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의 재현성과 윤리성, 학교 폭력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
신건자 동화집 『빨간 감 두 개』
신수진
학교를 중심으로 한 교육 제도 속에서 성장과정의 일체를 경험하고 이루어야 하는 아이들에게 ‘학교 폭력’은 돌이킬 수 없는 불행과 장애를 야기할 수 있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으로서 학습을 통해 고유한 능력을 개발함과 더불어 규칙과 도덕을 익히고 인간 관계를 경험하기 위한 곳이다. 그런데 이 사회화 과정에서 불가항력적인 폭력 사태를 겪게 되면 이것은 한 아이의 삶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학교 폭력은 학교 기관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위급하고 중대하게 다루어야 할 사안이다.
학교 폭력은 나날이 그 악랄함과 무도함으로 병리적인 현상과 확산의 징후를 증명하고 있다. 유명인 등이 차후에라도 학교 폭력 가해자로 밝혀지는 경우 그 지위를 박탈당할 만큼 사회적 문제의식과 대중적 비판정신이 합의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그러면서 크는 거지’라고 눈감아줄 정도로 학교 폭력이 사소한 장난이나 다툼의 수위를 넘어서고 있음은 분명하다. 학교 폭력은 친밀하고 특별한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개입하거나 판결하기 어려운 사례로 치부되어 왔다. 그러나 학교라는 단어를 빼면 그것은 엄연한 폭력이고 잔혹하고 치밀한 범죄행위를 능가하는 사건인 경우도 많다.
책임자들의 방조과 직무 유기, 형식적인 학교폭력위원회의 존재, 진상 조사나 합당한 조치를 무산시키는 편파적인 규정과 조직적인 은폐, 가해자에 대한 교육 대신 피해자의 용서를 강요하는 분위기 등은 학교 폭력이 왜 끊임없이 재발되는지를 말해준다. 누군가가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무고한 죽음에 이르는 일들이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나 예방책은 마련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문학은 재현성과 윤리성을 바탕으로 한다. 문학은 환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영예로운 승리의 순간을 누리는 인간을 위한 무대라기보다 박수소리가 들리지 않는 어둡고 구석진 무대 뒤편에서 패배의 눈물을 삼키는 인간을 위한 것이다. 문학성이라고 하는 것은 추락과 불시착, 격랑와 표류, 경사와 반동 같은 기제에서 자신을 온전히 들어올려 구할 때라야 비로소 현현되기 때문이다. 학교 폭력이라는 어둡고 캄캄한 무지와 슬픔은 어린 학생들에게 공포로, 오만으로, 자괴감으로, 가책으로, 그리고 때론 문학의 음성으로 다가온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미술시간입니다.
「가을을 나타내는 것 그리기」
선생님이 학습문제를 칠판에 쓰고 있는데 교실 앞문이 ‘드르륵’ 열립니다.
형도 엄마가 탈지면으로 콧구멍을 막은 형도 손을 잡아끌고 들어섭니다.
“어떻게 형도 어머님께서.”
선생님이 놀란 표정으로 형도 엄마를 맞자
“원우란 애 학교폭력으로 고발하러 왔습니다. 며칠 전에 우리 형도를 때렸는데 오늘 또 때려서 코피가 터졌어요.”
서슬 퍼런 형도 엄마 말에 선생님이 망설임 없이 큰소리로 원우를 부르셨습니다.
“이원우, 앞으로 나왔!”
원우가 앞으로 나가자 형도 엄마가 다짜고짜 원우 목덜미를 잡아끕니다.
“잠깐만요!”
선생님이 다급하게 형도 엄마 손에서 원우를 떼어냅니다.
“왜 말리세요? 이런 애는 경찰서로 데려가야 해요!”
화가 잔뜩 나 큰소리 치는 형도 엄마 앞에서 선생님이 원우 뺨을 ‘찰싹!’ 때렸습니다.
‘어, 선생님이!’
보고 있던 아이들이 눈을 둥그랗게 떴습니다.
서슬 퍼렇던 형도 엄마가 주춤했습니다.
―「빨간 감 두 개」 11쪽.
신건자의 동화 「빨간 감 두 개」(빨간 감 두 개, 아침마중, 2023)는 학교폭력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과 여전히 산재해있는 숙제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을을 나타내는 것 그리기’를 하고 있던 미술 시간에 교실 앞문이 열리며 형도와 형도 엄마가 들어선다. 며칠 전 원우가 형도를 때렸는데 오늘 또 때려서 코피가 났고 학교 폭력으로 고발하겠다는 것이다. 다짜고짜 원우 목덜미를 잡아끌고 경찰서로 데려가야 한다는 형도 엄마 앞에서 선생님은 원우 뺨을 때린다.
이 첫 장면은 교육현장이 안고 있는 학교 폭력의 현실을 다방면으로 진단해보도록 한다. 먼저 아이들 사이에서 폭력이 발생하기 전에 가정환경에 의한 계급화된 권력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동체 내부의 서열화는 이미 폭력적이다. 원우는 평소 돈이 많다고 잘난 체하며 아이들을 깔보고 괴롭히는 형도가 “할머니와 어렵게 사는 일남이 머리를 툭툭 치며 기죽”이는 것 때문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는 일남이를 대신해서 형도를 때려주었다. 원우가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지속되어 왔던 아이들 사이의 갈등 관계와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서 주목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원우의 응징이 부당한 위세와 폭력에 대한 저항과 응징이었다고 할지라도 똑같은 폭력으로 갚아준 것에 대해서는 분명한 잘못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점차 가속화되는 교권 추락 현상이다. 과거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 했던 시절도 있었으나 이제는 교사의 권위보다 학생의 인권이나 학부모의 참여와 같은 가치가 높아진 시대다. 교육과정이 선발을 위한 입시의 장으로 전락하면서 개인주의와 성과주의만 부각되어 왔다. 학교는 학생들을 기계적으로 점수화하고 승자와 패자를 나누기 위한 기관이 아니다. 이런 풍토 속에서 교사의 권한과 재량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교육시스템이 교사의 지도나 통제를 무력화하면서 학생이 교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건이나 학부모가 교실에 난입해 교권을 침해하는 사건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형도 어머니가 수업 중인 교실로 찾아와 원우를 경찰서로 끌고 가려고 한 항의의 방법 또한 폭력적이다.
셋째, 이 장면에서 시도하는 것처럼 학교에서 벌어진 일이 자체적으로 숙고되거나 개선되지 못하고 곧장 경찰서나 법원으로 옮겨가는 최근의 방식을 과연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것은 이제 누구도 학교가 책임지고 일을 수습하고 해결하는 능력과 의지를 지닌 곳이라고 여기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는 신뢰와 책임 속에서 상호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넷째, 도미노처럼 나아가는 폭력의 연쇄성이다. 교실에 찾아와 원우를 호출하는 형도 어머니 앞에서 이 사건의 전후 사정을 알아보지도 않은 선생님이 형도 어머니의 말만 듣고 원우의 뺨을 때린 것은 일차적으로 자명한 폭력이다. 교실은 교사의 수업권이 보장되어야 하는 신성한 교육의 장이며 동시에 학생의 인권도 보호되어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원우는 가장 안전해야 할 교실에서 경찰서로 데려가려는 학부모의 위협을 받았고 나아가 교사에게 폭력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 이 전근대적 풍경을 조금 더 생각해보면 친구를 때린 자기 반 아이가 폭력 사건에 연루되어 교실 밖으로 끌려나가게 된 상황에서 학생의 뺨을 때릴 수 있는 선생님이 있을까 하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는 자신에게 올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순간 선생님의 폭력 이면에는 원우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키기 위한 마음이 들어있다고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다음 순간 원우는 자신이 가난해서 선생님께 차별받았다고 생각하고 창밖으로 투신한다. 화단에서 나무를 가꾸던 기사 아저씨가 2층에서 떨어지는 원우를 받아안았기 때문에 원우는 다치지 않았지만 기사 아저씨는 엉덩뼈를 다친다. 일남이는 형도에게, 형도는 원우에게, 원우는 선생님에게, 선생님은 형도 엄마에게 폭력을 당하는 형국인 것이다. 결국 선생님에게서 돌아온 폭력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진 원우는 그 공격성을 자신에게 향하도록 해 스스로 창밖으로 떨어졌지만 밑에서 일하고 있던 기사 아저씨를 다치게 한 뒤에야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원우는 뒷산으로 달려가 고추잠자리를 잡고 흘러가는 흰 구름을 본다. 원우는 반성이나 문제해결에 도달하지 못한 채 자신의 뺨을 때린 선생님에 대한 원망과 형도 엄마와 형도에 대한 복수심에 사로잡힌다.
원우 손가락에 낀 빨간 고추잠자리가 갑자기 헬리콥터로 변해서 말을 합니다.
“이원우 회장님, 제게 타십시오. 오늘 5학년 2반 동창회에 모시고 가겠습니다.”
멋진 신사가 된 철강회사 이원우 회장은 고추잠자리 헬리콥터를 타고 30년 전에 다녔던 초등학교로 날아갔습니다.
(중략)
선생님이 빨간 감이 담긴 팩을 원우에게 주셨습니다.
“빨갛게 멍든 네 마음을 닮았지? 빨간 감을 볼 때마다 네 생각을 하며 성공하기를 빌었다. 많이 보고 싶었는데 참 멋지게 자랐구나! 고맙다.”
선생님이 원우 등을 토닥이셨습니다.
“그때는 너를 보호할 생각에 형도 엄마 보는 앞에서 네 뺨을 때렸다. 허지만 그 방법이 옳지 않았다는 걸 두고두고 반성했다. 그동안 마음 많이 아팠지? 용서하고 맘 풀어라.”
선생님 말에 30년간 얼어붙었던 원우 가슴이 흐르르 녹아내렸습니다.
―「빨간 감 두 개」 16~19쪽.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추스를 수 없어 뒷산으로 달려갔던 원우는 꿈속에서 자신의 뺨을 때린 선생님의 마음을 알게 되고 용서를 구하는 선생님과 화해한다. ‘꿈’이라는 매개를 통해 이 이야기는 ‘현실’의 갈등을 뛰어넘는 계기를 마련한다. 현재 주인공이 가난이라는 굴레에서 상처받고 폭력을 행하고 폭력을 당했던 관계의 악순환에 갇혀 자기 스스로나 타인을 온전히 수긍하거나 납득하지 못했다면, 꿈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꿈꾸는 성공한 사업가의 모습으로 투사될 뿐 아니라 폭력을 둘러싼 오해와 상처를 용서하고 용서받음으로써 자신과 타인에게서 회복되고 치유된다.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한 난제들이 꿈속에서 해결되는 구도인데 이는 주인공 원우로 하여금 바람직한 성장 단계를 꿈이라는 현실의 반영물에서 대리체험 하도록 하는 장치인 것이다.
산등성이에 노을이 빨갛게 내려앉을 무렵 낮잠에서 깨어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온 원우는 선생님이 원우 어머니를 통해 빨간 감을 건네주고 가셨음을 알게 된다. 꿈에서 받았던 감은 현실에서 다시 한번 동일하게 전해짐으로써 폭력에 대한 반성과 후회 그리고 이해와 용서의 의미를 한 번 더 내재화시키고 강화한다. 이야기는 다음 날 아침, 선생님께 드릴 감과 형도에게 줄 감을 가방 속에 넣고 학교에 가는 원우의 모습을 결론으로 삼으면서 마침내 원우의 위기와 아픔이 긍정적으로 해소되고 극복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동화에서 붉은 색의 상징성은 첫 장부터 끝장까지 여러 가지 사물로 변주된다. 사건이 발생한 시공간인 가을날 미술 시간의 붉은 색, 원우에게 맞아서 흘린 형도의 붉은 코피, 선생님께 맞은 원우의 붉은 뺨, 꿈과 현실에서 선생님의 사죄의 마음을 대신했던 붉은 감, 꿈에서 현실로 연계될 때 이어지는 노을 길의 붉은 배경, 선생님과 형도를 위해 원우가 전해주는 붉은 감, 새날이 밝았음을 응원하는 아침의 붉은 해……. 처음에 붉은 색은 폭력의 혈흔과 고통을 뜻했지만 나중에 그것은 폭력에 대한 진심어린 반성과 폭력이 없는 새로운 장에 대한 희망으로 바뀐다.
이 동화는 학교 폭력 이야기를 아주 오래전 분위기의 인물과 사건 그리고 배경으로 들려준다. 생선을 파는 가난한 엄마를 두어서 자신이 선생님께 차별을 받는다고 느끼는 주인공 원우, 값비싼 축구공을 가지고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형도, 수업 중인 교실에 찾아와 경찰서에 데려가겠다고 소리치는 형도 어머니, 모두의 앞에서 원우의 뺨을 때린 선생님. 이 극단적이고 대비적인 설정은 촌스러울 만큼 작위적이고 노골적이다. 갈등에서 화해로 종결되는 도식적인 구성 또한 부자연스럽고 비약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이를 고정관념의 클리셰라고만 말할 수 없게 만드는 우리의 부끄러운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가 검사여서 또는 국회의원이어서 학교 폭력을 저지르고도 징계를 피하고 법 지식을 동원해 항소를 거듭하면서 오로지 명문대 진학의 목적을 달성하는 사례들을 우리는 숱하게 보지 않았던가. 학교 폭력을 둘러싼 불공정과 부도덕의 병폐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유령처럼 출몰한다. 힘 있는 부모가 막아주고 눈치 보는 학교가 덮어주는 그래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거짓말처럼 뒤바뀌고 죄 없는 아이들이 도망치듯 전학 가고 죄지은 아이들이 면죄부를 통해 죄의식 없이 출세가도를 달리는 이야기. 반복되는 플롯과 너무나 닮아있는 주인공들이 현실에 버젓이 있다. 아직 진짜 경주의 스타트라인에 서지도 않은 아이들이 약자는 이렇게 짓밟아도 된다고 학습하고 자란 것 자체가 이미 벌을 받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동화에서 불거지는 장면들이 불편하고 불쾌한 것은 그것이 현실을 상기시키는 진실에 가까운 것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은 바로 그 울퉁불퉁하고 거친 돌부리들이 채이고 걸리도록 그리하여 넘어지고 돌아보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문학의 재현성과 윤리성은 우리에게 현실을 깨닫고 바꾸도록 독려한다.
|
첫댓글 와, 짝짝짝.....
아직 받아 보지 못했지만 기다려집니다. 제게도 곧 빨간 감 두 개가 오겠지요?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