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창신동에 시민아파트가 생기기전 낙산 꼭대기에는 서낭당나무가 있었는데, 한아름으로 껴안을수 없는 굵은 나무에는 가지마다 빨간천, 노란천, 파란천들이 매달려 있었다.
어느날 동네 형과 함께 그곳에 갔었는데, 형은 서낭당 나무 주변에서 작은 성냥갑 만한 크기의 나무토막을 주워서는 나에게 말했다.
"이 나무 너무 예쁘지 않니?"
내가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어느곳에도 쓸데가 없어서 누군가 버린듯한 나무토막일 뿐이었다.
형은 색종이와 풀을 사서는 나무토막에 노랑색, 빨강객, 파랑색의 색종이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으로 가서는 나무토막을 어디엔가 잘 보관하고는 그 길로 집을 나가버렸다.
당시 형의 나이는 16~17세 정도였기에 집을 나간건 곧 가출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몇일후에 동네에서 놀다가 창문 넘어 자신의 집에 있는 형을 보고는 형에게 말했다.
"언제 들어왔어?"
"내가 지금 빨리 어디좀 가야 하는데, 나좀 나가게 해주라."
형은 나에게 애원하듯 말했지만, 내가 남의집 문을 열어줄 수는 없었다.
그리고는 다음날인가 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형은 다시 가출을 해버렸다.
처음엔 어떻게 아는 사람을 만나서 집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다시 가출을 한 사람을 찾는다는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어느날 그 형의 형이 나를 찾아왔다.
"혹시 우리 동생이랑 같이 논적이 없니?"
형의 형은 동네 모든 사람들을 찾아 다니면서 동생의 자취를 찾고 있었다.
"저번에 서낭당나무 근처에 같이 갔었어요."
"그래, 거기서 무슨일 없었니?"
"형이 작은 나무토막을 주워서는 예쁘다면서 색종이를 붙였었는데요?"
"그래? 얼만한 나무였니?"
"성냥갑 만한 나무토막이었어요."
"그래, 알겠다. 고맙다."
다음날 그 형이란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혹시 이 나무토막이 맞니?"
"네, 맞아요."
그는 밖으로 나가서는 골목 한 구석에서 그 나무토막을 불에 태워버렸고, 바로 그날 저녁에 거지꼴을 한 형이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형은 아무 기억도 하지 못했다.
신발도 없이 맨발로 추운 겨울을 지냈으므로 동상이 걸려서 돌아왔을뿐 어디에 갔었는지, 밥은 어떻게 먹었는지 전혀 생각이 안난다고 했다.
나무토막에 색종이를 붙인날 가출을 하고, 나무토막을 태워 버린날 집에 돌아온건 우연일까..
서낭당나무와 어떤 관계가 있는건 아닐까..
아뭏튼 이 일을 시작으로 나는 가끔 과학적으로 설명할수 없는 일들을 체험하게 되었다.
* 서낭당(성황당과는 다른뜻인지 같은뜻인지 모르겠음)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원추형으로 쌓아 놓은 돌무더기 형태로, 그 곁에는 보통 신목(神木)으로 신성시되는 나무 또는 장승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이곳을 지날 때는 그 위에 돌 세 개를 얹고 세 번 절을 한 다음 침을 세 번 뱉으면 재수가 좋다는 속신이 있다.
서낭당은 서낭신을 모신 신역으로서 신앙의 장소이다.
이곳을 내왕하는 사람들은 돌·나무·오색 천 등 무엇이든지 놓고 지나다녔다.
물론, 그곳의 물건을 함부로 파거나 헐지 않는 금기가 지켜짐은 말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