기만 하면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잡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어부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북쪽으로 북쪽으로 올라가려고 기를 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한번만 어로저지선을 넘어가 고기를 잡아 오면 한해 살림거리가 생길 정도라고 했으니 이해가 간다.
그래서 동해바다 넓은 경비구역을 동서로 오가며 출동기간 내내 살을 에는 듯한 매서운 북녘 바다 위에서 칼바람을 맞아 가며 월선하는 어선들을 넘어가지 못하도록 남하시키는 일에 56함(당포함) 장병들은 무척 지쳐 있다.
해군 함대 제1전단 소속 당포함(56함)은 동해경비임무를 띠고 1966년 12월 28일 09시에 진해항을 떠나 동해북방경계선에서 명태 잡이 어로보호 작전을 수행하던 중 수산청장의 요청에 의거, 1967년 1월 31일까지 작전 연장근무를 해야만 했다.
추측컨대 그해에는 특별히 다른 때보다 그 해역에서 늦게까지 명태 잡이가 잘 되었기 때문에 어로보호 작전을 연장했을 것으로 판단이 된다.
아무튼 이 함정의 통신관 겸 갑판사관인 애송이 홍 소위에게는 이런 일들은 별로 문제가 되지 못했다. 사관학교를 갓 졸업하고 임관된 그에게는 함정이 곧 집이요 국가요, 세상의 전부였기에 그에게는 연장근무를 한다고 해서 별 관심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첫 출동이었던 지난 봄 서해 연평도 앞바다 조기잡이 어로보호 작전 때에도 그랬듯이 오히려 출동 나와서 해상에서 좀 더 오래 머물면서 근무하는 것이 이제부터 전개될 해군 장교로서의 참모습을 쌓아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이렇게 저지선에서 어선들과의 싸움은 매일같이 반복된다. 언제나 새벽녘 3시경쯤 레이다 스코프(Radar-scope)를 들여다보면 멀리 남쪽 묵호항이나 삼척항에서부터 수없이 많은 하얀 점들이 출발한다. 마치 한겨울 싸락눈 오듯이 많은 점들로 뒤 덥혀 있는 느낌이다.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눈앞이 아득해 진다. 이들과 또 하루 종일 싸움질 할 것을 생각하면 지레 겁을 먹게 된다. 이들이 북쪽 작업현장까지 도착하면 대략 오전 10시경. 이때부터 어선들과의 실랑이는 시작된다.
명태떼 좇는 어선들 위험 무릅쓰고 북상 아 수원단, 아 당포함-2
홍대일 당시 56함 신임장교 (현재 아키필 회장)
실탄위협사격에도 막무가내 하루종일 숨박꼭질
명태를 잡는 방법은 이렇다. 긴 낚싯줄 하나에 띄엄띄엄 낚시를 달고 아래 끝에는 추를 달아 가라앉히고 맨 위 끝부분에는 부표를 달아서 낚시를 띄워 놓는다. 이런 모양의 무수히 많은 낚시를 목표해역에 내려놓고 일단 귀항한다. 다음날 아침에 와서 낚싯줄을 걷어 올리기만 하면 된다. 낚싯줄에 명태가 주렁주렁 매달려 올라온다. 그리고 미리 준비 해온 다른 낚싯줄을 드리워 놓고는 모항으로 줄행랑을 놓는다.
어선이라고 해야 고작 작은 목선에 발동기를 얹고 스크류(screw)를 돌려 항진하는 그런 실정의 배들이다. 그것도 능력이 없어서 이런 배 한척에 여러 개의 작은 목선들을 로프로 줄줄이 엮어서 끌고 먼 거리를 움직이는 형편이다.
동해 어로저지선상에는 세척의 함정이 구역을 분할하여 출동기간 내내 해당 해역을 동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경비업무를 수행한다. 바다 위에 표시가 되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용케도 맡은 구역을 이탈하지 아니하고 열심히 근무한다. 이들이 감당하는 임무란 이곳으로 올라오는 우리 어선들이 어로저지선을 넘어 북쪽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조금만 더 위로 올라가서 낚시를 드리우면 올라간 만큼 더 많이 잡을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은 한사코 북쪽으로 더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쓴다. 가끔 월선 하는 배가 북한 경비정들에 의해 북으로 납치되어 가는 경우가 있어서 어선들을 보호해 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민들이 안전하게 조업을 할 수 있도록 작업해역을 보장해 주는 임무이기도 하다.
꼭두새벽부터 묵호, 삼척 등지에서 출항하여 긴 항해를 마치고 어로저지선에 도착한 어선들은 일단 우리 해군 경비정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슬슬 월선하기 시작한다. 군함들은 경계선상에서 동서로 일정구역을 왕복하면서 경비를 하기 때문에 반대쪽으로 멀리 가 있을 동안, 어선들은 이틈을 이용해서 순식간에 북쪽으로 올라가 버린다.
이들을 좇아가서 못 올라가도록 저지하노라면 이제는 반대쪽에 있는 어선들이 또 올라가 버린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하기를 되풀이 하다가 보면 어선들의 위치는 상당히 북쪽으로 올라가 있다. 이때쯤 되면 군함에서는 스피커를 통해서 일단 경고방송을 시작한다. “내려가세요. 북쪽으로 너무 많이 올라 와 있습니다.” 동서로 다니면서 일단 젊잖게 경고한다. 하지만 어선들은 들은 척도 않고 지그재그 걸음으로 계속 올라간다.
경비근무 장병들의 기분이 조금씩 언짢아 지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경적을 울려 준다. “부우웅 ~ 뿌웅~ 뿌웅 ~”하고 뱃고동을 3회씩 몇 번 반복해서 울리지만 들은 척도 않는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날이면 날마다 이렇게 추운 겨울날, 바다 위에서 어선들과 밤잠을 설치며 싸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노라면 뜨거운 피가 끓는 젊은 군인들의 가슴은 조금씩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드디어는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소총으로 허공을 향해 공포탄을 쏘아댄다. 초기에는 이런 신호가 다소 먹혀 들어갔다. 총이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와 있는 군인들이 자기들에게 직접 총을 쏘지 않는 다는 것쯤은 이내 알아차리고는 경고사격 정도는 무시해 버린다. 군인들을 비웃기나 하듯이 지그재그로 계속 올라간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진다. 너무 북쪽으로 올라가 있기 때문에 언제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북한의 경비정들이 가끔 장전항(북한의 가장 남측에 위치한 동해안 천연 군항) 외항에 대기하면서 어선 납치기도를 시도한다. 근래에 가끔씩 우리 어선들을 이북으로 납치해 간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하는 수 없다. 경고 사격이 아니라 위협사격이 실시된다. 공포탄이 아니라 실탄을 쏘는 것이다. 물론 어선을 향해 직접 사격할 수는 없고 북상하는 배의 전방 수십 미터 앞을 겨냥해서 쏜다.
눈치 빠른 우리 어선들도 실탄사격을 하는 데에는 겁을 먹는다. 공포탄과 실탄과의 차이를 구별할 줄 아는 현명한 어부들이다. 이제는 그물을 뒤로 하고 내려가는 척이라도 한다. 물론 이들도 군함이 멀리 이동하고 없으면 역시 또 북쪽으로 올라가 버린다. 하지만 이번에도 거들떠보지 않고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북진하는 어선들이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이런 광경을 본 젊은 군인들에게 이제는 용서가 없다. 누구를 위한 싸움인가가 의심스러워 지기 시작한다. 물대포를 쏘아대기 시작한다. 고압력 펌프(P-500 이상)를 사용해서 어선들을 향해 직접 바닷물을 뿌리는 것이다. 살을 에는 듯한 바다 칼바람에 물을 뒤집어쓰면 그야말로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아픔이 동반된다. 고압력 펌프의 엔진소리도 요란하다. 귀를 찢는 듯한 고주파음 소리에 물까지 뒤집어쓰도록 복합 작전을 동원하는 것이다.
그토록 끈질기던 어부들도 물대포에는 견디기 어려운 모양이다. 그제야 주섬주섬 그물을 챙기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배를 돌려 내려가기 시작한다. 최후의 수단으로 동원되는 처방은 그것뿐이다. 물대포의 위력은 대단하다.
바닷물을 뒤집어 쓴 어부들의 남하하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젊은 군인들의 눈에는 후련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어딘가 마음 한 구석에서는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난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추운 북녘 땅 바다위에서 생선 한 마리 더 잡아 올리려고 밤잠을 설쳐 가면서까지 멀리 와서, 젊은 장병들에게 이토록 수모를 당하는 고생을 해야만 한단 말인가? 분명히 저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진종일 싸우며 어부들을 원망했던 것들이 어느 듯 스르르 사라지고 오히려 미안한 생각마저 든다. (계속)
섬광, 포성과 함께 당포함 주변에 물기둥 아 수원단, 아 당포함-3
홍대일 당시 56함 신임장교 (현재 아키필 회장)
나바론요새 같은 수원단 해안절벽서 일제포격
복어 알을 먹고 죽었다는 뉴스를 가끔 신문지상을 통해서 읽지 않았던가? 얼마나 배가 고팠기에 먹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번연히 알면서도 먹을 수밖에 없는 가난의 현실이 불현듯 눈앞을 콱 가로 막아 버린다.
이렇게 어선들과 바다 위에서 싸움하노라면 어느 듯 긴긴 겨울밤을 지새운다. 잠시 눈을 붙였다가 아침에 다시 일어난다. 어선들과 이런 싸움을 계속하는 것이 이번 출동 경비함들의 일과인 것이다.
이날도 다른 동료들 보다 먼저 점심식사를 하고 함교(BRIDGE; 배의 지휘본부)로 올라와 당직교대를 마친 당직 요원들은 다소 여유 있게 근무에 임하고 있는 중이다.
이즈음 북한의 어선 납북사건 또는 포격기습이 빈번히 있던 터였다. 1월 19일 이날 오전에도 레이다 스코프 상에는 북괴 경비함 2척이 수원단 동북방 10마일 해상에 두 개의 점으로 나타나 있었다. 점의 크기로 보아 PBL 급임이 틀림없다.
오전 내내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던 그들 두 개의 점들이 오후 1시가 지났을 즈음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보고가 전탐실에서 올라오더니 어느 때 부터인가 20 노트의 전속력으로 급격히 남하한다고 긴박하게 날카로운 목소리로 함교 보이스 튜브(Voice Tube)를 통해 올라온다.
상황이 급박하다. 아주 위급한 사태임에 틀림없다. 함교의 당직사관 이석무 중위는 놀란 듯이 함장에게 사태를 보고한다. 함장은 CTU(기동분대 사령관)에게 지급으로 전문을 보내어 사태를 보고할 것과 동시에 함정 내 전 부서에 전투배치 지시를 하달한다. 이어 CTU에게 엄호지원 요청전문을 타전지시 한다.
(수원단: 북한 땅 고성 앞바다 부근 쪽으로 조금 돌출된 해안 절벽으로 된 지명을 말한다. 해금강이 바라다 보이는 경치가 좋은 곳이다. 북한은 모든 해안 절벽에 터널을 뚫고 그 안에 레일을 깔고 포대를 설치하였으며 필요시에는 포를 발사한 후 들어가 숨어버리곤 하는 마치 영화 나바론의 장면을 연상케 하는 곳이다. 이곳을 포함한 북한 동해안쪽에는 이런 동굴포대가 빼곡히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보이스 튜브(Voice Tube): 2차대전 당시 건조된 함정들은 함교와 예하 각 부서간의 명령전달장치로서 이 보이스튜브를 사용한다. 원형 청동관을 함교와 해당부서 각 방으로 연결하여 음성을 직접 전달하는 통신수단이다)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어선들이 조업하는 곳까지 "ALL ENGINE AHEAD FULL"(“모든 엔진 전진사용”-전투함에는 4대의 엔진이 있어서 비상시에 전속력을 낼 수 있도록 모두 사용하라는 명령어) 명령을 하달한다.
어선들이 조업하는 해역에 긴급히 접근하여 사태의 황급함을 숨 넘어 가듯 외쳐 준다. 부산하게 남하조치를 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왜냐하면 현 위치가 북한 해안포 사정거리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함장과 당직사관 간에는 자동적으로 교감이 되어 있는 것처럼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막힘없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 마치 물 흐르듯 순조롭다. 평상시의 훈련 결과임이 드러난 것이다. 이렇게 긴박함이 얼마쯤 흘렀을까?
이때 갑자기 수원단 북한 해안 절벽에서 불빛들이 번쩍인다. 대낮인데도 너무나 선명하게 비친다. 잠시 후 요란한 폭음이 들리며 물기둥들이 당포함 주변에서 치솟는다. 북한 해안포대에서 가해오는 것임을 직시한 당직사관 이 중위는 경악한다. 애송이 부직사관 홍 쏘위는 경험이 없는 터라 아직 사태파악을 못하고 있다.
다소 머뭇거리는 것 같더니 이내 여기저기에서 불빛이 번쩍거린다. 길쭉한 적 해안 절벽 여러 곳에서 번쩍이는가 싶더니 사방에서 물기둥이 치솟고 천지가 진동하는 것 같다. 순간 함교의 상황은 아주 긴박하게 돌아간다. 기관부 장교들을 제외한 전 장교가 함교에 올라와 있다. 함장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는 특유의 침착성을 아직 잃지 않고 있다. 장교들은 직능표(Station Bill)에 따라 자기 위치를 찾았고 당직사관 이중위도 포술장으로서의 위치로 돌아갔다.
북괴의 포격이 단발로 그치는가 여겼더니 계속해서 날아오고 있다. 현실이 실감나지 않는다. 가슴이 저며 들고 숨이 막히는 것 같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함교 주위와 지붕은 기름먹인 캔버스로 둘러 처져 있다. 대포 소리가 날 때마다 사람들이 그 쪽으로 얼굴을 피하곤 한다. 우선 눈에 보이지 않으면 안전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사람의 본능인가? 눈 가리고 아옹 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함장이 입을 열고 다시 명령을 내리기 시작한다. 함장은 함정 안에서 왕이다. 아니 절대자이다. 그렇게 배웠다. 그래서 함장의 좌석(Captain Seat)에는 어느 누구도 앉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사령관도 참모총장도 그 자리에는 않지 않는다. 함정이 해외로 나가면 그것은 국가를 대표하는 영토이고 함장은 국가를 대표하는 대리대사이다. 즉 대통령을 대신하는 사람이다. 전시에는 함장에게 절대복종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군법회의에 회부되고 위급 시 곧바로 처형될 수도 있다. 그의 명령은 즉시 받아서 즉각 예하 각부서로 전해져야한다. 긴박한 상황에 보이스 칸(Voice can)을 잡는 장교가 없어서 소위가 잡았다. (계속)
포 묵사발, 갑판 참상은 아비규환의 지옥 아 수원단, 아 당포함-4
홍대일 당시 56함 신임장교 (현재 아키필 회장)
적의 사거리 벗어나려 지그재그로 필사적 항해
함장의 명을 받아 배는 즉시 해안으로부터 반대편 방향으로 선회되고 우측 좌측 엔진을 교호로 쓰며 전 속력으로 사각과 사거리로부터 벗어나려는 맹렬한 시도가 이루어진다. 함장은 번갈아 가며 포술장 이석무 중위에게도 바쁘게 함포사격 지시를 내리고 명령은 각 포대에 숨 가쁘게 전달된다. 와중에 연막탄 발사 지시도 들려온다.
적의 해안포 사격은 치열하게 빗발치듯 계속되고 있고 온 천지는 포성과 포연과 물기둥으로 휩싸여 있어 완전한 전장터 그대로다. 적 해안 여러 곳에서 포탄이 날아들고 있는 것 같다. 동시 다발적 집중 사격이다.
당포함도 응사를 계속 한다. 적 해안을 향해 쏘아 댄다. 바위절벽을 향해 그냥 응사할 수밖에 없다. 마치 바위에 계란 던지는 격이지만...하지만 응사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41포 연막탄 쏴” “43포 연막탄 쏴” 드디어는 포술장의 “포탄 있는 대로 다 쏴”라는 명령이 떨어지기도 한다. 정말 숨 막히게 다급함을 말해 주고 있다.
잠시 후 후부 타기실(자동차의 핸들처럼 배의 방향 인도 장치가 있는 곳)이 포에 맞고 작동 되지 않기 때문에 수동으로 조작하겠다는 보고가 다급히 올라온다. 순간 함장의 기지가 발동되기 시작한다.
“좌현 엔진 어헤드 풀, 우현엔진 백 풀”(Left Engine Ahead Full, Right Engine Back Full).
함장의 다급한 명령이다. 소위는 보이스 칸을 그대로 전해 내린다. 함교 바로 아래는 조타실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든 간에 적의 사정거리 밖으로 멀리 벗어나 놓고 보자는 번뜩이는 조함술임을 직감할 수 있다.
곧이어 후부 기관실이 침수되고 있다는 보고가 발악하듯 올라온다. 이어 함정의 통신이 두절되었다고 짧게 절규해 온다. CIC(전탐실)실이 기능마비 되었다고 다급하게 전해온다. 그 순간 이번엔 함포요원 전영일 하사가 숨 가쁘게 올라와서 다급히 함장에게 보고한다.
“함장님 43포가 묵싸발 됐습니다.”
이것이 그의 직설적 표현이다. 그런 보고를 하고 내려간 후, 아무도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했다. 이번엔 전부기관실 마저도 침수되고 있다는 기관장 최팔규 대위의 숨가쁜 상황보고가 올라온다
보고를 받던 함장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진다. 형언할 수 없는 그의 심정을 얼굴에서 읽을 수 있다. 이윽고 함장으로부터 홍 소위에게 기관실로 내려가서 침수방지 보수작업을 하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함정 조직직능표상에도 분명히 보수업무를 담당하는 보수장교가 보직되어 있고 필요시에는 기관장교 모두가 이 업무를 담당하도록 업무분담이 되어 있는데, 구태여 내가 내려 갈 필요가 있겠는가?” 다소 못마땅한 기분도 들었지만 절대 절명의 함장지시였기에 기관실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
함교를 떠나 함장실 앞 내부 중앙통로를 지나서 작전갑판으로 내려가는 계단 부근은 3인치 함포를 발사하면서 생긴 포연으로 자욱해 있다. 어두워서 계단도 잘 보이지 않는다. 겨우 더듬어 가면서 중앙 통로 계단을 내려가든 중 바깥 상황이 궁금했다. 중갑판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나섰더니 눈에 들어오는 갑판의 상황은 예상했던 것처럼 참상 그대로였다.
이미 대원들은 포탄을 피해 다소 안전한 사각지대로 피신해서 여기저기에 모여 있고, 갑판 위에는 집채만한 레이다 안테나가 떨어져 나뒹굴고 있다. 포탄이 떨어진 갑판 바닥에는 커다란 구멍 몇 개가 뚫려 있다. 그토록 두꺼운 철판바닥이 흉물스럽게 찢어지며 뚫려 있는 것이다. 여기저기에서는 불이 붙어 있고, 마닐라 로프로 만든 방현재(Fender)도 불이 붙어 타고 있다. 그들을 묶어 놓은 로프를 풀고 바다 속으로 쳐 넣었다. 대원들이 불타는 모습을 보면 겁을 먹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
소위는 함장의 명령을 수행해야 한다. 그는 다시금 기관실로 들어가는 해치(hatch)를 열고 내려가려는 순간 기관장 최 대위를 비롯한 기관실 요원 일행들이 이미 기관실을 포기하고 탈출해 나와서 나를 못 들어가도록 막는다. 통금이다.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다. 그들은 함장의 명령이라고 했는데도 막무가내다.
소위는 하는 수 없이 기관실 보수작업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들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어 볼 필요도 없다. 이쯤 되면 그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아차려야 한다. 훗날 생존자들로부터 들은 이야기 이지만 후부기관실 쪽으로부터 밀어 닥치는 물결에 쓸려 넘어지고 떠 밀려 묻히는 사람도 있었고, 천정에 있는 파이프를 위로 붙잡으면서 탈출해 나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다시 갑판 쪽으로 나와서 중갑판 중앙을 지나면서 주변을 보니까, 떨어져 있는 레이다 안테나, 구명의(life jacket)를 보관하는 케비넷의 문들이 열려있는 등 사방이 너절하다. 다시 후미 갑판으로 내려가는 계단 쪽으로 가면서 보니까, 조금 전 함교에서 전영일 하사가 보고 했던 대로 43포의 포신이 엿가락처럼 휘어져 내려 앉아 있다. 후미갑판으로는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계속)
앉아 있는 장교, 그는 죽었음에 틀림없다 아 수원단, 아 당포함-5
홍대일 당시 56함 신임장교 (현재 아키필 회장)
정지한 배 기울자 함장이 끝내 퇴함 준비 명령
북괴의 해안포 사격은 계속되고 있다. 뱃전을 보니까 배가 이미 오른 쪽으로 기울어 져 있다. 함교의 지휘본부로 부터의 소식은 두절된 상태다. 교신도 되지 않는다. 통신관은 통신실을 살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작전통신 업무는 작전관이 하는 것으로 미뤄 두었다. 지금 상황은 갑판사관으로서의 임무가 더욱 시급하다.
전시에 두 마리 토끼를 좇을 수는 없다. 배가 어디로 가고 있는 지도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임무란 무엇이란 말인가?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장교들은 무엇을 하고 있으며 또한 안전한가? 순간 외로움이 엄습한다.
함장으로부터 퇴함 준비 지시가 내렸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우리 함정의 함포 소리와 적군의 해안포 소리...전장터에서의 소리는 너무 시끄럽고 요란해서 함장의 퇴함 명령이 하달되었는지, 어나운싱하는 스피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방송기능도 마비되었을 것이라고 짐작 했다.
갑판사관 홍 소위에게는 퇴함 시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함장의 지시에 따라 단정을 내려야 하고, 구명대(life float)도 내려야 한다. 승조원들이 무사히 탈출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해 주어야 한다. 퇴함준비훈련은 평시에도 자주 연습이 되어 있는 상태다.
갑판장 장태식 상사에게 퇴함을 위한 단정 하강 작업을 지시하였다. 그는 이미 준비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단정요원 몇 사람을 배치하고 자신은 벌써 단정 위에 서서 수기신호로 사인을 보내고 있다. 작업지시는 깃발을 든 손을 사용하여 팔 동작을 보고 작업을 수행하도록 훈련을 한다. 하지만 그는 맨 손으로 신호를 한다. 몸집이 6척거구인 그였지만 어느 틈엔가 높은 그곳까지 올라가서 다급한 가운데도 능숙하게 신호를 보낸다.
단정이 들려 서서히 올려지고 있다. 바로 그 순간이다. 요란한 포 소리와 함께 뱃전 바로 옆 여기저기에서 물기둥들이 하늘로 치솟는다. 다시 포탄을 퍼 붓는 것이다. 아무리 깡이 좋기로 소문난 그였지만 더 이상 여기에서 버틸 수는 없었다. 놀란 그는 단정 하강 작업을 포기하고 몸부터 피신했다.
잠시 주춤하던 포격이 다시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장전 되어 있던 포탄을 모두 소모하고 다시 재장전 해 오느라고 그동안 소강상태였던가 보다. 소위도 몸을 사관식당 옆으로 피신했다. 그 순간이후 한 번도 갑판장을 보지 못했다.
이번엔 좌현 측 갑판 쪽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 그 순간 당포함은 동북방향으로 향한 채 정지한 상태였다. 홍 소위가 함교에 있을 당시, 함장은 적 해안포로부터 멀리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조함을 했었는데 마지막 순간 배가 멎은 방향이 그렇게 되어있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 상태에서 적 해안으로부터 날아 온 포탄들은 함정의 좌측을 강타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요원들이 얼마나 손상을 입고 다쳤는지 알아볼 수도 없다.
퇴함용 구명대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번뜩인다. 당포함에는 좌 우현에 각각 2대씩 모두 4대의 구명대가 배치되어 있다. 하나에 25명씩 모두 100여명이 승선할 수 있는, 밑바닥이 망으로 된 보트라고 쉽게 생각하면 된다. 배가 재난을 당해 침몰하게 되면 수압에 의해 자동으로 잠금 장치가 풀려져 바다 위에 뜨게 되어있다. 평시에는 유실방지를 위해 철사로 단단히 묶어 두었다가 훈련할 때에만 잠시 풀어 주기도 한다. 구명대를 내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혼자 위로 올라가서 묶어 놓은 철사를 풀어 놓기만 하면 필요시에 작동을 하게 된다.
좌현 측에서는 검은 연기가 시꺼멓게 솟아오르고 있다. 연기가 함정을 뒤덮는다. 배의 우현 쪽은 이미 상당히 기울고 있다. 작전갑판에서 내려다보이는 해수면이 그리 깊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우현 함수 쪽 구명대 하강작업을 위해 황급히 달려가는 홍소위의 한쪽 다리를 누군가가 움켜잡고 놓지를 않는다. 양쪽 다리가 잘려나간 기상장 심양무 하사가 그의 발을 움켜잡고 늘어 진 것이다.
그가 요구하려는 의도가 무엇인지는 이심전심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의 두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풀어져 있었다. 두 사람 간에 서로 말은 없었지만, 그를 포옹하고 등을 두들겨 주며 안심시켜 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의 두 다리는 무릎 아래 부분이 잘려 나간 상태였으나 병원에서 치료도중에 점점 썩어 들어가서 무릎 위까지 절단해야만 했다. 지금 그는 두 다리가 없어진 상태로 살아 있다.
함수 갑판을 둘러본 현장의 참상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아비규환이다. 해안으로부터 반대 측 우현갑판은 적 해안포의 사격으로부터 다소 안전지대였다. 적해안쪽 벽은 사관식당으로 가려졌고 위쪽은 작전 갑판으로 덮였기 때문이다.
수 십 명이 그곳에 피신해 있다. 머리를 싸 메고 있는 사람,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사람, 정신을 잃고 쭈그리고 앉아 있는 장교...장포장 이상호 상사의 머리는 흰 런닝샤츠를 찢어 묶었지만 벌겋게 피로 젖어 있었고, 그런 가운데에도 그는 무언가 열심히 손짓을 하며 표현을 하고 있었다.
작전관 박태만 중위는 그 바쁜 상황속인데도 벽에 기댄 채로 쪼그리고 앉아 있다. 장교가 이런 상황에 저렇게 말없이 앉아 있다는 것은 죽어 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파편을 맞고 이미 죽어 있다는 느낌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계속)
연기로 캄캄해진 가운데 구명대 하강작업 아 수원단, 아 당포함-6
홍대일 당시 56함 신임장교 (현재 아키필 회장)
접근하는 동료 53함 향해 빨리 와달라고 고함
이들 사이를 조금 지나서 드디어 함정 오른쪽 측면으로 기어 올라가서 구명대 2대를 묶은 철사를 손쉽게 돌려 풀었다. 잠시 후 두 개의 구명대가 자중에 의해 스르르 미끄러져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 철버덩 하며 물속으로 쑤욱 들어갔다가 다시 떠오른다. 이미 배가 기울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내려진 것이다. 그랬더니 성질 급한 몇몇 장병들은 벌써 구명대 속으로 첨벙 첨벙 뛰어 내린다.
다시 중갑판으로 내려와서 반대 측 갑판에 있는 구명대를 향하여 가려는데 갑판하사 김진수가 길을 막아선다. 나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는 그의 턱밑 너덜거리는 살점사이로는 피바람만 튀어 나온다. 턱 밑으로 파편이 지나가면서 목을 훑어 버린 것이다. 말할 때마다 껍데기 살갓만 너덜거리며 피가 밖으로 튕겨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의 눈빛이 이글거린다. 서로 마주친 두 눈빛만으로도 사나이들의 교신은 충분히 주고받을 수 있다. 등을 몇 번 두들겨 주고 떠났다. 그는 훗날 어느 지하철 역장을 하고 있노라고 들었다.
홍 소위는 배의 좌현 쪽으로 서둘러 돌아갔다. 미처 내리지 못한 반대 측 두 대의 구명대를 내리기 위해서다. 그쪽은 이미 배의 밑바닥에 있는 유류 탱크로부터 올라오는 시꺼먼 화염으로 덮여 있어 한 치의 앞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구명대를 내려놓아야 전우들이 탈출할 수 있다. 그것도 빨리 해 주어야 한다.
저들을 살려야 한다. 그것이 나의 기본 임무가 아닌가? 어둠속을 뚫고 들어간다. 캄캄해서 보이질 않고 숨도 쉴 수 없다. 도저히 접근할 수 없어 작업을 포기해야만 했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조금 전에 있던 우현 선수 쪽으로 되돌아왔다. 이미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질펀하게 쓰러져 나뒹굴고 있다. 3인치 포대가 맞으면서 파편에 날아간 장병들의 시신들이다. 3인치포대도 고철더미처럼 변해 버렸다.
갑판 위에는 흥건히 피범벅 된 시신들로 즐비하다. 사람 육신의 형체는 없는 듯했다. 그냥 구명대를 걸친 덩어리들이라고나 할까? 표현한다는 것이 괴롭다.
이럴 때 사람의 정신력은 강해지는 것일까? 초능력이 생기는 것일까? 이미 홍 소위 정신 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아니 정상을 초월해 있었다.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이 거침없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어지고 있었다.
그것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목 뒷덜미를 자꾸 짓누르는 것이 있다 나머지 2개의 좌현 측 구명대를 마저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만 내 전우들이 탈출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저 불속으로 뛰어 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나 갑판사관이 해야 할 임무다. 잠시도 주저할 수 없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군가에 있는 가사처럼. 다시 좌현 측 구명대 2개를 풀어 놓기 위해 연기 속을 더듬더듬 더듬어서 찾아올라 간다. 대낮이지만 어두워서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칠흑같이 캄캄하다. 가까스로 목적지에 도달했지만 워낙 철사로 단단히 묶여 있어서 손가락으로 아무리 잡아 당겨 보아도 풀려지지 않는다.
입속 목젖사이론 무엇인가 꾸역꾸역 넘어가는 듯 해온다. 시꺼먼 꺼름 덩어리인가 보다. 코가 막혀온다. 목도 헉헉하고 막힌다. 숨을 쉴 수가 없다. 구명대 풀기를 멈추고 내려와야만 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순 없지 않은가?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갑판 위에는 군데군데 시신들이 널려져 있고 피와 살덩이들로 흥건히 덥혀 있어서 발 디딜 틈도 없다. 가까스로 시체 몇 구를 건너뛰며, 어둠 속 갑판 바닥을 손으로 더듬었더니, 아직 응고되지 않은 피 살점들 사이로 날카로운 파편조각 하나가 손에 잡힌다. 손에 들고 다시 올라가서 연결 철사 사이로 끼워 넣고 비틀었더니 ‘뚝-’하며 끊어지는 감각이 느껴 온다. 하지만 이미 배가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구명대는 내려가지 않고 자중에 의해 얹혀 있기만 했다.
호흡은 이미 포기 상태다. 호흡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기어 내려 왔는지 생각이 안 난다. 얼마 동안은 기억이 없다. 어느 때 부터인가 포화는 멎었다. 사방은 조용하다. 검은 연기로 휩싸여있는 함정이 기울기 시작하니까 아마 북한군들은 사격을 멈추었는지도 모른다.
함수 쪽으로 가 보았다. 함장과 장병 몇 명만이 기울어진 선수 쪽 라이프 라인(Life Line:안전 줄)을 잡고 서있을 뿐 주변은 조용하다. 주변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동쪽 해상 멀리에서 접근해 오고 있는 동료 53함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다.
‘이토록 긴박한 상황인데 왜 저렇게들 멀건히 서있을까?’ ‘53함은 왜 빨리 접근하지 않는 걸까?’ ‘가까이 오는 것이 두려워서 외면하고 있단 말인가?’
다급한 나머지 홍 소위는 함장에게 소리 질렀다. “제가 수영으로 달려가서 저 53함을 빨리 이곳으로 오도록 연락 하겠습니다. 함장님.” 하지만 저지당했다. 하는 수 없이 53함을 향해 고함을 지른다. “오오 사~암(53), 오오 사아~암~ ”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하며 모자를 벗어 흔들어 대니까 옆에 있던 그들도 함께 따라 한다. 끝없이 외쳐댄다. (계속)
내복만 입은 채 겨울 바다 속으로 풍덩 아 수원단, 아 당포함-7
홍대일 당시 56함 신임장교 (현재 아키필 회장)
구조된 후 바라본 바다에는 56함 모습 사라져
한가로이 이렇게 서 있을 상황이 아니다. 다른 곳들이 궁금하다. 다시 중갑판 오른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거기엔 통신장 김원태 중사가 한쪽 발을 잃은 체 실신상태로 남아 있다. 긴박한 상황임에도 어찌할 바를 모른 것이다. 홍 소위가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그에게 입히고 무조건 바다로 던져 버린다. 그는 통신관의 직속 부하다.
이미 오른 쪽 갑판이 해수면과 맞닿을 정도로 기울어 져 있었다. 이제는 급하게 되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큰 배가 침몰할 때에는 소용돌이가 몰아치며 주변을 모두 삼켜 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상황을 알려야 한다. 다급하다.
급히 함수 쪽으로 다시 달려가 보았다. 조금 전에 거기 있던 함장과 다른 사람들은 이미 보이지 않았고, 좌측 선수 앵커(닻)에 매달려 있는 낯익은 장병 몇 사람을 볼 수 있었다. 평상시에는 불가능하기만 했던 곳이지만, 이미 배가 기울어졌기 때문에 충분히 매어 달릴 수 있는 상태다.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그들임을 직감할 수 있다. 위험하니 급히 물속으로 뛰어내려 멀리 피하라고 소리쳤다. 그들은 내 말을 믿어 주었다. 뛰어 내리자마자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아우성들이다. 이번엔 마지막 내 차례다. 바다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 한다.
최후의 순간. 뱃전에 서있는 홍 소위 머릿속에는 주마등처럼 생각들이 바쁘게 스쳐 지나간다. ‘이럴 때 일수록 침착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짐했다. 굶주린 상어 떼들이 몰려 올 것 아닌가? 바닷물이 피바다로 변했고 화약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죽는 순간까지 상어 떼와 저항하며 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손에 끼고 있는 가죽장갑이 도움을 줄 것이다. 출동하기 직전에 진해중앙시장에서 월부로 구입한 장갑이었다. 벗어버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군인용 겨울내복 상하의는 벗지 않았다. 물속에 들어가면 추울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무복은 하의만 벗고 상의는 벗지 않았다. 수영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방한용 파-카를 벗어서 차곡차곡 개어 갑판위에 내려놓았다. 마지막으로 신고 있던 하얀 덧버선을 벗어 파-카 위에 올려놓았다. 추운 날씨에 출동 나가서 떨며 고생할 후배 장교를 생각해서 특별히 버선을 손수 누벼 만들어 주신 분이 계셨다. 당포함의 전임 작전관인 사관학교 16기 민병섭 선배의 부인이다. 그는 홍 소위를 무척 아껴 주었다. 가끔 휴일 날 집으로 불러 맛있는 음식을 먹여 주는 배려도 아끼지 않았다. 어쩌면 숨겨둔 좋은 처녀가 있었기 때문일까?
바다 속으로 뛰어 내렸다. 선수갑판에서 해수면까지는 상당히 높다. 한참 동안 허공을 비상하며 다이빙을 했다. 바닷물이 차가운지 어떤지 기억도 없다. 물위로 솟아올랐더니 조금 전 앵커에서 뛰어 내린 그들이 얼씨구나 하고 나에게로 엉겨 붙는다. 함께 엉기면 방법이 없다. 모두 죽는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도 잡는다고 했다. 그들을 피해 다시 물속으로 잠수했다가 저만치서 나왔다. 이번엔 내 구명조끼를 입은 통신장이 물위에 떠 있다. 아무런 반응도 없다. 그에게 접근했다. 내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으라고 했더니 고개만 끄덕인다. 고급 인명구조원 자격증 소지자인 나는 그를 끌고 53함으로 수영 해 갔다. 그는 순순히 내 뜻대로 응해 주었기 때문에 수월했다. 왼팔로 그를 감싸며 끼고, 오른팔과 다리로는 가위차기를 하며 53함이 있는 쪽으로 수영해 갔다. 배운 인명구조 영법 중의 한 가지 방법이다.
해군사관학교 3,4 학년 하계 해양훈련 때 받는 특별한 과정이 있다. 그때 획득한 고급인명구조 자격증이 효력을 발휘한 것이다. 한번 가위차기를 하면 물에 젖은 내복 하의가 주루룩 내려가서 허벅지에 걸리곤 한다. 내복 고무줄이 약했기 때문이다. 다시 잡아당기며 반복해서 수영하기를 얼마나 했을까?
수영해가는 동안 눈에 띄는 참상은 말이 아니다. 수영을 못해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지르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구명대 보트를 열심히 저어 가기도 하고, 스스로 열심히 수영해 가는 사람도 눈에 띈다, 구명조끼를 입은 채로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시신들도 많이 보인다. 한 쪽에서는 단정을 타고 구조하는 모습도 눈에 스친다.
포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를 끌고 53함 뱃전으로 가까스로 헤엄쳐 갔더니 갑판이 하늘같이 높다. 배 앞머리 쪽에 도착한 것이다. 후미갑판 쪽으로 다시 이동해 옮겼다. 이미 먼저 온 선착자가 많다. 선착순이다. 여기서도 차례를 기다려 줄을 서야 한다.
갑판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밧줄을 내려 달아 올리느라고 바쁘다. 드디어 차례가 왔다. 끌고 온 통신장을 먼저 올려 보내고 다음 밧줄에 내가 매달렸다. 나의 모든 힘은 두 손에만 몰렸다. 몸뚱아리가 축 늘어진다. 얼마나 무거웠을까? 위에서는 달아 올리느라 끙끙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갑판에 끌려 올라서는 순간 귀에 익은 외침이 들렸다
“야, 대일아! 너 살았구나!”
그 배에 타고 있는 동기생 정 일철 소위의 반가움에 목 메인 소리다. 얼마나 따뜻하고 반가운 탄성이었던가? 갑판에 올라 바다 위를 내려다 본 나는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배는 온데 간데 없는 것 아닌가? 죽은 동료들의 시체들만 물 위에 둥둥 떠 있을 뿐이다. (계속)
정신 돌아버릴 추위 엄습에 온몸이 요동 아 수원단, 아 당포함-8
홍대일 당시 56함 신임장교 (현재 아키필 회장)
‘다치고 상한 자들 보살펴라’ 하나님 목소리가
견딜 수 없는 격한 감정이 솟구친다. 감정이 억제되지 않는다. 다시 물속으로 뛰어 들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기절해 쓰러졌다. ‘이 친구 이미 이성을 잃고 있다’는 판단 하에 53함 부장이 나의 얼굴에 한 방 날려 기절시켰다는 것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다.
동료들의 부축을 받으며 53함안으로 끌려 들어가다가 위생실 앞에서 목도한 장면이다. 함장이 이미 도착해서 벌거벗은 모습으로 덜덜 떨며 치료를 받고 있다.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고, 등줄기에 많은 상처가 나 있는 것을 보았다.
반가운 김에 소리쳐 “함장님!”하고 외쳤더니 뒤돌아본다. 그의 눈동자도 흐려 있다. “다른 대원들은 어떠하냐?”고 소식을 물어온다.
정 소위가 나를 끌고 자기 침대위에 눕혀 놓는다. 젖은 옷을 갈아입힌다. 그리고 담요를 덮어 준다. 하지만 온 몸이 뒤틀리고, 요동을 친다. 말할 수 없는 추위가 엄습한다. 어금니는 악 다물려 이빨이 아팠다. 온 몸은 통채로 아래위로 들썩거리며 춤을 춘다. 침대가 삐걱거린다. 나 자신을 주체할 수가 없다. 이러다가 정신이 돌아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겁이 났다.
이렇게 떨기를 얼마 동안 하고 있었을까? 그때 별안간 이상한 기운이 온 몸을 감싸 온다. 포근한가 싶더니 따스해 진다. 그리고 고요가 내 온 몸과 마음을 엄습해 온다. 너무나도 아늑하고 포근한 기운이 감싸준다. 그러면서 적막이 지속되었다.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 있다. 적막 속에 들려오는 소리여서 너무도 또렷하다. 아주 세미한 음성임에도 나를 재촉하는 강한 힘이 있다. 놀라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다. 모두들 밖에 나가 구조작업하고 있었나보다.
“아무데도 상한 곳이 없는 너는 어찌 누워만 있느냐? 밖으로 나가서 다치고 상한 저들을 살펴보라“
아주 짧은 한 토막 메시지 일 뿐이다. 이 소리가 머릿속을 강하게 두드리며 메아리 쳐 온다. 그것을 거절하거나 생각해 볼 겨를도 없었다. 그냥 내 몸은 침대위에 벌떡 일어나 앉아 있었다. 순간적으로 “네 알겠습니다, 하나님!” 즉석에서 나는 그 음성을 내가 믿는 하나님의 메시지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제서야 나 자신의 몸을 둘러볼 수 있었다. ‘내 몸은 온전한가? 정말 말씀대로 멀쩡한가 ?’ 사지를 더듬어 보았다. 다친 데가 없다. 신체 어느 부분도 아프거나 상한 곳이 단 한군데도 없다.
벌떡 일어나서 대충 옷을 걸쳤다. 바지는 어깨끈으로 걸치는 방한 파-카를 입고, 윗옷은 걸치는 둥 마는 둥 사관식당을 지나 사병식당으로 뛰어 나갔다. 많은 부상자들과 시신들이 눕혀 있었고, 모두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중상자들만 모아 놓은 곳에 들렀다. 심하게 다친 환자들 모두가 덜덜 떨면서 춥다고 아우성들이다. 배가 터진 한 수병도 춥다고 소리친다. 다리 잘려 나간 병사까지도 아프다는 소리대신 춥다고만 고함을 질러댄다.
이것이 아이러니인가? 가슴이 메이도록 마음이 아프다. 돌려보니 시신들은 말없이 누워만 있다. 죽은 시신들이 아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웃으며 점심 식사를 같이 했던 그들이기 때문이다.
죽어 누워 있는 기관하사 윤임석이 먼저 눈에 띄었다. 와라락 달려들어 그의 눈동자를 열어 보았다. 죽었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바지를 벗겨 항문을 들여다보았다. 항문이 열리고 속에서 무엇인가가 치받혀 막고 있다. 배운 지식에 의하면 이미 늦은 것이다. 하지만 죽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평소에 돌같이 단단하고 야무진 그 사람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이번엔 그의 입을 벌리고 내 입술을 그 위에 갖다 포겠다. 입속으로 바람을 불어 넣은 다음 배를 눌러주곤 하는 인공호흡법(mouth to mouth법)을 얼마 동안인가 실시했다. 앞에서 언급한 고급인명구조법을 익혀둔 실력이다.
처음에는 헛바람만 죽죽 뱃속으로 들어갔다. 몇 번을 반복하였더니 호흡이 닿는 것 같은 감이 왔다. 조금 더 반복하였더니 몸에서 미동이 나타난다. 희망이 있어 보인다. 잠시 후 입에서 오물과 밥알이 튀어 나온다. 점심에 먹었던 음식물 찌꺼기들이다. 죽은 사람 뱃속에서 나온 것들이다. 더럽다는 감정은 전혀 없다. 그냥 손으로 닦고 내 입을 다시 그 위에 갖다 포갠다.
끝없이 그렇게 반복동작만 되풀이 하고 있었다. 이 광경을 내려다보고만 있던 UDT 대원 한사람이 수건으로 그 시신의 입을 닦아 주곤 하며 나를 도와주었다. 그러더니 그들도 옆에 있는 시신들을 안고 똑 같은 방법으로 인공호흡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슨 일 때문에서 인지 그들 몇 명의 대원들이 그 배에 함께 승선해 있던 것으로 기억된다. 윤임석의 뱃속에서는 간헐적으로 밥알만 튀어나올 뿐 더 이상 소생의 기미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깨어나지 않는 그가 오히려 야속하기만 했다. 볼기짝을 몇 대 두들겨 주었다. (계속)
여기저기서 살려달라는 전우들의 아우성 아 수원단, 아 당포함-9
홍대일 당시 56함 신임장교 (현재 아키필 회장)
몰려든 헬기들 인근 항구 병원으로 부상자 이송
몇 십 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옆에서는 또 다른 죽은 동료가 기다리고 있다. 위생장 조덕수 중사가 말없이 누워 있다. 군의관 없이 단 한사람의 위생사만 있는 배에서 하필이면 이 판국에 왜 이렇게 한가롭게 누워서, 오히려 나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이 사람이 일어나야만 이 처참한 상황을 도울 수 있지 않은가?
그를 와락 끌어 붙잡고 앞에서와 똑 같이 몇 십분 동안 입씨름을 했다. 윤하사와는 달리 그는 깡마른 체구여서 그런지 바람을 불어 넣는 작업이 훨씬 수월했다. 하지만 그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숨이 끊어진 시간에 훨씬 더 길었기 때문이라고 짐작했다. 그를 단념하기란 더욱 용이했다. 내 몸이 온통 땀으로 흠뻑 젖었다. 아이러니가 아닌가? 온 천지에서 춥다고 아우성인데 땀투성이가 되어있는 내가 미웠다. 그도 역시 돌아 올 줄 몰랐다. 안타깝기만 하다
아래층에 있는 하사관 침실로 내려가 보았다. 입구 맞은 편 침대2층에 누워 있는 갑판 수병 이희성이 눈에 띄었다. 신음소리가 너무 애처로워서 접근해 보았더니, 허리 부위를 붕대로 둘둘 감고 누워 있다. 그 바쁜 난리 통에 누가 그냥 대충 대충 둘둘 감아 두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그가 나를 보더니 구원요청을 한다. 아파서 죽겠으니 몸을 옆으로 조금만 돌려 달라는 요청이다. 모기소리 보다 더 작은 목소리다.
피 범벅이 된 허리 아래로 손을 찔러 넣었더니 무엇인가 딱딱하고 날카로운 이물질 같은 것이 손가락 끝에서 느껴진다. 붕대를 조금 풀었더니 창자가 쏟아져 퍼져 내린다. 파편이 배를 뚫고 들어갔기 때문에 죄다 밖으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창자가 쏟아져 나오면서 그 이물질 조각도 같이 묻혀 나온 듯 싶다. 어쩔 수가 없다. 소독은 해 줄 엄두도 못 내겠다. 그렇다고 흘러나온 구멍 속으로 다시 끼워 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시 붕대를 나름대로 내장과 함께 감아 주고, 머리 밑에 팔을 넣어 감싸듯 애정을 주었더니 이번엔 물을 조금 달라는 시늉이다. 물을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났다. 옛날에 누구에서인가 그런 환자에게는 물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뱃속에 들어간 물이 어디로 가겠는가? 타월에 물을 적셔서 그의 입술을 추겨주었다. 그랬더니 그제 서야 잠잠해 졌다.
얼마 후 그는 헬리콥터에 실려 급히 후송되더니 후송도중에 되돌아 왔다. 죽어서 다시 돌아왔단다. 그의 얼굴이 곱상스러워서 얼마 전에 사관식당 당번으로 선발되어 일해 주었기 때문에 남달리 친근감이 있던 부하다. 그가 죽는 순간에도 내가 해 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아파서 옆으로 돌려 눕혀 달라는 부탁에도, 물이라도 조금 달라는 애걸에도, 밖으로 흘러나온 창자들도 집어넣어 주지 못했다. 영원히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한 채 그를 떠나보냈다. 밖에 나가서 상한 저들을 돌아보라고 명령했던 그 음성이 다시금 강하게 머릿속을 두드린다.
옆자리로 갔다. 이번엔 주계장 이진원 하사가 얼굴 전체에 화상을 입고 붕대로 둘둘 감긴 채 신음하고 있다. 내가 어떻게 도와 줄 수가 없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여기저기에선 환자들의 아우성소리들로 요란하다. 이 많은 환자들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아아 ~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자신도 모르게 입에선 탄성이 흘러나온다.
다시 1층 식당으로 올라 와서 보니 상황이 조금씩은 호전되어 졌다고나 할까? 중환자들은 바쁘게 들것에 실려 밖으로 나가고 있고, 밖에서는 급히 헬리콥터로 후송되기 시작했단다. 헬리콥터가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대가 몰려 온 것 같다. 함장도 실려 나갔다고 한다. 일부 환자는 원주로 또 다른 일부는 강릉으로 춘천으로 갔다고 한다. 다행이다. 다소 마음이 진정이 된다.
조금씩 내부가 정리되는 기분이다. 53함 부장이 나를 찾는다. 인원에 대한 상황파악을 좀 해 보자는 것이다. 동료 생존자 몇 사람을 불러서 상황조사를 지시했다. 사망자를 확인하고 중환자와 경환자를 파악하고 생존자를 우선 조사하라고 했다. 집계를 내어 보니까 너무나 황당하다. 죽어 있는 시체까지 합쳐 봐도 모두가 불과 얼마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면 나머지는 모두 죽었다는 것인가? 이렇게 까지 희생되었다는 말인가? 어이가 없다. 현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고 있는 와중에 타고 있던 배는 거진항에 입항하고 있었다. 조금씩 새로운 소식들이 들려온다. 인근 71함에도 일부 대원들이 구조되어 있다는 것이다. 91함이 멀리 진해로부터 이곳을 향해 접근해 오고 있다고도 한다. 보지도 못했던 고급 장교들이 속속 보이기 시작한다. 참모총장도 곧 도착한다고 한다.
함정들이 거진항 앞바다 여기저기에 모여들었다. 밖은 조금씩 어둠이 찾아 드는 것 같았다.드디어 91함이 현지 거진항에 도착했다. 91함은 구축함으로서 한국 해군에서 제일 크고 화력이 센 함정이다. 김영관 해군참모총장도 그 배를 타고 진해에서부터 황급히 달려 왔다고 한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1주일 전 진해만 입구 가덕도 앞바다에서 연안여객선 한일호와 해군함정(73함)이 충돌하여 100여명의 사망사고를 낸 해군 역사상 최대 참사사건이 발생해서, 참모총장도 거기에 있다가 56함 비보를 받고 곧바로 이곳으로 달려 온 것이란다. (계속)
‘당장 북진지 함포사격하라’ 참모총장 고함 아 수원단, 아 당포함-10
홍대일 당시 56함 신임장교 (현재 아키필 회장)
옮겨탄 91함 밤새 전속력으로 달려 진해항 도착
진해만 사고현장에서 이곳 동해상 56함의 사건소식을 알리니까 보도진들은 취재기자들을 흩어 놓기 위한 기만전술로만 생각하고 아무도 동조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일보 윤병해 기자만이 사태를 직감하고 함께 91함에 동승해서 현지에 도착할 수 있었기에 유일하게 기사특종을 싣고 일약 유명해지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1년 전 해사 20기생들 원양항해 훈련에 동승하면서 많은 대화를 통해 해박한 해군지식을 습득한 결과로 얻어진 자연스런 행운이었을 것이라고 술회한 바가 있다.
시신들과 생존 장병들 모두는 91함으로 옮겨졌다. 사관실에 들어갔더니 참모총장은 식탁 테이블에 않아 있고 다른 고급 장성들은 모두 주변에 일어서 있다. 실내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가 했더니, 거구의 참모총장이 부르르 떨리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치면서 고함을 지른다. 아니 고함이 아니라 절규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지금 당장 북괴를 향해 함포사격을 가하라’는 것이다.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 내렸으면 저렇게 하실까? 새까만 소위가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이해가 간다. ‘오죽했을까?’
어느 장성인가가 잠시 후 눈치를 보는 듯 답을 한다.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말을 더듬으면서도 말하는 속도는 너무 빨랐다. 익숙하지 않은 어휘라서 누구라는 것인지는 알아들을 수가 없다. 아마도 그는 성질이 급해서 평상시에도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는 것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정확치는 않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마 주한 유엔군 사령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한 것 같다.
그랬더니 총장은 다시 한 번 더 테이블을 내려치며 고함을 지른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 며 온 몸을 부르르 떨고 있다. 총장인들 어찌 그러한 절차를 모를 리가 있겠는가? 당신의 마음속 심경을 표현한 것임을 읽을 수 있었다.
다시 사관실 안은 침묵이 흐르더니 다들 자리에 앉았고, 잠시 후 회의는 진행되고 있었다. 소위는 더 이상 거기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어서 침실 쪽으로 발길을 옮겨 피해 주었다.
어느 때부터인지 91함은 진해항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다. 밤은 점점 깊어만 간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일어나 앉았다. 앉아 있어도 전쟁터에서 있었던 상황들만 머릿속에 꾸역꾸역 떠오를 뿐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좌불안석이다. 내 육신은 이곳에 앉아 있는데 마음은 다른 곳에 떠돌아다니고 있는 기분이다. 잡지책 한권을 펴 들었더니 어느 육상전투에서의 폭탄 터지는 장면이 눈에 들어오기에 얼른 덮어 버렸다 꿈에도 보기 싫은 광경들이다.
생존자들이 들어 있는 방들을 일일이 둘러보며 상황을 살펴보았다. 중상자들은 이미 병원으로 후송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지금 배에 이송되어 있는 생환 장병들의 상태는 별로 걱정할 일이 없었음에도 그들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 침실마다 찾아가 보았더니 제각기 모여 겪었던 전투경험담들을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죽은 동료들이 더욱 궁금해서 그들을 만나러 나갔다. 싸늘한 밤공기를 가르며 전 속력으로 달리는 91함 후미갑판에는 수 십구의 시신들을 덮고 있는 담요와 태극기가 바람에 너풀거리고 있을 뿐이다. 후미갑판은 예식갑판이다. 함상에서의 모든 예식은 이곳에서만 이루어진다. 영국 해군에서부터 유래되어 온 해군의 전통의식이다.
그래서 우리도 전우들의 시신들을 이곳 후미갑판에 안치한 후 담요로 덮어주고 그 위를 대형 태극기로 씌웠다. 당직수병 한 명이 총을 들고 보초경계 근무를 하고 있다. 밤은 이슥한데 배는 동해바다 위를 가르며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요란한 스크류 돌아가는 소리만 그르렁 거리면서 물거품을 뒤로 남기고 남으로 남으로 달려만 간다.
너풀거리는 담요 사이로 바람이 들어가면서 추울 것 같아서, 담요 깃을 그들의 허리 춤 밑으로 밀어 넣어 주었다. 그렇게 해 주었는데도 그들은 아무 반응도 없다. 고맙다는 인사도 없다. 시체더미 주위를 몇 바퀴 둘러보았다.
이들과 함께 있으니까 마음이 푸근하고 추운 줄도 모르겠다. 누워있는 중에 불편한 것이 있으면 이들이 곧 나에게 무슨 부탁을 할 것만 같은 느낌도 든다. 그래서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경계 당직수병이 무서워할 것 같아서, 헛기침을 몇 번하고 나서야 그에게 접근해서 몇 마디 건네면서 위로해 주었다. 그도 얼마나 무서웠을까? 달빛이 흐르는 한밤중에 아무도 없는 바다 위에서 혼자 시체더미를 지키고 있는 그를 이해할 만하다. 총을 메고 있은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스크류 돌아가는 소리만 시끄럽게 들려 올 뿐이다. 후미에 꽂혀 있는 태극기 펄럭이는 소리도 가끔씩 들려온다. 누워 있는 전우들과 나는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이윽고 진해항에 도착했다. 새벽이 될 때까지 외항에서 기다렸다가 부두에 계류한단다. 모항의 제 2부두로 계류한단다. 함정들이 출동 시 출 입항 할 때, 아니면 원양항해 등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에만 이곳을 사용하여 왔던 곳이다. (계속)
거수경례 장병들 흐느낌이 어느덧 통곡으로 아 수원단, 아 당포함-11
홍대일 당시 56함 신임장교 (현재 아키필 회장)
영원히 잊지못할 숨진 전우들 모습에 잠못이뤄
그런데 해군 역사상 없었던 불상사를 안고 이곳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시신과 부상자들만 안고 돌아와 패잔병의 모습으로 상륙한다고 생각하니 전혀 발걸음이 내키지 않는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프다.
내항에 들어 와서도 배는 부두에 갖다 대지 못한다. 아마 이대로는 들어갈 수가 없는 모양이다. 어떻게 이 모습을 하고 저리로 들어갈 수 있단 말인가? 얼마 동안인가 지나서야 91함은 끝내 2부두에 계류했다. 부두 저편에서는 군악대의 진혼곡이 흐느끼듯 흐르고 있고 도열한 장병들과 가족들이 부두 한쪽 편에서 말없이 바라다보고만 있다. 그토록 늠름하게 보이든 장지수 함대사령관의 어깨도 아래로 축 처져 있다.
91함으로부터 시신들이 먼저 차례대로 내려 보내진다. 저들은 죽어서 말없이 돌아 온 것이다. 조국을 위해 젊음을 송두리 채 다 바치고 온 것이다. 개선행진곡이 울려 퍼져도 시원치 않을 판국인데 이 어인 일인가? 해륙 상에 있는 모든 장병들은 하함하는 시신들을 향해 경례를 한다.
2부두의 분위기는 깊은 땅속으로 꺼져 들어가는 것 같다. 장병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루룩 주루룩 흘러내린다. 손을 올려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장병들의 어깨가 조금씩 움직인다. 드디어 들먹거리는 어깨진동이 여기저기로 전파되기 시작한다.
어느새 옆에 있는 장병이 흑 흑 하고 목구멍 사이로 흐느낌이 터져 나온다. 견딜 수 없는 서러움과 참담함에, 참았던 울음이 악 다물고 있는 입 사이로 새어 나오는 것이다.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고 억눌러 온 울음소리다. 여기저기에서 흑 흑 소리가 나더니 드디어 누군가의 입에서 커억커억 하고 울음을 참으며 들이키는 소리가 들린다. 잽싸게 소리가 전파된다.
나만은 울지 않으려고 다짐했었다. 내가 울면 다른 대원들도 따라 울 것만 같아서 억눌러 온 것이다, 지금은 참으려 해도 자제가 되지 않는다. 가슴과 어깨에서부터 터져 나온다. 북바쳤던 서러움인가? 어쩔 수가 없다.
56함(당포)은 이제 일생을 마치고 영원히 떠나갔다. 이름과 함께 영원한 메아리 속으로 떠나 버렸다..................................................................................................................................
올 1월 19일 이번 추모행사 때에도 동작동 국립 현충원을 다녀왔다. 39위의 동료들이 동작동 국립 현충원에 안치되어 있다. 40여 년의 긴긴 세월이 흘렀지만 그들의 묘비 앞에 서 있으면 아직도 그때의 순간순간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묘비 앞에 서 있다. 결혼 한지 일주일이 못되어 출동 떠났다가 시신으로 돌아온 작전관 고 박태만 대위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른다. 전투 중에는 작전관인 그와 통신관인 나와의 관계로서 그의 지시를 받거나 할 수도 없었고, 또 그럴 겨를도 없었다.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한창 전투가 막바지였을 무렵 좌현 측 구명대를 내리려고 갔다가 다시 돌아 왔더니, 작전 갑판 옆에 몰려 있던 고 이상호 준위 등 여러 명이 3인치 포대 쪽으로 부터의 파편들에 맞아 죽었거나 상처를 입고 그 일대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고 작전관인 그도 등 뒤 벽면에 기대어 쪼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본 것이 마지막 이었다. 목도하는 순간 이미 그도 치명적인 급소를 맞았음에 틀림없다는 판단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장교가 지금 저렇게 한가히 앉아 있을 겨를이 없다는 것은 너무도 명백했기 때문이다.
함상 근무 중 언제나 그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조용 조용히 나를 가르쳐 주곤 했다. 사관학교 3년 선배인 만큼 이미 해상 실무에 그만큼 더 많이 습득을 했고, 언제나 내가 미숙해 보였든지 항상 곁에 와서 조용히 가르쳐 준다. 그는 생도시절 말없이 후배들을 따뜻하게 품고 감싸주던 온후한 모습만 머릿속에 남아 있을 뿐, 이 땅위 어디에도 이 묘비 외엔 남겨 둔 그의 흔적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떠나 버렸다.
어여쁜 신부의 체온도 제대로 느껴 보지 못하고 신방을 떠나온 그의 애틋한 마음을 읽으려고 한동안 묘비 앞에 서 있었더니 곁에서 누군가가 등을 두드리며 가자고 독촉을 한다. 포술장 고 이석무 대위와 나는 언제나 같은 해상 당직조로 임명되곤 했다. 그는 당직사관, 나는 부직사관으로 발령된 것이다. 이날도 이들 둘은 일찍 점심식사를 한 후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당직교대를 완료했고 예하 각 부서로부터 교대완료 신고를 보고받았다.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함교에서 당직근무 하는 일이란 무료할 때가 많다. 특히 한 밤중에 당직을 설 때면 더욱 그렇다.
별빛이 교교하게 잔잔한 바다 위를 흐르고 쉴 새 없이 그르릉 거리며 돌아가는 스크류 소리만 들릴 뿐 온 세상은 적막감에 휩싸인다. 두고 온 가족들과 옛 일들이 생각날 때가 많다. 그럴 때면 그는 영락없이 어릴 적 시골에서 듣던 귀신 이야기로부터 말문이 터지기 시작한다.
충청도 사투리로 약간 떠듬거리면서 이어지는 그의 재담은 그런대로 재미가 있어서 둘이서 지난 옛일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동안 서로 정이 많이 들었다. 선배 장교들에 대한 숨은 뒷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었고, 야사인지 정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구수한 해군역사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곤 했다. 사관학교 2년 선배였지만 그는 많은 식견을 갖고 있는 듯 나에게 많은 충고를 곧잘 해 주곤 했다. (계속)
동작동 묘비엔 그날의 목소리도 생생하게 아 수원단, 아 당포함-12(끝)
홍대일 당시 56함 신임장교 (현재 아키필 회장)
이젠 당신들 후배들이 이 땅을 지키고 있습니다
쉬는 시간이면 사관식당에 앉아서 카드로 훌라 게임을 자주 하곤 한다. 특히 좋은 패가 올라 올 때면 그는 표정관리가 어려운 모양이다. 안면 근육이 움직이고 얼굴에 붙어 있는 검은 사마귀가 따라 움직인다거나 얼굴색이 변하여 홍조를 띄기도 한다. 그래서 그가 있는 훌라 판은 재미가 있었다.
수원단 절벽에서 갑자기 번쩍이는 불빛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던 그의 모습과 함장께 긴급히 보고하며 위급상황에 대처하던 그의 모습이 묘비에 그려진다. 함포사격을 지휘하며 마지막에는 연막탄 있는 대로 다 쏴! 라고 외치던 그의 음성도 아직 귀에 쟁쟁하다.
우현 측 구명대를 내려놓았더니 몇몇 대원들과 함께 그는 남 먼저 뛰어 내렸다. 그리고선 그 구명정을 지휘하는 모습을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에게는 유복자가 있다. 어린 아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두고 떠난 젊은 아내를 생각하며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그와는 주마등처럼 이어지는 대화에 끝이 없다.
장포장 고 이상호 준위는 언제나 웃는 밝은 얼굴이다. 그는 머리에 파편을 맞아 사망한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의 마지막 모습은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사관식당 옆 오른쪽 작전갑판에서 머리에 흰 천을 두르고 있었지만 붉은 피로 젖어 있었고 그 당시에는 살아 있었지만 뇌의 손상으로 사망했을 것이라고 추측이 된다. 그 이후로는 그를 본 적이 없다. 해군생활 선배인 그에게는 나는 평시 가벼운 질문을 던져 말문을 열게 하고 그의 설명을 경청하곤 했다. 경상도 특유의 구수하면서도 잔잔한 목소리로 답을 해 준다. 한번 말문이 열리면 그도 거침없이 말이 이어지곤 한다. 어떻게 준비해 만들었는지 밤늦게 특별야식을 마련해 놓고선 ‘홍 소위님 모셔오라’는 편을 보내 가끔 나를 초청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인정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아내와 세 아들을 두고 떠났다.
통제부 내 신병훈련소에서 장례식을 치루 던 날 그 아이들로 하여금 참석한 모든 조문객들을 울렸고, 나도 함께 울었다. 상복을 입은 어린 세 아들을 앞에 두고 더 이상 말없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그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그동안 참고 참았던 울음이 그제 서야 봇물 터지듯 나오기 시작한 그날이 생각난다.
그날은 마음 놓고 울었다. 체면도 없이 풀어 놓고 울었다. 울고 싶었는데 그 어린 것들이 더욱 울도록 부채질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어린 것들에게 삼베로 상복을 지어 입히고 새끼로 머리띠를 만들어 씌워 장례식에 내 보냈다.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또 한 번 놀라게 한 것은 그의 묘비에 ‘부인 배여사도 함께 안장되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사실이었다.
갑판장 고 장태식 준위의 묘비 앞에 섰다. 그는 갑판사관인 나의 직속 부하였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자기의 임무를 충실하게 다하고 떠나지 않았는가? 그토록 쉴 새 없이 퍼부어 대는 포탄 속에서도 어느새 단정요원들을 불러 모아 놓고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그였다. 비록 나이 어린 상관이었지만 소위인 나의 명령만을 하늘 같이 기다렸던 그가 아닌가? 하명을 받자마자 날렵하게 6척 몸을 날려 그 높은 단정 위에 올라서서 두 손으로 사인을 해 가며 단정하강작업을 지휘했던 그였다. 그 순간 또 다른 한차례의 포탄들이 쏟아 내리는 바람에 작업을 포기하고 헤어진 것이 그와는 마지막 이별이었다. 깡마른 채구였지만 키가 큰 그는 몸이 매우 빨랐다. 눈매도 매섭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과거 부산거리에서 한 가닥 휘둘렀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나이어린 상관인 나를 편안하게 해 주려고 무척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토록 최선을 다하던 그런 부하를 나는 왜 구해 줄 수 없었는가 하고 묘비 앞에서 자책을 해 본다. 이들 묘비 앞에 서 있으면 언제나 마음이 푸근해 옴을 느낀다. ............................................................................................................
하나님! 왜 저를 살려 주셨습니까? 그때 그 전투에서 이들과 함께 죽게 내 버려두셨으면 좋았을 것을. 무엇 때문에 저를 살려 주셔서 이토록 힘든 세상을 살아가게 하셨습니까? 차라리 죽었었더라면 따뜻한 양지바른 이곳에서 이들과 함께 지낼 수가 있지 않았을까요? 조국을 위해 이 한 몸 바쳐 후손들에게 이렇게 이름 석 자라도 남길 수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무공훈장이라도 받고 말입니다.
가끔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면 이런 푸념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 40여년의 세월이 흐르고 난 지금, 지난날의 흔적들을 살펴보노라면 저 자신에게와 하나님께 부끄럽기만 할 따름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모래 발자국 설교 예화’가 갑자기 떠오르는군요. ‘나 혼자 열심히 이 세상을 걸어 온 줄로만 알았는데 뒤 돌아보니까 두 사람의 발자국이 모래위에 선명히 남아 있어서 물어 보았답니다’
“하나님 어째서 두 사람의 발자국입니까?” “하나는 내 발자국이었노라.” “그러면 중간에 한사람의 발자국만 보이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그것은 네가 힘들어 할 때 내가 너를 업어서 걸었노라.”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서도 저는 혼자만 걸어 온 것처럼 지금까지 살아 왔습니다. 그토록 또렷하게, 그토록 선명하게, 극한의 상황 속에서 까지 저에게 그 음성을 기억하도록 들려 주셨건만 저는 모래 발자국을 바라보면서도 저 자신만을 위해 살아 왔습니다.
“아무데도 상한 곳이 없는 너는 어찌 누워만 있느냐? 밖으로 나가서 다치고 상한 저들을 살펴보라” 이 세상에는 상하고 찢긴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그런 사람들이 지금도 손짓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세상의 모든 욕심 다 내려놓고 밖으로 나가서 상한 저들을 살펴 볼 수 있는 때가 온 줄로 생각됩니다. 내 작은 손길이 저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내 어찌 누워만 있을 수 있으랴. 당신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이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당신들의 후배들이 자랑스럽게 이 땅을 일구며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일이 있고 또 영원한 미래가 있습니다. (끝) | | | | | | | | | | | | | | | | | | |
첫댓글 나중에 시간 있을때 읽겠습니다.
국민을 위해 헌화하신 선배님께 묵념을 올립니다.
정말 글을 읽어보면 눈물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