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頭山石 摩刀盡 頭滿江水 飮馬無
백두산석 마도진 두만강수 음마무
南兒二十 未平國 後世誰稱 大丈夫
남아이십 미평국 후세수칭 대장부
백두산에 있는 돌을 칼을 갈아 다닳게 하며
두만강에 있는 물을 말을 먹여 없애버리고
남아로 태어나 나이 이십에 나라를 평정치 못한다면
후세에 누가 감히 나를 장부라 부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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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장군은 조선 세종 때의 인물로
태종의 외손자이자 세조의 공신 권람의 사위이다.
그는 17세에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세조 13년에 이시애가 북관에서 난을 일으키자 우대장으로 이를 토벌하여
적개공신 1등에 올랐다.
또한 북방의 여진족을 물리치는 공을 세우고
세조의 총애를 받아 그이 나이 27세에 병조판서(현 국방부장관)가 되었다.
세조가 죽고 등극한 후 예종은
젊고 패기있는 남이가 언제 무슨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하던 차에
마침 그해에 하늘에서 혜성이 나타났는데
남이는 혜성을 바라보고
"옛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이 나타날 기상이로구나"하고 한마디 하는 것을
그의 승승장구하는 공적을 두려워한 유자광이 곁에서 엿듣고는
남이가 역모를 꾀한다고 무고를 하여 역적으로 몰아 28세의 젊은 나이에 죽임을 당한다.
한편 예종임금이 보고 있는 자리에서
이실직고(以實直告)하라면서 남이가 만신창이가 되도록 고초를 당하고 있는데도
영의정 강순은 모른 척하고 있었다.
때마침 영의정 강순과 눈이 마주치자
내가 역모를 하지 않았다고 한마디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으나
모른 척하는 영의정 강순이 얄밉기만 했다.
임금이 같이 역적모의를 한 자가 또 있으면 불라고 하자
마침 곁에 있는 영의정 강순을 가리키며 저자와 같이 공모를 했다고 하였다.
두 사람이 같이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강순이 왜 나를 공범으로 죽이려고 하느냐고 물어보자
"당신은 영의정 자리에 있고
나이가 80이면 이제 살 만큼 산사람인데
함께 여진족 평정을 간 부하의 억울함을 보고도
몸을 사려 변론도 하지 않는 불의(不義)는 죽어 마땅하다."
그 후 순조 18년
그의 후손인 우의정 남공철의 주청으로
그 억울한 누명을 벗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