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동영상 : https://youtu.be/zLaVjN2Ot4w?si=HSbnz15yjqgdmKYt
첫댓글 할 이야기를 많이 던져주는 강연입니다만, 우선 한마디만 해보겠습니다.새벽이 좌선에 대하여 고요함만을 추구하는 것에 우려하는 관점을 가지게 된 이유는 ‘자유’ 때문입니다. 자유, 자율성, 개방성, 유연함 등이 없으면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입니다.
ⓐ身至念(kāyagatā sati)이 수습 다작되면 眼耳鼻舌身意가 뜻에 맞는 法들에서 집착하지 않고 뜻에 맞지 않는 法들에서 역겨워하지 않는다. 身至念은 (六根이라는 여섯 중생을 묶어 두는) 굳건한 기둥이다.[SN. vol.4. p.200.] ⓑ身至念을 똑똑히 본 자는 不死를 똑똑히 본 것이다.[AN. vol.1. p.46.] ⓒ身至念을 닦고 지으면 (1)무명이 버려진다. (2)명이 생긴다. (3)나라는 자만이 버려진다. (4)잠재성향이 버려진다. (5)쌍요자나가 버려진다.[☜대림스님 譯註 앙굿따라니까야 제1권 177페이지 참조]
첫댓글 할 이야기를 많이 던져주는 강연입니다만, 우선 한마디만 해보겠습니다.
새벽이 좌선에 대하여 고요함만을 추구하는 것에 우려하는 관점을 가지게 된 이유는 ‘자유’ 때문입니다. 자유, 자율성, 개방성, 유연함 등이 없으면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입니다.
ⓐ身至念(kāyagatā sati)이 수습 다작되면 眼耳鼻舌身意가 뜻에 맞는 法들에서 집착하지 않고 뜻에 맞지 않는 法들에서 역겨워하지 않는다. 身至念은 (六根이라는 여섯 중생을 묶어 두는) 굳건한 기둥이다.[SN. vol.4. p.200.]
ⓑ身至念을 똑똑히 본 자는 不死를 똑똑히 본 것이다.[AN. vol.1. p.46.]
ⓒ身至念을 닦고 지으면 (1)무명이 버려진다. (2)명이 생긴다. (3)나라는 자만이 버려진다. (4)잠재성향이 버려진다. (5)쌍요자나가 버려진다.[☜대림스님 譯註 앙굿따라니까야 제1권 177페이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