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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이렇게 봐야 한다
박병환 지음, 뿌쉬낀하우스 2023.
들어가는 말
우크라이나 사태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
2022년 2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으로 진입한 지 1년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러시아의 침공을 6·25 전쟁에 비유하며 ‘우리가 우크라이나이다’ 식으로 대부분 러시아를 비난하고 있다.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힘센 러시아가 약한 우크라이나를 먼저 공격하였으니 선악의 관점에서 러시아를 악마화하고 우크라이나를 동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해군 특수부대 장교 출신이라는 어떤 유튜버는 “6·25때 우크라이나가 한국을 도와줬으니 이제 우리가 그들을 도와줘야 한다”고 하며 우크라이나 현지까지 갔다가 결국 생명의 위협을 느껴 돌아왔다. 그런데 우크라이나가 6·25때 한국을 도와줬다는 주장은 당시 우크라이나라는 나라는 있지도 않았고 소련의 일부였으므로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자 그는 “6·25때 참전하였던 미군 병사 중에 우크라이나계가 있었다”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일부 한국인들은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한 모금 운동을 벌이고 주한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러시아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다. 또한, 평화를 주장하면서도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대주는 서방국가들이 자신들의 무기 재고가 바닥나서 한국산 무기를 대량으로 구매하자 한국이 무기 수출 시장에서 상위권에 올랐다고 환호하였다.
이번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 한국인들 가운데는 심지어 우크라이나와 우즈베키스탄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평소에도 국제뉴스를 잘 다루지 않는 한국 언론은 독자적인 현장 취재를 거의 하지 못하고 있는 탓인지 영미 언론의 보도를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베끼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한국인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이번 전쟁의 사실상 당사자인 미국, 영국 등 서방의 관점에서만 보게 된다. 전쟁이라는 국제사회에서 일어나는 복합적인 현상을 단순하게만 바라보다 보니 일반 국민은 물론 정부마저도 서방의 일방적 주장에 휘둘리게 된다. 우리는 객관적으로 우크라이나 사태를 바라보아야 하며 그래야 제3자로서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고 나아가 국익을 지킬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까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정부와 언론이 하는 이야기(narrative)가 과연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사실만을 말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가져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선 이번 전쟁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가? 러시아가 단순히 영토에 대한 야심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였을까? 러시아는 영토가 세계에서 가장 넓고, 석유, 가스 등 풍부한 지하자원을 갖고 있고 광대한 농경지를 갖고 있는데 영토에 대한 야심이 있을까? 나라가 크든 작든 모든 나라는 안보가 제1의 국가목표이다. 소련이 해체되고 새로이 출범한 러시아는 사회주의를 공식 포기하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지향하면서 서방에 대해 어떠한 도발이나 적대행위를 하지 않고 협력을 추구하였다. 하지만 서방은 러시아를 거부하고 오히려 지속적으로 러시아를 견제하고 약화시키려 하였다. 냉전 이후 사회주의권의 군사동맹인 바르샤바 조약기구는 해체되었음에도 이에 대항하는 서방의 군사동맹체인 나토는 오히려 확대되었다. 폴란드,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을 회원국으로 끌어들여 병력과 전략무기를 전진 배치하였으며 이제 러시아와 나토 사이에는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만 남았다. 이는 소련이 해체되기 전에 당시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독일 통일에 동의하면서 동독에서 소련군을 철수하기로 하였을 때 나토의 확대를 우려하자 당시 베이커 미국 국무장관이 나토는 동쪽으로 단 ‘1인치’도 전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약속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물론 미국은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우기지만 작년에 비밀이 해제된 영국 정부 문서에 따르면 사실이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위치상 러시아의 적대 세력이 들어오면 특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중심 사이에 자연장애물이 전혀 없어서 러시아에 대해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극초음속 미사일이 배치되면 러시아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미국이 느꼈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위협을 느낄 것이다. 모스크바는 우크라이나 국경으로부터의 직선거리가 600km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위협을 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집요한 회유 공작에 넘어가 러시아를 적대시하고 2019년에는 헌법에 나토 가입 목표를 규정하였으며 공식적으로 나토 회원국은 아니나 2014년 이래 나토와 군사협력을 강화해왔다. 이는 미국 국방부 대변인이 이번 전쟁 발발 전까지 8년간 우크라이나군을 무장시키고 훈련시켜 왔다고 밝힌 데서도 확인된다. 점증하는 안보 위협에 러시아는 2021년 내내 무력시위를 하면서 미국과 나토에 대해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지 말 것과 폴란드와 루마니아 등에 있는 나토의 무기와 병력을 철수하는 등 안보 위협을 제거할 것을 문서로 약속하라고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했다. 우크라이나도 러시아의 요구에 대해 비타협적인 자세를 고수하였다. 이번 전쟁은 한마디로 말하면 러시아가 코앞의 안보 위협에 대해 선제공격한 것이다. 그런데 현재 전쟁 양상을 보면 미국 등 서방은 우크라이나로 하여금 대리전을 하게 하면서, 전쟁을 조기에 종식하기보다는 최대한 러시아의 힘을 빼어 푸틴 정권의 붕괴 및 러시아의 약화 나아가 해체까지 도모하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 실제로 작년에 전쟁 발발 이후 얼마 안 되어 튀르키예가 주선하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 평화협상이 타결될 듯이 보였으나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지원을 늘리면서 전쟁을 계속하도록 종용하여 결국 평화협상은 깨지고 말았다. 미국이 추구하는 것이 진정으로 우크라이나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 그리고 평화인지 의구심이 든다. 올해 초 여러 서방 전문가들이 러시아가 패배할 것을 상정하고 러시아의 분열에 대비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서방의 본질이 읽혀진다.
이번 사태는 우크라이나 내 과격한 민족주의 세력들이 과도한 친서방 및 극단적인 대러시아 적대 정책을 추구함으로써 불필요하게 러시아를 자극하여 전쟁이라는 재앙을 자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러시아의 침공이 2022년 2월 하순에 개시되었으나 엄밀히 말하면 전쟁은 이미 2014년 봄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91년 우크라이나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역대 정부는 때로는 친서방, 때로는 친러 노선을 취했다. 그런데 선거가 있을 때마다 우크라이나계가 다수인 서부와 러시아계가 다수인 동부 지역은 지지하는 정파에 있어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그러던 중 2014년에는 극심한 정치적 혼란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서부 지역의 과격한 민족주의 세력이 당시 친러 성향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합법 정부를 폭력으로 무너뜨리고 친서방 정권을 수립하였다. 그 이전까지 친서방 또는 친러 정부는 한쪽으로 극단적으로 치우친 외교정책을 취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새로운 정부는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어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등 강경한 정책을 펴자 동부 돈바스 지역의 러시아계 주민들이 분리 독립하겠다고 반기를 들었고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려 하면서 내전이 발생한 것이다. 서방 언론은 거의 보도하지 않았지만, 그간 우크라이나군이 소위 ‘반란 지역’에 대해 ‘인종청소’ 수준의 만행을 자행하였고 이에 이 지역 지방 정부들이 러시아의 도움을 요청하여 러시아는 반군을 지원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4년과 2015년에 프랑스와 독일이 중재하여 내전 종식을 위한 민스크 협약이 체결되었는데 주요 골자는 휴전을 시행하고, 양측 간에 완충지대를 설치하며, 동부 돈바스 지역에 대해 자치권을 허용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헌법을 개정하고 자치정부 수립을 위한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는 이 지역 반군의 간절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직접 개입을 자제하고 지난 8년간 사태를 관망하였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중앙정부는 무력 진압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 지역에 대해 무자비한 공격을 하였으며 자치정부 수립을 위한 절차는 전혀 진행하지 않았다. 민스크 협약의 당사자인 메르켈 전 독일 총리와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 그리고 포로셴코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작년에 고백한 바와 같이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민스크 협약을 준수할 생각이 없었고 단지 러시아의 개입을 늦추고 우크라이나가 군비를 강화할 시간을 벌려고 하였을 뿐이었다. 결국, 푸틴 대통령은 서방과 우크라이나의 기만전술에 당한 셈이다. 그 결과 동부 돈바스 지역의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었고 마침내 러시아가 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 대목에서 간략하게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살펴보면 러시아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의 공동 조상 국가인 키예프 공국이 13세기에 몽골의 침략으로 멸망하였고 우크라이나인들은 몽골제국의 쇠락 이후에는 오랫동안 리투아니아, 폴란드 등 이웃 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17세기에 우크라이나인들은 같은 루스족인 러시아의 짜르에게 지원을 요청하였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을 폴란드의 지배로부터 해방시켰다. 우크라이나가 독립국으로 존재하였던 기간은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직후 몇 년간이 전부이고 그 이전에는 제정 러시아, 그 이후에는 소련의 일부였다. 그리고 현재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은 제정 러시아 예까쩨리나 여제 당시 개척한 땅으로서 소련 내 우크라이나 자치공화국이 수립될 때 레닌이 떼어준 땅이며, 서부 지역은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스탈린이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등에서 빼앗아 우크라이나 자치공화국에 붙여 준 땅이다. 크림반도는 흐루쇼프 서기장이 자신의 출신 지역인 우크라이나에 선물로 준 것이라고 한다. 당시 이런 소련의 조치는 영토의 할양이 아니라 소련 내 행정구역의 변경일 뿐이었다. 소련 붕괴 이후 극도의 혼란 속에 자치 공화국들이 독립하는 과정에서 소련 당시 행정경계를 국경으로 인정하기로 하였을 뿐이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평화적으로 편입하였을 때 그 지역 주민들이 “집으로 돌아왔다!”라고 외쳤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우크라이나 영토의 복잡한 구성이 주민 구성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으며 이번 전쟁 과정에서 복잡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의 나라 이름과 관련하여 영어로는 ‘Ukraine’이어서 그 뜻을 잘 알 수 없으나 러시아어로 하면 ‘맨 끝에 있는 땅’ 즉 서쪽 끝 영토라는 뜻이다. 원래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은 뿌리가 같으나 몽골의 침략 이후 수백 년 동안 다른 역사적 경험을 하면서 다른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이번 전쟁은 외세의 개입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동족상잔의 비극인 면이 있다.
현재 서방 언론의 보도를 보면 마치 우크라이나군이 전세를 뒤집은 것처럼 보인다. 국내 언론들도 덩달아 섣불리 푸틴의 패배를 거론하기도 한다. 우크라이나군이 동북부 하리코프주와 남부 헤르손주를 탈환한 것이 사실이나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영토의 20% 이상 장악하고 있는 전반적인 전쟁 판세에 근본적인 변화는 없고 오히려 올해 초에 동부 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솔레다르를 러시아군에 빼앗겼으며 인근 전략 요충지인 바흐무트도 위태로운데 이마저 뚫리게 되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중부 드네프르강 유역까지 진출할 수 있게 되며 나아가 키예프가 다시 위태로워질 수 있다. 그간 미국 등 나토국가 회원국들이 각종 무기를 제공할 때마다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이라고 하였으나 초반에 반짝하였을 뿐이고 러시아가 상응하는 무력으로 대응하자 별 의미가 없어지곤 하였다.
우크라이나군은 지속적으로 서방의 무기 지원을 받기 위해서 자신들의 전과를 부풀리거나 조작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선전을 서방 언론이 그대로 받아 쓰거나 한술 더 떠 악의적으로 왜곡하여 보도하기 때문에 국내 매체를 통해서는 전황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 다만 러시아 국방부나 언론은 담담하게 사실 위주로 발표하거나 보도하기 때문에 오히려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서방에서 러시아에 대해 심리전도 벌이고 있는데 예를 들어 ‘푸틴이 군부 쿠데타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쇼이구 국방장관이 푸틴의 질책을 받고 해임된 것 같다’ ‘군부 내 불화가 있다’ 등 다양하다. 특히 푸틴의 건강에 대한 근거 없는 추측성 보도도 자주 하는 데 서방이나 우크라이나의 주장이 사실이었다면 푸틴은 벌써 몇 번 저세상으로 갔어야 하는데 여전히 건재하다. 반면에 최근 우크라이나군의 사상자가 급격히 늘면서 폴란드 측에서 현지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징집하여 전선으로 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상황이 심각한 데도 이에 대한 보도는 없다. 서방 매체들이 항상 야전 셔츠를 입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영웅적인 지도자로 띄워 주고 있지만, 그가 전시계엄령을 악용하여 야당 인사들을 마구잡이로 탄압하고 있고 유럽과 미국에 상당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의 부인은 서방의 지원을 호소한다고 다니면서 서방 도시의 어떤 백화점에서 거액의 쇼핑을 하자 이에 놀란 백화점 점원이 이를 SNS에 올려 화제가 되었으나 이런 것들은 전혀 보도하지 않는다. 또한, 서방이 지원한 무기를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빼돌려 암시장에 내다 팔아 돈을 챙기고 있다는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돌았으나 문제가 심각해져 서방국가들이 조사에 나서자 비로소 마지못해 보도하였다. 작년 4월 부차 학살 사건이 문제가 되었을 때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당연히 러시아군의 소행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였으나 얼마 뒤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가 독립적으로 조사한 뒤 러시아군의 소행이 아닐 개연성이 있다고 발표하자 젤렌스키 대통령은 펄쩍 뛰며 맹렬히 비난하였는데 이에 대해서도 상세히 보도하지 않았다. 러시아 측에 가담하고 있는 와그너 용병부대에 대해 이런저런 꼬투리를 잡아 비난하면서도 우크라이나 측에 참전하고 있는 서방 용병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게다가 최근에는 와그너 용병부대의 대표인 프리고진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어 푸틴 대통령이 위협을 느낀다는 황당한 보도도 있다.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각종 혹독한 제재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의 경제 상황에 대해 근거 없는 보도가 끊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서방의 기대나 러시아 자신의 예상보다도 러시아 경제가 입은 타격은 그리 인상적이지 못하다. 이에 대해서는 서방 전문가들과 국제기구도 확인한 바 있다. 그 결과 서방 특히 유럽연합은 추가적인 제재에 매달리고 있는데 그런 조치들로 인해 유럽국가들 자신이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보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달러 대비 루블 환율이 전쟁 발발 직후 한두 달 동안 일시적으로 2배까지 치솟은 적도 있으나 이후 전쟁 전보다 오히려 내려갔다가 현재는 전쟁 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가 석유와 가스를 가지고 장난을 쳐서 세계적으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였다고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으나 실제로 러시아는 석유와 가스를 정상적으로 판매하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서방국가들이 수입을 거부하는 바람에 국제에너지 시장에서 공급 부족이 발생하여 빚어진 것이다. 러시아는 서방의 수입 제한에 대해 중국, 인도 등 에너지 수요가 많은 국가들에 대량으로 판매해 돌파구를 찾았다. 2022년 한 해를 보면 물론 2021년보다 수출물량은 줄었으나 가격 상승으로 판매수입은 오히려 늘어났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심각하다고 하지만 서방국가들보다 러시아의 물가 상승 폭이 작다. 러시아가 해외로부터 수입하던 상품을 들여오지 못하기 때문에 공급에 문제가 있다는 말도 괜한 소리이다. 카자흐스탄 같은 이웃 나라를 거쳐 수입하고 있어 큰 문제는 없다. 결정적인 것은 미국과 유럽연합이 주도하는 대러 제재에 아시아, 아프리카 및 중남미 국가들은 거의 모두 참여하지 않고 있으며 러시아는 무역 대금 결제를 루블 또는 상대국 화폐로 하는 탈달러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러시아는 이번 제재가 처음이 아니라서 이미 내성이 생겼고 특히 이번에는 사전 대비책을 마련하였기 때문에 잘 견뎌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러시아에 대한 제재 때문에 고통을 받는 쪽은 러시아가 아니라 서방 특히 유럽국가들이다. 그래서 러시아에 대해 새로운 정책 또는 대응을 논의할 때마다 유럽연합 내에서는 진통이 있다. 어쨌든 러시아에 대해 제재를 하여 러시아의 전쟁 재원 마련을 막아 보려는 서방의 시도는 전혀 성공적이지 않다. 이번에 그간 유럽이 경제적으로 번영을 이룬 데는 러시아가 파이프라인을 통해 석유와 가스를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여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유럽국가들이 저렴한 러시아산 에너지를 거부함에 따라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자 유럽 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으며 특히 유럽의 지도국이며 제조업 강국인 독일의 기업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그러면 앞으로 이 전쟁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우선 미국 등 나토 회원국들이 지속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면 러시아는 이에 상응하는 무력으로 맞대응해야 하므로 러시아가 전쟁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물론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무기 지원이 끊기면 전쟁을 지속할 수 없다. 러시아는 서방의 혹독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잘 버티고 있으나 서방의 무기 지원이 앞으로도 지속되어 러시아 본토까지 공격을 받게 되거나 또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에 의해 막다른 상황까지 몰리게 되어 나토가 직접 개입하게 된다면 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 전쟁 지속 여부는 미국 등 서방국가들에 달려 있다. 그런데 미국의 관점에서 우크라이나가 설사 러시아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더라도 직접적인 안보 위협은 없는 데 반해 러시아의 경우 패배한다면 단순히 안본 위협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러시아 자체가 분열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서방국가 지도자들이 국내적으로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얼마나 극복하느냐도 변수인데 유럽은 물론 미국 내에서도 ‘러시아는 우리의 적이 아니며 우크라이나는 우리의 동맹이 아니다’라는 어떤 국회의원의 말처럼 부정적 여론이 엄연히 존재한다. 냉정하게 말해서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마지막 우크라이나인까지 싸우다 죽더라도 개의치 않을 것이고 전쟁을 그들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오래 끌어 러시아를 약화시키는 데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 사실 미국은 이미 기대한 목표를 달성했다고 볼 수도 있다. 즉, 이번 전쟁을 통해서 유럽국가들과 러시아의 관계를 완전히 파탄이 나게 함으로써 유럽국가들을 확실하게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되었으며,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가스 공급을 막아서 자국의 셰일 가스를 비싼 가격에 유럽에 판매함으로써 그리고 이번 전쟁으로 유럽 각국이 미국산 무기 구매를 획기적으로 늘리도록 유도함으로써 막대한 경제적 이득도 취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러시아를 전쟁의 수렁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여 러시아의 힘을 빼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미국은 말로는 우크라이나를 수호하겠다고 하지만 막상 우크라이나가 지도상에서 사라지더라도 3차 세계대전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직접 개입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따라서 현재 러시아가 지난해 부분 징집령으로 확보한 30만 병력을 동원하여 준비 중인 대대적인 공세의 성공 여부가 앞으로 전쟁의 전개 방향을 결정짓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쟁이 끝나고 나면 국제질서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모든 전쟁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고 러시아가 패배하지 않는 한 현재와 같은 미국의 패권은 더는 유지되기 어렵고 다극 체제가 출현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러시아를 몰아치고 있지만 소위 글로벌 노스(Golbal north)를 제외한 절대다수의 국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면서도 제재에는 동참하지 않으면서 서방의 사악한(?) 의도에 냉소를 보내고 있다. 심지어 튀르키예는 나토 회원국이면서도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러시아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이번에 미국이 러시아의 해외 달러 자산을 동결하는 혹독한 제재를 취한 결과 국제사회에서 무역 거래에 달러 사용을 회피하고자 하는 탈(脫)달러화가 확산되고 있다. 이는 기축통화로서 달러화의 위상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또한, 미국이 주도하는 G7의 경제적 위상은 갈수록 하락하고 있으며 특히 이번에 러시아를 제재한다고 자기 발등 찍기식 조치 때문에 유럽의 경제는 경쟁력이 떨어져 쇠락의 길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단절된 대리 경제 관계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중국 시장에 매달리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중국, 인도 등 아시아의 거대국가들이 부상하며 영향력을 키워나가고 있으며 러시아 또한 한 축을 이루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이슬람권이 미국과 거리를 두려고 하고 중국 위안화에 의한 원유 거래 결제를 검토 중이며, 중남미에서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공동시장(MERCOSUR) 회원국들이 공동화폐를 추진하는 등 뭉치고 있다.
한국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한마디로 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의 전쟁이 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야 한다. 물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정당하다고 볼 수는 없으나 앞서 보았듯이 이번 전쟁의 복잡한 배경을 고려하면 러시아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진정한 의도가 어떤 것인지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러시아 편을 들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도적인 지원을 넘어서 우크라이나 편을 드는 것도 현명해 보이지 않는다. 국제시회는 선과 악이 대결하는 무대가 아니고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장일 뿐이다. 한국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각각에 대해 갖는 이해관계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한국이 미국의 동맹이라고 해서 미국의 적이 반드시 한국의 적이 될 수는 없다. 미국의 러시아에 대한 이해관계와 한국의 그것이 전혀 같을 수 없다. 달리 말하면 한국이 공연히 러시아와 척을 지을 이유가 없다. 이번 전쟁을 보면서 조선 시대 병자호란의 굴욕을 떠올렸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요즘 ‘가치 외교’를 입에 올리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17세기 조선 조정이 이른바 ‘의리’에 그토록 집착하여 얻은 것이 무엇인가? 개인은 자신의 가치를 위해 처절하게 싸우다 죽더라도 그 개인의 명예는 남는다. 하지만 국가가 자살 행위를 한다면 사라질 뿐이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국가 간 관계에서 가치란 자신의 이익 추구행위를 포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다만 현실적으로 동맹 관계를 고려하면 미국의 요청을 외면하기 어렵겠지만 개인 간에도 그렇듯이 어느 정도 분위기를 맞춰주는 선에 그쳐야 할 것이다. 전쟁이 끝났을 때를 염두에 두어야 하고 러시아는 한국과 이웃하고 있는 나라인 데 반해 미국은 언젠가는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태평양 너머로 물러설 나라이다. 미국에는 러시아의 약화가 바람직하겠지만 한국에도 과연 그럴까? 한민족의 미래는 유라시아 대륙 북방에 있으며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동북아시아 정세 속에서 중국의 견제를 극복하고 남북통일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미국이 러시아와 북한 양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팔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저의가 뭔가 석연치 않다. 또한, 1월 말에 나토 사무총장과 미국 국방장관이 방한하였는데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찜찜하다. 특히 나토 사무총장은 명시적으로 한국도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라고 요청하였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나토정상회의에 초대받아 참석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반러시아 대열에 참여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17-32
첫댓글 이해영 교수의 책과 함께 참조... 때마침 사우디와 이란이 앙숙 족쇄를 깨려고 한다는 역사적 보도가 있었다. 생전에 참 별일도 있다. 모든 가능성은 정치에서 열려있다. 물론 경제적 토대와 관계가 기반이고, 외교적으론 중국의 관여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