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 최미숙
지금 사는 아파트에 입주한 지는 16년이 됐다. 교통도 편리하고 주변도 조용해 더없이 좋았다. 우리 라인만 봐도 몇 집을 제외하고는 처음 살던 사람이 그대로다. 친하게 지내지는 않지만 몇 층 몇 호에 누가 산지는 거의 안다. 또 길 건너에 국가 정원과 순천만생태문화교육원이 자리해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 드나들 수 있고, 정원과 나란히 있는 해룡천을 따라 산책할 수 있어 동네 주민뿐만 아니라 나도 자주 이용한다.
2023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열린 순천만 국제 정원박람회가 목표 관람객 수 60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순천 시장은 성공적인 운영사례를 다른 지자체에 알리는 모양이다. 자신을 얻었는지 임기 중 또 하나의 치적으로 정원 부근에 총 1조 원의 예산을 들여 쓰레기 소각장을 만든다고 한다. 도심 한가운데 그것도 교통량이 가장 많은 시내로 들어가는 입구에 설치하면서 주민 공청회 한번 없었다. 2015년 경기도 하남시에 들어선 ‘유니온 타워’를 그대로 벤치마킹한다고 했다. 대부분 시설을 지하에 두고 자원 순환 시설 지상부에는 주민이 사용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을 만든다는 것이다. 새로 들어설 시설에서는 생활 쓰레기만 취급하고, 냄새나는 음식물과 축산 분뇨 폐기물은 바이오 가스 산업 시설로 처리한다는 계획이란다. 또, 105미터 높이의 굴뚝 위에는 전망대를 만들어 경제효과를 노린다는 설명이다. 주민들이 걱정하는 다이옥신과 냄새, 매연은 과학 기술을 이용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인근 구례군에서 나오는 쓰레기까지 가져 온다는 것이다.
얼마 전 지인이 소각장 이야기를 하기에 설마설마했다. 그런데 여당 대표까지 내려와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다며 순천 시장은 한층 고무되어 있다고 한다. 여당 비례대표 국회 의원 약속까지 받았다는 소문도 돌았다. 계속 티브이에 나와 정원박람회 성과를 알리는 것이 정치 무대로 나가려는 초석이 아닌지 의심도 들었다.
아파트에서는 회사원인 주민이 대표가 돼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반대 투쟁을 한다는 소식이다. 모임 날짜를 알리고 참석하라는 알림 방송이 나오고 연일 시끄러웠다. 길거리에 현수막이 걸리고 집 앞 초등학교에서는 주민 총회가 열렸다. 주변에 사는 주민들과 시청 앞으로 반대 집회를 하러 간다고 했다.
며칠 전 운동하러 나갔다 관리사무소 앞에 사람들이 모여 떠드는 소리가 들리기에 가봤더니 집회를 하고 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나 몰라라 할 일이 아니었다. 운동을 중단하고 갔다. 젊은 대표가 그간 했던 일과 쓰레기 소각장이 들어서서는 안되는 까닭을 설명했다. 담당자 말처럼 아무리 과학적으로 잘 만들었다 해도 날마다 굴뚝에서 나오는 매연은 어찌할 것인지 걱정 됐다. 소각장과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시에서는 타당성 조사 과정에 문제가 없다며 밀어붙일 기세다. 2030년부터는 정부에서 쓰레기 직매립을 못 하게 한다니 지자체마다 후보지 선정때문에 주민들과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어 골치가 아프기는 하겠다. 벌써 여러 지역에서 그 문제로 불협화음이 생겼다는 보도다.
월요일 아침, 출근하려는데 위층 사모님에게 문자가 왔다. 여덟 시부터 시청 앞에 모이기로 했으니 남편이라도 참석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이다. 말하니 안 간다고 했다. 미안하다며 대신 후원금과 퇴근 후에는 힘을 보태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무슨 일이든 앞서서 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었다.
아무리 주민이 반발하고 반대해도 힘 있는 자들이 계획했던 일을 번복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많은 지자체에서 어마어마한 예산을 들여 만들어 놓고 쓸모없이 방치되는 현장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도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떠나면 그만이다. 그게 걱정이다. 더군다나 쓰레기 소각장은 우리 생활과 직결되는 문제이니 우려대로 개인의 이득이나 정쟁의 도구가 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전문 지식이 없어 어떤 것이 옳은지 아직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시에서는 생태를 대표하는 ‘국가 정원’과 쓰레기 자원인 ‘에코자원정원’이 전혀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도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어하는 모양이다. 그것도 이해하겠다. 말처럼만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믿음이 가지 않는다. 아직은 준비 단계로 전략환경영향평가, 주민 공청회와 간담회를 거쳐 올 연말까지 입지를 결정 고시한다고 하니 미래를 내다보는 현명한 결정을 했으면 한다.
첫댓글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도 문제겠지만 그 피해를 직접 당하는 주민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서 현명한 결정을 해야할 텐데요.
갈수록 수 많은 관계자를 아우르는 것이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좋은 결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순천 시민으로서 정말 난감한 문제라 여겨집니다.
주민에게도 좋고 쓰레기 처리도 원활하도록 좋은 방안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걱정이 많겠군요.
서로 좋은 답안을 찾기를 바랍니다.
시민들과 충분한 소통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잘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이해관계가 다 달라서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판단하기가 참 어렵더라고요. 최선의 방법을 잘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지역에서 일어난 일인데 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네요.
그쪽으로 대형 건설사 아파트가 많이 들어올 예정이라던데, 쓰레기 처리장까지 생기는군요.
쓰레기를 안 만들 수도 없고, 걱정이네요.
우리 지역도 몇 년 전에 화장장이 들어온다고 해서 적극 반대했어요. 면민들이 찬성과 반대패로 나뉘어서 갈등이 있었는데 시설이 다행히 들어오지 않아 조용해졌답니다. 개발이니 지역발전이니 떠나서 혐오시설이 들어오면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