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은 50편은 시편의 다른 시들과는 좀 다른 독특한 시편입니다. 다른 시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찬송하거나 지혜의 길을 알려주는 시들이라면 시편 50편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그분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알려주는 시입니다. 그래서 선지서에 나올 법한 내용들이 주를 이룹니다. 선지서에 나오는 주된 내용이 무엇입니까? 선지서는 하나님을 바르게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실제의 삶에 있어서 다른 율법들을 어기면서도 제사만 잘 드리면 된다는 식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백성들을 책망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은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분, 여호와 하나님, 주님이라고 삼중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분이 말씀으로 온 세상을 부르셨다고 고백함으로 시작합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부르심에서 시작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께서 불러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만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세상을 부르십니다. 모든 세상을 불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그 백성들을 모아서 시온산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곳에 임재 하십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영광과 두려움이 공존합니다. 왜냐하면 심판과 함께 오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삼키는 불이 있고 사방에는 광풍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소멸하시는 불로서 임재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4절을 보시면 그렇게 임하실 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판결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분의 백성들은 성도, 거룩한 무리들입니다. 그런데 이 성도들을 원어로 ‘헤세드’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과 인애를 받은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언약을 맺은 자들이라는 구체적인 집단입니다. 1차적으로 이스라엘을 의미하지만 궁극적으로 교회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백성을 불러 모으십니다. 그 백성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 백성입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그 백성과 하나님은 언약을 시내산에서 맺으셨습니다. 그 언약을 맺으시면서 하나님께서 십계명과 여러가지 제사법과 시민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언약에 감사하며 거룩한 삶을 살도록하시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를 바르게 드리고 바른 삶을 통해서 그들이 구별된 거룩한 백성들임을 온 세상에 보여주며 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이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았는지 판결하십니다. 하늘과 땅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언약을 맺을 때 증인이었습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판결이 공의로 심판하신다는 것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로운 것입니다.
7절을 보시면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부르시고 잘 들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14절까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면서 그들에게 바라는 것은 제물자체가 아님을 말씀합니다. 당시에 일반적으로 신들은 사람들이 바치는 제물에 의존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제사를 바치지 않으면 신들은 굶주린다고생각했습니다. 고대 근동의 신화를 보면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그런 인간의 제물에 하나님이 의존하시는 분이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신들과 질적으로 다른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신은 한 분 밖에 없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제물 때문에 그 백성을 책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제물을 안 바친다고 책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수소의 고기를먹고 염소의 피를 마시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15절에서 21절까지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환란 날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인을 대적하십니다. 그런데 그 악인을 잘 보십시오. 16절을 보며 그 악인은아예 하나님과 율법과 언약을 모르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전하기도 하고, 언약을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교훈을 미워하고하나님을 말씀을 뒤로 던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넘기는 것입니다. 아무렇지 않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합니까? 도둑을 보면 그와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동료가 되며 입으로 악한 말을 하고, 그 혀로는 거짓을 꾸미고, 형제를 공갈 협박하고 가족에 대해서 욕을 합니다. 그런 일을 할 때 하나님께서 잠잠하시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분이신 것처럼, 하나님도 악한 것을 좋아하시나 보다, 이렇게 해도 되나보다 하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입니다. 돌아오길 바라면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고 계속 그런 살아가면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책망하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그때는 죄를 낱낱이 드러내셔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22절을 보면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들아, 다시 그분을 기억하라. 그분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여 지키고, 하나님의법을 지키고, 제사를 제대로 드리고, 바른 삶을 살아라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시면 하나님께서 찢어 버리신다고 합니다. 그러면 건질 자가 없습니다. 가장강력하신 전능하신 분이 행하시는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심판 때문에 칭찬 받을 수 있을까요? 마지막 절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와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입니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보이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시인은 이스라엘 가운데 살면서 하나님의 언약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율례를 지키지 않으며 살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임할 것임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살아가지만, 그들 중에 몇몇은 순종하고, 다른 몇몇은 불순종하며 살아갑니다. 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방인과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바칩니다. 언약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법정적인 개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왕이 되시고, 그들의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법정적인 동의로서 언약은 하늘과땅이 증인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언약에 신실치 않은 자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새 언약의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 백성들과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새 언약에서도 하나님께서 요청하는 것은 옛 언약과 같습니다. 하나님께 신실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감사로 제사를 드리며 악인들과 함께 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일에 예배를 감사함으로 신실하게 드릴 뿐만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혹 우리가 실패했을 때에도 예수님을의지하여 회개하고 다시금 하나님을 감사함으로 예배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우리의 예배와 삶이 어떠한 지 되돌아 보게 합니다. 참으로 예배를 구원의 감격과 감사로 드리는지 다시 돌아보도록 합니다. 또 예배 후의 삶이 어떠한 지도 묻습니다. 입으로는 언약을 말하고 성경 말씀을 이야기 하지만, 그 교훈을 미워하고 있지는 않는지, 그말씀을 뒤로 던져버리지는 않는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일에 가담하고 있지는 않는지, 가족들과 다른 사람을 험담하며 살지는 않는지 돌아보도록 합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잊고 살고 있지는 않은 지 되 짚어 보도록 합니다. 전능하신 심판장은 다행히 긍휼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을 다시 기억하고 감사로제사를 드리며 우리의 행위를 바르게 하는 회개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겠다고 하십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을 잊고 살고 있는 것은아닌지 되돌아보며 감사함으로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