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첨부한 사진 하나로 덕수궁(경운궁) 궁역의 변천사를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습니다.
붉은색은 1911년 덕수궁이 제일 잘 나갈 때 차지하고 있던 권역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동(東)으로는 태평로 일부 구간의 도로와 시청 앞 서울광장의 서편 일부를 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서(西)로는 정동길 예원학교, 북(北)으로는 옛 경기여고와 덕수초등학교까지의 넓은 공간이었음은 많은 분들에게 다소 뜻밖이라는 느낌을 줄 것입니다.
파란색은 옛 미국대사관으로 지금은 미국 대사관저인 하비브 하우스입니다. 미국대사관은 세종대로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고, 조만간 용산의 미8군 ‘캠프 코이너’ 부지로 이전하기로 되어 있지요.
녹색은 영국대사관의 영역입니다. 영국의 국교였던 성공회의 성당도 나란히 세워져 있습니다. 파란색의 미국대사관저와 녹색의 영국대사관, 성공회성당은 옛날에도 덕수궁의 궁역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노란색은 현재의 덕수궁 영역입니다. 붉은색 권역과 비교하여 보면 약 1/3에 해당함을 알 수 있어요. 그만큼 덕수궁의 위세가 크게 줄어들었는데, 어떤 변화가 있었느냐 하면 대한문과 선원전의 이건(移建)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대한문의 원 위치는 서울광장의 서남단으로 지금의 위치에서 33미터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한 때는 섬처럼 도로 가운데 서있던 대한문(첨부 사진)의 이전에는 당시로서는 특이한 방법이 동원되었습니다. 요즘처럼 해체했다가 옮겨서 복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1970년 당대의 장인들이 동원되어 대한문 전체를 꽁꽁 묶어서 조금씩 뒤로 물리는 방식을 썼기 때문에 ‘대한문이 걸어간다’고 하여 장안의 큰 화젯거리가 되었지요.
또한, 선원전은 역대 왕들의 초상인 어진과 신주 등을 모신 신성한 공간입니다. 하지만 1920년 일제에 의해 훼손된 뒤 조선신탁은행 사택, 경기여고 등으로 사용됐습니다. 덕수궁에 살던 고종이 승하한 이후 일제는 선원전 부지를 민간에 매각했고, 1921년 선원전 건물을 창덕궁 서북쪽 깊숙한 곳으로 옮겨 지은 뒤 신선원전으로 사용하게 했습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덕수궁 선원전은 2038년까지 3단계에 걸쳐 복원됩니다. 선원전과 흥덕전, 흥복전 등 50여동의 주요 전각과 부속 건물들이 들어설 예정으로 있습니다.
서울의 궁역에는 오늘도 복원공사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9월 20일에는 경복궁 계조당이, 9월 26일에는 덕수궁 돈덕전이 다년간의 공사 후 각각 일반에게 공개되었습니다. 그만큼 우리 국민들도 옛 문화재를 접할 기회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하드웨어로서의 건물 복원에 열심인 만큼, 소프트웨어로서의 문화재 공부에도 많은 열정이 쏟아지기를 기대하여 봅니다.