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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6장 1-31절
1-2.『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자나)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가사 사람들에게 삼손이 왔다고 알려지매 그들이 곧 그를 에워싸고 밤새도록 성문에 매복하고 밤새도록 조용히 하며 이르기를 새벽이 되거든 그를 죽이리라 하였더라』
가사는 가드, 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과 더불어 블레셋의 주요 다섯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그중에도 가장 최남단에 자리하고 있는 가사에는 애굽에서 서아시아로 통하는 상업로가 있어 중요한 전략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이 도시는 가나안 정복시 이스라엘에 의해 정복되었으나 해안에 있는 다른 도시들과 함께 곧 블레셋에 의해 재탈환되고 말았다. 한편 가사는 삼손의 주요활동지인 소라에서 약 60Km가량 떨어진 곳인데 어떻게 해서 삼손이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다. 레히에서의 삼손의 활약으로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몹시 두려워 하였고 삼손도 어느 정도 자신의 힘을 믿고 교만해 있었기 때문에 블레셋 땅을 맘대로 다닐 수 있었던 것 같다. 이것이 삼손을 실족케 하고 비참한 종말을 가져온 것이다.
“한 기생을 보고” 가나안에 열정탐꾼이 기생 라합의 집에 머물었던 것과 같은 이치로 보면 이해가 될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기생에 해당하는 '자나'는 '매춘부' 라는 뜻이다. 삼손이 가사에 어떤 일로 갔다가 매춘부의 유혹을 받고 그녀와 동침하였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반드시 기생집에 들어갔다고 매춘 행위로 연결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 될 수 있다.
에워싸다'에 해당하는 '사바브'는 '주위를 돌다, 주위에 포진하다'는 뜻이다. 이는 곧 블레셋인들이 성문 입구에 복병을 배치하고 또한 삼손을 감시하기 위해 기생집 부근에 파수꾼을 파견한 것을 의미한다.
“밤새도록 성문에 매복하고 밤새도록 조용히 하며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얼마나 두려운 존재로 여겼는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가사 사람들은 삼손의 출현 자체를 거리낌과 위해로 여겨 어떻게 해서든지 삼손을 죽이려고 했다.
“새벽이 되거든 그를 죽이리라” 블레셋 병사들은 삼손이 있는 기생집을 에워싸며 밤새도록 성문에 매복하고 새벽을 기다렸다. 그들은 삼손이 두려웠기 때문에 정면대결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하고 기습 공격할 수 있는 기회만을 노렸던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삼손이 성문을 나설 때 뒤에서 기습 공격을 하려 했을 것이다. 본절 문맥의 전후 상황을 볼 때 이 기생 집은 가나안 정탐시의 기생 라합의 집과 같이 성벽 위나 성문 가까이에 있었던 것 같다.
3.『삼손이 밤중까지 누워 있다가 그 밤중에 일어나 성 문짝들과 두 문설주와 문빗장을 빼어 가지고 그것을 모두 어깨에 메고 헤브론 앞산 꼭대기로 가니라』
삼손이 밤에 깊이 잠들었다가 문득 일어난 것이 아니라 사전에 이미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를 잡으러 온 것을 알고는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린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삼손이 어떻게 하여 가사 사람들의 흉계를 알아차리고 밤중에 일어나게 되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아마 기생 라합의 경우처럼 기생이 삼손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었을 것이다.
“성문짝들과 두 설주와 빗장을 빼어” 삼손은 성문을 지키고 있던 문지기들과 병사들의 눈을 피해 성문 전체를 뽑아 메고 헤브론까지 가버렸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성문은 그 성읍을 대표하는 것으로 그 민족의 국력을 상징한다. 창세기 22장 17절에서『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따라서 삼손이 가사의 성문을 유다의 중심지인 헤브론으로 옮겼다는 것은 블레셋의 권세가 유다에게 복속 될 것을 상징한다.
“헤브론 앞산 꼭대기로 가니라” 헤브론은 가사에서 동쪽으로 약62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유다 지파의 성읍이었다. 따라서 삼손이 성문들을 메고 약 62Km나 되는 먼 거리를 옮겼다는 것은 그의 힘이 얼마나 엄청났는가를 가히 짐작하게 된다. 삼손은 헤브론이 유다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유다 사람과 더불어 완전한 승리를 만끽하려고 가사 성문을 헤브론 앞산까지 옮겨 놓았을 것이다.
4.『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가사에서 기생집에 들렀다가 큰 변을 당할뻔 했던 삼손은 육신의 정욕에 빠져 들릴라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사랑하다'는 말은 삼손이 들릴라와 합법적인 결혼을 하였다는 말이 아니다. 들릴라 라는 이름은 히브리식의 이름으로 '음란한 또는 연약한'이란 뜻이며, 밤의 여인이라는 의미다. 그녀의 거주지가 삼손의 고향인 소라에서 그리 멀지 않은 소렉 골짜기인 것으로 보아 유다 여인일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당시 블레셋 치하에서 유대인과 이방인간의 통혼이 횡행하던 점에 비추어 볼 때 들릴라는 블레셋사람과 결혼한 여인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것은 그녀가 블레셋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고 있던 것으로 보아 충분히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소렉 골짜기는 '좋은 포도의 골짜기'라는 뜻이다. 예루살렘 서남쪽 약 21Km지점에서 지중 해변의 서북 방향으로 약 32Km나 뻗어 있는 골짜기이다. 오늘날 '와디 에스 사랄'로 불리우고 있는데 그 부근에는 소라, 딤나, 레히 같은 성읍이 위치해 있다.
5.『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 여인에게로 올라가서 그에게 이르되 삼손을 꾀어서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 큰 힘이 생기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능히 그를 결박하여 굴복하게 할 수 있을는지 알아보라 그리하면 우리가 각각 은 천백 개씩을 네게 주리라 하니』
방백들이라 함은 블레셋의 주요 다섯 도시인 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가드, 에그론의 다섯 방백을 가리킨다. 여기서 우리는 블레셋족이 삼손의 문제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매우 심각하게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 큰 힘이 있는지” 14장에서 수수께끼는 사자와 꿀에 대한 수수께기였지만, 여기에서는 삼손의 힘에 대한 것이다. 블레셋의 방백들은 삼손의 초자연적인 힘이 당시의 이방인들이 지니고 다니던 호신패나 부적과 같은 것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했다.
“은 천백개” 블레셋 방백들은 삼손의 힘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들릴라를 설득하고 은 천백 세겔로 모종의 계약을 체결했다. 일반적으로 은 한 세겔은 일반 노동자의 4일간의 품삯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들릴라에게 있어서 은 천백은 그녀가 십년 동안 쓰지 않고 모으기만 한다 해도 모으기 힘든 엄청난 액수이다. 들릴라는 이와 같이 엄청난 재물에 혹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삼손의 힘의 비밀을 알아내지 못한 경우에 당할 보복이 두려워 어떻게든 삼손의 힘의 근원을 알아내려고 애쓴다. 천백은 11과 같으며, 12에 하나가 부족하다. 그래서 하나를 채워넣어야 하는 숫자인 것이다.
6-7.『들릴라가 삼손에게 말하되 청하건대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며 어떻게 하면 능히 당신을 결박하여 굴복하게 할 수 있을는지 내게 말하라 하니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마르지 아니한 새 활줄 일곱으로 나를 결박하면 내가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굴복하게 하다”에 해당하는 아나는 '억압하다, 비천케 하다'라는 뜻이다.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한 삼손에게 이와 같이 직설적인 표현으로 질문한 것으로 보아 들릴라는 상당히 우둔한 여자였던 것 같다. 이에 대해 삼손은 세번씩 거짓말을 하면서 그녀의 질문에 정직하게 말하는 것을 회피했다. 그리고 또 삼손은 들릴라의 질문이 그 당시 블레셋인들과 같이 이방인들의 미신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임을 눈치채고 그럴듯한 미신적인 투로 대답을 한다.
“마르지 아니한 새 활줄 일곱으로” 활줄에 해당하는 '예테르'는 현악기의 현이나 활시위 또는 동물의 심줄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정확히 어떤 줄이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미신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는 들릴라나 블레셋 방백들에게는 삼손의 대답이 신빙성있게 보였던 것같다. 더욱이 당시 히브리인들은 '일곱'이라는 수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삼손의 대답은 더욱 그럴 듯하게 보였을 것이다.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블레셋인들이 삼손을 보통의 인간으로 본 것이 아니라 신화 속의 인물들처럼 생각했음을 시사해 주는 구절이다. 그들이 이러한 삼손의 대답을 얼마나 신빙성있게 받아들였는가는 이어지는 그들의 즉각적인 반응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8-9.『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마르지 아니한 새 활줄 일곱을 여인에게로 가져오매 그가 그것으로 삼손을 결박하고 이미 사람을 방 안에 매복시켰으므로 삼손에게 말하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그 줄들을 끊기를 불탄 삼실을 끊음 같이 하였고 그의 힘의 근원은 알아내지 못하니라』
매복한 사람에 해당하는 '하오렙'은 단수형이지만 집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즉 들릴라는 삼손을 이미 일곱 개의 칡 줄로 묶어 두었기 때문에 안심하고 블레셋 사람들을 불러들여 내실에 매복시켰던 것이다.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 삼손은 저의를 감춘 채 이렇게 자기에게 위험을 알려 준 들릴라에 대하여 호의를 품었을런지 모른다. 아니면 들릴라의 음모를 알고도 육적인 욕망에 깊이 빠져 있어서 그녀를 포기할 수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삼손은 이와 같이 위험을 당하고도 여전히 들릴라를 가까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죄의 유혹은 눈을 멀게 하고 현명한 판단력을 상실케 만드는 것이다.
10-11.『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보라 당신이 나를 희롱하여 내게 거짓말을 하였도다 청하건대 무엇으로 당신을 결박할 수 있을는지 이제는 내게 말하라 하니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쓰지 아니한 새 밧줄들로 나를 결박하면 내가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희롱하여”에 해당하는 '헤탈르타'는 '엉덩이를 치켜 세우다'라는 뜻의 동사 '탈랄'의 사역형 능동태로서 '속임수에 의해서 심한 모욕감을 주는 것'을 가리킨다. 이 말 속에서 들릴라의 우둔함과 여성으로서의 귀염성을 느낄 수 있는데 아마 삼손은 이러한 들릴라의 매력에 매료되어 더욱 죄악 속 깊이 빠져 들어간 듯하다.
12.『들릴라가 새 밧줄들을 가져다가 그것들로 그를 결박하고 그에게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팔 위의 줄 끊기를 실을 끊음 같이 하였고 그 때에도 사람이 방 안에 매복하였더라』
줄이란 비틀어 꼰 밧줄을 가리키는데 15:13에도 동일한 어휘가 사용되었다. 본절과 같은 삼손의 대답도 들릴라에게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그럴 듯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번에도 삼손이 자신의 강함을 믿고서 마치 게임을 즐기듯이 들릴라를 희롱한 것과 다름없다. 삼손의 비참한 종말은 바로 이러한 그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자신을 넘어뜨리려는 대적의 계교에 무방비 상태로 안일하게 자신의 힘만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삼손은 실족케 되고만 것이다.
13-14.『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이 이 때까지 나를 희롱하여 내게 거짓말을 하였도다 내가 무엇으로 당신을 결박할 수 있을는지 내게 말하라 하니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그대가 만일 나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베틀의 날실에 섞어 짜면 되리라 하는지라 들릴라가 바디로 그 머리털을 단단히 짜고 그에게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어 베틀의 바디와 날실을 다 빼내니라』
삼손은 들릴라의 계획적인 질문을 농담으로 받아들였고 그도 역시 농담로 답변하였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진 결박사건으로 미루어 삼손은 여인의 간청 속에 블레셋인들의 계교가 담겨 있음을 충분히 짐작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들릴라의 질문을 물리치지 못한 것은 정욕에 빠져 삼손의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유 부단한 태도로 말미암아 들릴라는 끈질기게 유혹의 손길을 뻗을 수 있었던 것이다. 본절에 나타난 세번째 대답은 이전의 두 대답에 비해 더욱 사실에 가까와졌다. 즉 삼손은 나실인의 특징이자 자신의 힘의 근원인 머리털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머리털 일곱 가닥을 위선에 섞어 짠다는 것은 베틀에 있는 선 사이에 머리털을 집어넣고 옷을 짜듯이 짜는 것을 가리킨다. 그렇게 하고 나면 삼손의 머리털은 모두 일곱 가닥씩 가지런히 짜여지게 될 것이다.
바디(야테드)는 대나무로 바늘처럼 만들어 베를 짤 때 베실을 낱낱이 꿰어 짜는 데 사용하는 제구이다. “베틀의 바디와 날실을 다 빼내니라” 삼손의 머리털은 모두 베틀에 묶여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도 삼손을 완전히 결박하지는 못했다. 한편 당시에는 애굽을 중심으로 하여 베짜는 기술이 베니게 해안 지역에 널리 유행하였다.
15-16.『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 당신이 이로써 세 번이나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는지를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삼손에게 세 번씩이나 속은 들릴라는 이제 최후로 사랑을 빙자한 간책을 동원한다. 딤나 여인의 간청에 있어서도, 삼손은 본절의 경우와 똑같이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수수께끼의 비밀을 털어놓고 말았다. 눈물과 사랑에 호소하는 들릴라의 집요한 유혹으로 말미암아 이제 삼손은 깊은 고뇌에 빠진다. 아무튼 이상으로도 우리는 삼손이 얼마나들릴라에게 깊이 빠져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그가 첫번째 아내를 떠난 후 혼자 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날마다 그 말로...마음이 번뇌하여” 삼손이 이처럼 번뇌한 것으로 보아 그에게는 그래도 아직 하나님께로부터 구별받은 나실인이라는 자각이 있었던 것 같다. 따라서 그 나름대로 하나님의 계명과 인간적 욕망 사이에서 심각한 갈등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을 떠난 자는 양심의 힘으로도 악의 손길을 쉽게 뿌리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결국 삼손도 들릴라에게 자신의 힘의 근원을 털어놓고 만다. “번뇌하여” 히브리어 '카차르'는 '잘게 자르다, 찢다'는 뜻이다. 이는 삼손이 극심한 갈등과 고뇌에 사로잡혀 마치 그 마음이 찢어질 듯한 상태임을 잘 나타내 준다.
17.『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삼손은 나실인으로서 하나님의 게명을 끝까지 고수하기를 포기하고 인간적인 욕정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즉 삼손은 사자를 찢어 죽일 만큼 강하였으나 애정의 유혹에는 약했고 일천명의 블레셋인들을 나귀턱 뼈로 쳐죽일 수 있었으나 애정의 올무에서는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육적 자아와의 싸움에서 삼손은 지고 만 셈이다.
18.『들릴라가 삼손이 진심을 다 알려 주므로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을 불러 이르되 삼손이 내게 진심을 알려 주었으니 이제 한 번만 올라오라 하니 블레셋 방백들이 손에 은을 가지고 그 여인에게로 올라오니라』
들릴라는 블레셋 방백들에게 거의 신임을 잃고 있었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블레셋 인들도 더 이상 삼손의 비밀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거의 포기 상태에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이번 게임이 삼손에게는 마지막 승부에서 돈에 대해 강한 욕망을 가진 들릴라가 삼손을 이긴 것이다. 결국 삼손은 육욕에 눈이 어두워 신앙을 저버린 것이다.
19.『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들릴라는 삼손이 가르쳐 준 대로 그의 힘이 사라지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면서도 스스로는 한번도 정말 그의 힘이 없어졌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그런데 본절에서는 또 한번의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자신이 직접 삼손을 시험하여 그의 힘이 없어졌는가를 확인하는 신중성을 나타냈다. 한편 삼손의 힘은 외적인 머리카락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나실인으로서의 성별의 상징이며 증거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그이 힘이 사라진 때는 그의 머리카락이 잘리운 때가 아니라 오히려 그가 들릴라에게 진정을 토하여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거부한 때에 사라졌다고 할 것이다.
20.『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나실인의 상징인 머리털을 깎이운 삼손은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였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권능도 더 이상 그에게 머물지 않고 떠나 버렸다. 그러나 그런 사실도 모르고 위기에 처한 삼손은 예전의 힘을 과시해 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무기력해진 자신과 사랑했던 여인으로 부터 철저히 배신당하고 이방 대적들의 능욕거리로 전락한 스스로를 발견하고 절망과 회한 가운데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를 절망케 만든 것은 하나님의 손길이 떠났다는 사실이었다.
21.『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승리자가 패한 자에게 눈을 빼는 잔인한 형벌을 내리는 것이 관례였다.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도 느부갓네살에게 잡혔을 때 두 눈을 뽑히우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간 일이 있다. 한편으로 삼손이 당한 이런 형벌은 그가 눈으로 여인을 보므로 죄악에 빠진 당연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니” 조그마한 맷돌은 가정에서 여인들이 돌리었다. 그러나 가축을 사용하여야만 돌릴 수 있는 정도의 큰 맷돌을 돌리는 일은 대개 노예가 맡아 하였는데 이는 노예의 사역 중에서도 가장 고된 일로서 천히 여기던 것이었다. 특히 이러한 형벌은 로마와 헬라 시대에 유행하였다.
22.『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시작하다'라는 단어는 이미 13:5에서도 나온 적이 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본절에서도 이 단어를 통하여 삼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이스라엘의 구원이 다시 시작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또 육의 눈을 잃고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는 중에 삼손이 서서히 영의 눈을 뜨기 시작하였음도 암시해 주고 있다.
23.『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이르되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다 모여 그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고』
다곤은 블레셋의 주신으로서 '날씨의 신'이라고 하기도 하고 '곡물의 신'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 명칭은 곡물을 뜻하는 '다간'에서 온 것이다. 그런데 중세 율법학자들은 가사 지역이 해안 지방인 것으로 보아 다곤은 '바다의 신'이며 그 명칭은 물고기를 뜻하는 '다그'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한다.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들의 토지를 황폐화시킨 삼손을 다곤 신이 자기들의 손에 붙였다고 찬양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다곤은 곡물 신임이 분명하다. 한편 이 다곤 숭배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도 널리 유행되었는데 벧산(삼상 5:2-7) 지역에서 특히 많았고 다곤의 이름을 딴 도시도 있었다(벧다곤, 수 19: 27).
“즐거워하고” 이에 해당하는 '사마흐'는 '원기를 돋우다'는 뜻으로 종교적 축제와 연관되어 사용되는 말이다. 이로 보아 블레셋인들은 다곤에게 제사를 드린 후 축제를 베풀었음에 분명하다.
24.『백성들도 삼손을 보았으므로 이르되 우리의 땅을 망쳐 놓고 우리의 많은 사람을 죽인 원수를 우리의 신이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자기들의 신을 찬양하며』
블레셋에게 큰 골치거리였던 삼손이 잡히므로 말미암아 이제 거국적인 감사 축제가 블레셋에서 열렸다. 이것으로 볼 때 그 동안 반블레셋적인 삼손의 행위에 따른 블레셋인들의 피해가 얼마나 지대했는가를 짐작케 된다.
25.『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이르되 삼손을 불러다가 우리를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옥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니라 그들이 삼손을 두 기둥 사이에 세웠더니』
큰 축제에는 많은 술이 제공되어 흥청거리기 마련이다. 여기서 '마음이 즐거울 때'에 해당되는 '토브 리밤'도 흔히 '술에 취해 마음이 흥분된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다. 블레셋인들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한때 그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삼손을 끌어내어 재주를 부리게하여 즐기는 등 온갖 모욕을 주었다.
“재주를 부리게 하자” 문자적 뜻은 '희롱하자'이다. 그러나 삼상 18:7과 삼하 6: 5에서는 노래와 악기에 맞춰 춤을 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로 볼 때 블레셋인들은 앞을 못보는 삼손으로 하여금 음악만 듣고 춤을 추게 하고선 그것을 보고 즐긴 것 같다.
“삼손을 두 기둥 사이에 세웠더니” 삼손이 춤을 추다가 기둥 사이에 세워지게 된 것은 그에게 약간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거나 아니면 블레셋인들이 거기서 삼손을 더 잘 볼 수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26.『삼손이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이르되 나에게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 그것을 의지하게 하라 하니라』
삼손은 이전부터 이 집의 구조를 잘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그는 잠깐의 휴식 시간을 통해 옆에 있던 소년으로 하여금 그 건물전체 또는 지붕을 바치고 있는 기둥을 찾아서 그것에 의지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을 것이다. 한편 여기서 '의지하게'에 해당되는'솨안'은 '조용히 쉬게 하다'라는 뜻이다. 즉 삼손은 피곤한체하면서 버팀 기둥에로 자연스럽게 접근해 간 것이다.
27.『그 집에는 남녀가 가득하니 블레셋 모든 방백들도 거기에 있고 지붕에 있는 남녀도 삼천 명 가량이라 다 삼손이 재주 부리는 것을 보더라』
당시 그 건물의 구조를 대충 묘사해 보임으로써 삼손이 행한 이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즉 당시 팔레스타인의 가옥의 형태는 대개 앞쪽에 넓은 마당이 있고 단층의 가옥일 때는 거실 위에 평평한 지붕이 있다. 그리고 2층 이상의 가옥일 때는 거실은 2층에, 아래층은 하인들의 방과 창고로 되어 있다. 반면 그보다 더 큰 회당의 경우에는 지붕이 넓어서 3천명 이상이 올라갈 수도 있었으며 지붕은 대개 목재로 된 두 개의 버팀대로 받쳐져 있었다. 따라서 이 버팀대를 빼버릴 경우에 지붕의 가운데 부분은 파괴되어 위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도 죽음을 면하기가 어렵다. 삼손이 단번에 수많은 블레셋인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같은 가옥 구조 덕분이었다.
28.『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삼손은 엔학고레에서의 기억을 되살려 그때의 심정으로 다시 한번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삼손의 기도는 그가 사용한 하나님의 명칭 세 가지와 더불어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첫째, 주(아도나이):이것은 삼손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을 주장하시는 분은 곧 주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임을 시사한다. 그리고 자신을 사슬로 맨 블레셋이 주가 될 수 없으며 자신의 영혼을 주장하시는 하나님만이 '주'이심을 보여 준다.
둘째, 여호와, 이것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내신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명칭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분은 오직 여호와 뿐이심을 말하는 삼손의 고백을 발견할 수 있다.
셋째, 하나님(하엘로힘) : 여기서 관사 '하'가 붙어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모든 신들 중의 신임을 나타낸다. 이로 볼때 삼손은 이 싸움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열방의 신들과의 싸움이며 이 싸움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반드시 숭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나를 생각하옵소서” 생각하다에 해당하는 '자카르'는 '기억해내기 위해 표를 해두다'는 뜻이다. 즉 삼손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종'으로 구별해 주신 것 에 의거, 다시금 자기를 생각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권능의 장중에 다시 한번 사로잡히기를 소원하는 삼손의 심경을 잘 나타내 준다.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눈은 샘을 의미한다.샘은 말씀을 상징한다. 눈을 뺏다는 것은 생명의 물인 샘을 뺏다 라는 것이다. 삼손의 기도는 마치 자신을 불구로 만든 자들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심에서 나온 것처럼 보인다. 삼손의 기도는 자신의 두 눈을 위해서 한 기도가 아니라 자신에게는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고통을 준 원수들인 블레셋족에 대하여 원수를 갚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29.『삼손이 집을 버틴 두 기둥 가운데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삼손은 이처럼 다시 하나님께서 주신 완력으로 그 건물의 버팀대를 두 팔로 하나씩 끌어 안고 밀기 시작했다. 기도 후에 잇따른 이러한 즉각적인 행동 개시는 확신에 찬 믿음의 발로이다.
30.『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자기 한 몸을 던져 이스라엘을 구원코자 하는 이러한 삼손의 살신 성인의 정신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모형이 된다. 그의 죽음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일종의 전사였다. 즉 삼손은 최후의 장렬한 죽음으로써 블레셋의 신 다곤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화롭게 한 것이다.
31.『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의 시체를 가지고 올라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니라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삼손은 독자였다. 때문에 여기서 '그의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라 함은 이스라엘 동포나 삼손의 부족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편 고대에는 죽은 자의 시신을 처리하는 문제가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그리고 특히 이스라엘에서는 그들의 왕이나 지도자가 죽은 뒤 그 시신을 처치하는 태도나 방법에 따라 생전의 업적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본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삼손을 당대의 지도자로 예우를 다하기 위하여 가사의 무너진 블레셋 신전으로 그의 시신을 찾으러 갔음을 보게 된다. 한편 본절에서 이스라엘인들이 아무런 방해없이 무너진 선전에서 블레셋인들의 시신들과 섞여 있는 삼손의 시신을 쉽게 찾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아마 당시 그 주변의 블레셋인들은 어떤 미신적인 두려움 때문에 모두 도망가 버린 것 같다.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사사로 들어 쓰신 자이자 기간이었음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다. 삼손의 생애는 모두 끝난다.
(종합적으로)
삼손은 블레셋 사람의 때에 이스라엘 사사로 이십 년을 지냈는데, 그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이 늘 함께 했다. 한 번은 딤나의 포도원에서 젊은 사자를 만나서 사자와 싸울 때는 염소새끼를 찢어 죽이듯 했고, 이스라엘의 대적인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와 마주할 때도 짐승 턱뼈 하나를 주워가지고 한 더미, 두 더미에 천명이나 되는 사람을 죽여 쌓아 놓고 블레셋 사람들을 떨게 했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를 힘으로는 제압할 수가 없어서 그를 잡을 방도를 생각하다가 삼손이 들릴라라고 하는 여인을 좋아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통해 힘의 원천이 어디로부터 나오는지를 알아내고자 꾀를 짜내었다.
삼손은 블레셋 딤나 지역의 여자와 결혼을 했다가 실패하고, 들릴라를 만나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잡으려고 들릴라를 찾아와 삼손의 힘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알아내어 그 힘을 빼앗을 방도를 알아내 주면 다섯 사람이 각각 은 일 천 일 백을 상금으로 주겠다고 하고 그 방도를 알아내도록 했다. 삼손은 들릴라를 만나 여인의 꾀에 빠져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렸다. 들릴라는 수 차례에 걸친 시도 끝에 삼손에게서 그 비밀을 알아내었고, 들릴라는 삼손을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한 후, 사람을 불러 머리카락을 자르게하고 시험해 보았다. 그리고 그 힘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블레셋과 들릴라의 꾀에 넘어간 삼손은 힘을 잃게 되었다. 들릴라의 이름 뜻은 밤의 여인이라는 뜻이다. 삼손은 작은 태양, 한 줄기 빛 인데, 밤의 여인을 만남으로 빛을 잃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리게 되었다. 나실인의 상징인 머리털을 깎이운 삼손은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였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권능도 더 이상 그에게 머물지 않고 떠나 버렸다. 그러나 그런 사실도 모르고 위기에 처한 삼손은 예전의 힘을 과시해 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무기력해진 자신과 사랑했던 여인으로 부터 철저히 배신당하고 이방 대적들의 능욕거리로 전락한 스스로를 발견하고 절망과 회한 가운데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를 절망케 만든 것은 하나님의 손길이 떠났다는 사실이었다.
삼손은 나실인으로서 하나니께 드려진 자였으나,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여인인 들릴라에게 바쳐진 자가 되었다. 여자는 하나님을 떠난 자를 상징한다.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하나님을 떠난 죄인(여자)를 위해 죽는 모습이다. 여자는 교회를 상징한다. 이와 관련 예수님께서는"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하거든 빼어 내버리라"(마 5:29)고 하셨다. 십자가의 죽음은 부활을 예고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떠난 삼손은 힘을 잃고 블레셋에게 잡혀 눈이 빠졌다. 눈이 빠졌다는 것은 앞을 볼 수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상실할 때 앞이 보이지 않는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삼손은 놋줄로 묶임을 당했다. 이것은 세상의 죄악된 줄에 묶여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인생의 비극을 보여주는 것이다. 삼손은 눈이 멀고 놋줄에 묶여 연자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 영광스러운 사람 삼손은 이방인 블레셋 사람들의 웃음거리, 멸시와 노리개 감이 되었다. 이전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나 이제는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신 다곤에게 축복의 제사를 드린 것이다.
삼손은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삼손의 실패는 하나님을 찾지 않은데 있었다. 삼손은 날 때부터 나실인으로 하나님의 큰 능력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릴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바로 삼손을 망친 가장 큰 죄였다. 이제 삼손이 기도하게 되었다. 삼손은 죽음을 각오했다.『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죽어서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해 달라』는 목숨을 건 기도였다. 여기에 삼손의 위대한 승리가 있었던 것이다.『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삼손이 그들의 디곤 신전을 무너뜨린 것이다. 삼손은 불레셋과 함께 죽었다. 우리에게 블레셋은 심령 속의 일곱 족속과도 같은 자들인 것이다.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은 곧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삼손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