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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으로 살리라
2023년 1월 일 / 시편 1:1-3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소설가 헤밍웨이의 작품 중에 ‘노인과 바다’라는 소설의 줄거리이다. 멕시코 만류에서 고기잡이하는 주인공 노인이 84일 동안 한 마리 고기도 잡지 못하다가 드디어 85일 만에 5미터나 되는 고기를 3일간의 사투 끝에 잡았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낚은 고기였지만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를 만나 항구에 돌아왔을 때는 앙상한 뼈만 남는다.
이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내용전체에 흐르는 주제는 허무함이다. 헤밍웨이는 직접 전쟁에 참전해보았기에 인생의 어두운 면을 많이 보았다. 전쟁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권총 자살로 생애를 마감하는 아버지도 보았다. 이러한 경험을 가진 헤밍웨이는 삶을 보는 시각이 긍정적 일리가 없다. 시름을 덜기 위하여 낚시나 여행을 많이 즐겼다고 하는 그 자신도 결국 엽총으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생명을 주셔서 복 있는 자로 살게 하셨다. 불순종으로 인하여 불행이 왔지만 지금도 복 있는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세상에는 한평생 질병과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몸부림치며 슬픔과 절망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
본문에서 ‘복 있는 사람은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은 장수의 복, 재물의 복, 건강의 복, 자녀 많은 복을 복이라고 한다. 오히려 재물이 적으면 행복할 수 있었던 사람이 재물이 많아서 인생을 망치기도 한다. 건강도 잘 써야 복이다. 참된 행복은 환경이 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복 있는 사람이 될 때 주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사람이 변화되어 복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진정한 행복은 세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사랑 관계에서 온다. 하나님과 나와의 깊은 사랑 관계를 형성해서 오는 깊은 만족감이 진정 행복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에서 성도와 예수님의 관계를 ‘나는 참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하시며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나와 같은 기쁨이 너희에게도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렇다. 너희 기쁨의 잔이 넘칠 것이다.’(요 15:11)라고 하셨다. 특히 마태복음 5:3-12에서는 어떤 사람이 복이 있는지를 자세히 말씀해 주셨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슬퍼하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온유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올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친절과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올바른 일을 하다가 박해받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나의 제자라는 이유로 모욕당하고 박해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비난받을 때 너희는 행복하다(마 5:3-10).
본문에서 시편 기자도 이렇게 복 있는 자를 설명하고 있다.
시 1:1-2 / 얼마나 복되랴! 못된 짓만 일삼는 자들이 남 짓누를 궁리나 하는 자리에 가지 아니하는 이는. 얼마나 복되랴! 양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을 따라 살지 아니하는 이는. 얼마나 복되랴! 남 우습게나 여기고 제 잘난 체만 하는 자들과 자리를 함께 하지 아니하는 이는. 2) 얼마나 복되랴! 여호와의 가르침을 기뻐하고 그 가르침을 밤낮으로 읽으며 늘 명상하는 이는.
1. 복 있는 사람은 악을 따르지 않는다.
사람이 악인의 꾀를 좇으면 죄인의 길에 선다. 죄인의 길에 서면 오만한 자리에 앉는다. 죄는 나쁜 것 하나만 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죄의 씨앗은 겨자씨처럼 금방 자라서 많은 나쁜 열매를 맺게 한다. 성경은 우리가 본래 좋은 열매 맺는 나무가 아니라고 말한다.
롬 6:20-21 / 여러분은 죄의 노예로 있을 때 선한 일 따위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습니다. 21)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좋았습니까? 좋기는커녕 파멸만이 기다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지금 여러분은 지난 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 쩔쩔매는 게 아닙니까?
죄의 씨앗은 사망의 열매를 맺게 된다. 에베소서에서는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하였다.
엡 2:1-3 / 여러분도 전에는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죄에서 헤어나지 못해 영원한 파멸을 코앞에 두고 살던 사람들입니다. 2)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세속적인 풍조에 젖어 살았고 마음에는 죄악만이 가득 찼습니다. 공중을 다스리는 세력자인 사단에 붙잡혀 그가 시키는 대로 따라 할 뿐이었습니다. 이 사단은 지금도 주님을 대항하는 자들의 마음속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3) 우리 역시 과거에는 그들과 다를 게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의 생활은 곧 우리가 품고 있는 악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욕망, 아니 악한 생각이 이끌어 가는 대로 우리는 악한 일만 저질렀습니다. 날 때부터 육신이 원하는 대로 행하여 악한 데로만 달려 나갔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진노를 면하지 못할 처지였습니다.
이는 평생을 열심히 산다 해도 마지막은 죽음이며, 죽음이라는 열매 외에 삶의 궁극적 열매는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창 12:1-2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셨다. `너는 어서 고향을 떠나거라. 한데 어울려 사는 네 친척과 네 집안사람들을 떠나 내가 가르쳐 줄 땅으로 가거라. 2) 나는 네 후손이 엄청나게 불어나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또한 네게 복을 내려 이름을 날리게 하리라. 너는 모든 사람에게 복을 전해 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
아브라함은 어디를 떠났을까? 고향, 부모, 형제, 자기 친구들을 떠났다. 왜 그랬을까? 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이기에 순종했는데, 갈 바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도 순종했다. 갈대아 우르는 우상 숭배하는 지역이었고, 하나님 없는 삶이므로 과감히 떠날 수 있었다. 그곳은 아브라함뿐 아니라 그의 자손들이 연약한 인간이기에 아브라함처럼 죄를 짓게 하는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야 한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으로부터 그 자리를 떠났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했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2. 복 있는 사람은 율법을 즐거워한다.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삶이 복 있는 삶이다. 말씀이 즐거운 자체가 복이다. 말씀을 즐겨 지키는 것이 복이다. 말씀을 지키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이 복이다.
다윗이 밧세바와 잠자리를 같이 한 뒤 예언자 나단이 다윗에게 찾아와 답변을 요구하였을 때 지은 시를 보면 죄를 짓고 있는 우리네 인간들이 얼마나 비참한 것임을 보여주며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기도를 볼 수 있다.
시 51:1-6 / 하나님! 주님의 따스한 사랑으로 이 몸을 어여삐 여기소서. 주님의 크신 자비로 이 몸이 지은 허물 지워 주소서. 2) 나의 죄를 말갛게 씻어 주시며 나의 허물을 깨끗이 닦아 주소서. 3) 이 몸이 지은 허물 내 어찌 모를까요? 내가 지은 죄 늘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4 내가 정녕 주님 앞에서 죄를 저지르며 주께서 번연히 보고 계시는 줄 알면서도 못된 짓을 저질렀으니 주께서 이것의 잘잘못을 가리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것에게 벌 내리시는 것은 백번 옳으신 일입니다. 5) 이 몸은 태어날 때부터 죄를 업고 태어났습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죄를 지고 있었습니다. 6) 주님은 마음이 진실한 것을 기뻐하시오니 슬기로 이것의 마음을 가득 채우소서.
다윗은 범죄함의 원인이 다른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중심에 하나님의 기준에서 벗어나 죄를 지었음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삶 속에 가득하기를 간구하였다.
임마누엘 예수님께서 가장 많은 이적을 행하신 고라신과 뱃새다, 가버나움을 안타갑게 여기시면서 기도하신 후에 하신 말씀이 있다.
마 11:28-30 /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사람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29)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무거운 죄의 짐을 내려놓고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의 마음을 가득히 간직하고 자기 십자가를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
본문 2절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에서 ‘오직’이라는 말은 복 있는 사람은 말씀의 맛이 하도 달게 느껴져 밤낮으로 말씀을 음미한다는 것이다.
▶ 어떤 사람은 말씀에서 ‘속박’을 느끼지만, 어떤 분은 말씀에서 죄에서 해방된 ‘자유’를 느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키고 행하고 순종하라고 주신 말씀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시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말씀에 순종할 때 힘들지라도 나중에 보면 그것이 행복의 길임을 체험케 된다. 또한 ‘말씀을 주야로 묵상한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 그냥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말이다. 말씀을 듣고 나서 그 말씀대로 실천하려고 할 때 그것이 복이 되는 것이다. 주야로 말씀을 묵상해 보시라. 그러면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면 그 말씀이 우리 영혼에 기쁘고 만족하게 할 것이다.
모든 일이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지만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하듯이 성경을 메일 몇 장씩 읽고 묵상(새김질)하다 보면 그 결실이 뜻하지 않는 상태에서 나타날 때가 있다.
3.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는 사람이다.
많은 분이 하나님을 알고 만났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만남은 대부분 개념적으로 이론적으로 만난 경우이다. 그러니까 그 신앙이 무력하고 메마른 것이 된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실제 상황이 주어지면 속수무책으로 후회하거나 오락가락한다. 그러나 되새김하는 묵상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개념신앙에서 실제 신앙으로 모드가 전환되게 된다. 이것이 큰 변화이다.
과거 민방위훈련을 할 때 보면 ‘이것은 훈련상황입니다’라고 했더니 사람들은 천천히 걸어서 피한다. 또 ‘가상 적기가 떴습니다’라고 하면 그때에도 누구도 긴장하지 않는다. 가상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실제상황입니다’라고 한다면 긴장하지 않겠는가? 분명 반응이 달라지고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 어느 독일 교수가 유독 히브리어를 잘했다. 이유가 있다. 그가 대학에 다닐 때 옆에 유대인 친구가 있었다. 이 유대인 친구는 쉬는 시간이 되면 뭔가를 중얼중얼 외웠다. 시편 23편을 히브리어로 암송한 것이다. 그렇게 암송하고 나면 마음이 상쾌하고 공부가 잘된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히틀러 나치 비밀경찰이 이 유대인 친구를 연행해 갔고, 그의 가족들도 모두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는 그 친구의 집으로 자전거를 타고 서둘러 가 보았다.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가족이 트럭에 실려서 끌려가고 있었다. 그때 유대인 친구가 트럭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씩 웃더니 갑자기 큰소리로 시편 23편을 히브리어로 외우는 것이다. 그리고 사라져 갔다. 독일 친구에게는 그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 후 이 친구학생도 독일군으로 징집당해서 전선에 투입되었다. 전투하다가 연합군인 러시아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그리고 마침내 다른 독일군 포로들과 함께 총살장으로 끌려갔다. 그때 그의 머리에 유대인 친구 생각이 번뜩 들었다. 유대인 친구가 비밀경찰에 끌려가면서도 씩 웃으며 시편 23편을 외우던 모습이 순간 생각났다. 그래서 ‘나도 그 친구처럼 웃으며 용기 있게 죽자’라고 생각하고 자기 차례가 되었을 때 용기 있게 외쳤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 큰소리로 시편 23편을 히브리어로 암송했다. 그러자 순간 두렵던 마음과 근심이 사라졌다. 그리고 자신도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솟아났다. 그때 사형을 집행하던 연합군 장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자신도 시편 23편을 히브리어로 외우는 것이었다. 그 장교가 유대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을 풀어주라. 그가 비록 독일군 악마의 제복을 입었으나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 백성이다.’ 이런 신비함을 체험해 보았는지? 아니 상상이라고 해 보았는지? 이것이 말씀이 주시는 능력이고, 용기이고, 힘이다.
깊은 묵상생활을 통해서 하나님 안에 깊이 들어가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게 된다. 그때는 실제상황으로 모드가 전환하게 된다. 그러면 기도가 달라지고 삶과 생각이 달라진다. 그때는 마치 내가 물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이 더위가 와도 아무 해를 입지 않는 나무처럼 변하게 된다.
주야로 묵상하라는 하나님의 명령 / 여호수아 1장의 가장 중요한 말씀은 3절과 8절이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약속까지 해 주셨다. ‘내가 이미 모세에게 일러두었다만 너희 발이 닿는 곳마다 그곳이 어떤 곳이든 그 땅을 너희에게 주마. 너희가 가는 땅마다 모조리 너희 땅이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어서 그 범위를 자세히 말씀해 주셨다.
수 1:4-6 / 너희가 들어가 살 땅은 남쪽으로는 광야에서부터 북쪽으로는 레바논 산악지대까지이고, 동쪽으로는 큰 강 유브라데에서부터 서쪽으로는 헷 사람들이 사는 지방을 거쳐 지중해까지이다. 5) 네가 살아있는 동안은 그 누구도 네가 이끄는 이스라엘을 당해 낼 수 없으리라. 모세가 살아있을 동안에 내가 그와 함께 하였던 것을 네가 기억하지 못하느냐? 그때와 똑같이 너와 함께 하리라. 너를 떠나지 않으리라. 너 혼자 있게 놔두지도 않고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그러므로 너는 힘을 내거라. 마음을 단단히 먹어라. 아무 걱정도 하지 말아라. 네 선조에게 주겠다고 내가 이미 약속하지 않았느냐? 내가 맹세하지 않았느냐? 네가 그 땅을 차지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가 해야 할 것을 말씀해 주셨다.
수 1:7-8 / 힘을 내거라. 마음을 굳세게 먹고 내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가르침을 꼭 지키거라. 그대로 실천하여라.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우습게 여겨서도 안 된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라. 내 말을 그대로 따르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모든 일이 잘 풀려나가고 잘되리라. 8) 이러한 가르침이 적혀 있는 이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여라. 끊임없이 외워라. 그 가르침을 놓고 낮이든 밤이든 늘 명상하여라. 가르침을 끊임없이 곱씹어 보아라.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다 지키고 그대로 실천하여라. 그 말씀대로 따라 살아라. 그리하면 네 앞길이 평탄하리라. 모든 일이 잘 풀려서 안 되는 일이 없으리라.
말씀 묵상은 무엇일까 / 흔히 우리는 말씀 묵상을 큐티라고 한다. 그러나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말씀 묵상이나 큐티라는 수단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묵상은 어떤 방법론적인 것이 아니고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것을 말한다.
히브리어에서 묵상하다의 뜻은 종일 그 말씀을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그것이 입으로 웅얼웅얼 나올 때까지 묵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묵상은 명상과 비슷한 의미로 느껴질 때가 많다. 말씀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묵상은 히브리 성경이 말하는 묵상의 올바른 형태는 아니다. 성경에서 ‘묵상하다’라는 단어에는 맹수가 ‘으르렁거린다’라는 뜻이 있다. 마치 배가 고픈 맹수가 먹잇감을 찾기 위해서 들판을 헤집고 다니다가 먹잇감을 발견하고는 그 먹잇감을 향해 ‘으르렁’하며 돌진한다는 의미가 있는 단어이다. 묵상(Meditation)이란 어원은 원래 라틴어 베디켈루스에서 온 말로 약(藥, Medicine)이란 뜻이다. 약은 약 봉투나 병에 담겨 있을 때는 몸에 효력이 없지만, 그것을 몸속에 투약할 때는 약효를 낸다. 이처럼 성경 말씀도 지식으로만 머리에 남아 있고 심령 속에 살아 있지 아니하면 신앙 성숙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여 오히려 거침돌이 된다. 그러므로 묵상 과정은 내 인격이 말씀 속에 몰입되어 하나님을 체험하는 필수적 훈련이다. 즉 성경 속에 내가 들어가고 성경 사건이 현실에 사는 나의 삶에 들어오는 것을 말한다.
▣ 88 올림픽 탁구 금메달리스트 양영자 선수의 이야기 / 초등학교 3학년 때 탁구를 시작한 그는 이미 중학생 때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하지만 테니스엘보우라는 팔꿈치의 심한 통증과 간염 등으로 선수 생활이 끝났다고 할 지경에 이른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마다 그를 일으키셔서 88서울올림픽 때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현정화 선수와 함께 기도하면서 한 경기 한 경기를 치렀다. 결국 중국과 만난 복식 결승전 당일 그는 현정화 선수와 함께 손을 마주 잡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아무도 넘을 수 없으리라는 중국 탁구의 벽을 기도로 넘어 올림픽 금메달을 조국의 목에 걸 수 있었다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88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은퇴를 하자 모든 것이 끝난 것만 같았다. 제2의 삶이 시작되던 시점이었지만 그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것이 방황의 시초였다.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지만, 경험만 가지고 선수들을 지도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이론과 실기를 겸해야겠다는 생각에 대학원에 진학할 무렵 환갑을 갓 넘긴 어머니가 간암 투병 끝에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셨다. 이후 깊은 우울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대인기피증이 생겨서 아침에 해가 뜨는 것조차 싫었다. 환청이 들리고 거식증까지 생겼다. 깊은 우울의 동굴에서 그녀를 끄집어낸 건 말씀이었다. 김양재 집사(현 우리들교회 담임목사)가 하던 말씀 묵상훈련에 참여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양 선교사는 ‘말씀의 광채가 날 비추기 시작했을 때 회복이 시작됐다’라고 그 당시를 회상했다. 그 후 남편과 함께 선교사로 헌신하는 양영자 선교사는 자신의 소망과 기쁨과 능력에 대해 이렇게 고백하였다. ‟저는 지금 M국에서 저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며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리석게 산다’고 걱정하지만, 그들에게 저는 고백합니다. 예수님만이 저의 소망이요 기쁨이요 힘이요 능력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가치는 금메달이 아니라 천국의 면류관이라고 말입니다.” 아멘!
말씀이 들어가고 또 들어가 내 것으로 만들라. 아무리 바쁠지라도 1순위 또는 0순위로 지켜야 하는 것이 바로 이 묵상의 훈련이다. 내 생각과 감정이 말씀 중심, 하나님 중심으로 해석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을 것이다.
말씀 묵상의 방법 / ❶ 말씀을 묵상하기 위한 시간을 내어야 한다. ‘바빠서 성경을 읽을 시간이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요즘처럼 경제 불황이 심각한 시절에 물론 할 일이 많아서 바쁜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바쁘다 보면,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린다. 너무 바빠서 하나님의 계심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을 망각하는 사람은 설령 그가 세상에서는 존귀한 사람으로 대접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멸망할 짐승과 다름이 없다. 사람이 세상 일로 너무 바쁘다 보면, 결국 그의 심령은 황폐해지고 만다. 소음과 분주함 때문에 그의 삶은 점점 어지러워지고 더러워지고 망가진다. 그러므로 성도는 바쁜 중에서도 항상 조용한 시간을 내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생각하고 묵상할 시간을 내어야 한다. 자신만의 시간과 장소를 따로 떼어서 하나님을 만나고 자신을 되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에 바쁠수록 조용한 시간과 장소를 찾으셨다. 우리도 우리만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❷ 성경을 많이 읽고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음식을 예로 들면, 성경을 읽거나 쓰는 것은 음식을 입 안에 넣는 것이라면 묵상은 음식을 잘근잘근 씹는 것과 같다. 음식을 입안에 많이 넣어도 씹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읽은 다음에 약 10분 이상 묵상하자. 중요한 구절을 반복해서 암기하라. 그리고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때까지 계속 묵상하라. 말씀을 더 생생히 깨닫기 위해서는 자신이 말씀 속으로 직접 뛰어 들어가는 것이 좋다. 자신이 말씀 속의 인물이라고 상상해 보라. 그리고 말씀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살펴보라. ❸ 말씀을 묵상하려면 바른 자세로 앉는 것이 좋다. 의자에 앉을 때는 발을 바닥에 내려놓고 팔과 손은 무릎에 가지런히 놓아라. 바닥에 앉을 때는 무릎 위에 성경을 얹어놓으라. 가급적 눈을 감는 것이 좋다. ❹ 말씀을 묵상하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그 다음에는 기도하는 것이 더 좋다. 말씀을 이해하고 깨달았다면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기도하기 바란다(시 119편).
맺는말
2023년 복 있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주야로 묵상하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말씀이 능력이 되어, 힘을 주며 강하고 담대하게 한다. 우리로 하여금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욥, 다윗, 다니엘과 같은 사람으로 바꾸어 놓으시는 능력을 체험하게 된다. 골방에서 기도하면서 말씀과 가까이하자. 주신 말씀을 묵상하면서 순종하고 행할 때, 하나님과 동행하며 복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대로 살아갈 때 복 있는 자로 형통함을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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