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7.수요예배 설교
설교본문/ 고린도후서 5:1~10(신약290쪽)
설교제목/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서론/
오늘 수요예배 말씀은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이란 제목으로 전하고자 합니다. 다같이 설교제목을 두번 읽겠습니다.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2회.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주 수요예배에서 우리는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지만,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겉사람과 속사람이 있는데, 겉사람은 우리의 육체- 몸을 가리키고, 속사람은 속 마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새사람이고, 믿음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영을 받은 새로운 자아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우리의 속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도 새로워지지만, 우리의 겉사람은 점점 낡아지고 노쇠해지고 쇠퇴해져서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말씀은 우리의 겉사람이 낡아지고 무너지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주고, 우리가 땅에 있는 장막집에서 살면서 무엇을 바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본론/
1절, 우리는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장막집은 우리의 육체의 한계성을 장막에 비유한 것으로 무너진다는 것은 육신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장막집과 집의 차이는 장막집은 임시로 있는 텐트집이고, 집은 계속 사는 집입니다.
바울은 장막-텐트를 짓는 기술로 선교비를 마련하기도 하였는데, 우리의 육체를 장막집에 비유하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집은 하늘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땅에서 임시적인 장막집에 살다가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집, 천국(맨션- 저택)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죽음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이사를 가는 것입니다.
2절, 사실상 우리는 땅에 있는 장막집에 살면서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무너질 장막, 썩어질 육체에서 벗어나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덧입고 영원한 천국집에 들어갈 것을 사모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3절, 우리가 옷을 입고 있으면, 벌거벗은 몸으로 드러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해하기 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벗은 몸으로 드러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고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영과 몸이 분리되고 영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 몸이 없는 벗은 자와 같은 상태로 있게 됩니다.
그런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거처 즉 부활의 영적인 몸이 주어지게 되면 영은 다시 그 몸과 결합하여 벌거벗은 몸으로 드러나지 않게 됩니다. 주님의 재림시에 살아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사람은 즉 죽음을 맛보지 않은 사람들은 순식간에 영의 몸으로 변화되어 부활의 몸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4절,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장막이 있는 한 그 연약함과 불완전함, 제한성과 거기에서 오는 박해와 환난 때문에 무거운 짐진 것처럼 고통스럽게 신음하며 탄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생명이 죽을 것을 삼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구약의 에녹이나 엘리야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에 올라감.) 육체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간절히 갈망한다는 뜻입니다.
5절,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보증으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보증은 최종적인 지불 보증을 말하는 것인데, 확실히 그렇게 이루어주신다는 것입니다.
6절,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님과 따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가 육체를 입고 있을 때에는 여전히 따로 살고 있는 한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안에서 그리스도와 교제하고 있지만, 자신의 현재적 거처와 예수님의 거처는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7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것이지, 보는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눈으로 그리스도를 볼 수 없지만, 믿고 바라는 삶이다는 것입니다.
8절,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땅에 있는 장막집이 무너져서 주님과 함께 사는 것, 죽어서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을 담대히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9절,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씁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사는 삶이란 모든 생각이나 관심이나 말이나 행동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10절, 이것은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각 사람은 몸을 입고 사는 동안, 행한 선한 일이나 악한 일이나 자기가 행한 행위대로 거기에 알맞은 보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밤 우리는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이란 주제로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으로 이사를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죽음은 주소를 이땅집에서 하늘집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땅의 장막에서 짐진 것같고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고 오히려 부활의 몸을 벗입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장막집이 낡아지고 곧 쓰러질 것같을 때 무거운 짐을 진 것같고 아이고 아이고 탄식하지만, 이러한 탄식은 더욱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사모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차라리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을 떠나 주님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이땅에서 살든지, 이땅을 떠나 살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힘쓰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기를 기쁘게 하거나 사람을 기쁘게 하는데는 힘쓰지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데도 그러지 못하면 힘쓰는 일이 헛된 것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힘을 써야 하는 이유는 심판대 앞에 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았던 일에 대해서 심판하는 곳입니다.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에 따라 보응을 받게 되는데, 주님이 너 이세상에 무슨 일에 힘쓰다가 왔느냐 물어보면, 선한 일에 대하여 대답할 것이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언젠가, 몇년이 남았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져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으로 가서 주님을 만나게 될터인데, 우리 주님이 말씀하실 것입니다. <수고했다, 금일소망교회 섬기느라고 고생했다,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기 위해서 힘쓴 것 다 알고 있다, 여기 너를 위해서 상급을 준비해놓았는데, 받아라> 하실 것입니다. 우리 소망교회 성도님들은 모두 좋은 상급을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이런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요, 하늘 위의 집.
초가 삼간도 나는 만족하네 값진 재물도 내겐 없지만/ 앞으로 내가 하늘나라에 가면 순황금길을 거닐겠네/ 내게는 하늘 저 위에 있네/
영원한 기쁨 넘치는 그곳 언젠가 내가 저 천국 이르러 주님과 함께 거닐겠네/ >>
<합심기도> 다같이 합심하여 2분 정도 기도하겠습니다.
1)주여,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으로 간다는 것을 믿고 알게 하소서
2)주여, 설연휴 좋은 날씨와 가족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주소서.
3)주여, 우리교회 부흥을 주시고, 차량이 은혜로 마련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