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어요. 왜 목숨은 이렇게도 질기게 고통스러워야 뭐 하나라도 알게 되는 건지. p. 142
* 밀가루 팔러 나서니 바람 불고 소금 팔러 가니 비온다더니, 난 어째 뭐 좀 할려고 하면 동티가 난다냐. p. 169
*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막소금같이 굵은 눈발이었다. p. 179
* “삼밭의 쑥대라지 않던가…….”
쑥이라도 삼밭에서 자라면 삼을 닮아 곧게 자란다고 했다. p. 179-80
* 동업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 장사가 안 되면 그게 다 동업자 탓인 것 같고, 잘돼서 돈을 벌면 또 이게 다 내 돈일 텐데 해서 배아프고. p. 254
* “나는 말이다, 이 오윤재는 평생 돈에 팔려본 적 없이 산 사람이야. 그래도 밥 굶지 않았고 여자 호강도 시켜 보았어. 미물 같은 것들……. 제 목숨 아낄 줄은 모르고, 이마빼기 파란 것들이 그저 돈, 돈 하며 살아서 그래서 뭐가 되겠다는 거야, 응.”……
“아저씨, 이건 아셔야 해요. 세상이 변했단 말예요. 고무신이 잘 팔렸다고 언제까지 고무신 장사만 하나요. 사람들이 고무신을 신지 않고 구두를 신으면 그땐 구두장사를 해야지요. 안 그래요? ……부두엘 나가보니 꽁치 잡히는 철이 있고, 오징어 잡히는 철이 따로 있더군요. 그때 전 알 수 있었어요. 난 돌아가선 안 된다는 걸. 전 스물하나였어요. 이제부턴 제철이에요. ” p. 261
* 일인(日人) 마술사는 말했었다. 믿어야 된다. 아무 것도 없는 빈 손수건에서 비둘기가 나온다고 네가 먼저 믿어야 한다. 네가 믿지 않으면 손님들도 믿지 않아. 네가 먼저 속아야 하고 너 자신이 먼저 믿어야 해. 열일곱 살에 집을 나와 사십 년, 무엇이 자신을 이렇게 살게 했는지를 알 것 같았다. 속아서 살다가 가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까마귀 까악까악 울어대는 길, 땅 사고 집 짓고 자식 기르며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속아서 사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오윤재 죽음 직전의 독백 중에서) p. 276
* 천막 치고 무대 짓고 제주 피며 사는 게 우리들만은 아니란 걸 이제 나는 안다. 저 하늘이 천막이고 이 바닥이 무대지. 저마다 목숨껏 재주 한번 피우고 떠나가는 그게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길이었던 거야. p. 284
* 우리 한 세상 왔다 가는 것도 손님들이 실없이 웃으며 온갖 바보짓이나 골라 하는 네 꼴을 보고 앉았다가 옷 털고 돌아가는 거나 나찬가지가 아니겠냐.
“난 우리만 무대 위에 있고 남들은 다 구경꾼이라고 생각했었지. 그래서 외로웠던 거야. 그건 잘못이야. 그게 아니야. 갈보가 구경 오면 그게 구경꾼이지만 우리가 갈보집엘 가면 그땐 우리가 구경꾼이잖아. 난 이제 알 수 있을 것 같아. 사람들이란 저마다 있는 힘을 다해서 살아간다는 거야. 못난 놈도 제 딴에는 자기가 가진 거 남김없이 다 털어서 살고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겠어. 그래……이 세상바닥도 써커스 바닥이나 똑같아. 손님이 따로없다 뿐이지 분 바르고 옷 갈아입고 재주 피며 살기는 마찬가지란 생각이야. p. 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