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난파는 1898년 4월 10일(음력 3월 19일) 경기도 화성군 남양면 활초리에서
아버지 혼준과 어머니 이씨부인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영후, 호는 난파, 본관은 남양이다.
난파는 7세때 서울로 이사하여 이화학당근처에서 살면서 정동감리교회에 나가면서부터
서양 음악인 찬송가를 듣고 배웠으며
중앙기독교 청년회(YWCA)중학부 1학년대 이미 간단한 찬송가는 물론
독보법을 스스로 해독하는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중앙기독교청년회 중학부를 졸업한 난파는 이듬해인 1913년 9월 당시
우리나라의 유일한 음악 교육기관이던 조선
정악전습소의 양악부에 입학하여 김인식 선생으로부터 바이올린 및 악전대요등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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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신문과 잡지에 음악에 대한 교양면 보급에 힘을 기울였으며 제일 처음 음악 평론도로서
후학도들에게 충고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경성방송국에 근무하던 중 난파는 흥사단 단가를 작곡하였다는 이유로
1936년 도산 안창호와 함께 종로경찰서에 수감되어 심한 고문을 당하였다.
이때 받은 고문으로 머리를 다친 것이 원인이 죄어 결성 요양원(현 위생병원)에 입원하였으나
해방의 서광을 보지 못한채 1941년 8월 30일 44세를 일기로 세상을 마쳤다.
첫댓글 사랑 , 오랜 만에 들어봅니다
반주 협주가 파노라마 한 편의 서정극을
보는 느낌 입니다 ,참 좋은 저녁 입니다
넹~~~
원쌤과 함께 하는 이 밤....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