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역을 평정한 청나라 건륭제가 어느 날 밤 꿈에 서역의 미녀를 보았다.
황제는 사방에 사람을 보내어 찾게 한 끝에 마침내 그 미녀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녀는 건륭황제에 의해 멸망당한 카슈가르에서 종교와 정치에 있어 가장 강력한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귀족,호쟈 가문의 딸이었다. 그녀는 총명하고 아름다웠으며 향수를 뿌리지 않고도 몸에는 항상 향긋한 냄새가 감돌고 있었다.
건륭황제는 이 여인을 북경의 자금성으로 데리고가 향비라고 이름 지어 후궁으로 삼았다.
그러나 향비는 계속되는 황제의 구애를 자기 가슴에 비수를 겨냥하면서까지 거부한 채 오로지 서쪽에 두고 온 고향만을 그리워했다.
황제는 향비의 향수병을 달래기 위해 그녀의 처소 앞에 카슈가르에서 모래대추나무를 가져다가 심고,고향집과 똑같은 집도 지어주었다. 또 궁중 음식을 거의 입에 대지 않는 그녀를 위해 그녀의 고향에서 나는 재료들로 음식을 만들어 주거나 그녀가 위구르의 전통 복장을 입을 수 있도록 특별 배려까지 하면서 그녀의 마음을 잡아 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향비는 그녀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황제의 어머니인 황태후는 이런 그녀를 몹시 못마땅해했다.게다가 황제가 향비에게 마음을 빼앗겨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소홀히 하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황태후는 어느 날 황제가 없는 틈을 타서 향비에게 무엇을 바라고 사느냐고 물었다.
향비는 돌아갈 수 없다면 차라리 죽는 게 소망이라고 대답했고, 격노한 황태후는 향비에게 죽음을 명했다.
향비는 자살했고, 그녀의 유체는 3년이란 긴 시간을 거쳐 카슈가르로 보내졌다.
향비의 유체는 아바 호쟈가 세운 호쟈 일족의 무덤이 있는 곳,호쟈분으로 옮겨져 당시 위구르족의 관습에 따라 어머니의 무덤 옆에 묻혔다.
이 이야기에는 갖가지 이설도 있다. 병사했다는 설, 독살 당했다는 설, 무덤이 북경 교외의 동릉에 있다는 설, 카슈가르의 한 추장의 부인이었다는 설, 또는 정혼한 사람이 있었다는 설...
(카슈카르의 아자크호자묘,일명 향비묘)
카슈가르의 위구르족들에게 향비는 어디까지나 끝까지 자신의 절개와 민족적 자존심을 지키고 이슬람의 가르침에 순절한 비극의 아가씨로 남아 있으며 그녀의 무덤은 위구르족의 성지이다.
그래서 호쟈 가족묘인 이곳을 사람들은 흔히 향비묘라고 부른다.
(낭세녕의 향비 초상화)
어느 책에서 이탈리아 출신의 선교사였다가 청나라에 귀화하여 건륭 황제의 총애를 받는 궁정 화가가 되었던 카스틸리오네(중국 명;낭세녕)이 황제의 명을 받고 그린 향비의 초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이 그림 속 주인공은 단순히 황제의 총애를 받던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느낌보다는 의지와 고집이 있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위 이야기가 전하는 여인의 모습이나 춘향의 얼굴보다는 입고 있는 갑옷과 비스듬히 차고 있는 칼이 주는 이미지도 있지만, 결연한 표정이 전사나 잔 다르크 쪽에 가까운 여인 같아 보인다. (하긴 단순한 사랑이야기라고 보기에는 그 옛날에 감히 사또의 수청을 거절한 춘향의 배짱도 예사가 아니다.)
우리 일행이 향비묘를 찾아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한 어린 위구르 소녀가 내내 우리를 따라다녔다.
거리에서 흔히 보았던 것처럼 스커트 부분에 주름 장식을 여러 단 겹쳐서 만든 흰 색 캉캉 원피스를 입고 있는 소녀는 제대로 씻지 않아서 옷이며 얼굴에 땟국이 조르르 흐르긴 했지만 길고 까만 속눈썹에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콧날이 오뚝한 예쁜 아이였다.
그 아이는 손에 들고 있는 나비 모양의 싸구려 머리핀 장식을 우리 일행의 옷이나 가방 여기저기에 살짝 꽂아 보면서 우리 일행의 주의를 끌려고 애를 썼다.
열 개 한 묶음에 우리 돈으로 천 원 남짓한 이 나비 머리핀은 금방 부서질 것처럼 조잡하고 얄팍했지만, 작은 바람에도 안쓰러울 만치 민감하게 날개와 더듬이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 옛날의 향비의 넋이 바람이 되어 맴돌고 있는 것이었을까...
첫댓글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은 향비의 넋에 나도 꽃한송이 바치고 싶군요.
우리가 갔던 날에도 향비묘에는 관광객이 아닌 그곳 사람들이 제법 많이 보였습니다. 잊혀진 여인은 아닌게지요.
'옷이나 가방 여기저기에 살짝 꽂아 보면서 우리 일행의 주의를 끌려고 애를 썼다. ' 아까 티비에서 베트남 나이어린 아가씨들이 우리나라 농촌에 와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그녀들의 일상에, 모두들 엄마가 그리워 통곡하는 모습에 함께 따라 울었었는데....여행을 하다보면 그곳에 태어나서 좋겠다는 생각과 그곳에 태어나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내내 잘 보았습니다.
저는 어제 그 프로 보다가 채널 돌려버렸습니다. 마음이 하도 짠해서...
글..사진 마음으로 읽고 봅니다....감사 드립니다.
마음으로 읽어주신다니 말만 들어도...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