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정의의 선지 아모스의 경고
암5:1-15, 7:14-15
서 론
“아모스”란 이름의 뜻은 진군입니다. 유다 지파 사람입니다. 이 아모스는 12소선지 중에 세번째 것을 기록한 사람입니다. 그 당시 남국 유대는 웃시야왕의 치세로, 북국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이세의 치세(治世)로 모두 물질적으로 부요하고 심령적으로는 부패한 때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의하여 하나님은 그 시대의 적당한 선지자 아모스를 세우셨습니다. 그는 유대의 남방 드고아 예루살렘의 남쪽 12마일 되는 곳에서 출생하여 사명을 받았는데 드고아는 사해(死海)에서 60리 가량 떨어진 황무한 곳입니다.
아모스는 목축야인(牧畜野人)이요(암7:14-15), 소박한 농부요, 그리고 그 성격은 엄격한 사람이요, “엘리야”의 후배요, “이사야”의 선배입니다. 거짓 선지자이며 우상의 제사장인 “아마사”의 대적이었습니다. 그는 원래 선지학교 출신도 아니고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며 일개 목자이고 농부였습니다.
세상의 견문을 도외시하고 드고아의 전원(田園)에서 한적하게 하나님과만 교제하며 일생을 평안히 하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는 사람이니 어찌 농촌에서 일생을 보내게 하겠습니까? 갑작스럽게 일조(一朝)에 아모스에게 큰 사명이 임하셨습니다(암3:8, 7:15).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권세와 지혜로써 자기의 사역자를 택하시되 목양(牧羊)하는 장막에서 “다윗”을 택하여 이스라엘의 왕을 삼으셨던 것처럼 또 아모스를 목장에서 택하셔서 이스라엘 나라의 선지자로 세워서 일하게 하셨습니다. 아모스는 남국 유대인이나 북국 이스라엘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스라엘의 죄로 인한 망국을 예언하였습니다.
현대의 국가와 교회에 필요한 것은 평민(平民) 전도자가 많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지옥으로 향하여 가는 영혼들로 하나님 여호와를 찾고 만나서 살게 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해야 됩니다. 그러면 이제 아모스 선지에 대해서 소상히 연구 검토해 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아모스 당시의 죄악상 (암5:1-15)
1. 아모스 당시의 죄악상 (암5:1-15)
첫째,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고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였습니다.
(암5:10)에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란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당시의 지도자들은 성문위에서 재판하며 명령을 내렸습니다. 따라서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고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였다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올바른 지도자들의 말을 순종하지 않고 멸시했다는 뜻입니다. 원래 충고는 듣기 싫은 것이지만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는 충고는 아프더라도 받아 들여야 하며 훈계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여기서 두가지만 지적한다면
(1) 하나님의 말씀을 싫어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으로 그들의 역사는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이루어진 것이었고 그들의 삶의 방향은 오직 모세의 율법에 정해져 왔습니다. 그러나 물질적인 부와 정치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되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성문은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재판을 거행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싫어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악한 인간의 본성을 버리고 원하며 선한 삶을 살도록 요구하기 때문에 악한 시대는 그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점점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그렇게 하는 자를 비웃고 있습니다.
(2) 진실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은 하나님과 같이 진실해야 합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점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을 일삼습니다. 정직하게 산다는 것은 가치있는 일입니다. 정직은 희생과 인내를 요구하므로 악한 시대는 진실을 거부합니다.
둘째, 빈민을 천대하고 오히려 그들에게서 과중한 세금을 착취하였습니다.
(암5:11)에 “너희가 가난한 자를 밟고 저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취하였은 즉”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난한 자를 밟고 저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稅)를 취하였다는 것은 즉 부요한 지주들이 가난한 소작인들에게 율법에 금지되어 있는 부당하고 불공평한 방법으로 재물을 착취하였다는 것입니다(신23:19).
이와 같이 율법을 예사로 범하고 무시한 것은 그들의 마음이 이미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재물에 모든 마음이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를 믿는 성도들도 세상의 재물에 눈이 밝아지면 하나님의 법을 예사로 범하는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뇌물을 받고 재판을 바로 하지 않음
(암5:12)에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고 했습니다. 당시의 재판관들은 바른 재판을 하기 보다는 물질에 치우치는 재판을 했습니다.
(1) 돈과 예물을 주고 받았으니 공정한 재판보다는 돈과 예물의 비중으로 좌우되고 있습니다. 이 예물은 구약에 있어서 선지자들도 미혹을 받았나니 즉 발람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모압과 발락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할 때에 신앙과 양심을 저버리고 뇌물에 끌리어서 나귀의 책망과 천사들의 견책을 받기까지 (민22:28-33)했으니 세상의 신앙이 없는 자들이야 재판을 바로 할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당시사람들이 정도를 잃어 버리고 살았던 것입니다.
2. 많은 환상을 보았던 자입니다.
믿음과 기도로 말씀을 선포하던 아모스는 여러가지로 심오한 환상을 보았는데 그 중에서 몇가지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황충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암7:2)에 “황충이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고 했습니다. 여기 황충은 풀이나 곡식을 먹어 버리는 해충을 뜻하는데 실지로 이스라엘 나라에는 예로부터 황충의 재앙이 종종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황충이 곡초(穀草)를 모두 다 먹어 버림 같이 외국 군대가 침입하여 생명과 재산을 빼앗을 것을 예시함인데 이는 하나님의 징계로 나타나는 일입니다.
둘째, 불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암7:4)에 “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주 여호와께서 명하여 불로 징벌하게 하시니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지라”고 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본 두번째 환상은 불의 환상인데 이 불은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불은 첫번째 재앙보다 훨씬 강한 재앙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였다는 것은 앞으로 재앙이 몹시 극심할 것을 가리킵니다.
즉 이스라엘이 외세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온 도시가 불타 폐허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과 칼은 언제나 함께 다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사건은 대종말(大終末) 때에 모든 악한 자들이 이 땅으로 부터 파멸당하게 될 환난을 뜻하기도 합니다.
셋째, 다림줄 환상을 보았습니다.
(암7:7)에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띄우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 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다림줄을 띄우고 쌓은 담 곁에 손에 다림줄을 잡고서 계신 환상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다림줄”은 완전히 곧고 굽지 않는 줄을 말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그의 백성들을 심판하실 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의를 상징합니다(왕하21:13, 슥1:16, 4:10)
그리고 다림줄을 띄우고 쌓은 담은 진리로 견고하게 세운 하나님 나라의 상징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또한 주께서 담 곁에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계시는 것은 헐어 버리고자 하시는 것인데 이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겠다는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 다림줄은 하나님의 의지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 다림줄의 환상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자 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일찌기 여러번 용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잘못을 깨달아 회개하지 않고 더욱 타락하여 갔기 때문입니다. 이 처럼 주를 믿는 우리들이 늘 베푸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깨닫지 못하고 어그러진 길로 갈 때 하나님의 채찍을 맞게 됨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넷째, 여름 과일의 광주리 환상을 보았습니다.
(암8:1-3)에 “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여름 실과 한 광주리를 보이시며 가라사대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가로되 여름 실과 한 광주리니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저를 용서치 아니하리니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처처에 내어 버리리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름 실과 광주리의 환상을 아모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여기서 여름 실과는 완전히 익은 실과로서 이 환상이 의미하는 바는 실과가 익어 딸 때가 된 것 같이 이스라엘의 죄악이 무르익어 하나님의 심판 때가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이스라엘이 죄를 범할 때마다 즉시 심판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인내하시면서 그들이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우리에게 깨우쳐 주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한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다는 말은 이스라엘의 죄악이 너무 깊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참으시고 용서하시는 분이지만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더욱 사악하여 질 때는 가차없이 치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주를 믿는 백성들이 주의 사랑과 용서하심만 믿고 죄짓는 일을 서슴치 않는다면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다섯째, 파괴되는 성전을 보았습니다.
(암9:1)에 “내가 보니 주께서 단 곁에 서서 이르시되 기둥 머리를 쳐서 문지방이 움직이게 하며 그것으로 부숴져서 무리의 머리에 떨어지게 하라 내가 그 남은 자를 칼로 살륙하리니 그 중에서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며 그 중에서 하나도 피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이 예배드리는 성전을 무너뜨려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몰살시키려는 말로서 종교적 멸망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당신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 교회부터 심판하실 것이며 교회의 멸망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가 패망하게 되고 만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백성이 된 성도들은 심판날에 가장 먼저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을 깨닫고 항상 그의 말씀을 따라서 바로 생활해야 하겠습니다.
3. 열국의 심판을 예언한 자
(암1:3)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다메섹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박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철 타작기는 이가 달린 쇠 바퀴가 달려있는 것으로 타작할 때 그것을 굴려 곡식단을 잘게 부수어뜨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박하였다는 말은 철타작기가 지나간 자리에 곡식단이 잘게 부수어지듯이 다메섹이 길르앗을 초토화 시켰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예후의 통치 때에 아합 나라의 “하사엘”왕에 의하여 자행된 악행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모스가 열국에 대해 예언 성취할 것을 살펴보면
첫째, 다메섹
(암1:3-5) “아람”의 수도인 “다메섹”의 모든 궁궐을 하나님께서 불태워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셨습니다. 다메섹은 수리아 지금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카스인데 그들은 길르앗에 사는 선민을 공격한 죄로 문책 받았다는 것입니다. B.C 704 에는 앗수르왕 “디글랏”, “빌레셋”에게 습격을 받고 그 백성은 체포되어 이동되고 이어서 바벨론 파사 그리이스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B.C 64년 로마에 예속되면서부터 제1차 대전 전까지 터어키에 종속되어 금일에도 대국간에서 압박을 받고 겨우 연명을 보존하고 있는 실정에 불가합니다.
둘째, 가사 암1:6-8
원래 “가사”는 블레셋의 수도로서 상업의 요충지였는데 이곳은 노예 매매의 중심지였습니다. 이 가사가 지은 죄는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에돔”사람들에게 노예로 판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블레셋 사람들이 유다를 침략하여 “여호람”의 가족들과 왕국의 모든 재물을 약탈해간 사건을 가리키는데 이때에 많은 유다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가서 에돔 사람들에게 팔아 넘겼던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산헤립이 유다를 침공할 때 블레셋으로 피난한 사람이 많았는데 이 피난민들을 그들이 사로잡아서 헬라사람에게 팔아 넘긴 사실을 가리킵니다. 당시 에돔 사람들은 이스라엘 족속과는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지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할 수만 있다면 이스라엘 족속들을 괴롭히거나 멸망시키려 하였는데 이런 자들에게 유다 사람들을 노예로 판 블레셋 사람들의 죄악은 엄청나게 큰 것이었습니다.
셋째, 두로 (암1:9-10)
(암1:9)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두로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그 형제의 계약을 기억지 아니하고 모든 사로잡은 자를 에돔에 붙였음이라 내가 두로 성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고 했습니다. 두로가 형제의 계약을 기억치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여기 형제의 계약(契約)이란 두로의 왕인 “히람”이 이스라엘의 왕이였던 다윗과 솔로몬과 맺은 동맹 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노예로 팔지 못한다는 조항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두로는 이것을 무시하고 어떤 경로로든 그의 수중에 떨어진 이스라엘 포로들을 에돔사람들에게 팔아 넘겼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포로들이 어떤 어려움을 당하게 될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 만을 도모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예언이 임하는데 “알렉산더” 대왕이 두로를 함락시켜 약 3천명의 거민들을 노예로 팔았고 수천명의 지도자들을 사형시킴으로써 이 진노의 예언이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과의 우정이나 의리를 배반하는 것은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행위임을 기억합시다.
넷째, 에돔 (암1:11-12)
(암1:11-12)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에돔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가 칼로 그 형제를 쫓아가며 긍휼을 버리며 노가 항상 맹렬하며 분을 끝없이 품었음이라 내가 데만에 불을 보내리니 보스라의 궁궐들을 사르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이유는 저가 칼로 그 형제를 쫓아가며 긍휼(矜恤)을 버리며 노(怒)가 항상 맹렬하여 분(憤)을 끝없이 품었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암몬 (1:13-15)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암몬 자손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자기 지경을 넓히고자 하여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암몬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딸의 불륜에 의해서 태어난 아들의 자손으로 그들은 탐욕과 잔악성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토를 넓히기 위하여 길르앗의 아이밴 여인의 배를 가르는 잔인한 죄를 범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적 탐욕에 빠진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위하여 갖은 악을 다 자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것에 대하여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잠23:1-3, 약1:15)
우리들도 늘 세상에 접하여 살고 있기 때문에 수시로 여러가지 탐욕들이 마음에 생기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마음에 새겨 탐욕들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살길이 되는 것입니다.
여섯째, 모압 (암2:1-3)
(암2:1)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모압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가 에돔 왕의 뼈를 불살라 회를 만들었음이라”고 했습니다. 즉 모압이 죽은 에돔왕의 분묘를 파헤쳐 그 뼈를 불태워 그 뼛가루로 회를 만들어 썼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과 유다 그리고 에돔의 연합군과 모압 사이에 전쟁이 있었는데 모압왕이 전세가 불리해지자 분노한 왕은 자신의 맏아들을 자신의 신인 “그모스”에게 번제로 바쳤습니다. 그러므로 후일에 그 모압왕이나 아니면 그의 계승자들 중 누군가가 이스라엘과 유다를 도운 에돔인을 미워해 복수로 에돔인을 치고 왕의 뼈를 태워 횟가루로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특히 악독하고 보복적인 죄악이었으며 신성하게 보존된 묘실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원수를 악으로 갚는 행위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롬12:20-21)에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활 가운데서 우리를 괴롭히는 원수들에게 이 같은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4. 참 사는 방법을 권면하였습니다.
(암5:4-6)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염려컨대 저가 불같이 요셉의 집에 내리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을까 하노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벧엘이나 길갈이나 브엘세바를 찾지 말라고 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던 성지(聖地)인데 이제는 우상의 단들을 만든 곳이기 때문에 그런 곳으로 가서 찾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첫째, 여호와를 찾는 것이 참 사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