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는 식물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조화나 종이, 한지 등으로 만든 꽃을 좋아했지요.
환하게 피었다가 초라하게 지는 살아 숨쉬는 식물들이 끝이 넘 가슴 아파서 키우길 어느 순간부터
멈췄지요. 그런데, 나이를 한두살 먹어 이제 40대 초반에 접어 드니 시들어 가는 꽃잎의 생도 삶의
아름다움으로 느끼게 되더군요. 그래서 요즘 다시 시작합니다. 하나, 둘씩 키우고 있습니다.
꽃이 안 피는 식물부터...............
저도 그런 때가 있었던 듯합니다.
말씀처럼 그런 생각을 할때가 있었네요~
꽃은 화려하게 피었다가 초라한 모습으로 져 버리니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바라보는 나만의 시선에서 식물을 키우고 있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
숨쉬고 있다라는 느낌을 갖기 시작하게 되면서 식물과의 소통이라는 말을 생각하게 됐어요. 오랜 시간을 같이 숨쉬며 주고 받았을 많은 시간들과, 꽃을 피우기 위한 나의 수고스런 손길 하나 하나가 전달되어지는 그 순간도 잊지 못할 하나의 이야기 거리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무던한 기다림을 알게 된 이유기도 하지요.
작은 식물 하나 길들이기 또한 어려움이 많이 따르기도 하지만, 그 소소한 기다림의 결실을 한송이 꽃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려하든 소박하든 상관없지요. 잡초밭에서 피어났다가 지고 마는 꽃 한송이라해도
내년을 기약하는 희망이 될 수 있으니 그 또한 아름다운 설레임과 기다림의 부산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