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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론적 세계관으로 평화통일을
--유물론과 관념론의 극복으로--
경기대학교 노태구 교수
Ⅰ. 공산주의 사상체계: 철학은 끝났다고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북한의 세계관을 이루고있는 ① 유물론(그리고 관념론) ② 변증법(그리고 형이상학) ③ 계급투쟁과 독재 ④ 경제이론을 순서로 공산주의 사상을 요해해볼 필요가 있다. 지식으로서 얻으려고만 하지 말고 얘기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잘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들은 모두 새로운 이론이다. 다른 책에는 써있지도 않고 있을 수가 없다. 공산주의비판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맑스주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몇 사람인가? 『자본론』을 읽어보고서 감탄하고서 머리를 숙이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얘기하는 것을 잘 기억하여야 한다. 책에 써있는 것하고 말하는 것이 같지 않다.
여기서 유물론과 관념론에 대해 맑스주의자들의 견해를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맑스주의의 견해와 우리의 입장을 말해보도록 하자.
옛날부터 유물론이다 관념론이다 이렇게 말한 것은 없다. 이런 말을 쓰게 된 것은 18C에 와서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보게 되면 오래전부터 유물론인가 관념론인가가 제기된 것만은 사실이다. 또 이를 철학의 기본문제로 보았다.
그래서 맑스주의자들은 유물론과 관념론의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철학이 끝났다고 했다. 유물론과 관념론, 변증법과 형이상학의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철학에서 할 것이 없다. 남은 것은 변증법과 논리학밖에 없다고 엥겔스가 얘기했다.
세계는 물질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신은 물질의 반영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유물론자의 주장이다. 인간 밖에서 인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그런 신비로운 존재가 있는가 없는가가 먼저 문제가 되었다.
사람은 다른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운명에 대해 관심이 있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되겠는가? 다급하니까 자기운명을 두고 점치고 사주팔자를 보는 것이 아닌가? 내 운명이 어떻게 되겠는가? 정말 절대적 신비로운 존재가 있어서 내 운명을 뒤에서 다 이렇게 좌우해주는 그런 존재가 있는가? 아니면 그것이 현실적인 조건에 의해서 사람의 노력에 의해서 규정되는가? 이런 문제가 중요하다. 남북의 평화통일을 위한 정치이념 모색에 있어서 유물론과 유심론의 극복으로 바람직한 세계관의 정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Ⅱ. 혁명론에 대해: 숙명론
1. 유물론: 세상에는 물질만
세상에 신과같은 존재가 있겠는가? 아니 그런 존재가 없다. 세상에 있는 것은 물질과 인간 밖에 없다. 존재하는 것은 다 물질이다. 이런 식으로 사고하는 것이 유물론이다.
한편 하나님(天道)이라고 할 때는 사람에 관계없이 작용하는 도리로 생각했다. 그런데 처음에 형이상학이나 관념론이 나올 때는 자기(사람)의 운명과 관련이 있어서 나왔는데 그것이 왜 나왔는지 잘 알지를 못하고 논의를 해왔다.
그래서 사람들이 외부에 대한 지식이 자꾸 넓혀지면서 세계는 물질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따라서 신비로운 물질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유물론을 주장하면서 신비로운 존재가 있다는 유신론을 반대했다.
또 변증법과 형이상학이 나오는 것도 우리 운명은 타고 나는가? 변경시킬 수 없는가? 아니면 그것도 변경시킬 수 있는가? 아니 팔자야, 억지로 고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숙명론이다.
숙명론과 혁명론, 혁명이라는 말은 중국에서 나왔다. 원래 혁명이라는 것은 황제가 한울의 명에 의해서 황제노릇을 한다고 주장해 왔다.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기원전 8세기 정도, 중국에서 여왕의 시대에 너무 왕이 못되게 구니까 왕을 내쫓고서 귀족공화정치를 상당히 오랫동안 했다. 그 때가 최초의 혁명이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한울의 명령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나쁜 짓을 하면 한울의 명령이 달라질 수 있다.
2. 중용의 기본사상
유교사상의 근본의 하나가 한울의 명령에 의해서 모든 성격이 규정된다는 것이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만든 것이 「중용」이다. 중용의 기본사상은 다음과 같다.
天命之謂性이요[한울의 명령이 인간(사물)의 성격이다]
率性之謂道요[본성에 따르는 것이 도(리)다]
修道之謂敎이라[도를 닦는 것이 (종)교다]
중국 사람들이 한울을 말했지만 구체적인 한울님의 지위에까지는 생각 안했다. 종교적인 생각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본이 되어 만든 것이 유대교로 시작한 기독교 사상이다.
이스라엘인들은 이 분야에서는 아주 발전된 사람이다.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정월대보름 날이면 달(님)에 절하고 열심히 빌고, 산에 가면 산신령이 있고, 바다에 가면 용왕이 있고, 뱀한테 물려도 우수한 무엇을 가지고 있는 줄 아는 물신숭배로 해서 물건에도 무슨 신비한 힘이 있는 것을 생각했다.
그런데 점차 그것이 발전하면서 산에 가서는 더 바랄 것이 없이 산신령한테만 고사를 드리면 아무 일없이 무탈하다는 생각에 이르면서 자유가 더 늘어나게 된다. 바다에 가서도 물고기를 아무리 잡아도 여왕한테만 고사를 드리면 된다며, 사람의 행동에 자유가 그만큼 높아지게 되었다.
그 다음에는 달이다 햇님이다, 그 다음에는 유일한 하나님이다. 이렇게 하나님만 믿기 시작하면서 다른 귀신은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다. 따라서 사람의 자유가 상당히 불어났다. 일신교를 만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람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사상수준이 높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에 와서 볼 때는 물론 과학적이진 않지만 사람의 활동의 자유를 넓혀준다는데 있어서는 일신교(一神敎)를 먼저 창시한 것은 아주 발전된 것이다.
3. 정신이란 무엇인가?: 데카르트
그 다음에 사람이 팔자를 어떻게 타고 나왔는가? 사람들이 노력을 할 탓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차 불어나서 이들은 사람의 운명을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변경시킬 수 있다. 혁명도 할 수 있다며 숙명론을 반대하는 사상이 나오게 되었다. 이것이 세상을 변화·발전시킬 수 있다는 사상의 시초이다.
그런데 처음에 사람들은 자기는 잘 아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꾸 우리는 세계가 무엇으로 되어 있는가를 생각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본질이 무엇인가? 그 기서는 남자와 여성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지만 물과 불에 관해서 많은 생각을 한 것같다. 물이 인간에 필요했고 또 동물보다 인간이 우수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불을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불이 인간에게 온도를 보존해주고 짐승들과의 싸움에서도 불이 큰 무기가 되었다. 그런데 물과 불이 상극이다. 물, 불을 과학적으로 안 것은 아니지만 상극으로 시작한 것은 동·서양이 같은 것같다. 동양에서는 수·화·목·금·토로서 오행설이다. 서양에서는 물을 먼저 들고 불, 공기(동양에는 없다), 흙(동·서가 공통적이고)으로 4개를 들었다.
그런데 자기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집에서 아이들에게 우리가 몇 명 있느냐고 물어보면 하나같이 자기는 계산 안 한다.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자기를 완전히 다 아는 것으로 생각했다. 인간의 발전 수준이 낮을수록 자꾸 그런 생각을 한다. 그 다음에 자기자신의 특색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여기서 이제 인간의 정신과 육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정신이 없게 되면 사람의 구실을 못하는 것은 뻔하다. 대화시에 정신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정신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잘 몰랐다.
데카르트는 프랑스 유물론의 창시자라고 말할 수 있다. 물리학자이고 수학자(해석기하학의 창시자)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무엇인가? 손인가 발인가 가슴인가 머리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아니다. 그럼 내가 무엇인가? 나란 도대체 무엇인가? 내가 진짜 있는가 없는가 자꾸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 자체가 내가 있다는 것이 아닌가? 내가 없다고 생각할수록 내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이래서 그는 “내가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고 하였다.그렇게 힘든 문제이다.
정신이란 무엇인가를 몰랐다. 아마 그렇게 생각한 것같다. 꿈꿀때 돌아다니면서 여러 생각을 하다가 깨게 되면 없어진다. 그러므로 자는 동안에 정신이 마음대로 돌아다녔다 깨니까 몸으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금방 같이 얘기를 나누던 사람이 심장이 멎었다. 정신이 없어졌다. 정신세계로 갔는가? 심지어는 정신이 가슴(심장)에 있는가 생각했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게 되면 정신이 여기서 나갔다, 위대한 심장이 멎었다 하면서 심장이 생명의 중심으로 생각했다.
Ⅲ. 물질인가 정신인가?
1. 생명의 중심: 가슴이 아니라 머리(뇌수)
생명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머리에 있다. 머리에서 다 지시를 한다. 뇌수라고 하는 것은 인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모든 동물에 비해서 월등히 앞서 있다. 인간은 뇌수의 무게가 인간 육체의 1/47밖에 안 되지만, 인간과 가깝게 발전된 동물인 침팬지는 1/130이다. 사자는 1/700이다. 그래서 뇌수의 발전 정도가 유기체 발전정도를 표시하는 기본기준이 된다.
인간의 1/47밖에 안 되는 뇌수가 혈액의 1/4을 소모한다. 어떤 사람은 이를 알고 많이 먹으라고 하지만 이는 칼로리로 혈액은 아니다. 뚱뚱해지게 되면 보장하기가 더 힘들어진다. 육체노동을 하는데는 칼로리가 많이 필요하지만 정신노동을 하는 데는 혈액이 필요하다. 산소의 1/4을 뇌수가 처리한다.
거기에 비하면 정부가 뇌수역할을 한다고 하지만 인간의 뇌수가 사용하는 데 비하게 되면 얼마 되지 않는다. 이래서 인간의 정신이 육체를 관리하는 모든 생명활동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사실은 심장이 뛰는 것도 일일이 뛰라고 지시를 받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심장도 나빠져서 호흡이 곤란해지면 호소한다. 아프다는 것이 그 상처부위가 아니라 머리에서 아파한다. 한방일을 하는 사람들이 발 뒤꿈치에 침을 몇 대 놓고 난 뒤에는 아무리 짤라도 괜찮다. 아픈 줄을 모른다.
2. 한의학에 대해: 차원의 문제
타쉬겐트에 있는 한인(韓人)이 항일투쟁 당시 거기 가서 살다가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가는데 러시아 젊은부부가 큰 도둑놈이라고 하도 대단히 욕을 하며 물어보니까 "우리 처가 안면이 찌그려 있었는데 돈만 떼먹고 하나도 고쳐주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래서 바늘이 있느냐고 물어 바늘을 달라고 하여 몇 대 놓으니까 바로 낫게 되었다. 그 다음에는 이 사람이 감탄하여 내리자고 하니까 트렁크를 다 주고, 나중에는 자꾸 선전하여 타시겐트에 돌아가 보니 사람이 너무 찾아와서 야단이 난 일이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맥을 보고하는 신경체계를 끊어놓는 것이다. 그래서 이빨 아픈 데가 있으면 영원히 이빨 아프지 않게 고쳐준다고 하였다. 머리에 다 집중되고 머리에서 관리한다. 신경체계가 어느 정도 발전하게 되면 정신이 생기는데, 그것을 모르다 보니 정신이 처음부터 그 육체와는 달리 있어 오히려 육체를 일어나라 하면 일어나고, 가자 하면 가고 육체를 지배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정신인가 육체인가, 물질인가 정신인가 하는 이런 문제를 가지고 생각하게 되었다. 관념론자는 정신이 오히려 독립적으로 육체와 떨어져서 돌아다니다가 온다고 생각했다.
3. 꿈과 체면술
그런데 통속적인 얘기지만 꿈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히 수면을 하는 사람은 꿈을 꾸지 않는데, 숙면이 안 된 상태에서 다른 신경세포들은 잠을 자는데 몇 개가 잠자지 않고 있는 것이 있다. 그런데다가 내·외부 자극이 들어가게 되면 이 놈이 다르게 자의적으로 연결시킨다. 엉뚱한 것을 연결시켜 정신작용을 한다. 그놈의 잘못된 연계가 연쇄반응을 불러일으키게 해서 자꾸 오랫동안 꿈을 꾸게 한다. 그러다가 육체를 움직일만할 때는 육체가 반발한다. 그래서 정상적인 세포연계관계가 회복되면 꿈이 없어진다. 이것이 꿈이라는 것이다.
이것과 비슷한 상태가 최면술이다. 최면술이란 원래 정신의 작용이 한 곳에 자꾸 자극을 주게 되면 다른 부분은 정지상태로 들어간다. 잠자는 상태로 들어간다. 어린아이가 자꾸 보채면서 울고 자지 않을 때 어느 한 곳에 집중하면 다른 곳은 저지상태에 들어간다. 근본원리는 그런 방법으로 한다. 어느 하나를 오랫동안 집중시켜 다른 것은 잠자는 상태로 되어 남아 있는 데다가 이렇게 하라고 암시를 준다. “당신은 둥둥 떠올라 가게 된다” 이렇게 말하면 이를 믿고 그대로 떠올라 간다. 저기 은하수가 있는데 건너가시오 하면 건너간다. 저기 조그만 집이 있는데 집을 두드리면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올 것이다 하면 다 말을 하게 된다. 꿈은 몸까지 움직일 정도는 못되는데 최면술은 몸까지 움직인다. 이것이나 정신통일은 다 비슷한 원리이다.
4. 신비롭게 생각말아야: 정신, 지각, 감각, 기억, 표상, 이론
우리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는가 하면 이를 신비화하지 말라는 것이다. 신비롭게 생각할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정신은 어떻게 해서 발생하는 것인가? 동물들도 외부세계에 관한 것들을 인식한다. 인식을 하는데 감각적인 인식을 한다. 지각이란 이것을 가방이다 하는 것인데 감각은 아프다, 따갑다, 차다 식으로 하는 것이다. 표상이란 기억을 하는 것이다. 지각만 하면 보고 있는 동안은 보이지만 눈을 감으면 안 보인다. 표상은 눈을 감아도 머리에 등록이 되기 때문에 기억할 수 있다. 기억을 할 때부터는 표상이다.
동물들도 기억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생활의 욕망이 너무 단순하기 때문에 기억을 조금밖에 못한다. 자기의 욕망과 관계없는 것은 기억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매는 사람보다도 8배나 멀리 볼 수 있다. 그러나 기억하는 것은 몇 가지 안 된다. 자기 먹이감인 토끼, 꿩 이런 것들은 기억해두지만 다른 것은 아무런 관심이 없다.
애국주의사상이 없는 사람들이 애국주의에 관한 얘기를 아무리 해도 관심이 없는 것처럼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은 하지만 기억의 양이 대단히 작다.
그 다음에 동물들은 자연이 제공해주는 조건을 직접 그대로 이용한다. 그것을 개조해서 이용하자는 생각을 못한다. 개조하려면 내부연계를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외부를 반영한 것을 가지고서 연결시켜서 내부연계가 무엇인가 하는 것까지도 알아야겠는데 그것을 안한다. 기억을 연결시키는 능력이 아주 약하다. 개같이 영리한 고등동물도 기억을 연결시키는 것은 4개밖에 안 된다. 서커스의 개는 산수를 푸는 것은 조건반사이다. 1을 쓰고 3을 쓰게 되면 먹이를 주니까 움직이지 계산을 하는 것이 아니다. 4개 밖에는 연결시키지 못한다. 그러므로 책상 한번 두드리고, 불을 켜고, 종을 울리고, 문을 열어주고 하면 거기까지는 연결시킨다.
인간은 아무리 머저리도 25개 정도는 연결시킬 수 있다. 그리고 좀 훈련을 하게 되면 무제한으로 한다. 또 그것만으로 자꾸 연결시키는 연습을 하게 되면 무당같이 또 장님들이 맥보고 뭐 알았다고 하는 것으로 발전한다. 그런데 사람은 연결시키는 훈련을 하다보니까 그 다음에는 구체적인 사물이 없이 지식을 가지고 자꾸 연결시켜서 보통 감각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그런 것까지 다 연결시켜서 생각을 한다.
빛의 속도는 초속 30만Km이다. 지구를 7번 반을 돌 수 있다. 추상해서 알 수 있지만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가를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그런 것까지도 다 개념적 추리를 통해서 인식할 수 있다. 자기 지식을 가지고 조립하고 연결시켜 집도 지어보고 설계도도 만들어보고 이렇게 해서 객관화한다. 그것이 언어고 문자이고 이론이다. 추상적으로 사유화할 수 있는 것을 객관화해 놓은 것이다.
5. 관념론(정신을 신비화해서): 유물론은 정신을 물질의 반영이라고
아프리카에서 영국노예주가 떨어져 있는 동무에게 과일을 보냈다. 그런데 흑인노예가 바구니에 과일을 가지고 가다가 고개를 넘다가 목도 마르고 배가 고파서 먹었다. 그런데 과일받은 사람이 몇 개 먹었구나 하고 따지니까 본 사람도 없는데 기가 막혔다. 가만 보니까 편지를 보고서 성을 낸다고 보고 다음에는 편지를 돌맹이로 지져놓고 과일을 먹었다. 또 먹었구나 하고 얻어맞았다. 그렇게 추상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모른다.
우리는 사고한 것을 객관화해서도 표현한다. 이것이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사상이고 정신이다. 이것이 객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정신이다. 그런데 이것을 신비화해서 물질을 떠나서 정신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관념론이다. 이렇게 얘기해도 귀신을 믿는 사람은 또 믿는다. 이것 때문에 정신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가, 정신이 더 큰 작용을 하는가 하고 계속 싸워왔다.
좀 더 힘든 문제로 들어가 보자. 여기에 관념론과 유물론이 동양철학에서는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이(理)가 먼저냐 기(氣)가 먼저냐 하며 논의가 거듭되어 왔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해명을 했는가? 정신이 어떻게 발생했는가? 정신을 그전에 유물론자들은 물질의 반영이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반영같지는 않다. 우리가 무엇을 먹고 싶다고 하는 것이 무슨 반영인가? 우리 육체가 요구하는 욕망이지 그것이 어떻게 반영인가?
소설에서는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실제로 진정한 생활을 즐기려고 하는 사람은 소설로서 만족하지 못한다. 우리의 정신은 반영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의 표현이다. 인간의 욕망의 표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을 떠난 정신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인간이 정신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무슨 역할을 하는가?
인간이 자기의 욕망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고 자기 힘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인간이 더욱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을 보장한다. 그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맑스주의자들은 왜 사람이 운동하는가? 모든 물질이 운동하는 것은 사실인데 왜 모든 물질이 운동하는가? 그것은 묻지 말라고 했다. 왜 물질이 존재하는가 하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Ⅳ. 3대 생명력의 결합을: 물질, 정신, 정치 개조론
1. 운동의 목적: 자기 생명체의 보존을 위해
그런데 인간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내가 여기 왜 나왔는가? 집에서 누워있지 않고 왜 나왔는가? 강의하러 나왔다. 왜 강의를 하는가? 듣는 사람들에 이를 인식시켜서 우리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다 동기가 있는데, 인간에게는 이런 동기가 없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다 자기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서,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목적이 없이 행동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기준으로 해서 보게 되면 다 운동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은 자기생명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자기생명체를 보존하자는 것이 목적이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수준이 낮을 뿐이지 자기 생존을 보호하기 위해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자기가 살기 위해서 쥐는 쥐대로 말은 말대로 소, 사자도 자기의 목적을 추구하며 행동하는 것이다. 식물도 마찬가지이다.
식물은 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가? 모두 목적이 있어서 꽃을 피운다. 과일도 왜 씨를 만들고 사과껍질은 보기 좋게 하고 이는 동물이 다 먹으라고 한 것이다. 씨를 널리 뿌려달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추리를 해서 결론을 내린 것이 모든 사물은 자기보존성을 가진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쨌던 차이가 없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공통적인 것이 전혀 없는 것이 있을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가장 발전된 존재로서 자기를 보존하자는 능력이 가장 발전되어 있다. 그럼 가장 발전하지 않은 단순한 물질에게도 운동을 하기 때문에 자기를 보존하는 능력이 있을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2. 생명체는: 유기체(단백질, 핵산, 효소)의 결합으로
그런데 여기서 생명체는 어디서 나왔는가? 처음부터 생명체가 나온 것이 아니다. 지구가 약 45억 년 전에 만들어졌는데 (어떤 사람은 45억 5천만 년 전에 만들어졌다고도 하는데) 처음에는 가스가 합쳐져서 돌다가 만들어졌다. 그 때는 생명체가 있을 수도 없었다. 단순한 물질밖에 없었다. 그것이 이럭저럭 결합되면서 생명체로 생명을 가질 수 있는 정도로 결합되게 되면 자꾸 능동성이 강화된다. 물질은 많은 요소가 결합될수록 자기를 보존하는 능동성이 강화된다. 주동성과 능동성이 강화된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유기체를 구성하고 있는 기본물질이 무엇인가? 단백질이다. 단백질, 핵산, 효소 이런 몇 가지들이 우리 육체(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기본요소이다. 생분자라고도 한다. 이것은 많은 것이 결합되어 있다. 이는 너무도 단위가 작기 때문에 몇g, 몇mg으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래서 비율로서 표현하는데 물분자(H2O)의 경우 이것이 결합된 분량을 비율로 18로 계산한다. 단백질은 많이 섭취할수록 좋은 것인데 제일 낮은 것은 분자량이 1만, 높은 것은 10만개이다.
우리의 생명을 거의 체현할 수 있을 정도로 결합된 것으로 DNA(핵산의 한 종류)는 분자량이 가장 무거운 것이 800억이다. 그러므로 얼마나 많이 결합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말해 준다. 제일 단순한 생명체를 연구할 때 대장균을 많이 취급하는데 대장균의 분자량이 5,000개이다. 단백질이 3,000개, 핵산이 1,000개, 그 외 다른 것이 1,000개로 하여 5,000개가 들어 있다. 균 가운데 가장 단순한 균이기 때문에 실험실에서 많이 취급한다.
인간은 어떤가? 세포가 60조 내지 100조가 된다. 결합이 계속되어 인간의 육체가 되었다. 뇌수만 해도 140억개이다. 140억개는 우주의 발생연한이 140억년이 되어 기억하기가 좋다. 요즈음에는 나사가 137억년이라고도 발표했다.
3. 결합해서 능동성과 주동성이: 하나의 철학적 원리가
그런데 인간은 이것만 결합시킨 것이 아니다. 이것만 가지고는 동물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가 돼서 자기가 만든 창조력을 체현시킨 물질적 재부를 협조하는 요소로 참가시킨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면 산 인간도 들어가 있지만 노동수단으로서 기계기술의 재부도 다 들어가 있다. 협조하는 관계도 끝이 없다. 동물은 본능적으로만 협조하지만 목적의식적으로 해서 자꾸 사회적 관계를 개조하면서 확대된다. 협조의 범위가 인간적인 것에서도 넓어지고, 원시사회에서는 사람들의 수는 100명을 넘지 못했다. 베이징사람들이라고 하는 것도 50억년 전 사람인데 한 집단이 30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노예사회로 들어오면서 자꾸 침략을 하다보니 강제적이라도 아무튼 1000만-2000만으로 결합시켰다. 오늘에 와서 큰 나라들은 몇 억씩이나 결합되었다. 중국은 13억이다. 그러므로 잘만 관리하게 되면 별난 천재가 다 나올 수 있다.
결합에서 이런 새로운 능동성, 주동성이 나온다. 여기에는 하나의 철학적인 원리가 들어 있다.
4. 연속적인 동시에 불연속성이: 동일성과 차이성으로
모든 존재는 연속적인 동시에 불연속적이다. 세상에 완전히 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완전히 차이만 있고 공통성이 없는 것도 있을 수 없다. 모든 사물이 동일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차이성을 가지고 있다. 공통성, 동일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물은 하나도 있을 수 없다. 또 차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물도 하나도 없다.
그러면 동일성과 차이성은 무엇과 관계되어 있는가? 연속되는 것은 동일성에 의해서 연속되고 분열되어 있는 것은 차이성에 의해서 분열되어 있다. 사물은 분열되어서 개별적으로 불연속적으로 존재할 수도 있고 결합되어 연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두 가지 형태이다. 거기에 따라서 동일성과 차이성이 두 가지 관계로서 모든 것이 보편적으로 되어 있다.
그러면 사람이 자기 존재를 보존하기 위한 성질이 있고, 동물도 식물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여기까지는 명백하다. 그렇다면 인간과 원자가 다르다 하더라도 공통성이 없을 수는 없다. 아무리 인간과 소립자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운동을 한다는 데서는 공통성이 없을 수 없다. 운동은 꼭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논리를 거꾸로 해서 들어가야 한다. 발전된 존재일수록 자기를 보존하는 능력이 크다. 발전이 덜 된 존재일수록 약하다는 논리를 말하지만, 그러나 수준이 다를 뿐이지 모든 사물이 운동하는 것처럼 운동의 원인도 공통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사물은 다 자기를 보존하자는 성질을 가진다는 것을 인간중심정치철학에서 처음으로 제기하였다. 따라서 자기를 보존하자는 성질이 모든 사물이 운동하는 것처럼 운동의 원인으로 다 보편적으로 가진다. 운동의 원인도 공통성을 가지고 운동하는 데서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공통성을 가진다고 여기게 되었다.
우리의 현재의 인식능력으로서는 다 차이를 보는 것이 아니다. 너무 작은 것은 볼 수가 없다. 현미경으로도 볼 수가 없다. 현미경을 발전시켰지만 그것 가지고는 안 된다. 보이지 않는 물질은 전연 볼 수가 없다. 빛을 이용해서 보아야 하는데 그것 가지고는 볼 수가 없다.
5. 동화작용과 이화작용으로: 복제로 유전이 가능할 때 생명체가
자기보존성이 계속 발전해서 자기를 보존하려는 능력이 주동적이며, 능동적인 능력이 자꾸 발전되어서 사물과의 관계에서 다른 사물을 끌어당겨서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조직화한다는 것이 동화작용이다. 누에가 뽕잎을 먹고서 동화작용으로 크나가듯이, 그리고 자기조직을 파괴하면서 움직이는 것이 이화작용이다.
동화작용을 하게 되면 동화작용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물질의 주동성과 능동성이 발전하게 되고, 그것이 더 발전해서 자기를 복제해서 후대를 번식시킬 수 있는 유전을 할 수 있게 될 때 생명체가 나온다.
그 다음에 이 생명체가 결합되어 발전해가는 과정에 생명활동을 주동성, 능동성으로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 사람이 사물을 반영해서 그것을 상대방에도 어떻게 해서라도 표현해서 수백만년동안 안타깝게 노력하는 가운데 소리도 질러보고 해서 만들어 낸 것이 언어이다. 언어를 통해서 객관화시킨 것이다. 이렇게 해서 문자로도 만들고, 언어를 기초로 해서 설계도를 만들어 기계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Ⅴ. 한민족공동체의 건설: 핵융합 달성의 의미
1. 인간중심정치철학: 인간론적 세계관으로
그런데 유물론자들은 이런 자기를 보존하자는 성질이 물질적 존재에 있다고 하는 것을 부인했다. 이 말만 하면 큰일 날 것같이 하며 관념론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해서 유물론도 일면적이고, 관념론도 일면적이다. 관념론은 자기보존성이 발전해서 나온 정신을 육체를 떠나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했다. 유물론은 인간의 능동성을 물질의 반영이라고 보았다. 두 가지 다 잘못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중심철학에서는 완전한 유물론도 아니고 완전한 관념론도 아니다. 모든 사물이 모두 주관적인 성질과 객관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객관적인 성질은 양적으로 잴 수가 있다. 자기보존성의 주관적인 성질은 양적으로 잴 수가 없다. 몇 g 짜리, 몇 cm 짜리, 몇 입방으로 생명,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육체같은 것은 객관적인 것도 다 양적으로 잴 수 있다. 근본적인 차이가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의 차이이다. 주관적인 것이 자꾸 발전한 것이 정신이고 객관적인 것은 무한히 결합되어 비행기, 군함으로도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처음으로서 유물론과 관념론을 두 가지가 다 일반적인 과오를 범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서 모든 사물은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보아야 한다. 인간이 가장 발전된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 중심으로 보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발전된 인간이 발생되기 이전의 세계는 자연 하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간이 발생한 이후에서 지구에서는 벌써 인간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다. 지금 지구가 발생해가지고서 만들어진 모든 동식물의 90% 이상은 멸종되었다. 앞으로는 인간이 봐주지 않으면 멸종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만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자연의 예속에서 벗어나서 자연에서 나왔지만 발전하는 과정에 자연의 예속에서 벗어나서 자기의 힘으로 자기의 운명을 개척해나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2. 핵융합에 대해
자연의 법칙을 인식하고 자연을 개조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자연의 힘을 자기의 힘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아직도 인간이 세계의 완전한 주인이 못되고 초보적이지만 자연에 대해 볼 때는 주인의 지위는 차지하고 있다. 예속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인간은 발전하면 할수록 발전 속도가 빨라진다. 지금은 아직도 지구 하나도 자기가 관리하지 못하지만 앞으로 500년이 지나면 관리하게 된다. 핵융합이 달성되어 산업에 작용되면 에너지를 마음대로 쓸 수가 있게 된다. 공짜로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되고 모든 자원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지진, 비, 눈이 오고 하는 것도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 다음에는 태양계를 우리가 지배할 수 있다. 수성, 금성, 지구, 화성까지는 지구의 천체이다. 행성의 성질이 비슷하다. 그런데 목성(지구의 300배)부터는 다른데 목성은 대부분 수소나 헬륨으로 되어 있다. 또 바다에 있는 것이 모자라면 거기에서도 얼마든지 갖다 쓸 수 있다. 태양열도 이용할 수 있다. 1초 동안에 6억7천만톤의 수소핵이 타서 헬륨으로 변하는 과정에 0.7%의 질량이 열로 된 것이다. 1938년에야 발견된 것이다. 거기서 나오는 열의 1/몇억 도 쓰지 못하고 있다. 태양이 지금처럼 타다가는 30억년 밖에 지탱하지 못한다. 그저 버리고 있다. 만일 태양계를 지배하게 되어 연소하는 비율을 제한한다면, 사람도 너무 똑똑하면 관리하기 힘들듯이, 천체도(태양은 천체가운데 중간급인데) 태양의 질량(무게)의 절반만 줄여도 수명이 100억년(지금은 사람나이로 50세 정도인데)에서 1천억년, 1/10로 줄이면 몇 조로 늘어나게 된다.
우리가 거저 쓰는데는 연소율을 1/10으로만 줄이게 되면 우리는 몇 조년 계속 이용할 수 있다. 그래서 현재의 창조적 능력으로는 지구를 완전히 지배하는 것이 당면목표지만 그 다음에는 태양계를 지배한다. 그 다음에는 태양계가 속해 있는 은하계 우주를 지배한다. 이것은 조금 힘들다. 은하계 우주는 좀 크기 때문에 직경이 빛의 속도로 10만 광년이기 때문이다.
괜히 옛날 사람들이 시 짓고서 별이 어떻다 했지만 그것은 먼 데 있는 태양이다. 은하수라는 것이 별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집중되어 은하계를 이루고 있다. 대체로 4만광년을 중심으로 해서 집중되어 있다. 우리는 그 중심으로부터 4만 광년 떨어져 있다. 달은 가깝다. 태양과의 거리가 1억5천만 Km 인데 빛의 속도로 하면 8분 걸린다. 그런데 자연계에서도 먼 데 있는 천왕성같은 것은 우리의 30배 이상이나 멀다. 며칠 걸린다. 따라서 태양계를 관리하는 것은 주요과업이지만, 이것이 끝나고 나면 은하계를 지배해야 된다.
그런데 천문학자들은 200만년 후에는 이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 정도로 내다보고 있다. 그래서 제발 좀 정신을 차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만 하면서 하늘이 높다고 해서 9만리 장천(長天)이라고 했는데, 9만리를 10리를 4Km 로 해서 보면 36만 Km 밖에 안 된다. 1초 동안에 30만 Km를 가는데 9만리라는 것이 36만 Km밖에 안 된다. 이렇게 되어서 지금은 인간이 아직도 작은 지구에서 주인노릇을 하지만, 물론 산업혁명이 일어나서 기계를 써서 우리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 3-400년 밖에 안 되지만, 앞으로 3-4천년, 3-4만년, 3-4억년 자꾸 이렇게 해서 사람이 자만하지 않고 계속하여 발전하게 되면 세계의 주인으로서의 지위가 높아져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인간을 중심으로 해서 세계관을 보아야 한다. 인간은 자기만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유물론과 관념론의 일면성을 극복한 인간중심의 세계관으로 한민족공동체 건설로 평화통일을 이루어내는 정치철학적 기초를 확립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