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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그 뒤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대 지방으로 가서, 거기에서 그들과 함께 지내시면서, 세례를 주셨다.
23. 살렘 근처에 있는 애논에는 물이 많아서, 요한도 거기에서 세례를 주었다. 사람들이 나와서, 세례를 받았다.
24. 그 때는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25. 요한의 제자들과 한 유대 사람 사이에 정결 예법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26.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와서 말하였다. "랍비님, 보십시오, 요단 강 건너편에서 선생님과 함께 계시던 분, 곧 선생님께서 증언하신 그가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로 모여듭니다."
27.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8. 너희야말로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보다 앞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한 말을 증언할 사람들이다.
29. 신부를 차지하는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는 신랑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크게 기뻐한다. 나는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30.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요3:22-30)
22 After this, Jesus and his disciples went to the province of Judea, where he spent some time with them and baptized. 23 John also was baptizing in Aenon, not far from Salim, because there was plenty of water in that place. People were going to him, and he was baptizing them. (24 This was before John had been put in prison.)
25 Some of John's disciples began arguing with a Jew[d] about the matter of ritual washing. 26 So they went to John and told him, “Teacher, you remember the man who was with you on the east side of the Jordan, the one you spoke about? Well, he is baptizing now, and everyone is going to him!”
27 John answered, “No one can have anything unless God gives it. 28 You yourselves are my witnesses that I said, ‘I am not the Messiah, but I have been sent ahead of him.’ 29 The bridegroom is the one to whom the bride belongs; but the bridegroom's friend, who stands by and listens, is glad when he hears the bridegroom's voice. This is how my own happiness is made complete. 30 He must become more important while I become less important.”
22. 그 뒤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대 지방으로 가서, 거기에서 그들과 함께 지내시면서, 세례를 주셨다.
22 After this, Jesus and his disciples went to the province of Judea, where he spent some time with them and baptized.
*제 역할
창조자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현재 피조물로 존재합니다.
그 분이 그리스도이심으로 우리는 의인으로 칭함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스승으로써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이 제자들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함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또 모든 신앙인에게 제 역할이 있습니다.
후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그 말씀의 교훈을 제대로 깨닫고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1. "이것은 주 너희 하나님이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나에게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이다. 너희는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이것을 지켜라.
2. 너희가 주 너희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주의 규례와 법도를 잘 지키면,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오래오래 잘 살 것이다.(신6:1,2)
물론 후손만이 아닙니다.
땅끝까지 그 하나님의 역사 경험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부터 모으셨습니다.
그 제자들의 역할은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고 후손대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2,000년 전에 예루살렘에서 경험한 역사적 사건!
오늘은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서 우리의 역할을 배웁시다.
주일 학교 교사의 역할
성가대원으로의 역할
가장으로써의 역할
제 위치를 벗어나지 않은 역할을 배우자는 것입니다.
*함께 하심
세상의 선생님은 가르칠 것들을 요약해서 교안부터 만드는 것입니다.
타자로 쳐온 교안을 칠판에 분필로 쓰는 것입니다.
제가 자식을 낳고 제일 무서웠던 것이 있었습니다.
자식들의 눈이었습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교안을 쓴 다음에 칠판에 그것을 옮겨서 가르친 적이 없었습니다.
질겁할 일입니다.
아이들이 내 말투까지 따라서 배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 삶이 아이들에게 칠판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옆에서 잠자고 밥 먹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삶을 공유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유다를 대신할 한 명의 제자를 뽑을 때였습니다.
예수님과 삶을 공유했는가? 그 여부가 한 명의 제자가 되기 위한 자격이었습니다.
21. 그러므로 주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에,
22.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로부터 시작해서 예수께서 우리를 떠나 하늘로 올라가신 날까지 늘 우리와 함께 다닌 사람들 가운데 하나를 뽑아서, 우리와 더불어 부활의 증인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행1:21,22)
예수님과 함께 다니던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에녹처럼 그리스도와 동행한 사람!
그런데 이상한 교인들이 허다합니다.
음담패설, 알박기, 신성모독의 발언, 헤롯의 머리에 안수하는 그런 자들을 제 스승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꼭 제 스승 같은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양이라면 먼저 스승을 제대로 고르는 사람입니다.
4. 자기 양을 다 불러낸 다음에, 그는 앞서서 가고, 양들은 뒤따라 간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5. 양들은 절대로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않고, 그런 사람을 보면 도리어 달아난다. 양들은 낯선 사람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요10:4,5)
질겁하고 도망해야 정상인데.......
*세례
그렇게 제자들과 동거동락하시면서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입니다.
세례를 베푸셨습니다.
세례란 말 그대로 깨끗하게 하는 예식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사는 의의 문제인 것입니다.
죄인으로 죄가 없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유대 사람들의 제사 행위들의 근본 동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동물의 희생을 통해 죄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제의 행위가 변질이 된 것입니다.
그 제의 행위를 통해서 자신들의 의를 쌓는 구실을 삼은 것입니다.
더욱이 그 사람의 죄의 문제는 소나 양을 죽인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소나 양보다 훨씬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구속을 위해 완전하신 제물이 드려진 것입니다.
11.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이루어진 좋은 일을 주관하시는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손으로 만들지 않은, 다시 말하면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은, 더 크고 더 완전한 장막을 거쳐서,
12. 오직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써가 아니라 자기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룩하여 주셨습니다.(히9:11,12)
그렇게 모든 제의가 예수님을 통해서 완성된 것입니다.
또 예수께서 그들의 더러운 죄를 성령의 불로 태워버리시는 세례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양과 소를 드리는 제의는 실은 예수님의 속죄에 대한 그림자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세례란 물 속에 푹 빠져서 옛사람이 죽는 것입니다.
물론 진짜로 죽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서 나와서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물론 진짜로 새로워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체가 죄를 씻는 역할보다는 예수님의 세례에 대한 강력한 그림자였을 뿐입니다.
*요한도
요한은 본인을 세례를 베푸는 자로 소개했습니다.
또 예수님도 세례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요한이 그 생각을 하게 된 사건이 있습니다.
33. 나도 이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분이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어떤 사람 위에 내려와서 머무르는 것을 보거든, 그가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임을 알아라' 하셨습니다.(요1:33)
기독인은 의에 대해 그 정결함에 대해서 아주 과민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불의라고 하면 옆에 앉는 것도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함께 앉지 아니하며,(시1:1)
거짓말을 정말인 것처럼 하는 사람
이렇게 의에 대해 의식이 없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 즉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23. 살렘 근처에 있는 애논에는 물이 많아서, 요한도 거기에서 세례를 주었다. 사람들이 나와서, 세례를 받았다.
23 John also was baptizing in Aenon, not far from Salim, because there was plenty of water in that place. People were going to him, and he was baptizing them.
*물이 많아서
예수님도 요한도 비슷한 장소에서 이 세례를 베푸신 것입니다.
거기는 살렘 근처의 애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분이 같은 장소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셨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세례에 적합한 물이 어디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러운 물만 아니라면.......
거기가 풍수지리설에 따라서 길한 곳이고 거기서 나는 물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몇 년 전 세례를 베푼 적이 있습니다.
제가 애논을 찾아가서 그 물을 떠오지 않은 것은 우리 거창에도 꼭지만 틀면 수돗물이 줄줄 잘 나오기 때문입니다.
제가 제주도의 봉성에서 목회를 할 때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한라산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큰 기도원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특별한 물이 있었습니다.
용한 교주가 꿈에 용한 물이 나오는 장소의 꿈을 꾸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기도 어디에서 물을 제주도까지 비행기로 공수해 왔습니다.
주여 주여를 외치면서 아주 헛짓거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특별한 물이 문제가 아닙니다.
세례의 본질은 바이든을 바이든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물을 뿌리든지 마시든지 하면 바이든을 들리면이라고 사실을 왜곡해도 천국 가는 길에 상관이 없어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서 예수님도 요한도 세례를 베푸셨던 것은 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진리 즉 깨끗케 됨의 요구를 꿈을 동원해서 혼란시키는 자들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9. 그 불법자가 오는 것은 사탄의 작용을 따른 것인데, 그는 온갖 능력과 표징과 거짓 이적을 행하고,
10. 또한 모든 불의한 속임수로 멸망 받을 자들을 속일 것입니다. 그것은, 멸망 받을 자들이 자기를 구원하여 줄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1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미혹하게 하는 힘을 그들에게 보내셔서, 그들로 하여금 거짓을 믿게 하십니다.(살후2:9-11)
세례란 말 그대로입니다.
불의를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24. 그 때는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24 This was before John had been put in prison.)
*옥
성경은 요한이 옥이 갇힌 것을 중심으로 그 시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옥에 갇히기 전 또 요한이 옥에 갇힌 후.
우리의 천국과 지옥도 바로 그 시간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그 시간을 가르는 것입니다.
주님이 죽으신 후에 우리 생명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그 죽음이 숙명입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의 아주 이상한 짓을 고발했습니다.
그 지적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요한이 모를 리 없습니다.
그가 가만 있었더라면 지하 감옥에 갇혀서 고문당해 죽을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진리를 따르려는 데 다른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39.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10:39)
그런니까 믿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사느냐가 아닙니다.
어떻게 죽느냐가 결정적입니다.
고재봉이는 사형에 해당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형을 당할 때입니다.
죽음 앞에서 다른 사람이 보일 수 없는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그는 교수대를 향해 찬송하면서 갔습니다.
그의 죽음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그에게 열려있는 하나님의 나라 문을 통과 했던 것입니다.
25. 요한의 제자들과 한 유대 사람 사이에 정결 예법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25 Some of John's disciples began arguing with a Jew[d] about the matter of ritual washing.
*종교적 논쟁
요한을 통해서 세례라는 의식이 등장한 것입니다.
세례 의식은 그들의 전통적으로 드려왔던 의식에 비교하자면 너무 허술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심각한 종교 논쟁이 있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일단 요한의 세례에 동의하는 사람들입니다.
물에 들어가는 것은 전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또 물에서 나오는 것은 사람이 다시 사는 것을 뜻합니다.
그 때 어떤 물에 사람이 빠져야 하는지
수돗물에 세례 의식을 베풀어도 되는지
2,3분 물에 잠겨서 진짜로 물을 몇 모금 꿀꺽꿀꺽 마셔서 죽음을 경험하게 해야 하는지
이 세례는 누가 집례할 수 있는 지
결국 교회사에 이런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침례를 하는 사람을 이단으로 몰았습니다.
그러더니 그들을 물에 빠뜨려서 죽인 것입니다.
종교 예법을 두고 논쟁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사람을 개조하는 세례는 물세례가 아닌 성령 세례입니다.
26.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와서 말하였다. "랍비님, 보십시오, 요단 강 건너편에서 선생님과 함께 계시던 분, 곧 선생님께서 증언하신 그가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로 모여듭니다."
26 So they went to John and told him, “Teacher, you remember the man who was with you on the east side of the Jordan, the one you spoke about? Well, he is baptizing now, and everyone is going to him!”
*제자들이 요한에게 와서
제자들이 그의 스승을 찾았습니다.
스승의 동의를 얻기 위한 것입니다.
세상은 다수의 뜻으로 결정됩니다.
그런데 다수의 의견이 옳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동의하지 않은 일을 홀로 했던 사람이 요한이었습니다.
그 일을 하다가 목이 잘린 것입니다.
예수님 역시 그 길을 가셨습니다.
하지만 옳은 사람을 죽어서도 말을 하는 것입니다.
10. 주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 너의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는다.(창4:10)
실은 그 죽은 자의 목소리가 더 강력한 것입니다.
*시각
제자들은 자신들의 생각에 틀린 구석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요한은 제자들과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반대로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흥하고 우리는 쇠해야 한다.”
제자들은 생각지도 못한 말을 그의 스승에게 들은 것입니다.
요한의 역할이 그것입니다.
세상에게 180° 다른 말을 해주는 일입니다.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하나님의 시각을 제시하는 일입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스승에게 첫 번째로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26.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와서 말하였다. "랍비님, 보십시오,
26 So they went to John and told him, “Teacher, you remember
증거 제일 주의라는 것이 있습니다.
판결에서는 증거물이 제 1 요건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탄도 이것을 역이용한다는 것입니다.
열 형제가 동물의 피를 바른 요셉의 옷을 그의 아버지에게 들고 갔습니다.
그렇게 요셉은 애급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손에 요셉의 옷이 들려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감옥에 갔습니다.
그 증거물들이 죄 없는 사람을 종으로 팔리게 했습니다.
터무니없이 감옥에 가게 했습니다.
보십시오.
계몽입니다.
어디 죽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습니까?
사람이 안 죽었으니 헬기 타고 특전단이 국회에 내린 것이 계몽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그 정부는 열 형제 혹은 보디발의 아내 같은 말장난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특별한 그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2,000년 전 회당마다 그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경건을 보십시오.
안식일이면 우리는 죽겠다는 사람도 내일 고치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도대체 안식일의 사랑의 정신은 어디 갔느냐?”고 되물으셨던 것입니다.
4.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그들은 잠잠하였다.(막3:4)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더 많은 세례를 베푸신다는 정보에 그의 스승 요한은 덩달아서 흥분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냉정했던 것입니다.
냉정한 지성이 그 역할이었습니다.
*예수님
그들은 예수님을 그의 스승 요한을 통해 등장한 이웃집 목수 아들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의 스승에게 세례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것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정보였습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오해한 것입니다.
요한은 이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했던 것입니다.
29. 이튿날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한 분이 오실 터인데, 그분은 나보다 먼저 계시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다'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분을 두고 한 말입니다.
31. 나도 이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이분을 이스라엘에게 알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32. 요한이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령은 이분 위에 머물렀습니다.
33. 나도 이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분이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어떤 사람 위에 내려와서 머무르는 것을 보거든, 그가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임을 알아라' 하셨습니다.
34. 그런데 나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요1:29-34)
예수님은 그의 스승 요한에 비교될 수 없는 분이셨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양이셨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요한의 자세
요한은 당시에 엄청난 지지를 얻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그리스도로 여겼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사람들은 옳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르고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 때 사람들은 승리하고 돌아오는 이스라엘의 군대를 향해 이 노래를 부른 것입니다.
7. 이 때에 여인들이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불렀다. "사울은 수천 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만 명을 죽였다."(삼상18:7)
이 노래 가사 하나에 사울이 뒤집어진 것입니다.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보였던 엄연한 사실을 사울은 수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울이 그 때 맞다 나는 수천이고 다윗은 수만이다 했더라면 그의 아들 요나단이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수용하지 못해서 사울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 일은 그 때만이 아닙니다.
헤롯이 동방박사들에게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고를 들었을 때입니다.
4. 왕은 백성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을 다 모아 놓고서,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태어나실지를 그들에게 물어 보았다.(마2:4)
그러더니 이 얼빠진 대통령이 그리스도를 공격한 것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자를 공격한 것입니다.
16.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몹시 노하였다. 그는 사람을 보내어, 그 박사들에게 알아본 때를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가까운 온 지역에 사는, 두 살짜리로부터 그 아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였다.(마2:16)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요한은 자신은 예수님의 신발끈을 풀 자격도 없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던 것입니다.
그 말을 제자들이 들었는지 말았는지........
27.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7 John answered, “No one can have anything unless God gives it.
*하늘이 주시는
요한은 제자들에게 아주 친절했습니다.
그들의 시각을 교정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베푸시는 일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래에서 위로 쳐다보라는 것입니다.
실은 먼저 요한은 예수님을 특별한 분으로 여기며 이 일을 해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피조물로써 일반 세상 역사를 보는 시각을 언급했던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의 말씀입니다.
그 분은 세상의 역사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 분은 이제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너희는 피조물로써 만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하다 못해서 마귀의 장난질조차 하나님의 섭리의 영역 안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9. 천사장 미가엘은 모세의 시체를 놓고 악마와 다투면서 논쟁을 할 때에, 차마 모욕적인 말로 단죄하지 못하고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바란다'고만 말하였습니다.
10. 그런데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자기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욕합니다. 그들은 이성이 없는 짐승과 같이, 무엇이든지 본능으로만 알고, 바로 그 일로 멸망합니다.(유1:9:10)
이렇게 이 역사에 대해 심판을 해대는 것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은 짓입니다.
죄인의 본능을 휘둘러대는 행위입니다.
계시록을 보면 마귀의 운명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용된 후 폐기될 것입니다.
10. 그들을 미혹하던 악마도 불과 유황의 바다로 던져졌는데, 그 곳은 그 짐승과 거짓 예언자가 있는 곳입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영원히, 밤낮으로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계20:10)
그런데 마귀를 향해 지옥행을 선언해 대다니!
그것은 일단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마귀가 원하자 돼지떼에게로 가라고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다만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피조물로써 전능하신 하나님의 겸손한 수단이 되어야 할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베푸셨던 것을 예수님의 탁월한 지도력 정도로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신 섭리로 읽으라는 것입니다.
28. 너희야말로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보다 앞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한 말을 증언할 사람들이다.
28 You yourselves are my witnesses that I said, ‘I am not the Messiah, but I have been sent ahead of him.’
*증언할 사람
막상 사람들은 남이 아닙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요한은 먼저 제자들에게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정의해주었습니다.
제자들은 증언을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28. 너희야말로 내가 말한 바 ~~~~~ 한 말을 증언할 사람들이다.
28 You yourselves are my witnesses that I said,
그것도 그들이 본 것을 증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승이 먼저 보고 요한이 해석해서 말해 준 것을 전하는 증거자일 뿐입니다.
그들 눈에는 예수님께서 고작 목수의 아들로 보였습니다.
부모도 알고 그의 형제도 알고 지내는........
그런데 요한의 말씀을 따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셨던 것입니다.
바로 스승이 전해 준 그 말씀을 증언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염두에 둘 일
초등학교 국어 시간이었습니다.
귀속말 전하기를 했습니다.
선생님이 첫 번째 친구 귀에 대고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가신다”고 했습니다.
친구가 친구에게 귓속말을 전하더니 우리 분단의 제일 뒤에 앉은 친구가 “엄마가 아버지 가방 사러 백화점에 갔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는 깔깔 대고 웃기만 했습니다.
선생님이 했던 말과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놀이를 통해서 남의 말을 제대로 듣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을 제대로 전하는 것 또한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승인 요한이 그들에게 전하라고 했던 요지는 이것입니다.
28.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보다 앞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28 ‘I am not the Messiah, but I have been sent ahead of him.’
도대체 교회들이 이 일을 제대로 감당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꾸만 엄마가 아버지 가방 사러 대형 마트에 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성경과는 다른 이야기를 해대는 것입니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다.(요3:16)
하나님께서 세상의 불의를 문제시하셨던 것입니다.
그 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그 아들을 십자가에 희생시키신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반값의 돈을 지불하고 세상 것을 곱빼기로 얻은 것을 간증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희생을 간증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교회 봉사를 지불하고 헌금을 지불하고 주님의 희생의 덕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나라는 거저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 보장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영생을 보장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 내용을 설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그 지적했던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미 지적했던 말을 너희가 깡그리 무시하고 있구나!
*나는 아니고
이 요한이 강조해서 말했던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가장 강조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희안하게 들릴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설교자로써 내 설교는 아니라는 것을 설교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설교가 아니고 성경 말씀이라고 설교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것도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가장 먼저 자신의 아니라고 했습니다.
29. 신부를 차지하는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는 신랑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크게 기뻐한다. 나는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29 The bridegroom is the one to whom the bride belongs; but the bridegroom's friend, who stands by and listens, is glad when he hears the bridegroom's voice. This is how my own happiness is made complete.
*서 있는 위치
우리는 신랑이 아닙니다.
우리는 신부도 아닙니다.
우리는 신랑의 친구로 바로 그 위치에 서 있습니다.
엉뚱한 장소에 서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기쁨
그래서 우리는 신랑의 기쁨이 아니라
또 신부의 기쁨이 아니라
친구의 기쁨을 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친구 대신 중매자로 바꾸어서 요한을 설명하겠습니다.
신랑과 신부를 맺어준 사람입니다.
중매자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신랑과 신부의 잠자리에 함께 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중매인의 자리에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30.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30 He must become more important while I become less important.”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흥하고 우리는 쇠하는 중이라고 스승 요한을 찾아가서 예수님을 고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요한이 그 일을 고발할 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역할이 바로 그 일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 일은 우리가 기뻐할 일이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앞에서 쇠하는 위치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