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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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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당 조정육의 그림과 인생 스크랩 4. 황실 문을 열어 봤어요-궁궐의 장식그림(국립고궁박물관 전시회)
무진당 추천 0 조회 1,275 09.06.20 09:25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4. 황실 문을 열어 봤어요.

   -“궁궐의 장식그림” (2009.5.12-7.5: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전시회 포스터- 

 

 

-황실에 대한 선망-

 

‘황실’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문과 전각과 담장 속에 감추어진 육중한 회랑 사이로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의 눈부신 행렬.

웅장한 건물과 고급스런 실내 인테리어. 위엄과 격식을 갖춘 황제와 머리를 조아린 문무백관.

위계질서에 따라 다른 색 옷을 입고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격조 있게 가꾼 화단에서 흘러나오는 꽃향기와 여인들의 웃음소리...

 

                            경복궁 근정전 회랑

 

황실에서는 모든 사물들이 저마다의 가치를 지니며 제자리를 지킨다.

사람들 눈을 사로잡는 용상(龍床)과 용상 뒤의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뿐만 아니라, 유심히 보지 않으면 존재조차 느낄 수 없는 문고리, 돌쩌귀, 댓돌 하나까지도 최고가 아니면 놓여질 수 없다. 그래서 황실은 그 나라 사람들의 심미안과 예술혼과 손재주가 마지막으로 평가받는 곳이고 지켜지는 곳이다.

 

황실은, 황실의 문 안에 들어가 본 사람이나 감히 들어가 볼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모든 사람들의 최고의 관심사였다.

관심 있으면서도 감히 알 수 없었던 곳. 그 곳이 황실이고 궁궐이다.

 

사람들이 황실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뭘까.

세상을 움직이는 모든 원리가 황실에서 나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평생 동안 황제가 다스리고 있는 영토를 벗어나지 못하며 살았던 사람들에게 세상이란 그저 황제의 다스림이 미치는 곳까지였을 것이다. 황제의 영토 너머에 아무리 큰 세상이 있다한들 그곳에 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천상이나 극락처럼 추상적인 관념이었을 것이다.

 

이제 황제의 권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시절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갈 수 없는 세상을 가려고 필사적으로 황제의 영토 밖으로 뛰쳐나갔던 사람들에 의해 역사가 바뀐 지 오래되었다.

그래도 황실은 여전히 사람들의 뇌리 속에 온전히 존재하고 있다. 황제의 위엄은 사라졌고 통치력을 상실한 지 오래된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로열 패밀리’가 살아 있다. 아니 오히려 더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다. 예전에는 감히 기웃거릴 수도 없었던 황궁의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사람들의 열망이 불같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 열기는 황실 관련 마케팅이 확산되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황실과 관련된 영화와 드라마가 끊임없이 제작되고 있고 소설과 뮤지컬의 소재로도 인기가 높다.

황제처럼 서빙을 받으며 식사를 하는 황제 만찬이 등장하는가 하면, 황실 여인들이 썼다는 화장품이 고가에 팔린 지 오래되었다.

경제적인 여건이 따라 주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잠시동안이라도 황제처럼 모시겠다는 지하철도 등장했다.(지하철 5호선이‘보라색’인 것은 그 색이 ‘황제’를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것이다). 바야흐로 황제의 보편화와 대중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전시장 입구

 

-고궁박물관-

 

5월부터 시작된 전시회가 한 달이나 지났는데 이제야 가게 되었다.

특별히 관람 날짜를 오늘로 정한 것은 특별전에 대한 특강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상설전이 아닌 특별한 주제로 꾸며진 전시회의 백미는 작품 감상일 것이다.

그런데 작품 감상을 제대로 하기 위해 전시회를 준비하거나 그에 관련된 연구자의 특강을 듣는 것은 작품 감상만큼이나 중요하다.

특강을 들음으로써 특별전의 의도를 보다 명확히 알 수 있어 작품 감상에 도움이 되고, 자칫 혼자 감상할 때 놓치기 쉬운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강을 듣고 나서 작품을 감상하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새로 구입한 도록을 읽으면서 정리를 하면 비로소 전시회 관람이 마무리된다.

 

옛 국립중앙박물관 자리에 문을 연 국립고궁박물관은 1908년에 세워진 황실박물관의 전통위에 서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문화재청은 일제에 의해 ‘동물원’으로 격하된 창경원을 창경궁으로 복원하고 경복궁 전각들을 복원해나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4대 궁궐과 종묘, 능원 등의 궁중문화재를 모아 덕수궁 석조전에서 궁중유물전시관을 개관했다. 그 후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한 2005년에 덕수궁의 궁중유물전시관 소장품들이 경복궁 내 옛 국립중앙박물관 자리에 이전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강은 두 시간 계속되었는데 건축사 전공자의 궁궐 건축에 대한 내용과 이번 특별전을 준비한 학예사의 궁궐 전각의 장식그림이었다. 특히 궁궐 전각의 장식그림은, 창호그림과 부벽화로 구체화한 내용이라 내게는 전혀 새로운 내용이었다. 강의 한 번 듣는 것만으로 한 연구자가 몇 달 혹은 몇 년동안 연구했던 내용을 공짜로 내 것으로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학회에 참석하는 것은 노다지를 캐는 것만큼이나 수지맞는 일이다. 다음 글은 특별전도록 『궁궐의 장식그림』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이다.

 

-궁궐의 창호그림-

조선의 궁궐은‘전조후침(前朝後寢)’과 좌묘우사(左廟右社)를 기본으로 설계되었다.‘전조(前朝)’란 왕이 국가를 통치하고 정사를 돌보는 공적인 영역을 의미하는데 경복궁의 경우 정전인 근정전과 편전인 사정전, 천추전, 만춘전이 이에 해당한다. ‘후침(後寢)’은 왕과 가족들이 거처하는 생활공간이자 사적인 공간으로 강녕전, 교태전, 자경전이 포함된다. 그러니까 궁궐은 왕의 집무실이자 집인 셈인데, 국정 업무와 일상생활을 겸하고 있는 지금의 청와대 또한 궁궐 기능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좌묘우사(左廟右社)는 동쪽의 종묘, 서쪽의 사직단을 의미한다)

 

                                             경복궁에 세워져 있는 안내문

 

궁궐 건물의 기본구조는 기둥과 서까래와 대들보다.

그리고 기둥과 기둥 사이는 벽과 창호를 세워 방을 만든다.

방과 방 사이에는 고정된 벽을 설치할 수도 있지만 칸막이 역할의 장지(障子)와 채광 및 통풍을 위한 창호를 세워서 필요에 따라 설치와 철거가 가능하다. 이 때 창호의 크기와 형태 및 장식성은 건축물의 품격을 드러내는 중요한 구성요소이면서 실내의 밝기와 단열이라는 실용적인 목적에 부합되어야 한다. 그래서 겨울철의 한기를 막기 위해 창호 위에 무렴자를 치거나 병풍, 문가리개, 창가리개, 벽가리개 등을 창과 벽 앞에 세워 놓았다. 이런 병장(屛障)류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설치되었지만 여기에 그림이나 글씨를 꾸며 실내 장식물의 역할도 겸하게 된다.

 

이동이 자유로운 병풍과 가리개 등의 병장류는 보존 상태도 좋고 전하는 작품도 많아 연구가 활발했던 반면 창호나 장지에 그려진 그림은 도배지가 교체될 때마다 떼어지기 때문에 수명이 매우 짧다. 그 결과 전하는 그림이 많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창호 그림과 장지 그림에 대한 연구가 심도 있게 이뤄질 수 없었다. 달리 말하면 이 번 전시회가 갖는 의의는, 좀처럼 보기 힘든 분야의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경복궁 근정문

 

                                                    경복궁 근정전

 

조선 시대 궁궐은 화려한 치장을 지양하는 대신 건물의 쓰임과 거주자의 신분에 맞게 격식과 치장을 달리했다.

즉 정전과 편전과 내전의 전각들이 각기 그 규모와 용도에 맞게 치레 장식을 달리한 것이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회화작품은 창덕궁에서 이관되어 온 궁중회화가 다수를 차지하는데 일월오봉도와 십장생도가 그려진 창호그림이 26건 104점에 이른다. 네 짝이 한 조를 이루는 이 작품들은 그러나 설치 및 해체 당시의 기록이 어느 장소에서 어떻게 설치되었는 지 알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일월오봉도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의장용 회화로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

청, 홍, 녹, 백, 흑의 단청안료를 사용한 일월오봉도는, 해와 달이 떠 있는 하늘 아래 양쪽에 소나무가 배치되어 있고 다섯 개의 봉우리 아래로 물결치는 파도를 그린 좌우대칭의 화려한 그림으로 정전과 편전의 어좌 뒤편에 설치되는 것이 특징이다. 왕이 승하하실 경우에는 관을 모시는 빈전과 혼을 모시는 혼전 그리고 왕의 어진을 모시는 진전에도 펼쳐놓기 때문에 일월오봉도가 그려진 방은 왕이나 황제가 거처하는 공간이라고 추측된다.

 

 

 

                             < 일월오봉도 창호>, 조선, 비단에 채색, 4짝, 전체 147.8-232.6cm

 

십장생도는 해, 구름, 물, 돌, 소나무, 대나무, 영지, 거북, 학, 사슴 등 장수를 상징하는 소재를 그려 왕실의 안위와 수복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정초에 왕이 신하들에게 내려주는 세화(歲畵)의 소재로도 많이 쓰인 십장생도는 17-18세기 중반까지 병풍으로 제작되어 왕과 왕비, 세자와 세자비의 혼례 의식중에 장식용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802년 이후에는 왕실 자손의 번영과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나 ‘백자도(百子圖)’로 대체되면서 십장생도는 왕실 어른의 축수나 세자의 탄생과 건강을 비는 장소에 등장하게 된다. 이로써 십장생이 그려진 창호가 어느 공간에 놓여졌는 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십장생도 창호>,조선, 비단에 채색, 4조 16짝 중 3조, 전체144.4-230.0cm

 

<십장생도 창호>,조선, 비단에 채색, 4조 16짝 중 3조, 전체144.4-230.0cm :가운데 흰 부분은 불발기창이다.

 

 

십장생도 창호 가상 재현 모습:이번 전시회에서는 멀티미디어를 이용한 자료활용으로 관람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궁궐의 부벽화-

종이나 비단 위에 옮긴 그림과 글씨를 건물 내외 벽에 붙인 것을 ‘부벽(付壁)’이라고 한다. 글씨와 그림을 배접한 후 풀로 벽에 붙인다는 의미로‘첩벽(帖壁)’또는‘첩벽(貼壁)’이라고도 한다. 그러니까 글씨를 써서 붙이면 ‘부벽서(付壁書)’가 되고 그림일 경우에는 ‘부벽화(付壁畵)’가 될 것이다. 부벽서나 부벽화는 벽의 빈 공간을 채워주고 꾸며주는 궁중장식화로 크게 환영받았는데 19세기부터는 사대부가와 민가에까지 널리 퍼질 정도로 유행했다.

 

현재 창덕궁의 희정당과 대조전, 경훈각의 대청마루 상단 측벽에는 화려한 채색의 대형 부벽화가 장식되어 있다. 1907년부터 순종과 순정황후의 거처공간으로 쓰인 세 전각은 1920년 화재로 인해 신축 공사가 이뤄지면서 전통창호대신 유리를 끼운 이중문을 달고 커튼박스를 꾸미고 벽지마감도 서양식으로 하는 등 서양식 실내장식이 가미되었다. 그러나 난방시설은 전통식인 온돌로 정했으며 벽면 그림도 일본인 화가 대신 젊은 조선 화가들에게 맡기게 되었다. 

 

 -창덕궁 희정당 내부 모습: 상단 벽면에 부벽화가 붙여져 있다. 

       -김규진, <창덕궁 희정당 금강산만물초승경도(부분)>, 1920년, 비단에 채색, 205.1-883.0cm, 등록문화재 제241호,

 

그렇게 해서 희정당의 동, 서 벽면은 순종에게 글씨를 가르쳤던 김규진(1868-1933)에게 맡겨졌고, 침전인 대조전과 경훈각은 오일영(1890-1960), 김은호(1892-1979), 이상범(1897-1972), 노수현(1899-1978), 이용우(1902-1953) 등의 신진 화가들에게 맡겨졌다. 김규진을 제외한 젊은 화가들은 근대 화단의 거장이었던 심전 안중식과 소림 조석진의 제자들로 근대 화단의 주역들이었다.

 

금니와 청록안료를 바탕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부벽화는 왕실의 태평과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으로 그려졌으며 왕실의 존엄과 위엄을 알리는 주제가 채택되었다. 즉 외부 접견 장소인 희정당에는 민족의 영산인 금강산 실경이 그려졌고 침전인 대조전에는 다산과 태평성대를 염원하는 봉황과 백학이 그려졌다. 또한 경훈관 대청의 좌우벽에는 왕과 왕비의 불로장생을 기원하는 신선그림이 그려졌다. 부벽화는 현재도 창덕궁 벽에 그대로 붙어 있기 때문에 전시장에서는 대형스크린으로 대신하고 있다.

 

이 번 전시회의 특징 중의 하나는 필라델피아미술관 소장의 <봉황, 공작도> 쌍 폭을 새롭게 조명하여 소개한 점이다.

화려한 채색을 능숙하게 구사한 이 작품은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낙관이나 제발이 없어 정확한 시대나 작가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쌍 폭의 그림을 궁중 부벽화일 수 있다는 가능성의 한 예로 제시하고, ‘봉황’과 ‘공작’이 민화의 주제뿐만 아니라 궁중 장식화로 애호되었음을 제시했다. 

 

 

 <공작도>,19세기, 종이에 채색,156.2-54.6cm, 필라델피아미술관(부분)

<봉황도>,19세기, 종이에 채색,156.2-54.6cm, 필라델피아미술관(부분) 

 

전시장을 나오면서 예전 창덕궁에서 봤던 부벽화를 생각했다.

주인이 떠난 창덕궁 대조전은 늦가을의 햇살 속에서 퇴락한 몸을 겨우 추스르는 듯 해 보였다.

한 때는 오얏꽃과 도화꽃이 흩날리는 가운데 황금빛으로 치장한 황제가 위엄스런 몸짓으로 문무백관의 하례를 받았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텅 빈 공허만이 맹렬하게 사라져가는 옛 영화를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제행무상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도 우리가 황실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황실이라는 공간에는 언제나‘최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황제와 황후가 최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인만큼 그들은 언제나 최고를 누리고 살 것이라 생각한다.

최고 좋은 집에서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최고 좋은 이부자리에서 최고로 편안한 잠을 잘 것이라 생각한다.

벽에는 최고로 멋진 그림이 걸려 있고 가구는 최고로 뛰어난 장인의 작품이 놓여 있으며 화단에는 최고 아름다운 꽃이 심어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황실을 꿈꾸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자신도 황제처럼 최고를 누려보고 싶다는 욕망이 잠재되어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없다면 황실 사람들을 보며 대리만족이라도 느끼려 한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군주국가가 존속하는 것은 사람들의 그런 심리작용이 투사된 때문일 것이다.

 

오늘 나는 황실에 들어가 화려한 꿈을 꾸고 나왔다.

감히 황실의 이 방 저방을 들락거리며 최고 가는 창호 그림을 감상하는 사치를 부렸다.

그러나 아무리 사치스런 방에서 산다한 들 사랑하는 사람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방은 더 이상 내가 원하는 방이 아니었다.

황실을 황실답게 만들었던 것은 그 어떤 사치스런 그림이나 장식물이 아니라 바로 존엄성을 지닌 ‘사람’이었던 것이다. 내가 황제처럼 존엄성을 지니고 고귀한 존재로 살아갈 때 나는 이미 황제나 다름 없지 않을까.

 

현재 남아 있는 경복궁, 창덕궁 등의 조선 궁궐은 웅장한 규모와 화려한 외관을 자랑한다.

그러나 현재의 궁궐은 그 속에서 살았던 황실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이 사라져 버리고 원형을 잃어버린 곳도 적지 않다.

궁궐을 복원하면서 건축의 구조나 외양에만 관심을 가지던 기존의 연구 성과가 이제는 창호나 부벽화까지 깊어지고 확대될 수 있었다는 것은 매우 진전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우리가 궁궐에 가면, 영혼이 빠져 나간 육신처럼 죽어있던 건물만 보고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았던 황실 사람들의 체취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진짜 황실을 만나게 될 것이다.(무진당) 

 

                                                -경복궁 경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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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6.20 12:15

    첫댓글 황실의 그림과 글을 친절하게 안내하여 주셔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중요한지를 많이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09.06.22 07:52

    여가를 내어 한번 다녀오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무진당님

  • 09.06.28 10:13

    항상 좋은 글을 올려 주시는 무진당님께 감사드리면서, 전부터 권하고 싶었던 싸이트가 있습니다. [우리 역사의 비밀](www. coo2.net)입니다. 오늘은 어느 분께서 네티즌 게시판에 올리신 "선덕여왕과 바다의 신, 그리고 .... "를 대충이지만 흥미있게 보았습니다. 그밖에도 좋은 내용이 매우 많습니다. 한 번 들어가 보십시요.

  • 작성자 09.06.29 12:44

    감사합니다. 들어가 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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