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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분렬 왕국시대 3 - 북왕국 이스라엘 임금들
1. 여로보암(제1대 왕)
기원전 930년부터 시작하여 2년간 통치했다. 여로보암의 통치를 적절하게 이해하자면 그를 권자에 오르게 한 주변 상황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문제는 솔로몬의 오만한 아들 르호보암과 더불어 발생하였다.
1) 르호보암은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위해서 세겜으로 갔다(왕상 12:1; 대하 10:1).
2) 그는 솔로몬이 죽자 애굽 망명에서 돌아온 여로보암이 이끄는 사신으로부터 최후 통첩을 받았다. 그 내용인즉 백성들이 솔로몬 치세 때보다 더 나은 생활을 요구한다는 것이었다(왕상 12:3,4; 대하 10:2-4).
3) 르호보암은 그러한 요구를 고려할 3일간의 말미를 달라고 요청했다. 이 기간에 그는 오만한 젊은 친구들과 의논하고, 나이들어 현명한 사람보다 젊은 친구들의 충고를 더 존중하여, 3일 중 마지막날에 답변을 기다리는 이스라엘에게 다음과 같이 대꾸했다.
"내 부친은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찌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장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왕상 12:14).
4) 이러한 답변을 들은 열 두 지파 중 열 지파는 지기들의 장막으로 돌아가라는 여로보암의 선동소리를 청종하게 되었고, 이리하여 이스라엘의 슬픈 역사가 시작되었다(왕상 12:16).
5) 르호보암이 보낸 역군의 감독이 백성들이 친 돌에 맞아 죽자 놀란 왕은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다(왕상 12:21,22). (르호보암은 자신의 통치 기간 내내 이 명령을 계속 거부하였다 : 왕상 15:6참조).
6) 열 지파의 새로운 지도자 여로보암은 즉위 직후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였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자면 일년에 세 차례(참조, 제 23장; 출 23:17) 온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하나님께 예배해야 했다. 여로보암은 틀림없이 제사장들이 온 백성을 르호보암의 경내로 되돌아 오게 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때문에 여로보암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계획을 채택함으로서 이런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1) 그는 이스라엘의 종교적 상징을 바꾸었다. 즉 언약궤 위의 두 금 그룹 대신, 두 금 송아지를 택하였다. 여기서 그는 초대 대제사장 아론의 행위를 역사적 실례로 들을 수 있었다)사실 그는 금송아지를 이스라엘에 도입할 때 아론의 말을 표절하였다. 출 32:4과 왕상 12:28비교).
(2) 그는 종교적 예배 중심지를 예루살렘에서 벧엘과 단으로 옮겼다. 이는 하나님의 명백한 명령에 대한 노골적인 거역이었다(참조, 왕상 11:36).
(3) 그는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아" 레위 족속의 제사장직을 타락시켰다(왕상 12:31). 이로 인하여 막대한 수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그 향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고 그 지역은 거의 배교지역이 되었다(참조, 대하 11:13-17). (이는 처음 여로보암으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호세아로 끝나는 19대의 이스라엘 왕들이 대략 210년 동안 한 왕도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 향하지 않았던 비극적 사실을 설명해 준다).
(4) 종교력을 10월에서 11월로 바꾸었다. 레위기 23장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4월에서 시작하여 10월로 끝나는 여섯 절기를 지켜야 했다. 이 여섯 절기 중 세 절기가 10월에 해당되었는데, 이는 십자가(무교병), 부활(곡물의 첫 이삭), 오순절(50일째의 축제), 휴거(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 환난(속죄일) 및 천년왕국(장막절)을 예시한다. 그렇지만 여로보암이 임의로 이 11월 절기를 만들어 냈다는 것으로 보아 그가 이 축제 중 어느 날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7) 여로보암은 벧엘의 제단을 찾아가 분향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이스라엘 왕으로서 주제넘게도 제사장의 직분까지 침해한 세 왕 중 두번째 왕이 되었다. 그러나 이 세 왕은 모두 엄한 응징을 받았다. 다른 두 왕은 다음과 같다.
(1) 사울(삼상 13:9-14)
(2) 웃시야(대하 26:16-21)
8) 여로보암은 우상을 숭배한 죄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으로부터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으며 응징을 받았다.
(1) 예언 : 요시야라는 이름의 유다 왕이 여로보암의 거짓 종교를 멸할 것인 바, 지금 여로보암이 서서 제사드리고 있는 바로 그 제단에서 죽은 제사장들의 뼈를 사르리라. 이 놀라운 예언은 대략 300년 후에 어김없이 성취되었다(왕상 13:2과 왕하 23:15,16).
(2) 응징 : 여로보암의 제단은 파괴되고 그의 손은 마비되었는데, 이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응징이었다(왕상 13:3-6). 그때 선지자가 기도하여 왕의 손이 예전 상태로 돌아왔다.
9)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선지자는 어리석게도 벧엘의 한 늙은 선지자의 거짓말에 현혹되어 하나님께 거역하는 죄를 짓고 목숨을 잃게 되었다.
(1)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곧장 집에 돌아가도록 이르셨다.
(2) 벧엘의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돌이켜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떡을 먹이고 벧엘에 머물게 하라 하셨다고 거짓말했다.
(3) 그 선지자는 늙은 선지자의 집을 나섰을 때 사자의 공격을 받고 살해되었다.
10) 이 사건이 있은 직후, 여호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들었다. 선지자 아히야(변장을 하고 찾아온)는 여로보암의 아내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다. 즉 여로보암의 지극히 악한 소행으로 말미암아 그가 무서운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왕상 14:10-14). 물론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다. 아비야는 죽고(왕상 14:17). 수년 후 왕위를 계승한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도 친척과 더불어 바아사에게 살해되었으며, 바아사가 왕위에 올랐다(왕상 15:29). 이때 하나님께서는 장차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포로로 끌려갈 것이라는 무서운 예언은 최초로 전하셨는데, 이는 200년 후에 성취되었다(왕상 14:15).
11) 하나님이 여로보암을 병으로 치심으로 그는 왕위에 오른지 22년만에 악한 통치를 매급짓고 죽었다. 적어도 스물 한 차례 이상 그가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였다"는 귀절이 나온다. 그의 뒤를 아들 나답이 이었다(왕상 14:20;대상 13:20). 나답은 불과 2년만에 바아사에게 살해당했다. 그리하여 그는 살해당한 북왕국의 여섯 왕 중 첫번째 왕이 되었다. 그 이후 살해당한 왕은 다음과 같다. ①엘라, ②요람, ③스가랴, ④살룸, ⑤ 브가히야 등이다. 바아사는 나답과 그의 친척들을 살해함으로써 부지 중에 선지자 아히야가 여로보암의 아내에게 전한 예언을 성취하였다(왕상 14:14과 15:29비교).
2. 오므리(제 6 대 왕)
1) 기원전 885년부터 시작하여 12년 동안 치리하였다.
2) 그는 사마리아를 북왕국의 새 수도로 삼았다(왕상 16:24).
3) 그는 북왕국에서 가장 악한 왕이었다(왕상 16:25).
3. 아합(제7대 왕)
1. 기원전 874년부터 시작하여 22년간 치리했다.
2) 그는 이세벨과 결혼하였고, 사마리아에 바알 신당을 세웠다(왕상 16:31,32).
3) 그는 부왕 오르미보다 더 악한 왕이었다(왕상 16:33; 참조, 왕상 21:25,26).
4) 그가 왕위에 오름으로써 여리고의 재건에 관한 500년 묵은 예언이 성취되었다(왕상 16:34; 비교, 수 6:26).
5) 그는 엘리야의 면담을 받고, 자신의 죄와 이스라엘의 죄로 말미암아 3년 6개월 동안 기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다(왕상 17:1; 약 5:17).
6) 느는 바알 신을 섬기는 제사장들이 갈멜산에서 엘리야에게 패하여 죽는 것을 목격했다(왕상 18:40).
7) 여호와께서 만물의 주시라는 것을 입증해 보이기 위해서, 그에게 거만한 수리아인들을 두차례 물리칠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왕상 20:23,28).
이때 수리아의 왕 벤하닷이 아합에게 사신을 보내 자신의 욕심을 내비추자, 아합은 그에게 뇌물을 주어 그의 비위를 맞추려 하였다가 이것이 실패하자 반기를 들었다(왕상 20:1-11).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한 선지자(아마도 엘리야인듯)가 수리아에 대한 아합의 승리를 확언하였으며, 그대로 이루어졌다(왕상 20:13-19). 전쟁에 패한 수리아 군대는 자기들이 패한 이유를 지리적 요인에서 찾아 전투가 언덕에서 있었기 때문에 졌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여호와를 산의 신이라고 생각하고, 만약 자기들이 이스라엘과 평지에서 싸운다면 틀림없이 이길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평지에서 싸움을 걸었는데, 이번에 그들은 더 큰 오산을 범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산의 신이셨을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신이시기도 했기 때문이다.
(1) 골짜기의 신이시라(출 17:8-13;삼상 17:3,49).
(2) 산의 신이시다(왕상 18:19,40).
(3) 평지의 신이시다(삿 11:33).
(4) 물의 신이시다(출 14:27,28).
(5) 불의 신이시다(단 3:19-26).
수리아 군대는 다시 공격하였으며 보병 12만 7천명을 잃는 참패를 당했다. 그러나 승리를 거둔 아합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벤하닷의 목숨을 살려 주었다(마치 사울이 아각을 살려 준 것처럼, 삼상 15:31-33). 그러자 하나님의 사람은 이 일로 이하여 여호와께서 벤하닷의 목숨 대신 아합의 목숨을 요구하실 것이라고 선포했다(왕상 20:32-43). 이 예언은 약 3년후에현실로일어났다(참조, 왕상 22;39-37).
8)그는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소유하고 있던 왕궁 가까이의 포도원을 탐내 사들이려고 하였으나 실패했다. 수년 전에 사무엘은 이스라엘 왕들의 토지의 포도원을 팔기를 원했다 하더라도 율법은 그것을 금하고 있었다(참조, 레 25:23; 민 36:7; 겔 46:18).
아합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왕궁에 돌아왔다. 이세벨은 왕의 근심이 나봇의 포도원 매각 거절 때문인 것을 알고, 그 포도원을 곧 갖게 될 것이라고 격려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써서 왕의 인을 치고, 나봇이 살고 있던 이스르엘의 민간 지도자들에게 보냈다. 그녀는 그들에게 기도와 금식을 위하여 사람을 소집하도록 명령하였다. 그들은 나봇을 불러들이고, 두 명의 거짓 증인에게 뇌물을 주어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는 고발을 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나봇은 끌려 나오고 살해당했다. 이 끔찍한 명령은 이세벨의 편지에 따라 실행된 것이다(왕상 21:4-14). 나봇의 아들들마저 돌에 맞아 죽임 당했다(참조, 왕하 9:26). 원래 열렬한 바알 숭배자였던 이세벨은 이제 교활하게도 고발당한 자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두 증언을 얻기 위하여 모세의 율법을 이용하였다(레 24:17).
이 우스꽝스런 날조극은 대략 9세기 후의 4월 금요일 오전에 또 다시 되풀이되었는데, 이때 전능하신 창조주가 그의 비천한 피조물들에게 재판을 받게 된다(참조, 마 26:59-68). 이세벨은 이 소식을 들었으며,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이 자기 것임을 주장하기 위해 득의만만하게 내려갔다(왕상 21:15,16). 하나님께서는 이제 엘리야에게 명하사 나봇의 포도원에게 아합을 대면하게 하셨으며, 하늘의 진노가 아합과 그의 가속에게 내릴 것임을 선포하게 하셨다. 화가 났지만 틀림없이 두려웠을 아합은 엘리야의 준엄한 심판의 말을 들었다(왕상 21:19,21-24). 이 예언은 모두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다.
(1)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았던 것처럼, 아합의 피를 핥았다(왕상 22:38).
(2) 아합의 후손들이 끊겼다. 그의 맏아들 아하시야는 난간에서 떨어져 죽었고(왕하 1:17), 마내 아들 요람은 예후에 의해 살해당하며(왕하 9:24). 그의 시체는 나봇이 묻힌 곳에 내던져지게 되었다.
(3) 그의 악한 아내 이세벨은 이스르엘의 들개들에게 잡아 먹혔다(왕하 9:30-36).
이 끔찍한 예언을 들은 아합은 겸허해져서, 자기의 아들들이 살해당하는 광경을 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회개는 일시적이고도 피상적인 것이었다(왕상 21:27-29).
9) 이때 아합은 3년간의 평정을 깨뜨리고(왕상 22:1), 길르앗 라못에 진을 치고 있는 수리아 왕 벤하닷을 쳐부수기 위해 남왕국의 왕(이름은 여호사밧)과 연합하려 하였다. 만약 아합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수리아의 왕을 일전에 처단하였더라면 이러한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으리라. 여호사밧은 물질적으로 얻을 것이 아무 것도 없었으며, 도덕적으로 잃을 것은 허다하였다. 그의 답변은 다음과 같이 비극적이었다.
"나는 당신과 일반이요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요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일반이니이다"(왕상 22:4).
명백히 여호사밧은 이러한 연합에 대하여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아합에게 이르되 "청컨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 보소서"하였기 때문이다(대하 18:4).
아합은 즉시 자신의 녹을 먹고 있던 선지자 400인을 모았는데, 이들은 모두 저 나름의 줏대도 없었을 뿐더러 제각기 거짓말을 입에 담고 있었다. 그들은 제각기 큰 소리로 아합의 승리를 장담하였다(대하 18:5,6). 이들은 후에 예레미야가 이야기하게 되는 부류의 사람이었다(참조, 렘 23:21). 그러나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여호사밧은 나라에 이들 외에 다른 선지자가 있는지를 물어 보았다. 아합은 씁쓸하게 "있다"고 대답하였다. "오히려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저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저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저를 미워하나이다"(왕상 22:8) 아마도 미가야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은 그가 아합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었다. 악한 왕은 마치 암에 걸린 환자가 의사로부터 자신의 병세에 관하여 듣고 어리석게도 그 의사를 미워하는 식으로 미가야 선지자를 미워하였다.
아합은 남왕국 왕의 부드러운 권유를 받고 마지못해 투옥되어 있는 미가야 선지자를 부르러 사람을 보냈다. 그리고 자기의 사자들에게 미가야 선지자가 대다수의 의견에 어긋나지 않게 예언하도록 하라고 주의시키는 일을 잊지 않았다. 미가야는 아합의 사자들의 말을 듣고 이렇게 내쏘았다.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왕상 22:14).
두 왕이 미가야가 당도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왕의 녹을 먹던 나머지 선지자들의 대변자격인 거짓 선지자 시드기야는 자기의 주군 아합에게 술책을 썼다. 그는 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 와서 보이며 아합이 수리아 군을 무찌르리라고 하였다. 아마도 그는 신명기 33장 17절의 본문을 악용하여 이러한 소행을 저지른 것 같다. 마침내 미가야가 이합 앞에 서게 되었을 때, 틀림없이 눈을 깜박거리며 빈정거리는 어조로 다른 선지자들을 흉내내었다.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왕상 22:15). 아마도 빈정거림이 농후한 이 말은 두 당사자들에게 고통스러우리만치 당혹스런 것이었던 것같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합이 버럭 화를 내며 이렇게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몇번이나 너로 맹세케 하여야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진실한 것으로만 내게 고하겠느냐"(왕상 22:16). 그는 형사범이 초조하게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큼이나 진실을 듣고자 했다. 이는 분명히 여호사밧을 회유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가야의 눈에서는 조롱의 빛이 싹 사라지고, 그의 입에서는 빈정거리는 어조 대신 냉정한 심판의 말이 떨어졌다.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가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그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왕상 22:17).
이 말을 들은 아합은 다시 한번 벌컥 화를 내며 이렇게 여호사밧에게 일렀다. 저 사람이 내게 대하여 길한 것을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것을 예언하겠다고 당신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왕상 22:18).
그렇지만 미가야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이 악한 왕을 전장에서 죽이기 위하여 아합의 선지자들에게 거짓말하는 영이 들어가도록 허락하셨다고 말했다. 미가야가 이 말을 마치자, 아합의 총애를 받는 거짓 선지자 스드기야가 그의 뺨을 쳤다. 이러한 모욕은 나중에 우리 주님이 당했던 것이며(요 18:22), 사도 바울도 당해던 것이다(행 23:2). 아합은 다시 미가야를 옥에 가두도록 명령하고, 자기가 전장에서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그에게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먹이게 하였다. 아합이 떠날때, 미가야는 만약 아합이 무사히만 돌아온 다면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서 말씀하시지 않았음을 입증하게 될 것이라고 천명하였다(왕상 22:28).
10) 아합과 여호사밧은 서둘러 길르앗 라못으로 행차하였다. 전투에 들어가기 전,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자기의 왕복을 입게 하고, 자기는 보병의 옷으로 변장하였다. 남왕국의 왕 여호사밧은 터무니 없이 어리석게 보인다(왕상 22:29,30).
여호사밧은 곧장 전장으로 뛰어들었다가 수리아군들로부터 아합으로 오인받았다. 깜짝 놀란 어리석은 유다 왕 여호사밧이 하나님께 구해달라고 소리지르자, 수리아 병거장관들은 그가 아합이 아닌 줄 알고 해하지 않았다(왕상 22:31-33;대하 18:30-32). 그런데 수리아 군사 중의 하나가 이스라엘 군대 편으로 화살을 날렸는데, 이것이 변장한 아합에게 맞았다. 화살이 박힌 곳은 아래 갑옷과 흉갑이 맞무려 틈새가 난 솔기였다. 부상은 치명적인 것이었다. 다급해진 아합은 병거 모는 자에게 명령을 내려 자기의 궁으로 직행하도록 했다. 서편 하늘로 해가 떨어질 때, 아합은 죽었다(왕상 22;34-37;대하18:33,34). 아합은 사마리아에 묻히고 그의 병거는 가까운 사마리아 못에서 씻기웠다. 거기서 개들이 그의 피를 핥았으므로, 엘리야의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다(왕상 22:38,39). 아합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즉위했는데, 그도 그 아비의 악한 길로 행하였다(왕상 22:52,53).
4. 예후(제10대왕)
1) 그는 기원전 841년부터 시작하여 28년간 통치했다.
2) 엘리야는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왕으로 삼으라는 명을 받았는데(왕상 19:16), 어떤 이유였는지 직접 기름을 붓지 않았다. 이리하여 엘리사의 선지자 생도 중 하나가 예후를 불러 기름을 먹었다(왕하 9:1).
3) 그는 병거모는 것(왕하 9:20)과 유혈행위로 악명높았다. 그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처단하였다
(1) 여호사밧의 손자 유다 왕 아하시야(왕하 9:27).
(2) 재위 중이었던 북왕국의 왕 요람(왕하 9:24)
(3) 이세벨(왕하 9:30-37)
(4) 아합의 아들 70명(왕하 10:1,11)
(5) 유다의 왕자 42명(왕하 10:14).
(6) 바알 숭배자들(왕하 10:25).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이세벨을 포함하여 아합의 집안을 멸하도록 명령받았다. 이세벨은 후에 개들에게 먹혔다(왕하 9:1-10). 그러나 다른 살인행위는 허락받지 않았다. 뒤에서 그의 유혈 행위를 살피기로 하겠다.
기름부음을 받고 나자 예후는 미친듯이 이세벨에게로 몰아, 최근에 전장에서 입은 부상을 회복하고 있던 아합의 아들 여호람(요람이라고도 함)을 처단하였다. 그 운명의 날에 그는 여호사밧의 손자요 요람의 조카였던 유다 왕 아하시야의 방문을 받았다. 바로 이들 두 왕 만큼이나 역사상 악한 어미를 두었던 왕이 또 있었는지 진실로 의심스럽다. 요람의 어미는 이세벨이었고 아하시야의 어미는 아달랴였던 것이다.
예후는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여호람과 아하시야를 만났다. 예후의 반란을 두려워한 그들은 병거를 타고 마중나가 평화적인 방식으로 어떤 요구든지 무마시켜 보려 하였다. 예후는 요람의 하소연을 일축하고 달아나는 그와 그의 조카를 활로 쏘아 처단하였다. 요람의 시체는 나봇의 토지에 내던져졌다. 바로 그곳은 아합(요람의 아비)이 나봇을 죽였던 곳이었다. 이리하여 진실로 새들이 둥우리에 깃들러 오게 된다(왕하 9:25-29).
예후가 이스르엘에 당도했을 때, 악한 계집 이세벨이 화장을 하고 창 밖을 응시하다가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빈정거렸다. 예후는 그녀를 창 밖으로 내던지도록 명령했다. 이 명령은 곧장 이행되고, 그녀는 두골과 발과 손바닥만 남고 모두 개들에게 먹혔다. 이리하여 엘리야가 아합 집안에 준 예언은 문자 그대로 실행되었다(왕상 21:23및 왕하 9:30-36비교).
이어 예후는 사마리아의 이스르엘 방백에게 편지를 보내, 당시 그곳에 살고 있던 아합의 아들 70인의 머리(문자 그대로 머리)를 요구하였다. 놀란 관리인들은 이 끔찍한 명령에 곧장 순종하여 아합의 아들들을 전부 죽이고 각각의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이스라엘의 예후 앞으로 보냈다(왕하 10:11-14).
예후는 이세벨을 만나러 이스르엘에 왔던 아하시야의 친척 42인을 포함하여, 아합의 족속과 친구를 모두 살해함으로써 피의 숙청을 계속했다(왕하 10;11-14).이어병거를모는 이 잔인한 사람은 지독히 열성적인 바알 숭배자인양 가장하여, 바알을 섬기는 모든 선지자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바알의 당으로 들여 보내어 죽이려고 은밀한 계획을 세웠다. 이윽고 이스라엘의 바알 당은 바알을 섬기는 제사장들로 가득 찼다. 그러자 예후는 명령을 내려 바알 섬기는 자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처단하였다. 그리고 그 제단에 불을 지르고, 당을 부수어 그것을 공중변소로 만들어 버렸다. 예후는 아합 왕조를 멸하려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기 때문에 4대까지 그의 왕조가 이어지리라는 약속을 받았다(왕하 10:30).
4) 그러나 예후는 이러한 개혁을 베풀긴 했지만 여로보암이 세운 금 송아지를 계속 숭배하여(왕하 10:29-31), 구원받지 못한 왕으로 죽어갔다.
5. 여로보암 2 세(제 13대 왕)
1) 기원전 793년에서 시작하여 41년간 통치했다.
2) 그는 북왕국 왕 중 가장 막강한 왕이었다.
3) 그는 수리아인들에게 빼앗긴 이스라엘 영토를 많이 되찾았다(왕하 3:5; 왕하14:25-27).
4) 자신의 치세 기간 중에 살았던 요나에 의해 이 일이 예언되었다(왕하 14:25).
6. 호세아(제 19대 왕)
1) 기원전 732년부터 시작하여 9년간 통치했다.
2) 그는 앗수르 왕 살만에셀의 신하가 된 후에 애굽과 동맹을 맺고 앗수르 왕국에 대항하였다.
3) 그는 이로 인하여 살만에셀에 의해 감금당했다.(왕하 17:4,5).
4) 사마리아가 함락되고 북왕국의 백성들이 앗수르의 포로로 끌려가게 된 것은 바로 이 시기였다(왕하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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