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잘 알고 싶었습니다.
알고 싶다고 생각하니 ‘세계사’라는 단어가 참 방대하게 느껴졌습니다.
무수히 많은 시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어떻게 알아갈 수 있을까요.
몇몇 책을 살펴보았습니다.
대게 ‘한권으로 읽는 세계사’란 제목이 많았습니다.
한권으로 세계사라니.
방대한 내용이 한권에 어떻게 들어갈지 의심스러워 쉽게 손이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시대별로 나누어 읽자니 언제 다 볼까 싶어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쉽고 편하게 세계사를 알고 싶었습니다.
도둑놈 심보입니다.
그러다 ‘곰브리치 세계사’ 라는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양미술사를 쓴 곰브리치의 책이라 눈에 들어왔고, 400쪽이란 분량이 편하게 다가왔습니다.
‘곰브리치 세계사’의 서문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습니다.
“이 책은 학교에서 사용되는 역사 교과서를 대신할 의도로 집필된 것이 아니다. 이 책은 학교에서 읽히는 교과서와는 전혀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 나는 독자들이 필기를 하고 또 이름이나 연대를 외워야 한다는 부담 없이 느슨한 마음으로 읽어 나가기만을 바란다. 그리고 제대로 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꼬치꼬치 질문을 하지 않으리란 점도 약속하겠다.”
글 그대로 ‘곰브리치 세계사’는 편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유가 없는 일은 드물 듯, 사건이 어떤 원인에서 비롯하여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그리고 그 다음 사건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쓰여 있어서 더욱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책 가운데 특히 와 닿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멕시코뿐 아니라 아메리카의 다른 많은 지역에서도 오랜 역사를 지닌 문화 민족들을 끔찍한 방식으로 말살시켰다. 인류 역사의 이 처참한 장을 떠올릴 때면 우리 유럽 인들은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으니 나 역시 이제 입을 다물고만 싶다. - 296쪽
곰브리치는 역사서를 쓰며 유럽인으로 수치심을 느끼는 역사도 같이 기록했습니다.
수치스러운 역사도 있고, 자랑스러운 역사도 있겠지요.
두 모습 고루 이야기하며 내일을 도모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수치스러운 역사는 잊어야 한다며 그 내용을 빼버린다거나, 애국심을 기르기 위해 자랑스러운 역사만을 서술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오랜 옛날 현명한 스님 한 분이 자기 나라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 자신을 가리켜 “나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힘세며 용감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다.” 라고 말하면 모두가 그를 우습고 어처구니없는 사람이라 여길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 대신 ‘우리’라고 말하면, 즉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힘세며 용감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하면 그 나라의 모든 이가 열광해서 갈채를 보내고 그 사람을 애국자라 부른다. 스님은 그 이유가 무척 궁금하다고 말했다. 사실 그 사람의 태도는 애국심과 아무 상관도 없다. 자신들 외에는 모두가 열등한 무리라 말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고국을 사랑할 수 있다. 오히려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평화는 한층 더 위태로워진다. - 444쪽
곰브리치가 2차 세계대전을 직접 겪어서 그런지 글이 더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글을 통해 저자의 생각을 좀 더 알 수 있었고, ‘곰브리치 세계사’라는 책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곰브리치 세계사’를 읽으며 역사는 어떻게 읽어야 하고,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권정생 선생님이 쓴 시 ‘애국자가 없는 세상’을 이 글에 붙입니다.
거리는 멀어도 비슷한 시기를 보내서 그런지 두 분의 글이 닮아있습니다.
애국자가 없는 세상
권정생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대포도 안 만들 테고
탱크도 안 만들 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 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 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 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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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세계사를 잘 알고 싶었습니다.'
'대게 ‘한권으로 읽는 세계사’란 제목이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시대별로 나누어 읽자니 언제 다 볼까 싶어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나도!
읽어봐야겠다. 고마워!
할아버지가 옛날 이야기 해주는 것처럼 편히 읽을 수 있었어.
재미있게 읽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