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라면 놓쳐선 안될
[사찰성보문화재 50選]
<23> 범어사 소장본 삼국유사
고대사회 문화예술 중심 ‘불교문화’ 생생한 기록
삼국유사 전체 9편 중 5~9편
권4~5, 2권 1책으로 묶은 것
신라고승 행적, 부처님 감응
일반 신도 영험담 다룬 설화
효행 및 선행 등 이야기 담겨
간행시기 가장 빠른 삼국유사
조선초기 목판 복원에 중요
권5 제27∼30장은 ‘유일본’
삼국유사 전체 내용 파악에
중요 단서…다른 판본에 남은
오탈자·오류 교정 가능해져
서지학적 가치도 높아 주목
범어사는
우리나라 제2의 도시 부산에 위치해 있으며,
지하철로 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찰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부산시민에게는 접근성이 좋아
혼자라도 조용히 다녀올 수 있는 곳으로,
시민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범어사는 의상스님이 창건하고
제자 표훈(表訓)스님이 주석했던
신라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이다.
또 왜구를 진압하고
동해안의 안위를 책임지는
비보사찰(裨補寺刹)의 하나로서
중요한 가람이 되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동국(東國)의 남산에 명산이 있어서
그 산정에 높이 50여 척의 거암(巨岩)이 있고,
그 바위 한가운데 샘이 있으며
그 물빛은 금색(金色)에다
물속에 범천(梵天)의 고기가 놀았다.
그래서 산의 이름을 금정산(金井山)이라 하고,
절 이름을 범어사(梵魚寺)라 한다”
고 전하고 있다.
범어사의 가람배치는
상·중·하 3단으로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일 상단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영역이며,
중간 부분은
보제루 주위의 당우(堂宇)들이 있는 영역이다.
하단은
보제루 아래쪽의
일주문·천왕문·불이문을
중심으로 하는 건물들이다.
이와 같이 가람이 앉혀진 것은
산지가람의 지형에 따른 것이다.
범어사에는
대웅전을 포함해 많은 성보들이 즐비하지만,
동방 최고의 고전(古典)으로 불리며
최근 국보로 승격된
<삼국유사>를 소장하고 있는 사찰로
주목받고 있다.
➲ 동방 최고 고전인 삼국유사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함께
한국 고대사 연구에 꼭 필요한 기본 텍스트이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는
모두 고려 때 발간된 책으로,
둘 다 주로 삼국시대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삼국사기는
문벌귀족인 김부식이
유교적 사관에 의거해 역사를 기술한 것이다.
이와 달리 삼국유사는
고려 충렬왕 때
일연(一然, 1206~1289)스님이 저술한 것으로
불교적인 내용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삼국사기에 기술되지 않은
종교, 역사, 문학, 언어, 민속, 사상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정보가 가득하다.
삼국유사가 없었다면
고대 우리 민족의 생활상과 고대사회를
재구성해 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풍성한 내용을 담고 있다.
<삼국유사>는 5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9개의 편으로 구분되는데,
①왕력(王曆), ②기이(紀異), ③흥법(興法),
④탑상(塔像), ⑤의해(義解), ⑥신주(神呪),
⑦감통(感通), ⑧피은(避隱), ⑨효선(孝善)
으로 제목이 나누어져 담겨져 있다.
①왕력은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을 비롯하여, 가락국·후고구려
·후백제 등의 연표를 정리하였고,
②기이는 고조선부터 후
삼국까지의 역사를 서술했다.
‘③흥법’에서 ⑨효선’까지는
불교의 수용과정,
당시 산재해 있는 불교미술에 관한 내용,
고승들의 행적, 불교의 신화와 설화,
불교적인 선행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삼국유사를 편찬한 일연스님은
고려가 국가적인 위기와 혼란에 처했을 때
민족의 자긍심과 자존감을 찾기 위해
삼국유사를 집필했다.
일연스님은
청도 운문사(雲門寺)에 주석하면서부터
삼국유사 편찬을 시작했고,
84세로 군위 인각사(麟角寺)에서
입적하기까지
만년의 일생을 삼국유사 집필에 몰두했다.
➲ 가장 오래된 삼국유사 판본
범어사에는
우리나라에 몇 남아 있지 않은
삼국유사가 현전한다.
이 책은 범어사 초대 주지를 역임한
오성월(吳惺月, 1865∼1943)스님의
옛 소장본으로 1907년 범어사에
기증된 것으로 전해진다.
범어사 소장본 삼국유사는
권4~5까지 2권을 1책으로 묶은 것이다.
삼국유사 전체 내용 가운데
⑤~⑨편목인
의해(義解), 신주(神呪), 감통(感通),
피은(避隱), 효선(孝善)을 담고 있다.
여기에는
신라 고승들의 행적,
부처님의 영적 감응을 이룬
일반 신도들의 영이(靈異) 등을 다룬 설화,
뛰어난 효행 및 선행의
미담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범어사 삼국유사가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될 정도로
중요한 가치가 인정받은 이유는
현존하는 삼국유사 판본 중
인출(印出, 찍어서 간행) 시기가
가장 빠르기 때문이다.
삼국유사는
고려시대 판본이 남아 있지 않다.
현존하는 가장 이른 판본이
1394년경 판각된 조선 초기 판본인데,
바로 이 판본에 해당된다.
또한 조선 초기 판본 중
유일하게 권4의
이혜동진(二惠同塵)과
자장정률(慈藏定律)
그리고 원효불기(元曉不忌)와
의상전교(義湘傳敎) 등의 편에는
한문을 읽을 때
그 뜻이나 독송을 위하여
각 구절 아래에 달아 놓는 표기가 남아 있다.
권5의 제27∼30장이 남아 있는 것은
범어사본이 유일해
삼국유사의 전체 내용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었다.
범어사 소장 삼국유사를 통해서
다른 판본으로 남아 있는
삼국유사의 오탈자 및
오류 교정, 보완이 가능했고,
조선 초기 삼국유사 목판 복원에
중요 자료라는 점에서 서지학적인 가치도 높다.
금정총림 범어사 일주문.
‘선찰대본산’ ‘금정산 범어사’
‘조계문’ 현판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불교신문
➲ ‘문화예술 중심’ 실증적 사료
삼국유사는
최초로 단군신화를 수록한 책이다.
이는 우리 민족이 단군의 후예라는 것을
명확히 하여
민족의 자주성을 견지하고자 한 것이다.
또한 고승의 행적 등
당대 유명했던 스님들의 탄생과 행적을
상세히 소개하였으며,
불교적인 노래 향가의 표기법은
고대어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예술품들은
불교미술이 주류이다.
저자 일연스님이 스님인 점도 있지만,
당시까지 문화예술의 중심이
불교에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삼국유사가
지닌 역사적 가치 가운데
미술사적 가치는 매우 크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실들은 매우 정확하다.
현장의 유적과 유물들이 일치하고 있어
이들 사료들이 실증적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일연스님 자신이
직접 현장을 방문하고
조사한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광범위한 문헌자료의 활용에 있다.
일연스님 자신의 불교미술에 대한 인식이
매우 뛰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미술품의 연대에 대한 기록은
미술사의 절대 연대 설정과 함께
양식적 비교를 통한
편년 작성에 기본이 되고 있다.
이러한 기록들이 사실에 입각한
당시의 생생한 기록임을 입증하는 것은
현전하는 유물이 증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멸실된 유물에 대해서도
자세한 기록을 남겨줌으로써
우리 미술사의 공백을 채워주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더욱 크다.
삼국유사의 기록은
중국 측 문헌까지도 섭렵하고 있어
당시 선승(禪僧)으로서의
일연스님 자신의 교학적 안목을 짐작하게 한다.
본문의 내용과
일연스님 자신의 견해를 밝혀
논증을 이끌어내는 것도 이 책이 지닌 특징이다.
범어사에서는
현재 새로운 성보박물관을
건립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이 박물관에 소장될 가장 중요한 문화재는
바로 범어사본 삼국유사로,
개관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 위대한 기록유산을 직접 볼 수 있게 된다.
삼국유사에 대한 가치가
일반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가까이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기대된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수많은 불교문화재를
새롭게 읽기 위해
그 이야기의 현장을 직접 방문해보고
일연스님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보다 생생하게
그 문화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의 풍화 속에도
당시 모습을 그대로 지켜 온 것들과,
자꾸 훼손되어 사라지고
본래 모습을 잃어가는 것들 사이에서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그 대원(大願)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불교신문3677호/2021년8월3일자]
이분희
/문화재전문위원·불교중앙박물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