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완벽히 제 개인적 견해입니다.
왜냐면 저는 제가 명상을 집중적으로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 오류를 가지고 이 글을 써봅니다.
3년전에 티벳에서 70세 이상인 두 고승이 서울센터에서
법문를 하신적이 있습니다.
이런 저런 법문을 하시다가 보살님 한분이 질문하십니다.
보살:스님은 공을 본적이 있나요?
티벳스님: 나는 일생동안 명상하고,
수행을 했으나 한번도 공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럼 스님은 왜 한번도 공에 머물지도 공을 보지도
못했을까요?
명상을 적용해 유추해 봅니다.
명상을 하시는 분들도 경을 공부하여 세상이 내 마음인걸
개념으로 알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명상을 합니다.
1.명상으로 고요해 집니다.
2. 감각에서 일어나고 살아짐을 관찰하거나 그것도 안합니다.
2.그럼 오직 고요하지만 알고 있는
감각과,감각을 보고 있는 그놈만 남을 것입니다.
3.그리고 그거에 주로 머룰을 것입니다.
경에서는 이것은 심해탈이라고 합니다.
즉 일시적 해탈입니다.(1-4선정, 멸진정 방향으로)
4.그리고 그런 이상한 체험을 깨달음으로 가는
길로 알것입니다.
5.그리고 자꾸하면 한순간 통찰지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만약에 이것으로 깨달을수 있다면 부처님은 두명의 외도
스승님 밑에서 깨달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외도의 가르침으로 멸진정 이상까지도 하고
이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버렸습니다.
그 다음 몸을 혹사시키는 고행을 했습니다.
이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버렸습니다.
최후에는 바른 삼매로 깨달았습니다.
그럼 여기서 왜 못 깨달았을까? 이유는
1. 명상은 의식속에서 일어납니다.
2. 의식에서 일어나고 사라짐을 보거나 고요함에 머뭅니다.
3. 깨달음은 무아 즉 연기적(공)으로 보는 것입니다.
4. 의식속에서 아무리 관찰하거나, 고요함에 머물러도
의식속의 대상은 항상 나 인걸 알고 또는 대상이라고
아예 인식하지 않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즉 연기적으로 볼수 있는 조건이 안됩니다.
또는 무상을 본다고 합니다.
매순간 지금 생생하게 변화는 생각,감각등의 무상함을
버리고 가상과 같은 명상속에서 본다는 것은
음식 이름을 부르면서 배부르게 하는것과 비슷합니다.
5. 진근식으로 예을 들면
근(감각) 관찰합니다.
식(의식)을 관찰합니다.
그러나 이 방법에서는 진(대상)이 빠졌습니다.
빠진 이유는 감각을 대상을으로 여길수 있지만
무의식은 벌써 내것으로 인식하엿기 때문에 입니다.
우리는 대분분 의식속의 물건등을 대상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즉 연기적으로 보기 힘들고, 생멸하는 무상함을 본다고
하지만 가상속인걸 이미 의식은 알고 있어
무상함은 현실보다 너무 약해 무상도 보기 힘듬니다.
예) 생각속의 예쁜여자와 실제 보이는 예쁜 여자와
동일하게 볼수 없는것과 같습니다.
느끼는 감정이 하늘과 땅 차이기 때문입니다.
즉 잃어버린 나의 한부분인 진을 빼고 관찰 하였으므로
아무리 관찰해도 연기적으로 못봅니다.
진이라는 대상은 배제하고 잘못 관찰하였기 때문입니다.
진근식이 다 나인걸 아는것이 연기적(공)을
보는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바른 관찰이 어떠게 하는 걸까?
1. 명상속의 의식만 관찰하는 것이 아닙니다.
2. 지금 보인는 이 세상의 대상이, 나와 분리 되었는지,
대상도 나의 의식인지 관찰해야 합니다.
즉 진근식이 분리가 가능 한가를 관찰해야 합니다.
지금은 진을 내 밖의 대상으로 인식하여 중생으로
살아 가기 때문입니다.
사유하다가 보면 절대 진근식이 분리가
불가능하는 것을 알게됩니다
즉 감각,의식,대상이 불리 불가능 하나인것 알아 버립니다.
3. 매순간 눈앞의 진인 세상이, 나의 의식속에서
변화는걸 관찰해야 합니다.
(오른쪽,왼쪽,이동중 참나 의식에서 끊이 없이 변화는 세상
등 대상에 따라 끊이 없이 변화는 감각의 무상함)
앞의 컵은 깨져서 무상하다 등은 약합니다.
왜냐면 나보다 오래 존재할수 있기 때문에
무상으로 보기 힘듭니다.
4. 더 중요한것은 대상에 따라 계속 변화는 생각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5. 계속하다가 보면 생각은 대상에 반응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 알게됩니다.
6. 일정 시간이 지나면 생각은 대상과 동시에 쌍생쌍멸
한다는걸 확연히 알게 됩니다.
7. 나라고 강하게 믿었던 생각과 감각이 대상 떠나
존재하지 않는 아지랭이 였다는걸 알게 됩니다.
8. 생각도 감각도 대상 없이는 존재할수 없구나 알게 됩니다.
9. 그럼 이몸과 마음이 내가 아닌걸 알게 됩니다.
10. 진근식으로 표현하면, 지금 까지 근식만 나로 삼고
살았다는것 알게 됩니다.
11. 대상이 진도 나였구나 알게 됩니다.(진근식=부처)
12. 드디어 잃어버린 나의 일부인 진(대상)을
나로 인정합니다.
13. 나는 진근식 자체 였구나, 진근식 자체가
참나인 나의 의식 이였구나
13. 무아로 진입합니다.
그때 참나가 따뜻한 봄햇쌀 처럼 환히
비추는 각이 드러납니다.
추론
명상속에서 고요함이거나 앎이 드러나게 못해서
못 깨닫는게 아닙니다.
일상속에서 세상을 연기적으로 못보기 때문에
못 깨닫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끊임없이 생생하게 무상하게 못보면서
꿈속같은 명상속에서 일어난것으로 보게다는 것은
마침 꿈속에서 돈을 벌어서, 현실에서 사용 하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명상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지금 느끼는 것을, 대상과 함께 감각을 눈을
감던 뜨던 관찰하면 됩니다.
지금 세상 자체가 참나 의식 속의 명상입니다.
지금 자체가 참나속의 명상인것을 사유로 증명 않고
참나가 만든 작은 나의 마음의 의식속에서 또 다른
명상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
어린 아이들이 아파트 속에서 작은 텐트를 치고
그 속에서 노는 것과 같이
눈감든 뜨든 뭐든 대상,감각,의식을 동시에 관찰하는 것
자체가 명상입니다.
그렇게 관찰하면 지금 여기 일상 생활에서 모든게
고요하게 보입니다.
고요해지면 지금에 소리등 보이고 들리는 것 자체가
앎이고 모든게 사라지지만 앎은 지금에서 부동으로
지키고 있을을 점점 느낄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한장의 사진이나 꿈속처럼 느껴집니다.
통으로 연기적으로 보이기 시작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본다는 견해가 약해지고, 전체가 의식이구나 하고
바른 견해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바른 삼매란?(선정,이각큰스님)
진근식 관찰로 진근식이 통으로 하나로 여겨지는
고요히 상태(한장의 사진,꿈속)를 말합니다.
그러다 진도 나였구나 하고 직관적으로 지혜가
생기면 연기적으로 보입니다.(무아)
삼매 상태인 세가지가 헤갈려집니다.
(진근식=18계=세상자체=나의의식)
이전에는 근식만 나라고 믿고 있던것던,
믿음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진도 나였구나 깨달음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선지식인들은 삼매속에서 깨달음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무아 상태는 이름하여 본삼매라고 합니다.
명상속에서 찾는 분들의 특징
예전에 지운 스님한테 노스님이 찾아와서 본인이
뭘 체험을 하고, 이것이 혹시 공을 본것이 아니냐고
질문합니다.
그리고 지운 스님은 그게 공을 본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저는 옆에서 듣고 생각 했습니다.
공을 보면 본인이 가장 잘압니다.
그런데 멀리서 와서 한 질문이라는 것 자체가
공을 못 본것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공을 보면 너무나 확연해 남한테 질문할 이유가 없습니다.
마치 밥을 먹으면 내가 배 부른것을 스스로 알듯이,
반대로
큰스님이, 너 공 봤다고 해서 내가 배불려 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공 상태는 내가 없음을 알아서, 일체의 괴로움 받을 놈과,
질문하고 싶은 놈도 없기 때문입니다.
공을 어떤 경계를 얻는것으로 착각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얻은게 아닌가라는 착각으로 질문한것입니다.
공은 어떤 경지나 경계가 아니고,
얻을것도, 증득할것도, 증득할 놈도 없다는 것을
확연히 알아, 내가 있다는 착각을 깨져서
연기적 세상 즉 천상으로 보입니다.
물질인 몸이 내가 아닌걸 알아버려서,
현생의 생사와 괴로움이 바로 사라지고
그 무아 상태서 살아 가므로, 업이 계속 바뀌고,
물질을 인정하지 않으니
다음생은 물질로 된 몸을 받을수 없으니
다음생도 생사 벗어난 것이고
온세상을 다가진 참나의 업으로 살아가니
영원히 괴로움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결론
티벳스님이 공을 못본 이유를 유추해보면
(나는 그분의 수행법은 모름니다.
명상한다고 가정하고 비유 한것입니다.)
수행시간이 적어서가 아니라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근식만 고요한 의식속에서만(명상) 관찰하고,
정말 필요한 진을 빼고 관찰하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지금도 이것만 나라고 생각하는 것들만 관찰하여(근식)
나의 감각,의식,대상(진근식)들이 하나인,
연기적으로 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관찰 방법이 잘못 되었으므로
최종적으로 틈틈히 사유하다 보면
감각기관과 대상과 그사이 에서 생긴 생각등은
절대로 홀로 존재 못하고,
전체가 하나의 의식 작용인것으로 귀결됩니다.
제 개인적 견해임을 다시 한번 밝힙니다.
첫댓글 늘 장문의 조언을 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쉽게 설명해주신것 같은데 아직은
체득하려면 많은 정진울 해야하겠지요
평안한 저녁사간 되세요
제 경험상 포기만 안하면
읽고 듣고 법문 듣다가 때가 되면 저절로 알아집니다.
혹 공을 보면 당연한 애기만 써놓은걸 나중에 알게됩니다.
감사합니다.
무엇을 놓치고있었는지 보게 되네요
지나가는 아줌마보고 문득 한생각이 일어남을 보았으나
그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는이가 없었어요
그 이후로도 두세번 정도 그런경험이 있었는데
그렇게 일어나는 현상은 무상한것이라고
신경끄라고해서
더이상은 진행이 안되었던 기억이있네요ㅠ
무상을 보는게 곧 연기를 보는것이고 연기를 보면 곧 무아를 보는 것입니다
즉 무상=연기=무아=공 입니다
지금을 예를 들면
아주맘 보고 문득 생각없는 자리서 한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진것을 본것은 직관적으로 무상을 본것이고
그 생각은 대상 때문에 생멸한 한생각 이므로 직관적으로 연기를 본것이고
사람들은 생각,감정들을 나로 삼기때문에, 내가 일으켜다는 견해에서,대상과 동시에 생멸하는것을 보았기 때문에 무아의 견해로 순간 바뀔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그런 식으로 문득 견성할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는데,아무도 예수님 못알아 봤군요
ㅎㅎ 지나간 꿈속의 일입니다
바로 눈앞을 관찰하고 사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