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춥지 않고, 봄이 따뜻하지 않고, 가을이 시원하지 않고, 여름이 덥지 않으면 모두 날씨가 이상하다고 말한다. 기온 분석가들은 엘리뇨 현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대체 에너지 사용을 권장한다. 자동차도 전기나 수소 연료로 바꿔야 하고, 난방 시스템도 전기 에너지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번 몽골을 방문했을 때 경험한 것인데 올덴바토르의 공기의 오염도는 서울을 훨씬 초과한다. 중국의 상하이나 북경의 공기보다도 좋지 않았다. 마치 반세기 전으로 돌아간 한국 상황을 보는 듯했다. 그들은 산이나 바다가 없기에 석탄으로만 전기를 생산하는 화력발전소만 있을 따름이다. 비행장에서 수도로 들어가는 먼 거리인데 공항 근처는 공기가 맑았다. 하지만 올덴바토르 도시 안은 형편없었다. 이런 가운데도 살아야 하기에 몽골인들은 모여서 모이고 모여야 하기에 모인다. 20년 북경을 방문한 기억이 날 정도이다.
우리나라도 2월이나 3월이 되면, 삼한사온이라고 하여 변덕스러운 날씨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드러낸다. 요즘 기온도 그렇다. 날씨 탓이고, 인간의 난방이나 자동차의 연료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과연 그럴까? 준비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나? 갑작스럽게 봄에서 여름으로, 겨울에서 봄으로, 가을에서 겨울로 옮겨지면 적응할 것 같은가? 여름을 준비하고, 겨울을 준비하고, 가을을 준비하라는 것으론 생각해 보지 않았나? 준비! 날씨 탓하고, 연료 탓하지만 실제는 얼마나 그것이 우리에게 악영향을 끼칠까? 그런 악영향이 실제라도 여긴다면, 광고도, 제품도, 삶은 제어하거나 자제하면 될 것 아닌가? 심각하다고 말한 떠벌리고 제품 팔아먹을 생각만 하는 장사치들에게 농락당하고 있지 않나? 정치하는 자들이 툭하면 국민을 위한다고 떠벌리면서 실제론 잇속 챙기기 급급한 자들이 아닌가? 누군가의 일감을 몰아줘서 이득을 주려고 대중의 눈과 귀를 막는 자들이 아닌가? 날씨 탓, 공기 탓 그만하고 자신을 돌아보았으면 한다.
교회 생활하는 자들이 툭하면 교회가 마치 동아리인 양, 저희들끼리 대화나 만남을 주장한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르면서 자신의 욕망을 숨긴 채로 자신이 주도하고픈 심정을 드러내서 교제라는 고상한 단어를 들먹인다. 자신이 주도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내세워서라도 조종하려는 사악한 심정을 망토 아래 감추고 있다. 겉으로 아첨하며 지도자를 위한다고 하면서 실제는 자신이 그 덕에 원하는 것을 주도하려는 파렴치한 인간성을 지닌 자가 교회에 이따금 들어와서 미꾸라지 한 마리가 우물 안으로 더럽히는 것과 같다. 누구의 탓이 아니다. 정말 공기가 문제가 되거나 교회의 교제가 걱정된다면, 솔선수범하여 자신이 청결한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무슨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거나 불평한다면, 자신의 속셈을 드러내는 셈이다. 자신이 으뜸이 되고자 하는 교만함이 가득한 자이다. 말끝마다 자신이 힘든 일을 도맡아서 했고 모두 쉬고 태만할 때 열심히 했다고 하면서 약한 사람들을 이리저리로 끌고 다니는 자들이 이따금 있다. 이단성을 지닐 자, 지닌 자가 갖는 성품 중 하나인 것도 모른 채로 자시 우월성 빠진 자들이 이따금 있다. 심한 사온은 인간의 게으름 때문에 하나님께서 마련한 준비의 기간이다. 점차로 덥거나 추워져야 인간은 적응한다. 어느 시점부터 춥다고 하면 편 할 것이라고 여길 뿐 실제로 그러면 우리의 신진대사는 절대로 적응하지 못한다. 서서히 더워지고 추워져야 우리의 몸은 적응하게 돼 있다. 이것을 고려하지 않고 날씨 탓을 하거나 연료 탓만을 한다면, 얼마나 인간이 오래 걸려야 철이 들는지 모른다. 인간의 적응은 형광등처럼 반응이 느리다. 춥다고 해서 나가보면, 따듯하고, 덥다고 해서 나가보면, 시원하다. 이렇게 하면서 우리의 타성이, 게으름이 날씨에 적응하고 변화돼야 하라는 표징이다. 오늘은 어떤 변화에 우리가 적응하는 것인지 간취했으면 한다. 탓을 그만하고 자신을 돌아와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