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살다보면 농사뿐만이 아니라 이것저것 손수 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목수 일도 그렇다. 창고나 간단한 가건물 정도는 손수 짓기 마련이다. 이 때 수직과 수평 보는 법만 알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이조차도 한동안 손을 놓고 있다 보니 쉽지가 않았다. 머리가 녹이 쓿었는지 시행착오 투성이다. 한 달 전쯤, 우리 토종 과일나무 시험포에 퍼걸러([pergola]. 일본식으로 ‘파고라’라고도 한다.)를 세우기로 했다. 퍼걸러는 마당이나 뜰 같은 곳에다가 등나무 같은 덩굴성 식물을 올릴 수 있게 만든 장식을 떠올리면 쉽다.
비록 간단한 구조물이라도 설계를 하고 거기에 맞추어 자재를 준비해야한다. 그럼에도 그냥 머릿속에 대충 떠오르는 대로 방부목을 비롯한 자재를 주문했다. 양이 얼마 안 되니까 배달이 안 된다고 해서 이웃 도움을 받아 트럭으로 자재를 실어왔다.
근데 막상 작업을 해보니 어림도 없다. 나 자신에게 실망할 정도였다. 이번에는 아내에게 설계 도면을 그리게 하고, 여기에 맞추어 추가 주문을 하고 배달을 애원해서 이어서 일을 했다. 근데 마무리로 들어가면서 이마저도 부족하다는 게 드러났다. 도리 하나, 지네발 두 개가 부족한 게 아닌가. 그동안 건축 쪽으로 머리가 정말 많이도 녹이 쓿었다는 느낌이다.
참 난감했다. 저번에 신세진 이웃한테 차마 이야기를 못하고 다른 이웃한테 도움을 청했다. 고맙게도 퇴근길에 필요한 자재를 기꺼이 실어주었다.
하도 오랜만에 해본 일이라 느끼는 게 많다. 돈이 좀 들더라고 가끔은 새로운 일을 벌이는 게 좋다는 거다. 뇌 건강을 위해서라도. 그 과정에서 변화된 세상과 만나기도 한다. 이번에 새롭게 안 건 스마트폰 어플(‘레이저 수평조절 장치’)로 수평을 볼 수 있다는 거다. 그 덕에 수평기 없이도 주춧돌을 놓을 수 있었다.
이번에 만든 퍼걸러에다가는 포도나무와 다래나무 덩굴을 올릴 예정이다. 근데 이것 말고도 쓰임새가 다양하다. 남쪽을 바라보는 곳으로 의자를 둘 예정이다. 6~7명은 앉을 수 있고, 두 어 사람 정도는 누울 수 있게. 이 때 퍼걸러는 쉼터가 된다.
근데 의자를 놓기 전에 바닥을 먼저 제대로 해야 한다. 이때 바닥을 어떻게 디자인 할 것인가가 다시 고민이다. 지금 생각에는 태극 문양이나 피보나치 수열을 마음에 두고 있다.
나무 기둥 한 쪽에는 새집도 달아줄 예정이다. 이리저리 구상하고 틈틈이 만들어가다 보면 하세월이겠다. 퍼걸러를 제대로 완성하자면 앞으로도 대충 5년, 길면 아마도 10년이 걸릴 지도 모르겠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텃밭 농사 하나에도 건축과 다자인 그리고 예술이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퍼걸러를 예술로 완성하는 건 사람이 아닌 나무라고 나는 믿는다. 여기 산이나 길가에서 자생하는 다래 덩굴은 얼마나 아름다우면서도 신비로운가. 나무가 잘 자라, 퍼걸러를 제대로 덮고 그 아래에서 다래를 따먹을 수 있을 때를 나는 완성이라 하겠다.
내게 퍼걸러는 일터이자 쉼터이며, 놀이터이자 명상터이기도 하다.
아내는 내가 일차로 세운 퍼걸러에 만족한다. 딸한테도 자랑을 했더니 잘 하면 퍼걸러 제작 주문이 들어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