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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에스겔 32장1~16절
제목 : 바로를 위한 애가
애굽의 바로(1~16절)와 애굽 왕조(17~32절)에 대한 애가입니다.
세상을 혼돈케 하는 바다 가운데 큰 악어로 애굽을 규정하시고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1. 큰 악어 애굽의 심때(1~10절)
1) 계시가 주어진 때 (1절)
“[1] 열두째 해 열두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본절에서 16절까지는 애굽에 대한 심판 예고 중 여섯 번째의 것으로 애가의 형식으로 기술되고 있습니다.
열두째 해 열두째 달 초하루. - 31:1의 예언이 선포된 지 21개월 가량이 지난 때이며,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함락된 지 1년이 조금 넘은 시점을 가리킵니다.
이때 선지자 예레미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패망한 유다의 남은 자들이 애굽을 그 피난처로 삼았었습니다(렘 42-44장).
2) 심판의 원인(2절)
“[2] 인자야 너는 애굽의 바로 왕에 대하여 슬픈 노래를 불러 그에게 이르라 너를 여러 나라에서 사자로 생각하였더니 실상은 바다 가운데의 큰 악어라 강에서 튀어 일어나 발로 물을 휘저어 그 강을 더럽혔도다 ”
여러 나라에서 사자로 생각하였더니. - 여기서 '사자'는 고대 애굽의 바로들에게 쓰여지던 관례적인 표현을 빌린 것으로 강인한 지도자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바로의 패기있고 강력한 지도력과 정복욕을 비유한 것입니다(Schroder).
이는 곧 바로가 처음에는 그 주변국들을 정복하고 질서있게 잘 통치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실상은 바다 가운데 큰 악어라. - 본 구절부터 4절까지는 애굽에 대한 첫 심판 예고(29:3-5)와 비슷한 비유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다'(야밈)은 원어상 '근 강'이란 뜻을 함축하고 있으며, 또한 고대 문학 작품 속에서도 나일 강이 '바다'로 표현된 바 있다는 점에서 이는 29:3과 후반절에 언급된 것과 같은 '나일 강'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Schroder).
강에서 튀어 일어나(티가흐 베나하로테카). - 혹자는 '키가흐'의 어근 '기아흐'가 '내뿜다'란 뜻을 가진다는 점에서 '강'을 가리키는 '베나하로테카'를 '코'를 뜻하는 '비느헤로테카'로 읽어 '코로 숨을 내뿜다'란 뜻으로 이해합니다(Ewald, Hitzig, Schroder).
그러나 다른 사람은 '기아흐'가 원형이나 사역형으로 쓰일 때에는 '터치고 나오다'란 뜻으로 사용된다는 실례를 들어(삿 20:33) 개역 성경의 번역과 같은 말로 이해합니다(Delitzsch).
후반절과의 문맥 관계로 볼 때 후자의 견해가 더 자연스럽습니다.
즉 본 구절은 바로의 심판 근거를 제시해 주는 것으로 바로가 심판을 받는 것은 단지 통치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교만함과 정욕에 이끌려 자신의 권력을 남용한 사실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줍니다(Kliefoth).
바로는 나일 강(애굽)을 의지하고 살아가던 주변 국가들을 침략하고 괴롭혔으며 나아가서는 그처럼 무분별한 정복 전쟁의 도발로 자신의 백성들마저 혼란과 불안에 빠져들게 한 것입니다(Delitzsch, Philippson).
3) 그물에 잡힌 악어 바로(3~8절)
(1) 하나님께서 어부가 되셔서 잡으시기에 악어에게는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3절)
“[3]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많은 백성의 무리를 거느리고 내 그물을 네 위에 치고 그 그물로 너를 끌어오리로다 ”
많은 백성의 무리. - 이는 곧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바벨론 군대를 가리킵니다.
그물로 너를 끌어오리로다. - 고대 애굽에서는 특수한 갈고리 낚시 외에도 그물로 악어를 사냥했다고 전해집니다(Aelian).
(2) 뭍으로 끌어낸 악어를 여호와께서 들판에 내던져 하늘의 새와 땅의 짐승이 배불리 뜯어먹게 하십니다(4절)
“[4] 내가 너를 뭍에 버리며 들에 던져 공중의 새들이 네 위에 앉게 할 것임이여 온 땅의 짐승이 너를 먹어 배부르게 하리로다 ”
본절은 애굽에 대한 심판의 엄중성과 그 심판의 참혹한 결과를 언급함과 동시에 그러한 애굽의 멸망으로 말미암아 그동안 애굽의 압제에 시달리던 많은 나라들이 유익을 얻게 되리란 의미입니다. 31;13 주석을 참조하라.
(3) 특이하게도 바로의 죽음이 몸의 멸망과 피의 멸망으로 나뉘어 언급 됩니다(5~6절)
“[5] 내가 네 살점을 여러 산에 두며 네 시체를 여러 골짜기에 채울 것임이여 [6] 네 피로 네 헤엄치는 땅에 물 대듯 하여 산에 미치게 하며 그 모든 개천을 채우리로다”
네 시체를 여러 골짜기에 채울 것임이여. - 상반절의 '산'과 함께 여기에 언급된 '골짜기'는 악어로 비유된 바로가 자의적으로 교만과 탐욕을 거리낌 없이 행했던 '강'과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는 곳으로 바로에게 있어 작은 소망도 보이지 않는 완전한 심판적 죽음의 장소를 상징합니다.
한편 '시체'(라무테카)는 '높다'란 뜻의 아랍어 '룸'에서 파생된 말로 높게 쌓여진 시체의 더미를 가리키며(Gesenius, Delitzsch) 주로 짐승의 주검에만 통용됩니다.
이는 또한 '(가장 낮은 곳으로서의)골짜기에 채울 것임이여'란 말과 문맥상 좋은 대구를 이룹니다(Hengstenberg).
6절은 31:4과 극적인 대조를 이룹니다.
네 피로 네 헤엄치는 땅에 물 대듯 하여. - 여기서 '헤엄치는'(차파트카)은 '넘치다'란 뜻의 '추프'에서 파생된 말로 '넘쳐서 뒤덮다'란 의미를 가집니다.
혹자들은 이러한 의미에서 유추하여 본 구절을 '네 피가 흘러 넘쳐서 땅을 적시고 덮을 것이다'란 뜻으로 해석하나(Havernick, Hitzig, Kimchi), 여기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헤엄치는 땅'이 '넘쳐 흘러서 뒤덮은 땅', 곧 나일 강이 범람함으로 애굽 땅이 비옥해졌던 사실을 비유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바로의 탁월한 영화가 넘쳐흘렀던 애굽의 전 지역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본 구절은 바로의영황가 극에 달했던 애굽 땅에 생명의 원천이 되는 물 대신(31:4) 죽음과 파멸을 상징하는 바로의 피가 물 대듯 할 것이라는 의미로 바로 개인의 파멸이 곧 애굽 전역에 처참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을 상징합니다(Schroder, Delitzsch).
(4) 바로의 멸망이 애굽에 미친 치명적 영향이 우주적 재앙으로 기술됩니다(7~8절)
“[7] 내가 너를 불 끄듯 할 때에 하늘을 가리어 별을 어둡게 하며 해를 구름으로 가리며 달이 빛을 내지 못하게 할 것임이여 [8] 하늘의 모든 밝은 빛을 내가 네 위에서 어둡게 하여 어둠을 네 땅에 베풀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늘을 가리어 별을 어둡게 하며. - 성경의 용례상 하늘이 어둡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상징하며(30:3, 18;욜 2:2), 조금의 위로나 소망도 없는 완전한 절망의 시기를 가리킵니다(Schmieder).
따라서 협의적으로 본 구절은 바로의 모든 영광과 탁월했던 위상이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철저하게 소멸되어질 것이며 동시에 그가 다스리던 애굽 땅에도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임할 것임을 상징합니다(Hengstenberg).
하늘의 모든 밝은 빛.- '빛'은 애굽의 번영과 풍요를 주도했던 바로의 탁월성을 가리킵니다(Duncker).
이런 점에서 본 구절은 저자인 에스겔 선지자가 사 13:10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Delitzsch).
(5) 온 세상이 바로가 패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랍니다(9절)
“[9] 내가 네 패망의 소문이 여러 나라 곧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들에 이르게 할 때에 많은 백성의 마음을 번뇌하게 할 것임이여 ”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들. - 이 '여러 나라'는 애굽과 멀리 떨어져 전혀 알려진 적이 없는 나라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특히 애굽과의 상관관계가 전혀 없음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많은 백성 - 이를 애굽의 쇠퇴함으로 이미 여러 곳에 포로로 흩어져 있던 애굽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Havernick, LXX).
'네가 알지 못하는'이란 표현과 연관시켜 볼 때 이 견해는 애굽 민족으로 한정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따라서 그 백성들은 바벨론의 침공으로 멸망한 열국에서 타국으로 도피한 자들로 이해하는 편이 더 낫습니다.
(6) 여호와께서 자신들에게도 칼을 휘두르신다면 목숨을 구할 수 없기에 줄 곧 떱니다(10절)
“[10] 내가 그 많은 백성을 너로 말미암아 놀라게 할 것이며 내가 내 칼이 그들의 왕 앞에서 춤추게 할 때에 그 왕이 너로 말미암아 심히 두려워할 것이며 네가 엎드러지는 날에 그들이 각각 자기 생명을 위하여 무시로 떨리로다”
9절에 언급된 많은 백성들의 근심과 공포에 대한 부연적 설명이 회화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내가 내 칼이 그들의 왕 앞에서 춤추게 할 때에. - 이 표현은 애굽 왕 바로에 대한 심판을 수사학적으로 묘사한 것으로서 그 심판의 맹렬함과 엄중함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로 쓰여졌습니다.
2. 바벨론의 칼(11~16절)
1) 바벨론 왕의 칼(11~14절)
(1) 여호와께서 나일강의 악어잡이에 동원한 ‘많은 백성의 무리’가 바벨론 왕의 군대로 밝혀집니다(11절)
“[11]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바벨론 왕의 칼이 네게 오리로다 [”
바벨론 왕의 칼. - 10절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칼이 애굽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임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2) 여호와께서 바로의 무리를 용사들의 칼에 엎드러지게 하시고, 바벨론 군대가 애굽의 자랑을 파괴하기에 애굽의 모든 무리가 멸망합니다(12절)
“[12] 나는 네 무리가 용사 곧 모든 나라의 무서운 자들의 칼에 엎드러지게 할 것임이여 그들이 애굽의 교만을 폐하며 그 모든 무리를 멸하리로다”
용사 곧 모든 나라의 무서운 자들. - '용사'(기보림)는 '힘센 사람'이란 '게베르'의 강세형으로 그 힘을 탁월성을 드러내는 말인 바, 동격으로 쓰인 후자의 의미를 보충해 줍니다.
그리고 '열국의 무서운 자들'(아리체 고임 쿨람)의 '열국의'(고임 쿨람)는 원어상 '전체 백성', '모든 나라'란 뜻을 나타내며, '무서운'(아래체)은 '강력한', '난폭한', '맹렬한' 등의 의미를 가진다는 점에서 본 구절은 '모든 나라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잔혹한 군대'(the most ruthless of all nations, NIV)라는 최상급의 의미로 해석해야 합니다.
애굽의 교만(네온 미츠라임). - 이에 애굽이 교만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애굽 안에 속한 모든 교만한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Delitzsch, Hitzig).
(3) 발로 물을 휘저어 나일강을 더럽히던 모든 짐승을 여호와께서 없애버리시고, 물을 맑게 하여 기름 흐르듯이 조용히 흐르게 하십니다(13~14절)
“[13] 내가 또 그 모든 짐승을 큰 물 가에서 멸하리니 사람의 발이나 짐승의 굽이 다시는 그 물을 흐리지 못할 것임이여 [14] 그 때에 내가 그 물을 맑게 하여 그 강이 기름 같이 흐르게 하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모든 짐승을 큰 물 가에서 멸하리니. - 본 구절은 두 가지 견해로 대별할 수 있습니다.
⓵ '모든 짐승'은 '큰 물가' 곧 나일 강 주변에서 그 물을 마시고 사는 애굽의 모든 가축들을(창 47:6;출 9:3, Delitzsch, Hitzig) 가리킨다.
이럴 경우 본 구절은 애굽의 멸망이 그러한 가축들의 죽음까지도 포함한 완전한 멸망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⓶ 이를 상징적으로 해석할 경우 후반절의 '흐리지'란 말에서 유추하여 이미 바로가 나일 강을 요동시켜 흐리게 하는 악어로 비유된 바 있다는 점에서 '모든 짐승'은 포악한 애굽의 지도자들을 비유한 것이며 '큰 물가'는 애굽의 번영과 영화의 원천으로서의 '나일 강'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Schmieder, Schroder).
이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본 구절은 애굽 번영의 근원인 바로 그곳에서 그 지도자들을 멸하시겠다는 극적인 심판의 정황을 묘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13절이 비유적인 표현이라는 점에서 ⓶의 견해가 더 타당합니다.
그 물을 맑게 하여. - 여기서 '맑게 하여'(아쉬키아)가 원어상 '감소시키다'란 뜻을 가진다는 점에서 혹자는 본 구절을 13절과 같은 내용으로 취급합니다(Hitzig, Kliefoth).
즉 그 물이 감소됨으로써 애굽의 황폐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합니다.
그러나 '맑게 하여'의 원어적 의미가 '감소시키다' 외에 '가라앉다'란 뜻도 지닙니다.
이로 볼 경우 이는 흐려진 강의 오물들을 가라앉혀 깨끗하게 함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본 구절을 이미 흐려져 있는 그 물의 오물들을 깊게 가라앉혀 다시는 흐려지지 않게 안정시킨다는 뜻으로 해석하여 하반절과 문맥적 연관을 갖게 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Delitzsch, Jerome).
그 강이 기름 같이 흐르게 하리로다. - 여기서 '그 강으로 기름같이'(나하로탐 카쉐멘)는 직역하면 '기름의 강같이'란 뜻입니다(욥 29:6).
이는 강의 물이 기름같이 부드럽게 흘러간다는 것을 나타내는(Hengstenberg,
Schroder) 비유적 표현이라기 보다는 기름 그 자체의 의미와 특성을 반영한 표현입니다.
곧 기름이 성경의 용례상 하나님의 선택과 축복을 상징하는 것이란 점에서(신 32:13) 나일 강으로 하여금 다시금 생명과 번영의 원천이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다(Delitzsch).
이런 점에서 본 구절은 단순히 애굽의 회복과 그들이 누릴 평강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Grotius) 메시야 시대에 임할 보편적인 구원과 축복을 언급한 것으로(Ewald)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29:13-15에서 하나님은 애굽의 회복이 매우 미미할 것임을 이미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2) 인지 양식(15절)
“ [15] 내가 애굽 땅이 황폐하여 사막이 되게 하여 거기에 풍성한 것이 없게 할 것임이여 그 가운데의 모든 주민을 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
29:9, 12 주석을 참조하라.
3) 이는 슬피 부를 노래 (16절).
“[16] 이는 슬피 부를 노래이니 여러 나라 여자들이 이것을 슬피 부름이여 애굽과 그 모든 무리를 위하여 이것을 슬피 부르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본절은 애굽 심판에 대한 비감한 애가의 예고로 여섯 번째 심판 예고의 마무리 부분입니다.
바로의 파멸소식에 질겁한 민족들(9-10절)이 두려움에 떨며 애굽의 멸망을 슬퍼노래합니다.
여러 나라 여자. - 애굽에 대한 애가를 부를 자들이 특별히 이방 여인들로 언급된 것은 당시 죽은 자에 대한 애곡이 여자들에 의해 행해졌던 관습을 반영했기 때문입니다(렘 9:20).
슬피 부르리로다 (쿤) - '소리내어 울다'란 문자적 의미로 본 애가에 대한 탄식과 비감의 정도를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아직 돌이킬 기회가 있다는 건 얼마나 소중한가, 남은 기회를 다 소진해버려 돌아갈 시간도, 돌아갈 품도 없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다시 애가를 들을 시간입니다.
제대로 듣고 내 삶을, 사랑하는 가족의 삶을 흔들림 없이 지켜내자.
묵상 Point
1) 바로의 실상
주변 나라들에 무서운 사자처럼 군림하는 바로의 진짜 모습은 나일강을 휘저으며 더럽히는 악어에 불과합니다.
악어가 뭍으로 끌려 나오면 그 힘을 상실하듯이, 바로의 권력도 제한적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공간과 시간 안에서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2) 역사를 경영하시는 하나님
신의 아들을 주장하며 영원한 왕권을 자랑하는 애굽왕 바로의 통치는 이미 그 종말이 결정됐습니다.
아직 보좌에 앉아 있지만 곧 스올로 내려가야 할 운명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계획에 따라 역사를 이끌어 가신다면, 누구에 의존해야 할지는 처음부터 자명해집니다.
3) 바벨론을 부리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일강 악어 잡이에 바벨론을 동원하십니다.
악어 애굽이 하나님의 손에서 유린되듯이, 근동의 패권 국가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소환됩니다.
바벨론의 손에 쥐어진 칼은 여호와의 것입니다.
철저하게 집행된 심판을 보고 애굽 사람들은 여호와의 권능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내가 의지할 대상은 하나님이 부리는 권력이 아니라 그 권력을 부리시는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전체 애굽을 향한 애가를 지어 부르게 하십니다.
이 말씀은에스겔이 포로로 끌려가던 해(주전597녀)로부터 12년이 흔른 주전 585년 3월 3일에 임했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지 1년이 지나고, 그 소식이 바벨론에 있는 에스겔에게 전해진 지 두어 달 지난 시점입니다.
절망하고 있을 유배지의 유다 백성에게 세상의 절대 강자였던 애굽의 심판을 알리시고애가를 부르게 하신 것은, 지금 세상을 지배하는 바벨론의 흥망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이 여전히 유다의 구원자, 여호와이심을 알게 하시려는 목적입니다.
지금 길고 굴곡진 인생의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세심하게 나의 구원을 이루고 계십니다.
1~6절 스스로 ‘열바의 사자’로 자처하던 애굽을 ‘바다 가운데의 큰 악어’로 규정하십니다.
바다의 큰 악어는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혼돈을 일으키는 악의 상징입니다(참조 욥41:1~11).
애굽의 바로가 왕들의 왕처럼 군림하며 자만했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세계를 무질서에 빠트리는 혼돈의 세력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큰 악어 애굽을 사냥하심으로 역사의 주인이 누구인지, 열방의 와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게 하십니다.
세계를 경영하는 것은 정의의 사도로 자처하는 강대국도 아니고, 다국적 기업도 아닙니다.
그들은 오히려 제 이익을 위해 약소국을 억압하고 세상을 혼돈에 빠트릴 때가 더 많습니다.
지금도 그럴듯한 명분으로 전쟁을 합리화하고 약자를 향한 폭력을 정당화하며, 노동력을 착취하는 일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만물의 주인이시며 세상을 정의롭게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거만한 악어들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7~15절 바벨론의 칼로 애굽을 진멸하십니다.
왕과 백성뿐 아니라 가축과 식물도 소멸하셔서 애굽을 사막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나일의 강물이 발담그는 사람도, 물 마시는 짐승도 없어 기름이 흐르듯 고요할 것입니다.
애굽을 번성케 하신 분도 진멸하신 분도 ㅎ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변덕스러우신 것이 아니라, 애굽이 교만하고 배은망덕한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한국교회, 또 우리나ㅏㅏ에 주신 복은 무엇입니까?
도로 찾아가시기 전에 속히 버리고 돌아서야 할 교만하고 악한 행위는 무엇입니까?
기도
공동체 : 힘을 가진 이들의 교만과 악행을 서둘러 막아주셔서 정의와 평화가 속히 임하게 하소서.
열방 : 크메르 루주 학살 40주년을 맞이한 캄보디아에서는 40년 전에 비해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활동이 크게 향상되었다.
캄보디아에서 교회를 통해 복음을 듣는 이들이 끊임없이 증가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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