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48)
어머니와 아들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친구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과 사연을 허락받고 이곳에 옮긴다.
중환자실을 돌다가 바라본 풍경이다.
순간 너무 감동을 받아 서서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치매에 파킨슨병으로 입원하신 김 할머니의 아들이 얼굴을 맞대고 손을 잡고 눈빛을 맞추는 모습에서
모자간의 절절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위장출혈, 두통과 욕창, 그리고 잦은 요로감염과 폐렴으로 패혈증이 와서 사경을 헤매다가 회복되셨다.
오랜 와상으로 다리를 쭉 펴지 못하고 오그라들었지만,
이 모습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비록 죽음이 임박했을 때 어떠한 연명치료도 거부한다는 서약서를 받은 환자이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지금은 대면 면회가 가능해서 다행이다.
‘어머니와 아들’은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영원한 사랑의 테마이다.
나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아버지가 72세에 중풍에 걸려 거의 10년이나 누워 지내셨다. 어머니가 간병을 하셨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혼자가 되고부터 치매가 왔다. 치매를 유발하는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가 노인을 홀로 버려두는 것이다. 항상 길가 옆 평상에 앉아서 아들을 기다리셨다.
병원일에 바빠 몇 달 만에 찾아가곤 했는데 옆집 아저씨가 “자네, 집에 자주 오게나. 자네 어머니가 매일 저렇게 평상에 앉아 자넬 기다린다네.” 고향길 초입에서 멀리서 보니 어머니가 평상에 앉아계셨다. ‘어머니~’하고 불렀지만 귀가 잘 안 들리시는지 대답이 없었다. 가까이 가서 “어머니~ 막내가 왔어요.” 하고 말하니 “니가 누구냐?”라고 하셨다. 치매가 생기자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옆집에 살던 형님이 어머니를 ‘일주일이라도 한번 모셔보거라’하여 집으로 모시고 왔다. 어머니가 한밤중에 깨어나 문을 마구 두드리며 나를 왜 이곳에 가두어두었냐고 말을 했다. 말을 해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밤마다 마구 문을 두드려 온 가족이 3일 만에 녹초가 되었고 할 수 없이 다시 시골의 형님에게 모셔다 주었다. 형님과 형수님이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형수님이 몇 년이나 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모셨다. 요양병원이 진작 생겼더라면 간병하는 형수님이나 어머니를 위해서도 좋았을 텐데 안타까웠다.
나는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자랐다. 어머니는 내가 막내여서 그런지 오랜 기간 품 안에서 키우고 재웠다. 초등학교 때에는 항상 어머니의 팔을 베개 삼아 누워잤다. 팔이 저리고 아팠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밤에 어떤 때는 시끄러워 깨는 수가 있는데 어머니가 피로하여 자면서 코를 심하게 고셨던 것이다. 어머니가 코를 심하게 골 때는 어린 생각에 ‘아버지는 어떻게 이런 분과 평생을 같이 주무실 수 있었을까?’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옛날에는 아버지고 어머니고 모두들 하루 종일 힘든 노동을 했기 때문에 잠을 잔다는 것보다 피곤에 절어 곯아떨어진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좁은 방에 대여섯 명의 식구가 누워잤는데 코를 고는 것은 예사이고 이빨을 가는 사람도 있고 꿈꾸다 헛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방구를 뀌는 사람, 자다가 요강에 오줌 싸는 사람 등….
시끄러워도 아무도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개를 키웠는데 밤새 개 짖는 소리가 났고 한 마리가 짖으면 온 동네 개가 다 짖어 ‘나그네 한 사람이 동네를 지나가는구나’하고 생각했다. 한밤중에 술 취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소리, 옆집에서 부부 싸움 하는 소리, 새벽이 되면 닭이 우는 소리로 사람들이 깨어났다. 어릴 때부터 시끄러움에 단련되어 소음으로 이웃 간에 문제 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요즘 사회에서는 층간소음으로 불미스러운 사건까지 생긴다. 어떤 사람은 밤중에 안방 화장실에서 소변을 누고 물을 내리면 그 소리가 시끄럽다고 아래층에서 항의가 들어와 안방 화장실을 아예 쓰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만큼 소음에 민감하다.
어려운 시절을 살았던 어머니 세대. 먹을 양식이 없어도 자녀들을 굶기지 않았고, 가난해도 자녀들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키운 어머니 세대. 이제 조금 안정이 되어 어머니를 봉양하려 해도 어머니는 가시고 없음을 한탄한다.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하고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쉴 날 없고 (나무가 조용히 있으려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않고)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라
자식이 부모를 섬기려 하나 부모가 기다려주지 않는다.
<공자가어(孔子家語)>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어머니를 꼬옥 오랫동안 껴안아주지 못해서 제일 후회스럽다. 25년 전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정말 오랫동안 껴안고 싶다.
“어머니, 보고 싶어요.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어머니가 항상 보고 계실 거라 믿고 잘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훗날 어머니를 만나는 날, 정말 감사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