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호. 이 현
같은 날 순교한 홍필주의 인척
홍정호 : 7-1801, 세례명은 미상, 서소문 밖에서 참수
이 현 : ?~1801, 세례명 안토니오, 서소문 밖에서 참수
윤유일의 접주였던 홍정호
홍정호(共正浩)는 홍탁보(洪鐸輔)의 서자로. 본관은 풍산이며 세례명은 알 수 없다. 그는 강완숙의 아들인 홍필주와 가까운 일가로서 , 항렬로는 홍필주의 증조(曾祖)뻘이다.
홍정호의 취조 기록을 보면, 그는 천주교에 깊이 빠져 주문모 신부와 윤유일의 접주(接住, 집주인)가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가 천주교에 입교한 시기는 늦어도 윤유일이 순교한 1795년 이전일 것이다. 최창현에게서 교리서들을 빌려 볼 정도로 신앙 생활에 깊이 빠졌던 그는. 자주 강완숙의 집에 드나들었으며. 때로는 자기 집으로 주문모 신부를 모셔다 교리도 배우고 미사도 드렸다. 그와 함께 신앙 생활을 한 사람은 손인원, 현계온, 최필제 . 윤유일, 박덕신, 최재도, 이현, 남 판서 댁 노비 구월, 강완숙의 노비 소명, 동의의 어머니 등이었다.
▲ 홍필주의 인척인 홍정호와 이현은 사형 판결을 받고 강완숙 등 신자 7명과 함께 서소문 밖으
로 끌려가 참수 되었다.
1801년 신유박해로 체포되어 포도청에서 신문을 받은 뒤 형조로 이송된 홍정호는, 형조의 1차 신문에서 늙은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에 살아 나갈 생각으로 “주문모 신부를 만나지 않았다”고 진술하였다. 그러나 곧 마음을 돌려 주문모 신부와 자주 만났다고 사실대로 진술하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였다.
그러자 형리가 이렇게 따져 물었다.
"너는 흥필주와 가까운 일가로. 다 같이 양반의 서자인데 어찌하여 천주교에 깊이 빠졌느냐? 만약 홍필주가 네게 전교한 것이 아니라면 반드시 네가 홍필주를 유혹하여 전염시킨 것이 아니냐? 주문모 신부를 집으로 불러들여 미사를 드린 것은 누가 더 많고 누가 더 적으냐? 네 집 가족들과 홍필주의 집 부녀자들이 서로 오가며 미사에 함께 참석하였으니,…여러 죄수들이 문초에서 홍필주를 말할 때에는 모두 그의 어머니에게서 배웠다고 말하면서도. 너를 말할 때에는 네 어머니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꼭 네 이름을 들어 말하는 것을 보면, 네가 홍필주보다 더 깊이 천주교에 매혹되었기 때문이 아니냐?”
이것으로 보아 홍정호는 교회 안에서의 활동과 지명도에 있어서 결코 홍필주에게 뒤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형조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1801년 5월 22일(양 7월 2일) 강완숙, 최인철, 김현우, 김연이, 강경복, 한신애, 이현, 문영인 등과 함께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었다.
《천주실의》에 매혹된 이현
홍정호와 같은 날 순교한 이현(李絃,안토니오)은 홍익만의 사위이자 성
화(聖盡)를 그린 이희영(李喜英,루가)의 친조카이며, 홍필주와는 동서간이
다. 그는《천주실의》를 읽은 뒤 깊이 매혹되어 홍필주의 집을 찾아 다니며
교리를 배웠고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후 김건순, 이회영, 홍필주 등과 함께 교리를 연구하며 신앙 생활을 하였고, 최해두, 정광수, 홍정호, 김종교, 최필제, 남필용 등과 자주 만나 미사에 참석하였다. 이현은 포도청에 체포되어 신문을 받을 때 곤장과 주뢰형을 못 이겨 처음에는 약간 배교의 뜻을 비쳤으나, 형조로 이송되어서는 배교를 취소하고 "비록 형벌을 받고 죽을지라도 진실로 마음을 바꿀 수 없다”고 당당하게 신앙을 고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