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글쓰기 - 미선나무 수피
미선나무 수피를 본다. 그런데 사람 이름이 먼저 잡힌다. 아픈 이름, 고운 이름, 겹쳐서 온다.
사람을 떠나 사물로 이동한다. 미선(尾扇)은 부채의 일종이고, 미선나무는 그 열매가 이 부채를 닮았다고 해서 미선나무라고 한단다.
미선나무 수피를 다시 본다. 아무 생각이 없다. 언젠가 진하게 변색되다가 얇게 껍질이 벗겨지면서 툭툭 떨어지겠지.
미선나무는 개나리나 히어리와 같이 한반도 고유종이란다. 그런데 왜 중국에서 만들어진 미선(尾扇)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을까? 잘 모르겠다. 미선이 우리의 고유 부채일 수도 있다. 그것이 궁금해 파고들다 보면 세상 모든 게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선나무 수피를 보며 공부에 대해 생각해본다. 물체에 대한 공부는 어느 정도 가능한데 그것을 쪼개는 분자나 원자 단위의 공부는 못할 것 같다. 어제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아주대 김홍표 약학과 교수의 강의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럼 나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며 말을 할 수 있을까? 광합성으로 만들어지는 포도당의 화학식인 C6H12O6을 나는 과연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김홍표 교수는 이걸 이렇게 말했다. 광합성은 오묘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간단히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물의 전자 두 개가 이산화탄소로 옮겨가는 겁니다. 태양 에너지에 의해서요. 그분에게는 간단하지만, 나는 머리가 쪼개진다. 이럴 때마다 작가는 어떤 분야의 전문가인지 심히 의심이 간다. 그럼 나는 또 머리를 굴린다. 작가라기보다 글을 만지는 편집자라고. 그것은 전문가 냄새가 난다. 하지만 이제 나이도 있고, 그렇게 잘 하지도 못했고.
마지막으로 미선나무 수피를 본다. 한반도 자생인 미선 양이 사망했을 때 나는 월간말지에 다니고 있었다. 이제는 정치사회에 둔감해졌다. 눈과 귀는 열고 있지만 그때처럼 치열하게 사고는 하지 않는다. 꼼짝 않고 서 있는 나무를 알려고 기를 쓰고 있는 중이다. 이것도 힘들어 죽겠다. 연결이 잘 안 된다. 그래도 가야겠지.
문득 미선나무 열매가 익어갈 때가 기다려진다. 그때 가면 나의 나무 글쓰기 소재는 열매가 되어 있으려나. 그래 계속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