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두 장 / 허숙희
며칠 전 부모님 생전 모습을 모아 둔 사진첩을 보다 어머니께서 써 놓은 쪽지를 발견했다. '동생들과 함께 수안보' 라고 쓴 짧고 간결한 내용이었다. 옆에는 어머니 사 남매와 아버지, 외숙모, 이모부 두 분 모두 여덟명이 같이 찍은 사진 두 장도 함께 있었다.
사진에 어머니는 한복을 아버지는 양복을 멋지게 차려 입으셨다. 외가 식구들과 수안보에 있는 어느 숙소 앞에서 활짝 웃고 계셨다. 또 어머니를 비롯한 외숙모와 이모 두 분 모두 꽃무늬가 그려진 크고 작은 보따리를 하나씩 들고 환하게 웃으며 걸어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언제인가 어머니께 동생들과 함께 각자 제일 잘하는 음식을 한 가지씩 준비해서 수안보로 여행을 다녀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마 그때 찍은 사진인 것 같다.
보따리 속에는 어떤 음식들이 들어 있었을까? 어머니는 무슨 음식을 가지고 가셨을까? 어떠한 이야기를 나누셨길래 저리 활짝 웃으셨을까? 동생들과 함께 즐거워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옆에서 빙그레 웃고 계셨을 아버지 모습이 눈에 선하다. 늘 곁에 계실 줄만 알았는데 이제는 그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없다. 부모님 생각이 밀려왔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우리 부모님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두 분에게 미남 미녀라고 말한다. 내 눈에도 곱슬머리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아버지는 고인이 된 유명 배우 신영균이상으로 잘 생기셨다. 반듯한 이마에 당시에는 보기 드문 깊게 쌍꺼플 진 눈매며 입술선이 뚜렷한 어머니 역시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여배우 최은희 뺨치는 미인이셨다. 또 아버지는 건장한 체격에 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시며 누구에게나 너그러우신 분이셨다. 여섯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외롭게 자라 결혼하면 자녀를 많이 낳고 마음껏 사랑해 주리라 생각하셨단다. 그래서일까? 우리 육 남매를 끔찍히 사랑해 주셨다. 어머니는 '만년 공주' 라는 별명이 딱 어울리게 언제나 곱고 화사하셨다. 예쁜 옷을 좋아하셔서 유행 따라 옷을 갖추어 입으시는 약간은 사치한 분이셨다. 음식 만들기를 아주 좋아해서 요리 강습을 자주 받으러 다니셨고 새로운 음식을 많이 만들어 주시며 우리 육 남매를 건강하게 키워 주셨다. 그런 두 분 모두 이제 우리 곁에 안 계신다.
정재봉 시인의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이란 시가 생각났다. '하루 휴가를 받아 오신다면 / 아니 아니 아니 아니 /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 단 오분 /
그래, 단 오분만 온대도 / 원이 없겠다.'
짧은 시지만 부모님을 잃고 부모를 그리워하는 내 마음을 잘 읽어 주는 글이다. 돌아가시고 얼마 동안은 꿈에서 가끔 뵐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그렇게도 만나지 못하고 있다. 두 분 돌아가신지 5년이 지났지만 늘 마음 한켠에 불쑥불쑥 찾아오는 그리움을 숨길 수 없다.
어머니는 사 남매의 맏이었다. 외할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셨다고 했다. 맏이였던 어머니는 결혼 후에도 외할머니 혼자 동생들을 키우며 어렵게 생활하시는 것을 생각하면 늘 가슴이 메어지는 듯 아팠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하셨다. 그래서 돈이 조금 모이면 친정에 논과 밭을 사 드려 친정을 도왔다고 한다. 어느 해에는 친정집 근처에 나온 밭을 사 드리고 김장 담그실 여유가 없어 시장에 버려진 배추 겉껍질을 주워와 김치를 담그신 적도 있다고 하셨다. 그런 어머니께서는 동생들과 사이가 얼마나 각별하셨을까?
외가 식구들과 다정하게 찍은 두장의 사진에서 동생들에 대한 어머니의 각별한 사랑이 그대로 묻어 나는 것 같았다.
부모님과 함께 수안보 여행을 다녀 왔던 외가 식구 중 부모님과 큰이모부, 외삼촌 그리고 막내이모는 이미 돌아가셨다. 이제 생존해 계신 분은 큰이모와 외숙모 그리고 막내이모부 뿐이다.
부모님 돌아 가신 이후 외가 식구 들과는 서로 바쁘다는 이유로 연락이 뜸했다.
이번 추석에는 생존해 계시는 외숙모와 막내이모부께 안부 전화라도 드려야겠다. 어머니가 고이 간직하고 계셨던 수안보에서 동생들과 행복한 추억이 담긴 사진을 다시 꺼내 보았다.부모님 생각이 더 간절하다.
첫댓글 사진은 항상 보는 이를 숙연하게 합니다. 하물며 부모님 모습인데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추석을 맞으니 부모님 생각이 더 간절합니다.
어쩐지. 부모님 닮아 미인이시군요. 하하.
사랑을 듬뿍받고 자라셨네요.
저는 돌연변이랍니다
하하. 저도 황선영 선생님 생각과 같습니다. 글도 잘 읽었습니다.
정말 '오 분만'이라도 부모님이 오신다면 좋겠네요.
공감합니다.
아, 그립습니다.
신영균과 최은희를 닮은 분의 자손이라서 선생님이 아름다우신 거군요.
사진 두 장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셨네요.
부모님 계실때 잘 해야 하는 데, 위를 보기 이전에 늘 눈은 아래(자식)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